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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데올로기를 공부하면 기존에 봤던 자료 중 일부 내용을 발췌해서 정리해봤습니다. 조금 더 쉽게 간단하게 정리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않고 올려서 페친님들에게 죄송합니다. 우리 사회 모순을 인식과 실천하는데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올립니다.
독일이데올로기 3차 집단학습을 하면서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그리고 주체사상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은 맑스-레닌주의의 절대적인 철학적 기초다. 즉 그것은 계급투쟁의 제경험과 과학발전의 성과들을 일반화하는 가운데 맑스-레닌주의로 하여금 과학으로 적용되는 것을 가능케해준다. 한편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은 스스로 도그마로 전락하는 것을 거부한다. 왜 그것이 기초해낸 발전의 원리를 그 자신에 대해서도 적용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은 맑스-레닌주의의 정치경제학과 결합할 때 하나의 자체 내 완결된 유물론적 세곋관을 이룬다. 왜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이 사회를 설명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물질적으로 생산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개입하게 되는 경제적 제 관계가 사회의 전체적인 생활과정의 물질적 기초를 이루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은 자연-사회의 개관적 실재성과 인간에 의힌 인식 가능성및 변화가능성을 일반이론 차원에서 입증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더 나아가 객관적인 사회 경제적 지위상 세계인식과 세계변혁의 역사적 추진력이 되는 구체적인 제 계급세력을 지적해 낸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에서 전자와 후자는 불가분적이며 상호제약적 통일을 이루고 있다. 맑스,엥겔스는 철학적 유물론을 변증법적으로 파악하고 적용함으로써 그것을 역사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즉 인간사회의 역사에 대한 유믈론적 설명으로까지 그것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1.변증법적 유물론
1)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사회 변화를 위한 인간들의 물질적 실천이 결정적 역할을 하며, 그것이 더 큰 종합을 향해 나아간다는 관점. 헤겔을 계승하면서 비판한 맑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관념론으로 몰아붙이고 변증법적 유물론을 주장했다. 사회가 발전하는 동력을 모순에서 찾은 것은 헤겔과 같지만, 맑스는 그 모순이 논리적인 게 아니라 경제적 토대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2) 변증법적 유물론의 3대 법칙
① 양질(量質) 전환(轉換)의 법칙
물질의 양적인 변화는 임계점에 이를 때 새로운 성질을 만들어 냄. 질적 전환은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비약. 물리적인 변화와 사회적인 변화에 모두 적용. 물은 0℃에서 온도가 증가하여 100℃에 이르면 비등점에서 수증기로 전환된다는 것, 그리고 빙점과 비등점 사이에서만 물이 물로서 존재하는데 이것이 도량(度量)이다. 이처럼 양과 질의 변증법적인 통일로서 도량관계가 성립된다. 새로운 질이 생기는 질적 비약을 일으키는 한계점을 결절점(結節點)이라 했다.
기계적 물질일 뿐인 인간이 추상적 사유로의 진화가 가능했냐에 대해 양질전화의 논리로 설명한다. 모든 분자 구조는 물질이고 따라서 분자의 집적체인 인간도 또한 물질이다. 그 증거로 생물학 분야에서 진화론의 발달을 제시했다. 그리하여 요약하면 의식은 물질 발전의 한 산물이다. 인간이 갖는 의식적 활동은 물질에 내재된 본질적 속성이며, 그것은 근원물질의 양적 배열로 인한 필연적 결과이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 행위가 갖는 시초적 운동성은 물질의 일반성의 발현에서 추동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 활동에서의 자유의 지성은 오직 본질적인 대립물의 투쟁에서 도출된 양질전화로부터만 나올 수 있으며, 인간은 고차적인 물질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본질적인 대립물의 투쟁으로 인해 나타나는 속성을 포함하는 존재라고 규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갖는 물질의 산물이기에 동시에 자유를 가질 수 있는 존재이며, 해방의 가능성이 열린 존재라는 것이다.
자연은 물질 구성의 통일된 전체이며, 개물 상태로서의 자연도 또한 물질 구성의 통일된 전체의 산물이자 그 자체이다. 자연은 끊임없이 운동하는 상태이다. 자연 개물에서 의식으로의 발전은 양질전화로서 나타난다.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각 대립물은 투쟁을 제반 발전법칙으로 갖고 있으며, 그것의 발전은 종래의 구조에 대한 질적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기에 혁명적이다.
