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의 혼을 찾아
수필가 장 병 선
우리 일행 40여명은 역사 유적을 탐방하려고 중국 산동성으로 향했다. 군산항에서 초저녁에 출발한 석도행 여객선은 별들조차 숨어버린 질흙 같은 밤바다를 해치며 서쪽으로 달렸다. 먼동이 트는 새벽녘에서야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었다. 1200여 년 전, 장보고가 서해 해상을 누빌 때도 바다는 안개가 자욱했었을까? 그 당시 망망대해에서 파도를 어떻게 헤치고 며칠을 지나야 도착할 수 있었을까?
우리 일행은 12시간 항해 후 버스를 갈아타고 산동성 장보고대사의 기념관으로 향했다. 적산법화원에 만난 380톤이나 되는 웅장한 장보고 동상은 하나의 커다란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장보고는 산 정상에서 편하게 앉아 관광객에게 어서 오라고 환영하는 듯했다. 동상 앞면에는 서해바다가 보이며 뒷면에는 법화원 경내 풍경이 열려졌다. 법화원 아래에는 관음상 분수 쇼가 펼쳐졌다. 불상이 입으로 불을 뿜을 때 동자승들은 힘을 합쳐 하늘 높이 물을 시원스럽게 뿜으며 장관을 이루자 모두 박수를 치며 복을 빌었다. 아래쪽에는 신라인의 집단 거류지인 신라방이 말끔히 단장되어 있어서 옛날 통일신라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였다. 해상왕 장보고가 우리 민족이라니 가슴 뿌듯하여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장보고는 서기 790년에 전남완도에서 때어났다. 유년시절 물에 익숙한 장보고는 무예를 연마했는데 특히 활과 창을 잘 다루었다. 청년기에 당나라로 건너가 18세에 당나라의 부령군에 입대하여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워 30세에 부령군 소장으로 승진했다. 34세 때 중국산동성에 적산법화원을 건립하여 신라인에게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38세 때에 고향에 돌아와 신라 흥덕왕에게 해상 교통의 중요성을 건의하여 전남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대사로 임명된다. 청해진은 서해상의 도둑무리를 소탕하고 노예로 팔려가는 신라인을 구하며 통일신라, 당, 일본을 잇는 국제 무역권을 주도하며 명성을 얻었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보고의 진가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뱃사람의 신분으로 자신의 여식을 신라 문성왕의 왕비로 만들려다 한때 동료였던 염장의 계략으로 51세에 암살을 당하여 생을 마감했다. 최근에 ‘해신’이라는 드라마로 장보고의 생애가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부패한 권력을 무너뜨리면 역사에 영웅으로 기록되지만, 권력에 도전하여 실패하면 역적이 되고, 그 동안 업적도 가려져 묻히고 마는 게 세상이다. 다행이 장보고에 대한 재평가로 다시 조명을 받게 되어 다행스럽다. 오늘날 중국 산동성에서 장보고는 해신(海神)이라는 명칭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니 우리 민족의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중국 산동지방은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지에 농작물(밀, 보리)과 포플러가 가는 곳 마다 공터 없이 심어져있다.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경작을 하지 않는 우리와 다른 것 같다. 중국은 여러 곳에 유적지와 풍경구도 많고 역사에 빛날 인물도 많다. 중국은 많은 자원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외국인이 찾아오게 만들어 외화수입을 올리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그 많은 인물 중에 우리 민족의 자랑인 장보고가 있어 우리가 역사 탐방지로 한 번 더 중국을 찾아가게 만들고 있었다. 중국이 왜 장보고를 명신(明神)이며 해상왕이라고 추겨 세우며 많은 투자를 하여 ‘국가A급여유경구’로 만들었을까? 혹시 어느 시점에 가면 장보고가 당나라 사람이라고 우기지 않을까? 이는 내가 갖는 기우에 불과하길 바란다.
우리나라에 장보고기념관이 전남 완도에도 있다. 완도 장좌리 앞바다에는 전복을 엎어 놓은 듯한 둥굴 넓적한 섬 장도(일면 장군섬)가 있다. 썰물 때는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이 청해진의 유적지다. 얼마 전 이곳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다. 당시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기와, 토기, 목책, 멧돌등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장좌리 부근에 장보고 기념관이 있다. 대지가 14,000m(4,300평) 건축물 1,700m(500평) 2층 철근 콩크리트 건물로 2008년에 개관되었지만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매년 음력 1월15일이면 청해진 장좌리 주민과, 장씨(張氏) 후손들이 참여하여 풍어제와 대사의 명복을 기원하고 있다. 드라마 ‘해신’으로 세인의 관심을 받았던 촬영장소도 이제 인적이 끊기고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
지금 서해는 풍부한 해산물의 보고이며 동북아시아 해상 무역선의 통로다. 우리나라와 중국, 북한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대결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장보고의 용맹스러움을 본받고 도전정신을 배워 우리의 앞날에 융성한 기운이 활활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중국산동성의 법화원 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살아있는 탐방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첫댓글 좋은 작품에 머물다가는 기쁨이 크네요. 저희 집으로 모셔갑니다. 문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