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書 卷二十八下 地理志 第八下 (후한 盤固 2C)
樂浪郡, 武帝 元封三年開. 莽曰樂鮮. 屬幽州. 應劭曰 :「故朝鮮國也.」 師古曰 :「樂音洛. 浪音狼.」 戶六萬二千八百一十二, 口四十萬六千七百四十八. 有雲鄣. 縣二十五, 朝鮮, 應劭曰 :「武王封箕子於朝鮮.」 䛁邯, 孟康曰:「䛁音男.」 師古曰 :「䛁音乃甘反. 邯音酣.」 浿水 , 水西至增地入海. 莽曰樂鮮亭. 師古曰 :「浿音普大反.」 含資, 帶水西至帶方入海. 黏蟬, 服虔曰 :「蟬音提.」 遂成, 增地, 莽曰增土. 帶方, 駟望, 海冥, 莽曰海桓. 列口, 長岑, 屯有, 昭明, 南部都尉治. 鏤方, 提奚, 渾彌, 師古曰 :「渾音下昆反.」 呑列, 分黎山, 列水所出, 西至黏蟬入海, 行八百二十里. 東暆, 應劭曰 :「音移.」 不而, 東(郡)[部]都尉治. 蠶台, 師古曰 :「台音胎.」 華麗, 邪頭昧, 孟康曰 :「昧音妹.」 前莫, 夫租.
낙랑군은 기원전 108년 설치되고 왕망때 락선이라 했다. 유주에 속하게 하였다.
호수는 62,812 호이고 인구는 406,748명이다. 운장이 있다. 패수는 서쪽으로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동군 도위가 다스린다.
서안에서 1250리로 기록되어있다.
지역을 보니 아래 고지도에 표기된 지역이었다.

後漢書 志第二十三 郡國 五 (宋 범엽(范曄, 398~445)
樂浪郡 武帝置. 雒陽東北五千里. 十八城, 戶六萬一千四百九十二, 口二十五萬七千五十.
朝鮮 𧦦邯 浿水 含資 占蟬 遂城 增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郭璞注山海經曰:「列, 水名. 列水在遼東.」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樂都 遼東屬國故邯鄕, 西部都尉, 安帝時以爲屬國都尉, 別領六城. 雒陽東北三千二百六十里.
昌遼故天遼, 屬遼西. 何法盛 晉書有靑城山. 賓徒故屬遼西. 徒河故屬遼西. 無慮有醫無慮山. 險瀆 史記曰, 王險, 衛滿所都. 房 右幽州刺史部, 郡·國十一, 縣·邑·侯國九十.
낙랑군 호수는 61,492호이고 인구는 257,050명이다.
낙양 동북으로 5,000리이다.
서부도위였으며 후한 안제때 국도위에 속하게 하였다.
문장으로 본다면 후한이 동으로 확장하여 옛 낙랑군이 서부도위에 속하게 되었다는것으로 이해된다.
한서 기록보다 인구가 오히려 줄어 들고 조선이 위치했던 낙랑군 (패수) 의 거리가 다르다.
무엇이 진실인가?
이것이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설의 근거인가?
사학계는 답을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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