샴에 의해 라오스 왕국이 약화되고 3분된후 3왕국 모두가 샴을 종주국으로 섬겨야 했기 때문에 라오스의 샴(1939년에 타이란드로 국호를 변경하는데 아시아 나라중 국명에 란드(Land)라는 영문자를 붙힌 것이 이채롭다)에 대한 회한과 낭패스러운 감정은 일제 35년의 지배를 받은 우리의 일본에 대한 감정이상으로 격렬한 것이다. 자신들의 속마음을 잘 나타내지 않는 라오스인들의 특성상 겉으로는 조용하다.
그러나 두나라간 국경선 확정을 둘러싼 문제라던가 민속공예나 전통 춤사위 등 관광문화 상품의 원조가 어디냐에 이르기까지 두 나라간에는 복잡 미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13세기말 타일랜드의 북부에 란나, 란상 왕실간의 혼인관계와 연합의 역사로 보아 라오스는 란나를 라오스의 왕국으로 보는데 타이란드는 란나는 타이족이 세운 나라로 같은 타이족인 아유타야 왕조에 흡수 통합되었을 뿐이라 하며 샴에 의해 18∼19세기에 걸쳐 라오스를 포함한 타이족의 대통일을 이루었으나 프랑스라는 외세의 개입으로 메콩강 동안지역을 잃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대해 라오스는 현재 타이란드 왕국을 수립한 샴은 타이란드 남부의 평원지대 일부를 지배하던 소 부족에 불과하였으나 여타 타이/라오계 왕국들을 강제로 통합 복속시키고 제국주의적 팽창과 정복을 행한 부도덕한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다. 더욱이 샴이 1939년부터 "타이란드"로 국호를 바꾼 것은 라오스까지 그 지배하에 두려는 제국주의적 의도를 가진 것으로 의심하여 왔다. 이러한 타이란드와 라오스간의 갈등의 모습을 좀더 살펴보기로 하자.
라오스와 타이란드는 모두 쿤 부롬(Khun Bulom)을 자신들의 조상신으로 모시고 있는데 이 신의 아들이 모두 7명이었다 하니 라오/타이계 민족은 수개의 민족집단으로 떨어져 살아왔으나 신화와 언어, 풍습은 물론 역사적 경험도 많이 공유하고 있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우선 두 나라의 언어를 살펴보자. 타일랜드인과 라오스인은 통역이 없이 의사가 통한다. 성조에 있어서 타이어가 5성인데 라오어가 6성이라는 차이가 있으나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다. 좀더 부드럽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타이어의 리듬에 비해 라오어는 단어의 끝음절이 높고 길게 늘어지는 경향이 있어 덜 세련된 느낌을 주기는 한다. 예를들어 라오스의 구 왕도는 타이어의 영향으로 루앙프라방(Luang Pravang)으로 표기·발음하고 있으나 라오스인은 鱁(r)음이 빠진 루앙파방(Luang Pavang)으로 발음하고 있다. 라오스의 대외개방으로 타이란드의 TV를 강 건너 라오스인의 안방에서 시청할 수 있게 됨으로서 타이어의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여담이지만 타이어와 라오어에는 종성으로 鱁에 해당하는 L과 R의 음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센터(center)를 "센탄"으로 빌(bill)을 "빈"으로 더블보기(double bogy)는 "더븐보기"로 발음한다. 우리 여행객이 계산서를 달라할 때는 "책빈"(check bill)해야 알아들을 것이다. 비엔티안에 라오미션센타(LMC) 라는 의료봉사를 위한 NGO를 운영하고 있는 김정인 목사가 있는데 2년전인가 북한지도자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에 취임했다는 기사와 LMC의 의료장비 기증에 관한 기사가 라오스어 신문에 나란히 실린 적이 있었다 한다. 목사 김정인과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라오스말로는 모두 같은 "김정인"으로 표기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타이어나 라오어로는 김정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오스주재 북한대사의 성명을 확정(?)하는데만 두어 달이 걸린 것도 이"鱁"종성음의 부재에 기인한다.
그는 필자보다 서너달 먼저 부임했는데 라오스어 신문은 림용건으로 영자신문은 림용걸로 보도하여 혼동이 있었으나 외교부발행 외교관명단(diplomatic list) 등재를 확인함으로서 림용걸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림 대사는 라오어로 표기될때는 언제나 림용걸이 아닌 림용건이 된다. 지난달에는 김정인 목사에 대한 영문기사에서 그를 김정일로 표기하여 "鱁"음을 종성으로 쓰지 않음으로서 많은 혼란이 있음을 또한번 실감했다.
