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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넘어선 우리자신을 생각하는 것)
이제 문화에 대한 실용주의자들의 평론을 문화적 본질의 언어와 국가적 정체성이 소멸되는 사회적 고통에 대한 최근의 인류학 연구를 탐구함으로써 수행하여 보자.
Elain scarry가 관찰하였듯이 극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은 고통의 특수성과 불공유성,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음을 언급한다. 고통은 사람을 비이성적인 육체로 빠져들게 한다. 한사람의 인생은 평상시의 성격, 정체성, 그리고 일과로부터 제거되고 심지어 한사람의 상호적인 세계를 명백히 보여주는 가족과 친구들로부터도 빠진다. 고통 받은 사람은 단지 가치와 부 또는 문화적인 정채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통제 박의 힘에 의존하면서 활동하기도 하고 안하기도하고, 살아있기도 하고 죽어있기도 한 상처입기 쉬운 몸이 되어버리다. 고통은 정체성의 문제를 사소한 문제로 만들어 버린다. Maja Povrzanovic가 유고슬라비아인의 전쟁에 대하여 언급했듯이 민족주의의 원리는 국제적인 논평자와 국가의 리더의 논문에서 중요하게 나타나는 반면에 일반 시민들의 잊혀진 중요성은 근본적으로 국가의 영토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별, 직업, 계층, 또는 거주지의 장소에 대하여 그들의 삶을 이어갈 권리를 지키고 그들의 국가적 정체성으로 변형되지 않으려 한다. 한사람은 극심한 고통의 피해자에 대한 E. Valentine Daniel의 발언이 생각날 것이다. 이러한 고통을 겪은 수준에서 어떠한 문화의 중요한 영향을 찾는 것은 가망이 없는 것 같다.
위거는 인간의 의무, 경험, 권리에 관한 여타 다른 사고방식보다는 문화정체성이라는 정치행위에 특권을 부여하였다. 이것은 사람들이 이주자나 난민의 개인적인 곤경에 대해 무정하거나 무관심해서가 아니다. ; 이것은 문화 민족성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하나로 모으는 연대의식에 기반을 둔 담론은 고통 혼란 정착하지 못함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는 경험에 근거한 담론 보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집단적인 초월을 조성하는 반면에 후자는 주관적으로 바뀌고 너무 쉽게 손상의 현상을 구별하고 분석한다. 그러나 집단이주와 사회적 고통이 실제로 다원론의 새롭고 생생한 형식이 나타나는 비판적인 상황을 제공하는 증거가 있다. 그러므로 많은 도시의 마오리인은– 50년대와 60년대에 이주한 도시의 어린이 : “people of four wind”- 오로지 국가의 초상주변으로 구성되면서 정체성, 혈통, 그리고 언어의 중심된 생각을 부인해왔다. 힘이 없고 불만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많은 젊은 마오리인은 마오리 문화를 그들을 구원해주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즉 실제로 그들은 문화적인 장식품을 추상적이고 인공적이고 구식이고 부적절하다고 간주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정체성이 아니라 삶이다.
나라와 문화의 결손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들의 몇몇은 난민 조사로부터 온다.