세계는 객관 실재의 총체로서 물질이다. 존재는 모든 객관 실재의 가리키며, 물질의 자기 운동과 다르지 않다. 의식은 물질의 반영이며, 의식은 변증 투쟁을 통하여 변화·발전하고 객관 실재의 모순 정도를 통일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의식은 물질의 반영으로, 물질이 없으면 의식은 성립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의식은 독자적으로 탄생될 수 없다. 그러나, 의식이 창조된다면 의식은 필시 모순을 갖고 있기에 변증법적 과정을 도출시키는 원인자로 작용하고, 이러한 점에서 의식은 인간이 행하는 변증 투쟁의 주요 재료로 된다. 지금까지 이어진 역사 발전과 과학 발전, 그리고 제도화 등도 모두 인간의 의식 활동에서 비롯된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② 대립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모든 사물과 사건은 대립물의 내부 양극성을 전제. 대립물들이 한 사물현상 안에서 서로 다른 것 존재 전제(의존)가 되는 관계를 통일이라고 하며, 서로 다른 것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투쟁
물질의 운동 그 자체가 모순이다. 그리고 수학의 +와 -, 물리학에서의 작용과 반작용 등을 들어 자연 속에 모순이 내재한다.
물질은 각 상호 모순을 체화하는 대립물의 총체이며, 이를 물질이라고 한다. 의식은, 그 의식을 파생시킨 대립물의 총체로서 물질이 갖는 모순을 포함한다. 모순성이 존재하는 의식은 그 자체로 자유의 요건을 충족할 수 없으나, 이 의식에 대한 경험적 실천과 내재적인 성찰 과정인 변증 행위는 자유 의지적이다. 모순성이 변하면 양태도 변화하며, 변증법적 투쟁 상태에 있는 모든 의식은 그것이 변증법의 층위에서 머무는 한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모순성을 인식한 의식은 자유의지적이며, 모순성을 인식하지 못 한 인식은 기계·감각 인지이며, 이는 결정론적이다.
물질의 기계적 운동으로 대표되는 모순은 비적대적 모순이며, 노동과 그 노동 이하의 산출 행위에 연계된 생산력, 그리고 생산관계 사이의 의식 모순은 적대적 모순-기본모순-이라고 한다. 전자는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순이나, 후자는 폭력, 그리고 이에 따르는 구체적인 행동을 수반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모순이다. 투쟁 당면에서 발전의 본질을 담당하는 모순은 주요 모순-우리 민족은 민족모순-이며, 이 주요 모순으로부터 파생된 모순은 파생 모순 또는 부차 모순이다.
③ 부정의 부정 법칙
이 법칙은 발전 방향성에 대한 문제이다. 특정 사태는 부정의 부정을 거쳐 다음 단계로 발전하여 나아감. 보리알이 썩어서 다시 새싹이 나오는 예가 있다.
이 부정의 부정의 법칙에서는 정(正), 반(反), 합(合)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등장한다. 여기서 정이란 변증법적 과정에서 반이 목표로 하는 투쟁 대상을 의미한다. 여기서 정이 반과 함께 따라나올 수 있는 이유는 정에 모순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정립을 통하여 합이 되었을 경우, 이 합은 이전의 정보다 더욱 최소화된 모순성을 지닌 의식이 된다.
그러나, 이 합도 또한 모순성을 갖고 있기에 정이 된다. 그러나, 이 반정립 과정에서 보존되는 속성이 존재한다. 헤겔은 이를 지양이라고 했다.