라오스어 알파벳은 기본자음 26개와 기본모음 28개( 장모음, 단모음 각 12개와 복합모음 4개)로 총 54개이나 이에 성조부호 4개와 특수자음 6개가 추가됨으로 64개의 부호를 익혀야 한다. 라오스에서는 앞에 말한 L음을 기존의 총자음 8개에 추가하는 문제와 R의 음가를 가진 자음을 도입하는 문제가 논의되고 있으나 아직 결정을 보지 못하고 있다. 타이 알파벳이나 라오 알파벳은 모두 인도의 팔리어와·산스크리트어에서 차용해온 것이므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공통요소가 많고 표음문자여서 같은 알파벳을 놓고도 라오스측은 란상왕국이 개발한 라오/타이 알파벳 원형이 수코타이의 람캄항(Ramkhamhang)왕을 거쳐 남부 타이로 유입되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타이측은 라오스가 사용하고 있는 알파벳은 소타이문자(little Thai script)로 타이 알파벳이 원조라 주장하고 있다.
어쨌건 TV덕으로 거의 모든 라오스 사람이 방콕중심의 표준 타이어를 이해함에 반해 타이사람들은 라오스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언어 이외에도 남녀가 마주보며 추는 민속춤 람봉(lambong)의 원조(元祖)가 어디냐는 문제와 타이와 라오스 양쪽에서 광범위하게 시행하고 있는 바씨(Baci 혹은 Basi)의식에서부터 타이가 관광객을 상태로 판매하고 있는 바틱제품의 무늬에 이르기까지 원조 논쟁은 끝이 없다. 문화와 풍속의 문제에 들어가게 되면 두 나라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문제이므로 제3자가 판명하기 어려운 영역이 된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두 나라간의 민족정체성(identity)논쟁은 타이/라오민족의 대통일을 이루지 못한 타일랜드의 회환과 타이란드와 베트남이라는 지역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독립과 정체성을 확립해 가려는 라오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어느쪽도 양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라오스에 주재함으로 해서 흔히 접하는 라오스의 논리를 조금만 더 소개해 보기로 하자. 중세 타이북부의 란나왕국이 타이계냐 라오계냐 하는 것과 에메랄드 부다의 정말 주인은 누구냐는 이야기는 앞에 언급한 바 있으므로 타이 동북부(라오/타이어로 이산이라 부름) 지방에 대한 라오스 입장만 살펴보자.
이 지역은 코라트 고원이라고 부르는 해발 150m정도의 비교적 척박한 땅이지만 총면적 17만평방키로로 타이란드 전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넓은 면적이다. 지도를 보면 메콩강이 라오스 중부지방에서 우측으로 꺽이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약 120Km 지점에 로에이(Loei)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방콕에서 동북방으로 150Km 지점에 나콘 라차시마(Nakhon Ratchasima)가 있는데 이 두 지점을 남북으로 이을 때 그 동쪽의 광활한 평지고원이 이산지역으로 콘켄, 우동타니, 우봉등 8개의 대도시들을 포함한 19개의 주에 2천 6백만의 인구가 살고 있다. 이 지역은 본래 몽-크메르 계통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몽-크메르인과 다수의 타이인이 혼주하고 있으므로 이들 모두를 라오인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 하더라도 적어도 1천만이 넘는 라오인들이 타이 국적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까닭으로 필자가 언젠가 라오스 외교부 관리에게 해외거주 라오스 교민수를 물었을 때 그는 타이란드 동북부에 적어도 1천만의 라오인이 살고있다고 답한 바 있다. 이 이산이라는 지역은 라오스가 1707년 북부, 중부, 남부의 세 왕국으로 분할되었을 때 비엔티얀을 수도로 하는 란상의 관할지였으며 메콩강은 오늘과 같은 국경이 아닌 이산고원의 문(Mun)과 치(Chi)강 등의 수계와 함께 주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란상은 1779년에는 샴에 조공을 바치는 부용국(vasal state)로 전락하고 호 프라케오에 안치되어 있던 옥부처도 빼앗겼을뿐 아니라 메콩강 부근의 라오스인이 방콕 주변으로 강제이주 당함으로서 노동력을 상실함으로서 국력이 피폐하였다.
