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만 이야기>
작고 예쁜 라디오 / 림광욱
내게는 오래 된 라디오가 하나 있다.
작고 예쁘고 음질이 뛰어난
70년대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다.
나는 이 라디오를 삼십 년 동안
애지중지 아끼고 사랑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이므로 손에 들면 묵직하고
고음 저음 조정기능이 있고
윗부분에 빨간 작은 버튼이 있어
밤엔 싸이클 부분을
환히 비춰 볼 수 있으며
중파와 단파를 들을 수 있다.
요즘 라디오처럼 초단파(FM)를 들을 수 없지만
이 라디오로 음악을 듣고 뉴스를 듣고
라디오 연속극도 듣고 고독과 시름을 달랬다.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바닷가에서
비가 새는 낡은 초가집에서
가난한 단칸 셋방살이에서
우리의 유일한 재산이었고
우리가 더 좋은 전축을 마련할 때까지
우리의 꿈이고 우리의 낭만이었던
작은 라디오.
우리의 사랑과 추억이 담긴
택트 야외전축이 자주 고장나서
눈물을 머금고 이 라디오와 바꾼 후
다시는 레코드판에서 흐르는 음악을
들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비싼 야외전축과 맞먹는 고급 라디오와
바꾼 걸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와 나는 한번도 라디오를 떨어뜨리거나
큰 충격 주지 않고 보배처럼 고이 다루었다.
한번도 수리점에 갖고 가지 않고
누구에게 빌려주지도 않았다.
산과 들에서 라디오를 켜면
꽤 먼 곳까지 또랑하게 들릴 정도로
성능이 좋고 음질 또한 어떤 전축에 지지 않는다.
아마 우리와 함께 늙고
우리 사랑처럼 영원하겠지만
옛날의 젊음과 청춘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라디오.
우리 가보처럼 아끼고
고장나지 않게 잘 사용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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