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은 내가 교사로서 첫 걸음을 시작한 해요, 세계 최빈국인 대한민국이 1961년 군사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후손들에게 가난을 물려줄 수 없다며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일제침략의 보상금으로 포항제철을 세우고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여 외화를 벌어들이며 월남전에 참전함으로 달러를 벌게 하여 기반 시설이 전무였던 우리나라의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첫째 조건이 산업의 동맥 역할을 하는 도로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래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시작하였는데 야당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강력하게 밀고 나간 끝에 1969년 서울 오산 간의 도로가 처음으로 개통이 되었고 이어서 1970년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부고속도로가 완공이 되어 오늘날 산업과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참으로 순박한 국민성에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가난하지만 이웃 간에 정을 나누며 살았고 어른을 공경하고 훌륭한 사람을 존경할 줄 아는 국민이었다. 예로부터 선생님을 군사부일체라 하여 나라님과 스승과 부모는 같은 차원에서 존경하였고 순종하는 순수한 국민성을 가지고 남을 해치거나 침략을 할 줄 모르는 백성으로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침을 받았지만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국민이었다. 이조 오백년 동안 유교를 숭상하면서 예를 제일로 삼았고 삼강오륜을 실천하며 가난하지만 작은 것도 서로 나누며 살았던 동방예의지국이었다.
그렇게 예를 숭상하는 풍토 속에 한 해를 보내고 새해가 되면 동네 젊은 사람들은 어른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라’는 덕담과 함께 큰 절을 하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런 사회적 풍토 덕분이겠지만 내가 교직 생활을 시작하고 학부모님을 만나면 연배로 따져서는 한참 손위의 어른이거나 부모 뻘이지만 깍듯하게 예를 갖춰 인사를 하고 혹간 자녀를 위해서 상담할 일이 있으면 가난한 시골 사람들인데도 빈손이 아니라 손에 뭔가 하나를 들고 오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때는 새 학년 담임을 맡으면 가정방문을 하는 것이 교육계획 중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새 학년 담임을 맡으면 3월 중에 가정방문 계획을 세워 하루에 5~10명 정도의 학생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시골에서는 동네가 여지저기 흩어져 있고 거리도 멀게는 십 리나 되는 곳이어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는 서둘러 출발하여 방문하는 동네까지 가다보면 시간에 쫓겨서 뛰어다녀야 그날 예정한 가정방문을 할 수 있기에 얼마나 부지런히 걷고 뛰며 방문을 하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순박한 부모님들은 모처럼 선생님이 오신다며 대단히 신경을 쓰고 무엇을 대접할까 걱정하는 중에 나름대로 준비를 하는데 그 당시 시골에 뭐 특별한 것이 있겠는가? 하여 첫 집에서 계란 후라이에 커피 한 잔을 내놓으면 그 날은 대부분 그렇게 계란 후라이와 커피를 내놓는데 나로서는 처음에는 배가 고파서 맛있게 먹다가 몇 집을 돌면서 같은 것을 계속 먹게 되니 배가 부르기도 하고 또 커피는 한 두 잔이지 계속 주는 대로 마실 수가 없어서 입만 대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렇게 바삐 뛰어다니며 그날 계획한 방문을 다 마치면 깜깜한 밤이 되는데 마지막 집에서는 저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지만 여러 집을 다니며 이것저것 먹은 것이 있으니 제대로 먹을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시골에서는 밥을 수북하게 담는 것이 손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던 때라 얼마나 많이 담아서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어서 남기면 더 드시라고 자꾸 권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요 예절로 사양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던 일과 그 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중에 가슴을 찡하게 하였던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사는 친구였는데 아버지는 돈벌이를 하러 나가서 몇 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엄마는 집을 나간 다음 소식도 없는 상태에서 연세가 드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선생님이 온다니 맨입으로 보낼 수는 없는지라 깡소주 한 병에 안주는 하얀 소금 한 종지를 내놓는데 원래 나는 술을 마시지도 못하지만 맨입에 그냥 나오면 오해하고 성의를 무시한다고 서운하게 생각할까 봐 소주를 한 잔 따라서 입에 잠시 대어 마시는 척하고는 소금 몇 톨을 손으로 집어서 입가심을 하면서 겉으로는 태연한 척 감사하다고 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찡하던 일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가슴 아픈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방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서울로 올라오니 분위기는 많이 다르게 느껴졌지만 선생님을 어렵게 대하는 것은 여전하였고 그런대로 보람되게 생활을 하였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1998년 이**라는 분이 교육부 장관을 하면서 앞으로 뭐듣지 한 가지만 잘 하면 대학에 갈 수 있고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면서 고입연합고사를 폐지했던 것이다. 연합고사가 없어지니 당장 학생들은 해방감에 좋아하며 자유분방한 학생들이 교실 분위기를 주도하게 되었고 그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수업시간에도 딴 짓을 하면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수업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애를 먹었다.