*보편성과 개별성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은 변증 단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으며,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닌 상호의존적인 것이다. 예를 들면, 붉은색 수성물감이 들어간 붉은 빛을 보이는 물, 초록색 유성물감이 들어간 초록 빛을 보이는 기름이 있다고 가정할 때, 변증 단계에서 '색'(色)을 중시한다면 해당 액체의 색깔이 보편적인 것으로, 그리고 나머지 특성은 개별적인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다른 단계에서 해당 복합물의 액체 속성을 중시한다면, 그것은 물과 기름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요소로, 그리고 색깔은 개별적인 요소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보편 및 개별 판단은 그 물절 토대에 기초한 판단이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 머물러있다. 즉, 보편성과 개별성은 본질적 층위에서 매 변증 단계에 따라 내용이 변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단일함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로서의 보편성과 개별성이다
-현상과 본질
기본적으로 본질은 다양한 현상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오직 사유의 논리성으로만 본질을 안다고 자부하면서, 현상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형이상학적 논리이다.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에서 본질은 현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매 실천에 따라, 그리고 그 실천을 통해 행해지는 변증 과정으로 도출되는 것이다. 물론 내용과 형식과 마찬가지로 사실에 기반하여 유동적인 실천과 계획을 실행해야 하지만, 현상에 매몰되어 본질적인 부분을 놓쳐서도 안 된다. 어디까지나 투쟁은 본질과 현상, 이 두 가지의 개념을 연결시키는 데에 그 핵심이 있다.
현상 개념은 본질 개념과 변증법적으로 대립된다. 현상이란 감각, 직관, 직접적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사물, 과정 등의 외적인 성질의 총체이다. 따라서 본질과 반대로 현상은 개별적이고 우연적이며 가변적인 성격을 갖는다. 현상은 본질적인 징표뿐만 아니라 비본질적인 징표도 나타낸다.
직접적 경험을 통해서는 현상 이상의 것을 인식할 수 없으므로, 우리가 직접적 경험에만 머문다면 경험론에 고착되며, 주관적 관념론 및 불가지론의 결론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현상과 본질 사이에 나타나는 그때마다의 변증법적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과학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이다. 이론적 사유는 현상에서 출발하여 사물의 본질을 해명한다. 그런데 이론적 사유에서 얻은 개념, 이론 등이 옳은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은 다름아닌 ‘실천’(praxis)이다.
본질은 보편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의 통일로서, 사물이나 과정들의 현상과 대립적인 통일을 이루며, 현상과는 반대로 감각에 의해 직접 인식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현상을 매개해서만 본질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변증법 철학은 대상의 본질 자체 속에 가능적으로 들어 있는 모순을 발견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고 있다.
본질과 현상은 불가분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현상은 본질보다 더 풍부하다. 왜냐하면 현상은 보편적인 것, 필연적인 것 이외에도 개별적인 것, 우연적인 것, 변형된 것을 풍부하게 포함하기 때문이다. 현상은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의 통일이다. 그러나 본질은 필연이 우연 속에서 관철되는 것과 유사하게 비본질적인 것 속에서 자신을 열어 보이는 것이다.
2.사적 유물론
물질적 재화를 생산해내는 생산양식[생산력+생산관계]의 발전에 따라 사회가 변화하며 인류 역사는 원시공산 사회,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의 단계를 거쳐 발전해 간다고 보는 관점. 변증법적 유물론을 역사에 적용한 것으로, 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관념이 아니라 물질로 보며, 사람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제한다는 사상.
역사의 발전을 추동하는 제1 원인은 인간의 의식이 아니라 물질적 생산양식이다. 유물사관의 중심은 인간이 생산에 참가할 때는 사회적이 되며 따라서 일정한 생산관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사회의 경제구조라고 하는 것은 생산양식을 뜻하고 생산양식은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생산관계란 것은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에 대응하는 사회관계인데, 그 관계는 주로 그 사회의 주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와 소유하지 못한 자 사이의 계급관계로 표현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이루는 생산력은 기계공업이고 생산관계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로 볼 수 있다. 인간은 유적 존재이기 때문에 생산력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발전된 생산력과 기존의 생산관계 사이에 갈등과 모순이 생기게 되고, 기존의 생산관계가 생산력 발전을 저해하는 상황이 될 때 새로운 생산관계에 돌입하고 사회변혁의 전기가 도래한다. 이러한 생산관계가 변하면 전 사회구성체로 변화한다는 점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토대이며 그 위에 법률적·정치적 상부구조가 생긴다는 것이다.