최근 영국의 타밀 난민들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쓰리랑카 내전 전에, 타밀 이주자들과 영국의 국적 이탈자들은 그들의 문화적 유산과 그들 국가의 역사와 그들의 언어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주로 난민들과 망명자들로 이루어진 이주자들의 지속된 급증에서 이 사실은 반대이다. 이 사람들은 국가를 싫어한다. 그들은 국가의 계획에 참여하지 않아왔다. 타밀 이주자들의 전 세대가 국토 경계 개념의 신분을 강조했던 반면에, 지속된 급증은 집 또는 영국의 영토에 대한 견고한 경계와 주장을 포기해왔다. 즉, 그들에게있어서 미래는 전략적인 기회주의와 지속적인 움직임의 유동체이다. “당신은 나에게 타밀 민족주의에 대해 묻는다” 라고 한 피난자가 E.Valentine Daniel에게 말했다. “오직 타밀 국제주의만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그는 생존하기 위해 기회들이 발생시키는 어떤 것이든지 붙잡고, 발의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가지면서 세계에 대해 움직임을 의미했다. 돌아갈 곳이 없다. “그들이 알고있거나 주의하고 있고 갇혀있지 않기를 바라는 과거는 오직 그들이 피해왔던 전쟁, 강간, 고문 그리고 죽음의 최근 과거였다.” Val Daniel은 정체성의 분해, 정신의 디아스포라, 민족국가에 대한 생각과 타밀족이 일반적인 조국 또는 역사 속의 신념을 기르기보다 오히려 공유된 고통의 세계에 참여하는 방식의 무관심에 대해 말한다. Daniel의 결론은 Ann Belinda Steen Presis의 결론과 비교될지도 모르는데, 그는 서부의 쓰리랑카 타밀 난민들 사이에서 유통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집중적인 연구를 해왔다. 이 비디오들이 타밀 문화의 어떠한 정해진 기본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부딫히고, Steen Presis는 경계가 흔들리고 때때로 정체성이 무너지고 응결되는 곳의 주관적이고 집합적인 정체성의 현재 문제들 속에서 차이에 대한 생각이 더 이상 이 움직임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즉, 이것이 너무 간단하고 너무 굳어있다는 Daniel Sibony의 견해를 사용했다. Empirically, one confronts “globally unfolding ‘mutations’ of identity” or a “myriad of bolting identities” in which territorialised notions of culture, having become untenable, are replaced by open ended questions of belonging, broached through seemingly contradictory images of dispersal and reunion, continuity and discontinuity, attachment and loss. 이 연구는 Gillian Bottomley가 써왔던 무관하거나 사상적인 이주 문학 속 문화의 주변화가 이주 경험 그 자체의 주변화의 개념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 버밍엄(잉글랜드 중부의 공업도시)의 Balsall Heath의 민족적으로 뒤섞인 지역에는 ‘영국’과 같은 것은 없었다.”라고 한 어린 백인의 레게 팬이 말했다. “여기는 카리브해 지역!... 나이지리아! ... 영국은 없다. this is what is coming. 내가 밖으로 나갈 때 언제나 본 모든 사람들은 반-아랍인, 반-파키스탄인, 반-자메이카인, 반-스코틀랜드인, 반-아일랜드인 이니까, Balsall Heath는 인종의 도가니의 중심지이다. 나는 반은 스코틀랜드인, 반은 아일랜드인 이기 때문에 I know(나는 알고 있다). ... 나는 누군가?... 나에게 나는 누구에 속하는지 말해줘... 그들은 영국의 선량한 늙은이인, 나를 비난한다. 좋아, 난 어디에 속해야하지? 당신은 안다, 내가 흑인들, 파키스탄인들, 아프리카인들, 아시아인들, 당신이 이름붙인 모든 것과 함께 자랐다는 것을 안다. .... 나는 누구에 속해야하는가? ... 나는 그저 한 일반적인 사람이다. 온 세상 사람들은 나의 것이다...” (from Hebdige 1987:158-159, cited in Gupta and Ferguson 1992:10)
나는 지금부터 Barbara Myerhoff가 “우연적 공동체” 라고 부르는 중앙 아프리카의 두 가지 예를 들 것이다.(Myerhoff 1975;cf.Malkki 1997:91) 서 탄자니아의 시골에 사는 Hutu난민에 대한 그녀의 연구에서, Liisa Malkki는 난민캠프에서 살고 있는 난민들과 Lake Tanganyika의 도시 Kigoma의 내부 또는 주위에 흩어져서 정착한 난민들 사이를 대조했다. 캠프에 살고 있는 난민들은 그들이 진짜 소속되어 있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꿈을 키우기 위해”흔적과 여생(Malkki 1997: 93)” 을 회상하면서 그들 스스로를 nation in exile 로써 정의하는 반면에 “도시 난민”들은 그들의 다양한 정체성 – 도시의 사회적 정황에서 “빌리거나” 얻어낸 – 을 동화시키고 조장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왔다.(1992:36) 이것은 세계주의자를 만들어왔고 자신의 적응성과 ‘불순’을 축하하는 자기자신의 의식을 혼합해왔다.(37). Mallki의 이야기를 결론지으면, “비 영토화와 정체성은 깊이 연결되어있다.(38)”. 그러나 동시에 이 연결에 중요한 것은 사회적 고통과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현대 아프리카 도시의 다양하고 기회주의적 세계를 생각해보자. 전통과 현대성 또는 통합과 융합의 학문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그런 삶에서 삶의 경험주의적 복잡성을 가리는 데 실패했다. 예를 들어, Kinshasa에서 적응을 위한 전략과 공동체의 특성의 가난과 범죄에 대항하는 일상을 노력을 반영하고, 이러한 것들은 유럽중심주의, 자이르주의(through the state-sponsored Recours a lauthenticite(Recourse to Authenticity))와 전통주의, 또는 심지어 이런 단어들의 조합과 같은 외부적 개념들의 측면에서는 이해 될 수 없다. 만약 가족, 시장, 도로, 교회, 그리고 정치학의 이질적 영역을 통합하는 상징이 있다면, 그것은 모성(Devisch 1995:625-627)- 아이콘은 즉시 새로운 세계로 이주한 이탈리아의 가난한 이주민들 사이에서 마돈나의 상징적인 구심성을 떠올리게 했다. Robert Orsi가 동부 할렘에 있는 이탈리아 이주자들의 일상적인 종교적 삶에 대한 중요한 연구에서 언급했듯이 집과 이웃은 “의미와 도덕의 원천”이었다.(1985:75) 사실, “이 사람들은 이탈리아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탈리아 할렘의 중산층 이주자 professionals의 이탈리아에 대한 자부심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the domus of their paesi만 안다”(ibid:78, emphasis added).
