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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1일
핵심 구절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적으므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에게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너희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으리라.”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자비에 대한 믿음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성경 구절은 간질로 고통받는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귀신 들려 간질병자 같이 발잘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기꺼이 도와 치료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도록 격려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의 자비와 치유의 능력을 믿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자비로운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 고난받는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 (14-16)
예수님은 세 제자와 함께 변화산에 오르셨습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아래에 남아 군중과 함께 있었습니다. 산 정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리고 아래에 남은 제자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라파엘로의 그림 „그리스도의 변형“[1]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 라파엘로는 그의 그림 《그리스도의 변형》에서 산꼭대기에 있던 예수님과 산 아래 있던 제자들의 장면 대조를 잘 표현했습니다. 위에는 빛이 있고 아래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처럼 라파엘로는 두 장면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있습니다. 산꼭대기에서는 하나님이 예수를 사랑하는 아들로 고백하고, 산 아래에서는 병든 아들의 아버지가 아들의 치유를 간구하며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표현합니다. 이처럼 라파엘로는 하늘 아버지의 예수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아버지의 병든 아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동시에 묘사합니다.
예수께서 세 제자와 함께 산에서 내려와 무리에게 다가가시자, 한 사람이 일어나 예수 발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님, 제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아이가 악령에게 심하게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에도, 물에도 빠집니다. 제가 아이를 당신의 제자들에게 데려갔지만, 그들은 아이를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이 병든 아이는 아버지의 외아들이었고, 악령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만약 당신의 아들이나 딸이 불이나 물에 뛰어든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습니까!
제가 아홉 살쯤 되었을 때, 고관절 탈구로 저의 오른쪽 다리와 엉덩이에 병원에서 깁스를 하게 되었는데,저를 담요 위에 눕힌 다음 어머니와 둘째 누나 두 분이 제가 누워있는 담요를 들어서 병원에서 집까지 약 8킬로미터를 땀을 흘리며 힘들게 걸어 오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 때문에 저의 어머니가 겪었던 고통보다 열 배는 더 큰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아이의 발작과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 그리고 아버지의 두려움, 절망, 무력감. 아버지는 얼마나 깊은 고통을 느꼈을까요!
그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아이를 여러 의사에게 데려갔지만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순간 변화산에 계셔서 그를 만나실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제자들이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제자들은 아이를 향해 손을 뻗으며 "악령아, 네게 명한다. 이 아이에게서 나가라!"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악령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아이를 계속 괴롭혔습니다. 제자들과 아이의 아버지 모두에게 절망의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 아버지는 예수님께 달려가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주님, 제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아들이 간질 발작으로 심하게 고통받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에도, 물 속에도 빠집니다.”
그는 예수님께 아들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제자들이 아들을 도울 수 없었다고 말하며 예수님께 자비를 간청했습니다.
이것은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그 사랑 때문에 그는 거듭된 실망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도울 사람을 찾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희망을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았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돕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고통을 함께 느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미덕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불쌍히 여깁니다. 자식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도와줄 사람을 찾아 온 사방을 헤맵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합니다. 그러다 이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합니다. 우리는 이 아버지의 헌신과 자식에 대한 사랑에 감탄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고통받는 모든 사람에게 깊은 불쌍함을 느끼시기에, 그 아이를 기꺼이 도와주시려 하십니다.
학교나 대학에서 우리는 주로 기술과 과학을 배웁니다. 이러한 분야는 우리의 삶을 더 편안하게 만들거나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기술도 과학도 우리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불쌍한 마음을 가르쳐주지는 않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불쌍한 마음을 보이는 것은 우리에게 불편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비참함에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냉혹함이 만연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냉혹함은 불쌍한 마음과 정반대입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 질병, 전쟁으로 죽어가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거의 불쌍한 마음을 느끼지 않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어 영원히 멸망할 이들에 대한 불쌍한 마음조차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보이는 세상이 정말 전부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만약 보이는 세상이 전부였다면 예수님께서 왜 죽으셔야 했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비록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더라도 불쌍한 사람들에게 불쌍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나눠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불신앙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불쌍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은 영원한 저주에 직면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의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합니다.
