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은 없다(이 땅의 산줄기는 '백두대간'이다) - 조석필] 머리말

[Silver Ship]

 이 책은 백두대간의 복원을 말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그 소리가 맑게 울리도록,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다시 태어나 쓰라 해도 이보다 열심히 쓰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에 앞서 <산경표를 위하여>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몇 권 남아있지 않지만, 원본은 잡지처럼 판형이 넓은 대신 얇습니다.

주머니돈 아끼느라 그랬지요.

입력하고, 출력하고, 대지도 직접 짰습니다.

그걸 인쇄소에 들고 가 '마스타'라고 불리는, 복사 수준의 인쇄로 찍어낸 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래도 기뻤었습니다.

"산맥은 산줄기가 아니래" 하는 소문을 마구 퍼뜨릴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산악인이라는 특정 집단을 염두에 둔 것이라 다소 거칠고, 어렵고, 논리에 비약이 있어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필요없을, 호남정맥 보고가 책의 절반을 차지해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그것이 정식 출판물로 인쇄되어버렸습니다.

일이 거기서부터 꼬였지요.

책이 저자거리에 나돌자 부끄러웠습니다.

목욕하다 말고 길거리에 나온 것 같이 어색했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써야겠어"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만, 자신이 없었습니다.

몇 번인가 시도는 했습니다.

한때는 원고지 수백 매까지 나아가기도 했지요.

그러나 모두 버렸습니다.

쓸 때마다 더 나빠졌기 때문이지요.

고쳐 쓰는 것이 새로 쓰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 처음 알았습니다.

 나중엔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분명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좌절하고, 포기하고, 다시 열병을 앓곤 하던 나를 결정적으로 붙든 것은,

후배의 따끔한 충고 한 마디였습니다.

 "그걸 글빚이라고 해요. 빚은 갚아야지요"

 고쳐썼다고 했지만, 하다보니 완전히 다른 책이 되었습니다.

살아남은 건 취지 뿐, 원저는 흔적도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을 따로 정했습니다.

내용만 해도 산경표뿐 아니라, 대동여지도, 현행 산맥 등

지리인식에 관한 모든 것을 담으려고 애썼습니다.

 1장은 총론입니다.

서지학 부분이 조금 까다롭습니다만, 건너뛰어도 될 것입니다.

 2장은 지형의 원리입니다.

전통 지리학의 핵심 원리이기에, 이 장을 잘 터득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추론됩니다.

 3장은 현행 산맥이란 무엇인가를 말합니다.

산맥이 저지르고 있는 지리인식의 왜곡상을 말미에 붙였습니다.

 4장에 책의 모든 무게중심이 실려 있습니다.

이 책은 4장을 말하기 위해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5장과 6장은 부록의 성격입니다.

내용의 흐름 때문에 뒤로 밀린 것, 연구할 분들을 위한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뒤에 조선광문회본 <산경표>를 영인해 붙였습니다.

 본디 산맥이라는 용어는, '산줄기'의 뜻으로 사용되었어야 할 단어입니다.

그런데 그게 일본에 의해 강제징용을 당한 후부터 산줄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 책은 두 용어를 구별합니다.

'산맥'은 일제가 도입시킨 산맥체계를 말할 때만 썼고, 산들이 실체적으로 잇댄 줄기를 부를 때는 '산줄기'라 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이 책은 저의 개인적 연구성과가 아닙니다.

여러 선구자와 동료들의 뜻을 받아적고 정리한 보고서에 가깝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희에게 '산경표'라는 화두를 던져주신 이우형 선생님께 먼저 이 책을 올립니다.

이형석, 박용수, 윤희철 님 등 몇 분의 고마움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자료를 허락해 준 박민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박기성에게는 따로 커피를 사겠습니다.

그이는 마치 제 원고인 양 붙들고 앉아 이것저것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사소한 실수라도 그것이 책의 신뢰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린다는 의미에서,

그이는 책의 종이값을 끌어올려준 사람입니다.

<사람과 산>에는 그이 말고도 인사드릴 분이 너무 많습니다.

예컨대 홍석하 사장님께서 볶아대지 않았더라면 마감까지 몇 년을 더 끌었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가장 고마운 건 저의 일을 끈덕지게 참아준 식구들입니다.

아내에게, 기꺼이 모델을 허락해 준 이람이, 여래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합니다.

걔들에겐 뭘 선물해야 하나요?

"아빠가 드디어 산경표에서 해방되었다"는 소식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재작년, 첫눈을 맞이하며 다시 추켜들었던 일이었습니다.

일년 내내 밤잠을 설쳤는데도, 결국 해 바뀐 첫눈을 보고 말았습니다.

아무려나 백두대간이 온전히 복원되어, 이 책이 휴지통에 버려질 날이 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 날은 '대한독립만세' 만큼 기쁠 것 같아요.

1997년 2월

조석필

[산친구]

조석필님!! 저는 솔직히 님이 무엇을 하시는 어느 분이지 잘 모릅니다(죄송...) 다만 글을 보면서 참 큰 일을 하신분이구나 라고 생각을 합니다. 열심히 읽고 배우서 노고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겠습니다...저처럼 아무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도 이해가 되도록 쉽게 써준 글이라서 더더욱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Silver Ship]

전라도 광주에서 하나소아과 전문의 로 개업중인 조석필씨는 93년 의사산악회를이끌고 히말라야 렌포강(7.083m)등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