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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card님의 다시 쓰는 여름향기 엔딩(4회)
"민우씨, 그거 지금 제가 갖고 있긴한데 다른사람이 파악하기에는 무리 예요. 지금상태에서는 제가 아니면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야해요. 제가 갈까요? 어차피 준비한 꽃도 그 쪽으로 옮겨야해요." 민우는 혜원의 가게 응접실에 앉아서 낙담한 듯 머리를 감싸쥔다. "혜원씨, 정말... 미안해서 어떡하죠?" "참, 민우씨도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어차피 제가 할 일이었는데요 뭘요. 민우씨, 조금만 기다려요." 혜원은 실내복을 벗고 외투를 걸친다. "미경아, 너 당분간 고생좀 해라. 내가 좀 바쁠 것 같다." "예, 알았어요 언니." 미경은 포트에 물을 끓이다가 혜원을 쳐다본다. "어, 혜원씨 어쩐일이예요?" 대풍은 사무실에 앉아있다가 민우가 혜원과 들어오자 놀란눈을 하며 일어난다. 반대편에 앉아서 도면을 보고 있던 예림도 혜원을 보자 벌 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안녕하세요. 대풍씨." 혜원은 고개를 숙여 간밤에 본 대풍에게 인사를 한다. 혜원은 다시 고 개를 들어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예림에게 가벼운 목례를 한다. "예림씨, 여기 이분이 1층 도면을 설계한 분입니다. 같이 협력 좀해서 하도록 해요." 민우는 예림에게 혜원을 소개한다. "예....알겠습니다." 예림은 다소 황당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민우와 대풍은 밖으로 나왔다. "민우야, 대체 어찌된거야. 얘기는대충 들었는데...." "응,형 얘기 들은대로야. 혜원씨가 없으면 일이 안될 것 같아."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뭐. 어휴...대체 이게 뭔 짓이야." 대풍은 한숨을 짓는다. "혜원씨라고 했나요. 우린 구면이죠. 전 하 예림이라고 합니다." 예림은 책상에 기댄채 손을 내밀어 혜원에게 악수를 청한다. 그녀의 표정은 아주 못마땅한 얼굴이다. "예, 전 심혜원이라고 합니다. 제가 힘 닫는데까지 도와드릴께요." 혜림은 의자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한다. "아예 전부 하실 생각은 아니시고요?" 예림은 눈을 흘기며 되묻는다." "예?" 혜원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아뇨, 그냥 해본 소립니다. 근데 팀장님과 어떤 사이예요?" "............." "어제 백화점에서 보니 예사로운 관계가 아닌 것 같던데 두분 결혼할 사이인가요?" 예림은 제도판에서 눈을 떼지 않는 혜원을 빤히 내려다보며 다그치듯 말한다. "제가 예림씨의 그런 질문에 대답할 의무라도 있나요?" "아니...뭐 그런건 아니지만...어제의 불상사와 오늘 혜원씨의 갑작스런 등장이 다소 황당해서 그러죠." 혜원이 예림을 올려다 보자 예림은 시선을 창밖으로 옮긴다. "황당하셨다면 미안하군요..... 어서 일이나 하죠." "아니, 혜원씨가 사과할일은 아니죠."
