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를 왕위에 앉힌 것은 왕위 계승권을 가진 두 왕자와 두 왕녀 가운데 클레오파트라만이 폼페이우스 살해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인을 죽인 자를 왕위에 앉히면, 본국의 로마인이 승복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는 자기가 왕위에 앉게 된 것을 자신의 미모 덕택이라고 믿었다. 그때부터 그녀의 현실인식 능력에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카이사르는 살해되었다. 그리고 공개된 유언장에는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 태어난 아들 카이사리온 (카이사리온이 카이사르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는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부터 나오기 시작했지만)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때 아마 여자로서의 분노와 굴욕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왜 카이사르의 진정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클레오파트라의 왕위가 무사하기 위해서는 애인인 채로 끝나는 편이 낫고, 아들도 인지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카이사르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이집트 왕가의 존망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집트를 군사적으로 재패할 수 있는 로마를 섣불리 자극하지 않는데 달려 있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에게 앙갚음이라도 하는 것처럼 안토니우스와 정식으로 결혼했다. 아이들도 공식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클레오파트라는 자멸을 향한 결정적인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첫댓글 카이사르가 생전에 그려둔 청사진에 따라 진군하고 있는 옥타비아누스의 로마를 이집트의 부와 안토니우스의 군사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일까요? 그러나 이집트 여왕의 야심은 안토니우스의 파르티아 원정도 망쳐버리게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