사회 변혁의 두 계기는 합법칙적 차원과 합목적적 차원이다. 사회변혁의 합법칙적 차원은 경제적 생산조건의 구체적 변화를 지칭하는 것이다.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이 한계상황에 이르게 된 변혁의 객관적 조건을 뜻한다. 그러나 합법칙적 조건이 무르익었다고 해서 사회변혁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합목적적인 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식은 물질적 삶의 모순으로부터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 영역에서는 우리가 갈등의 본질을 직시하여 이를 의식 투쟁으로 극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발전도 합법칙적 차원과 합목적적 차원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3.주체사상
북의 주체사상이 맑스-레닌주의의 어떻게 계승발전하는지를 간단히 살펴보자.
맑스주의 철학의 과학적 유물론은 사람의 정신세계는(의식) 신의 창조물이나 초자연적인 것이아니라 뇌수의 물질현상이다. 즉 의식은 물질로부터 나온 물질의 성질이다. 거울이 사물(물질)을 반영하듯이 뇌수가 거울처럼 사물현상을 반영한 것이 바로 사람의 의식, 정신이다. 물질의 선차성 또는 1차성이라 한다. 맑스의 의식과 물질에서 주체는 사람의 본질과 세계에 대한 철학적 규명으로 발전한다.
주체사상은 물질의 선차성과 맑스주의 반영론을 계승하며 인정한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 의식의 일부, 한 측면만을 해명한 것이라고 한다. 즉 의식의 본질에 대해서 제대로 충분히 해명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반영론을 넘어선 나머지 의식에 대한 완전한 입체적 해명은 무엇일까?
사람의식은 외적 주변세계(환경)를 반영ㅇ할 뿐 아니라, 사람이라는 물질즉 사람 자신의 운동(주체의 요구)도 반영한다. 사람 자신의 물질운동이란 다른 아닌 사람의 생존과 발전의 요구실현이다. 따라서 사람의 의식은 외부환경과 자기자신의 요구를 이중반영하면 여기서 주되는 핵심적 의식은 사람 자신의 자주적 요구를 파악하고 지휘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견해다. 즉 의식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사람을 반영하고 사람의 모든 활동을 지휘하는 것이다. 의식이 물질의 반영이라는 점은 맞지만 외부세계의 반영은 부차적 기능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의 요구는 역시 초자연적인 환상적 주관적 관념이 아니라 실재 객관세계와의 상호작용을 위한 현실적 대상에 대한 요구를 말한다. 인간뇌수가 자신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기초위에 외부세계를 선택적으로 다시 반영하하고 지휘하면서 사람의 사상, 지식, 감정, 의지 등의 의식형태와 내용이 입체적으로 형성된다.
의식은 사물현상본질과 그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을 체계화하여 반영한 지식과 사람들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사상의식, 주위세계의 사물현상 및 다른 사람들에 대한 주관적 체험을 표현하는 감정과 같은 심리의식으로 이루어졌다, 사람의 모든 의식현상의 기초에는 사상의식이 놓여 있다. 사상의식에 의해 사람들의 모든 인식활동의 방향과 목적이 규정되며 얻어진 지식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가 하는 것이 결정된다. 의식은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지휘한다. 의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이익에 맞게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활동의 목표를 정하고 그 실현방도를 탐구하며 그에 따라 인식 및 실천활동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의지력을 발휘하게 된다. 사람의 행동을 지휘하는 데에서 사상의식은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상의식은 개인의 요구와 이해관계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존재로 그리고 집단적 요구와 이해관계이다.
자주적 사상은 근로대중이 세상의 주인으로 주인답게 자유롭게 살려는 사상이며, 비자주적 사상에는 노예적 굴종사상, 의존사상, 지배주의 사상이 포함된다. 의식의 문제는 사람의 본성에 부합하는 자주적 사상의식을 얼마나 체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한 사회나 사람에게 이 두 가지 사상이 공존하며 대립한다. 그래서 개인이나 집단에 학습과 교양이 필요한 이유이다.
맑스주의가 의식이나 사상을 주로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과학적 지식의 측면이라면 주체사상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하고 운명을 개척하려는 사람의 요구와 본성의 측면에서 봤다.
