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유엔에 간 한국정부의 뻔뻔한 ‘노력 중’
-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대한민국에 대한 5·6차 심의에 부쳐
지난 9월 18일과 19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UN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는 대한민국에 대한 5·6차 심의를 진행했다. 올해 채택 30주년을 맞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은 가입국으로 하여금 정기적으로 협약의 이행 실태를 보고하고 심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한국은 이 협약에 1991년 가입했다.
이틀간 이어진 심의에서 유엔 아동권리위원들은 경쟁적 교육환경, 체벌과 징계권의 남용, 아동 참여와 의견 존중의 제한, 스쿨미투를 비롯한 성적 폭력과 착취, ‘우범소년’이라는 규정을 근거로 자행되는 자의적 구금, 이주·장애·성적지향·성별정체성·난민·탈학교·학대피해 등을 배경으로 한 차별, GDP 대비 지나치게 낮은 아동예산 비중 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현했다. ‘대한민국 공교육의 목표가 오직 명문대 입학과 경쟁뿐인 것으로 보이며 이는 아동권리협약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한 위원의 지적은 아동학대와 다름없는 입시 위주 교육의 시급한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10년이 넘도록 정체된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시민의 인식 제고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질의에 대해 ‘사회적 합의 부족’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한 정부의 태도는 지켜보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미등록 이주아동이나 난민신청 아동도 아동수당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미등록 이주아동도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느냐’라는 질의는 국적이나 체류 자격에 상관없이 아동의 권리가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인권의 대원칙을 되새기게 만든다.
위원들의 날카로운 지적과 질의에 비해 한국정부의 답변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명목상의 제도를 언급하며 ‘잘 하고 있다’는 인상을 피력하느라 급급했고 ‘노력 중’, ‘사회적 합의 부족’,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우리는 특히 참정권과 학생인권에 관한 한국정부의 답변에 깊은 실망감과 분노를 표한다.
선거연령 하향 계획을 묻는 질의에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연령 하향 의견을 제출했고, 현재 18세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라고만 답했다. 국회에서 시급히 통과될 수 있도록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정부는 가정, 학교, 보육시설 등 모든 환경에서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기 위한 입법 계획에 대해 침묵했다. 유엔에서는 간접체벌을 포함한 모든 체벌이 금지된 것처럼 밝히면서도 국내에서는 이를 명시적 기준으로 공포하지 않는 정부의 이중성은 제쳐두고서라도 체벌 금지에 대한 국가 책임을 시도교육청에 미루는 발언을 계속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간접체벌을 금지하는 규정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간접체벌을 포함한 학교교육활동과 관련된 권한은 17개 시도교육청에 위임되어 있다”는 교육부의 발언은 아직도 체벌을 ‘아동에 대한 폭력’이 아닌 ‘교육활동의 일환’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체벌금지에 대한 국가책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또한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모든 체벌이 금지되어 있는 것처럼 답했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전국에서 단 4개 지역에서만 제정되어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규범력이 현저히 약하다는 사실은 끝내 숨겼다. 정부가 그나마 방패막이 삼은 학생인권조례는 4개 지역의 청소년과 시민사회가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결실이지, 정부가 내세울 치적 사항이 아니다. 정부가 차별금지법과 학생인권법 제정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혐오선동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 동안,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려는 지역의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어야 하지 않는가. 학생인권법의 부재가 학내 성폭력 문제를 뿌리 뽑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음을 반성한다고 말했어야 하지 않는가.
교육부는 또한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이 참여하는 학교가 2천개가 넘는다고 자랑처럼 말했지만, 전국 유·초·중·고 학교의 수가 2만개가 넘고 자신들이 말하는 ‘참여’가 사실상 참여라고 볼 수 없는 현실도 감추었다. 단순한 ‘의견 조회’ 정도를 참여라 할 수 있는가. 그마저도 학교 재량에 맡겨진 현실을 두고 학생 참여가 보장된다고 말하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학생 대표들이 학교운영위원회에 결정권을 가진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할 법적 권한이 마련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유엔이 요구하는 “비중과 권한 있는 참여”는 불가능하다. 교육부는 학교운영위원회의 학생 참여를 위한 법 개정 계획을 언급했지만, 구체적 시한조차 밝히지 않았다.
우리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다시금 정부에 촉구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선거법 개정안의 시급한 통과를 위해 즉각 나서라. 선거권 연령 18세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교육 개혁에 박차를 가하라. 중앙정부가 나서 학생인권법을 제정하고 학생인권의 지역간 격차를 시급히 해소하라.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의 권한 있는 참여를 법제화하기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서둘러라. 모든 환경에서 아동인권을 보장하고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한 입법계획을 수립하라. 더 이상 ‘사회적 합의’ 뒤에 숨지 말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라.
2019년 9월 20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