앞에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1826년에 샴에 인질로 와있던 차오 안우(Chao Anu 또는 Chau Anuvong으로 불리며 Chao는 Prince를 뜻함)가 비엔티안으로 돌아와 그 전해 미얀마를 제압한 영국의 샴 진출과 연계하여 라오스의 독립을 쟁취할 원대한 꿈을 안고 병력모집에 착수, 동원한 병사가 총 2만5천이었다. 이때 샴의 총인구는 약 600만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동원가능한 병력은 60만, 안우의 병사 2만5천은(이들이 가진 화승총은 총 2,700정에 불과하여) 죽창과 낫, 조약돌로 대항했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비엔티안이 철저히 파괴되고 남은 인구마저 메콩 이동으로 강제이주 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이때 안우는 베트남의 후에왕조가 원조해 줄 것으로 믿고 베트남에 조공을 약속하였으나 오히려 라오스 동북부의 셍쾅지역만 베트남에 빼앗기고 만다. 라오스인은 안우를 란상왕국 설립자인 화굼과 라오스의 최대 판도를 개척한 수리나 봉사(Sulina Vongsa, 1637-1694년의 57년간 재위) 왕과 함께 라오스의 3영걸로 추앙하지만 안우 왕의 실패한 봉기는 라오스의 건강한 남자가 샴왕 라마 3세에 의해 모두 문신(tattooing)을 당하고 라오 노예라는 이름으로 샴에 팔려갔으며 어여쁜 여자들은 권세 있는 샴 귀족의 측실로 끌려가는 비운을 맞고 말았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 타이의 라마(Rama)왕조의 생성을 잠깐 살펴보자. 수코타이를 흡수하고 란나(수도는 치앙마이)를 복속시킨 아유타야는 17∼18세기에 동으로 일본, 서로는 유럽과 교역하는 등 번영했으나 1767년에 미얀마에 의해 수도가 철저히 파괴 유린된다. 이에 아유타야의 유민을 지휘한 군사정권이 타크(Tak)주의 지사 탁신(Taksin)이 었는데 방콕의 남쪽에 있는 촌부리(Thonburi)로 수도를 옮긴다. 탁신은 아버지가 중국인으로 타이남부에 진출한 중국인의 후원으로 아유타의 왕권에 도전했으나 1778∼79년에 그의 부장이었던 라마 1세가 탁신을 누르고(1781∼82년)새 왕조를 방콕에 건설하게 되는데 이가 다름아닌 라마1세로 현 타이국왕 푸미폰(Bhumibol로 표기함) 의 6대조 할아버지이다. 이때 방콕으로 천도한 이유가 아유타야는 미얀마와 라오스에 너무 가깝다는 것이었다 한다.
미얀마는 그렇다 하고 라오스가 너무 가깝다는 것은 이산 즉 현재의 타이 동북부 지역이 라오인이 거주하던 라오스 땅이었음에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패전의 장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오스인이 안우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라오스의 자존심을 찾으려고 힘겨운 투쟁을 전개한 가장 최근세의 라오스 역사를 대표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라오스의 배경 그림인 인도차이나 반도의 성격과 라오스의 건국으로부터 부침의 역사를 타이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현재의 라오스가 어떤 나라인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필자는 19세기 중엽이후 전개된 프랑스의 식민 침탈사와 2차 세계대전 후 라오스의 국가형성을 위한 투쟁과정을 생략하고자 한다. 오히려 150년을 뛰어넘어 1975년에 왕정을 폐지하고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을 수립한 이후인 지난 4반세기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라오스가 겪은 150년의 근대사가 짧은 지면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다기할 뿐 아니라 내부분열과 열강의 간섭은 최근의 라오스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언급함으로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의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불령 인도차이나라는 이름으로 2차대전 전까지 통치한 프랑스의 공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는 이 세지역중 라오스를 영국과 샴의 동진을 막는 완충지대(buffer zone)로 생각하였을 뿐 라오스 그 자체에 아무런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았다.
라오스는 산악 뿐으로 약간의 목재자원을 재외하고는 경제적 가치가 없었을 뿐 아니라 메콩강을 통한 중국 운남과의 통상로 개척도 수개의 폭포와 급류로 인해 무위로 되고 철도나 도로건설도 그 비용이 엄청났기 때문에 아무런 개발투자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는 영국이 미얀마 통치를 인도관리에 의존하였던 것과 같이 베트남의 관리를 라오스에 파견하여 간접통치를 하였다. 프랑스 통치 기간중 비엔티안에 세운 고등교육 기관이라고는 중학교(뒤에 고등학교과정까지 증설)하나 밖에 없었을 정도이니 프랑스 통치의 은혜? 도 전혀 입지 못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프랑스도 자신들의 관심부족을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라오스가 샴에 흡수되지 않고 한 개의 독립국으로 소생할 수 있었던 것은 1893년10월에 체결한 프랑스-샴 조약으로 메콩강의 동부지역이나마 보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강변하고 있다.
글 : 전 주라오스 대사 정 화 태
출처:http://blog.daum.net/haeranghr/8358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