사람의 본짉을 해면하면 물질과 의식이란 틀로 보면 사람본질이 보이지 않습니다. 맑스주의는 사람도 사회적 존재(물질)과 사회적의식이란 틀로 분석한다. 그런데 사람을 물질과ㅓ 의식으로 구분하고 물질(경제적 토대, 사회적 관계의 총체)에 영향을 받으며 그 작용에 반작용하는 존재로 사람을 해석하면 세계의 주인과 개조자라는 사람의 본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근본적ㅇ로 사람은 사회적 조건과 환경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로 보인다.
맑스주의가 사람본성을 변증법적 유물론 원리로 물질일반의 원리에 녹였다면, 주체는 가장 고급한 물질인 사람이 다른 모든 저급한 물질(외부셰계)을 사람의 요구대로 지배하고 개조하는 관계로 해명했ㅇ다. 맑스는 사람이 사회적 물질(사회적 관계의 총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주체는 사람이 다른 물질에 없는 고급한 특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주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세상에서 가장 고급 물질인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며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원리를 내놨다. 자연운동에는 주체가 없지만 사회의 운동에는 주체가 있다.
주체는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ㅇ을 인정하면도 사람이 사회를 자신의 요구대로 개조하는 주인이라는 주체적 사회적 존재라는 입장에서 사람을 보았다. 사람을 자주적 사상의식과 창조성을 가진 세계 유일한 주인과 개조자란 입장에서 본다.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물질이나 의식으로 분리되는 성질이 아니다. 이들 성질은 물질과 의식이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사람의 모든 인식과 실천활동에서 드러나는 사람의 성질이다.
자주성은 온갖 구속과 예속에서 벗어나 세계와 자기 운면을 주인으로서 자유롭게 살려는 사회적 인ㄹ간의 성질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맑스주의 계급투쟁의 개념도 주체에서는 사회개조측면에서 자주성 실현의 개념으로 본다. 사람이 자연과 사회로부터 자유를쟁취하는 과정은 자유를 얻는 동시에 스스로 주인이 되는 과정을 동반하는 이중적 과정으로 된다. 자주성은 자유성을 기본적으로 포함하면서 이보다 더 포괄적인 주인성, 독자성이 녹아있다 자유를 추구하며 자기의 독자적판단과 힘으로 세상의 주인이 되는 속성이다.
창조성은 몱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ㄹ개척해나가는 사회적 인ㄹ간의 속성이다. 사람은 기성형태로 존재하지 않던 새것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자연을 개조할 뿐만 아니라 사회도개조하고 사람 자신도 변화시킨다. 사람이 창조성을 가지는 것은 인식능력과 실천능력이 창조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존에 없는 것도 추론과 상상을 통해 구상하고 실행을 통해 이를 구현해 낸다. 목적의식적으로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새것을 만들어내면서ㅓ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존재는 사람밖에 없다. 이것이 사람의 창조성이다.
자주성과 창조성은 긴밀한 관계에 있다. 창조성은 자주성을 전제로 한다. 사람의 자주적 요구에서ㅓ 출발한 자주성이 없다면 창조성도 나올 수 없다.
의식성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위해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의식성은 모든 인식활동과 실천활동을 규제하는 사람의 성ㄹ질을 표현하는 독창적인개념이다. 여기에서 방점은 모든 활동을 규제(지휘)하는 성질이다. 인간의 모든 활동을 규제하고 관통하는 읳식은 사사읳식이다. 의식성은 자주성과 창조성의 기본담보로 된다. 사람이 의식이니 그로부터 발전한 의식성이 없다면 자주성과 창조성도 있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주체를 인식과 실천의 적극적 담당자로 봄으로써 주체의 능동적 역할을 일정하게 강조하였다. 그러나 주체가 운동의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보지는 못하였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원리로부터 인간운동은 결국 그 의식ㅇ르 낳는 객관적인 물질적인 조건이 어‘떤한가 하는데 따라 좌우하게 된다고 봤다. 그러기에 인간활동이나 실천활동, 사회적 운동은 인간이ㅣ 담당수행하는 운동이지만 운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인간자체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조건, 물질경제적 조건이라고 간주하였다. 맑스주의 철학은 인식과 실천의 주체라고 말할 때 주체라는 범주는 사람이 운동의 주인이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식과 실천, 사회적 운동의 적극적 담당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독일이데올로기를 공부하면서 기존에 봤던 일부 자료와 책에서 발췌해서 정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