다민족적인 상황에서 작용하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생존의 요구이다. 평범한 삶은 일종의 끊임없는 브리콜라주를 포함하는데 이는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취하고, 시험하고, 제거하거나, 싸우고 견디는 데 사용하기 위해 놓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디에서든 위험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삶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있는 것이고, 매일매일에 새로 대처하는 것이고, pieced together painfully, with few consoling illusions. 하루를 보내고 밤을 지새우는 데 있어서 무엇이 진리이고, 의미 있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나 관념적인 것을 바로잡는 것은 필요하지 않다; 개인의 초점은 무엇이 작동하는지, 무엇이 사용되는지, 무엇이 생존 할 수 있게 도와주는지에 있다. 이런 상황 아래에서, Orsi가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상상되거나 절박한 문화적이고 민족적인 정체성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사치이다.
나는 국수주의를 넘어선 국제주의의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무기력과 대항하는 데 둘 다 효과적이고 마술적인 전략일 것이다. 사람들이 고통 받거나 분산 도니 정도가 왜 그들이 신원의 영역화 된 개념을 버리는 지에 대한 설명을 해 줄 것이라는 데 대한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가 손실에 대한 피난민 반응의 대안적 결정요소를 확실히 파악 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것들의 결과를 짐작 할 수 있다.
나는 문화적 근본주의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든 이상적인 것이든 간에 다른 기원, 본질, 그리고 열망을 반영하는 다른 권리를 기반으로 집단을 다른 것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 결과는 아마 난민들이-가장 늦게 도착하고, 가장 약하고, 많은 것을 잃은- 두 번째 식민지주의의 희생자가 되는 것 일 것이다. 예를 들어, Aotearoa 뉴질랜드에서 마오리족과 정부는 두 문화가 공존하는 주에서 정치 조직과 협정을 만드는 데 너무 몰두해서, 급진적 othering, 권한 박탈, 비난 그리고 편견- 한 때 토착민들을 향해 있던-의 습관들은 빠르게 새로운 이주자들을 비추기 시작했는데 문화적 인정과 존중을 위한 그들의 저항과 주장은 때때로 무시당하고 비판된다???? “당신은 왜 공공장소에서 전통의상을 입습니까?” 앵글로 주민이 소말리아 이주자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러는 것과 똑 같은 이유 입니다.” 소말리아 이주민이 답했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의상을 입지 않아요” 이웃이 반박했다. 그러나 우리는 물론 그렇게 하고 있고, 이것은 단지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하도록 묵인하는 불공평한 힘의 관계에 있어서 문화적 상징들이 비난받고 있는 것에 무지한 것이다. 옷, 요리, 말투, 그리고 믿음처럼 피부색은 때때로 이런 다루기 어려운 차이의 나타나지 않는 의식에 초점을 맞춘다. Tamil-NewZealander Radhika Mohamram은 이것을 강력하게 말했다. “흑인 이주자는 마오리-백인 혼혈의 사람들에게 계급을 이야기하면서 혼란스럽게 한다. 이런 계급 안에서 백인은 첫 번째이고, Maori는 두 번째이고, 흑인은 세 번째이다.”(1998 : 27) 두 번째 식민주의에서, 경시 당하는 세 번째 계급의 사람들은 예전의 하층민(Maori)와 옛날의 지식인(pakeha) 를 위한 매립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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