어느 날 수업 중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면 떠드는 학생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어도 소용이 없어서 불러내어 교단 옆에 엎드려 있으라는 벌을 주었더니 벌을 받고 있는 중에도 실실 웃으며 앉아서 공부하는 녀석과 신호를 주고받으며 떠들어서 그만 자리로 들어가서 차라리 잠을 자라고 했던 일이 생각난다. 선생으로서 책임 회피를 한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고 교실 분위기에 적이 실망도 하면서 몇 년을 지내는 동안 급작스럽게 교실 분위기가 깨어지는 중에 곽**이라는 서울시 교육감이 학생 인권조례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완전히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선생이 학생을 때리거나 욕을 하면 인권침해가 되어 고발을 하는 사례가 생기고 조금 심한 경우에는 매스컴까지 타면서 선생님을 죄인으로 취급하는 분위기로 변하고 말았으며 선생님이 학생들 보는 앞에서는 훈육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고 교무실로 오라고 하여 학생을 데리고 가면 다른 학생들이 몇 명 따라 오면서 혹시나 때리거나 욕을 하는지 감시를 하고 어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동영상을 찍어서 고발을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곤 하였다.
게다가 선생님의 정년이 65세였는데 이** 교육부 장관이 정년을 62세로 낮추어 갑자기 강제퇴직을 당하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았고 그 후로 명퇴자들이 늘어나다보니 나중에는 명퇴도 마음대로 안 되어 교육부 예산에 맞춰 심사를 해서 결정이 되어야 명퇴를 하는 웃지 못 할 일들이 생기곤 하였다.
선생님이 학생을 때리거나 욕을 하면 인권침해가 되어 사안에 따라 징계를 받는데 학생은 잘못해도 별다른 처벌이 없다. 옛날에는 학생이 잘못을 저지르면 정도에 따라 근신에서 유기정학, 무지정학, 심지어는 퇴학을 당하기도 하였다. 내가 지방의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하던 때 있었던 어처구니없는 일을 소개하자면 한 친구가 시내에 방을 얻어서 자취를 하게 되어 집들이라는 명분으로 남학생과 여학생이 모여서 밤이 늦도록 놀았는데 집주인이 학교에 연락을 하여 조사를 한 결과 풍기문란이라는 명분으로 모두 퇴학처분이 내려졌던 사건이 생각난다. 그런데 학생 인권조례가 발표되고부터는 학생 인권은 있는데 교사 인권을 없어진 희한한 결과를 초래하였고 덕분에 선생님들은 학부모의 전화나 문자에 적잖이 시달림을 받아야 하며 심지어는 고발까지 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억울함을 참다못해 자살을 하는 교사들이 한 둘이 아니었던 걸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어느 학부모는 우리 아이는 왕의 DNA를 가지고 있으니 특별히 잘 대해주고 말도 공대하라고 하여 기사화된 적이 있다. 심지어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하거나 여선생님을 성희롱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6월5일 전주에서 지난 3일 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교감에게 침을 밭으며 욕을 하고 심지어 빰을 때리는 동영상과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했다고 뉴스를 보면서 너무 놀랍고 한숨이 절로 나오고 슬픈 마음까지 들었다.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와 교사가 완전히 갑과 을의 관계가 된 것 같다. 이런 변화에 선생님들의 설 자리가 바늘방석처럼 불안정하게 되어 교육이 붕괴되고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으며 앞으로 교육에 대한 대대적인 개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해보는 바이다.
다 아는 바 교육대학을 가려면 성적이 상위권이어야 했는데 지금은 중간만 하면 웬만한 교육대학에 쉽게 입학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교사의 질이 낮아진다는 어면한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5월15일, 스승의 날이 며칠 전에 지나갔는데 선생님에게 카네이션 꽃 한 송이도 달아줄 수 없는 풍토가 되었고 그러다보니 몇 년 전부터 선생님들이 차라리 스승의 날을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이 서글퍼졌고 또 며칠 전 뉴스에 카네이션이 팔리지 않아서 장사하는 분들은 가정의 달 재미를 보지 못하고 생산업자들은 예쁘게 핀 꽃을 통째로 뽑아버리는 장면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래서 최근에 충남과 서울에서는 시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결정하였고 서울시 교육감은 재심을 요청했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서 알고 있다.
한 관리의 잘못된 결정으로 백년대계라고 하는 교육이 일시에 무너지고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지금, 평생 교직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안타까움과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이 무너지니 사회 전반이 흔들리고 작금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이나 묻지만 폭행도 모두가 교육의 실패에서 오는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카톡에 전하는 내용 중에 리버스(reverse) 맨토링이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초역전의 시대가 왔다는 의미라고 한다. 자식이 부모보다 똑똑하고 후배가 선배보다, 사원이 임원보다, 병사가 간부보다 똑똑한 세상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제자가 스승으로 학부모가 자기 자식 가르치는 선생님을 욕하고 폭행하며 고소까지 한다는 말인가? 리버스 맨토링이 아니라 세상이 망쪼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교육이 국가의 인재를 키우는 매우 중요한 일이요 국가발전에 한 몫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늦은 밤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며 평생을 보냈는데 지금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보면서 많은 자괴감과 국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이것이 비록 나만의 생각은 아닐거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한 마디 남기고 싶은 말 “세상이 왜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