2.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17-18)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저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17)
예수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말씀하신 것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제자들과 아이의 아버지, 그리고 일반 사람들을 모두 가리키고 계십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과거 경험에 의지했습니다. 그들은 이전의 선교 여행 중에 악령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성공적인 경험을 갖는 것은 긍정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대신 과거의 성공에 의지한다면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거의 3년 동안 함께하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행적을 목격했지만, 진정으로 그분을 믿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잘 이해했지만,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처음에 그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않고 단지 아들 치유만을 위해 도움을 구했을 뿐이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아버지는 예수님께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면 우리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할 수 있다면'이라고 한 아버지의 말을 책망하시고,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가복음 9:22b-23)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이를 고쳐주시려 하셨지만, 먼저 아버지에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믿음이 없음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아들을 고치는 것보다 아버지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 훨씬 더 시급했습니다. 육체의 병은 길어야 80년이나 100년 정도만 우리 삶을 힘들게 할 뿐이지만, 믿음이 없으면 영원토록 우리를 괴롭히게 됩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영원한 고통의 근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는 말씀으로, 그분의 신적인 행적과 말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불신을 그토록 심각하게 여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불신은 모든 불행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사랑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통치를 의심하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원망하며, 무분별하게 죄를 짓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고통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 그리고 은혜로운 통치를 믿을 때,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에서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평화와 능력, 생명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바로 천국이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과 지역 사회, 친구,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믿고 죄와 죽음과 지옥에서 구원받아 영생과 천국을 얻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예수께서 아이의 아버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그리고 예수께서 귀신에게 권세의 말씀을 하시니 귀신이 나가고 그 아이는 그때부터 나았습니다.” (17b–18)
이 치유를 통해 예수께서는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3. 기도의 능력 (19-21)
예수께서 제자들과 단둘이 계실 때, 제자들이 “어찌하여 우리는 악령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 간절히 알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에게 ‘저기로 옮겨가라’ 하면 옮겨질 것이다. 너희에게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19-20)
예수님은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믿음의 힘을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의 힘을 설명하기 위해 겨자씨를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에서는 겨자씨가 모든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겨자씨는 척박한 환경에도 잘 견디며, 성장에 적절한 시기가 될 때까지 땅속에서 휴면 상태로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자라기 시작하면 단 1년 만에 2미터까지 자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믿을 때, 그 믿음은 처음에는 땅에 뿌려진 겨자씨처럼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을 굳게 지킨다면, 머지않아 그 놀라운 효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보이는 일들이 많지만, 믿음을 통해 모든 "산"은 옮겨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산"은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순간에 옮겨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옮겨질 것입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는 14세기 초, 한 독실한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여 화산 폭발로 산이 실제로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르코 폴로는 가난하지만 독실한 구두 수선공이 잔혹한 바그다드 칼리프에게 기독교 신앙이 산을 움직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전합니다. 산이 움직이자 "칼리프와 그의 모든 수행원들은 경외심에 사로잡혀 오랫동안 그 경외심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기독교로 개종했고, 칼리프 자신도 비밀리에 개종했습니다. 그는 항상 옷 속에 십자가를 숨기고 다녔는데, 사후 그의 시신에서 십자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선대 칼리프들의 무덤에 묻히지 않은 이유입니다." [2]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나가지 않는다”(21절; 마가복음 9:29 참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기도를 부엌의 수도꼭지에 비유하곤 합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듯이, 기도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수도꼭지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분의 도움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아홉 제자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수도꼭지를 틀 것인지, 아니면 멀리서 물을 길어오는 수고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 자신의 힘에 의지할 것인지 말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믿음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붕쌍히 여기는 마음과 믿음을 모두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질병, 가난, 또는 다른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불쌍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불신앙의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세상은 차갑지만, 우리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세상에 온기를 가져다줍니다. 이를 위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필수적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앞에서 절망할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처음에는 겨자씨처럼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우리의 믿음을 굳게 붙잡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두고 세상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고 산을 옮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믿음을 주시어 세상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시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1] tbilder-galerie.de/kunstdrucke/raffael-bild-4798.html
[2] Die Reisen des Venezianers Marco Polo im dreizehnten Jahrhundert, Leipzig 1845, 1,8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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