"형, 혜원씨 좀 부탁해. 난 하던일 마저 끝마치고 갈께." "걱정마세요.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께요." 날은 저물어 공사현장은 어둠에 묻히고 있었다. "혜원씨, 오늘... 정말 수고...했어요. 당분간 고생을 더 해야 겠네요." 민우는 혜원에게 미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걱정 말아요 민우씨, 제가 할 수있는데까진 해 드릴께요." 혜원은 밤공기가 차가운지 두팔로 가슴을 감싼다. 그녀의 입술은 파리 하고 까칠했다. 민우는 노란 단색 티 셔츠에 베이지색 얇은 반코트를 걸친 혜원이 추워 보였던지 자신의 파카를 벗어서 혜원의 등에다 두른 다. 실크 스커트 아래로 그녀의 하얀 무릎이 드러나 보였다. "민우씨, 괜찮아요. 안 추워요." 혜원은 파카를 걷으려 한다. "혜원씨, 그냥 입고 가요. 난 사무실에 옷이 많아요. 어서 들어가요." 민우는 파카깃을 여미어주며 두손으로 까칠한 혜원의 두 볼을 살며시 감싼다. "혜원씨! 어서 갑시다. 기차는 길어도 우동 먹는 시간은 짧아요!" 대풍은 운전석에서 혜원을 부른다. "민우씨, 그만 갈께요. 내일 봐요." 민우는 먼지를 날리며 멀어져 가는 대풍의 차를 보이지 않으때까지 바 라본다. "유민우씨." 민우가 사무실로 들어서자 밖에서 누군가 부른다. 사무실 불빛을 받아 실루엣처럼 검은 반신이 사무실로 들어선다. "아니...예림씨, 아직 퇴근 안했어요." 예림은 두손은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채 사무실 문에 기댄다. "예, 아직 안갔어요. 팀장님과 같이 퇴근할려구요. 그리고 어제일 사례 도 하고 싶구요." "어제 일이라뇨." 민우는 책상에 앉으며 대답한다. "백화점에서의 일 말이예요." "아, 그거요? 난... 잊은지 오랜대." "유민우씨. 섭섭하네요. 그걸 하루만에 잊다니 정말 섭섭하네요. 난 평 생 못잊을 것 같은데..." 예림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는다. "그걸 무슨 좋은 기억이라고 오래 갖고 있어요. 그리고 업무중에는 직 함을 불러주세요." 민우는 예림을 쳐다보지 않고 책상위의 그리픽과 도면을 번갈아 보고 있다. "유민우씨, 전 업무가 끝났는데요." 민우는 무표정하게 예림을 쳐다본다. "그래요 팀장님, 어쨋든 나가요. 제가 저녘살께요. 어제 팀장님 아니었 으면 저는 아마 지금쯤 어디 한군데 부러져서 병원에 있을지도 몰라 요." "대체 올라가는 에스켈리터위에서 역으로 내려오는 사람이 어딨어요. 얘들도 아니고..." "어쨋든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요. 그러니 제발 사례할 기회를 주세요." "만약에 거절한다면.....?" 민우는 회전의자에 몸을 기대며 묻는다. "이대로 그냥 넘어간다면 제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서 그래요. 거절 한다면 오늘 밤새 여기서 이러구 있겠어요." 예림은 작심한 듯 내 뱉는다. 민우는 피곤한 기색을 하며 할수 없다는 듯이 옷걸이에 걸린 코트를 걸친다.. "갑시다. 저녘한끼 사겠다는데 거절할 명분이 없군요." "정말이예요. 팀장님? 고마워요." 예림은 그제서야 환하게 웃으며 소파에서 일어나다. "팀장님, 차 없죠? 제 차 타고 가요." 예림은 주차장으로 뛰어간다. 공사장한켠에 세워둔 승용차를 끌고 민 우앞으로 소리없이 미끄러지듯이 다가온다. 어두워서 잘 볼수 없지만 민우는 예림이 끌고온 차가 2003년 신형 은색 아우디 임을 한눈에 알 아볼수 있었다. "민우씨, 차에 타고 있어요. 전화좀 하구요." 예림은 누구에겐가 전화를 한다.
"혜원씨, 오늘 황당했죠?" 대풍은 조수석에 앉은 혜원을 돌아본다. "예, 조금... 그래요." "김상열 그친구 정신을 어디다 외출 보냈는지 참...." 혜원의 휴대폰이 울린다. "형부, 잠깐만요." 혜원은 휴대폰을 백에서 꺼낸다. "여보세요? 응 정재 오빠야?" 대풍이 혜원을 쳐다본다. "지금? 좀 피곤한데... "알았어 오빠, 어디..라고? 응, 알았어 오빠 지 금... 갈께." "정재씨예요." "예 형부. 형부 나좀 여기 세워 주실래요?" "왜, 정재씨가 만나재요?" "예." "어디에서 만나재요. 내가 태워다 줄께요." "아뇨, 형부 괜찮아요. 혼자 갈께요." "괜찮아요. 지금 러시아워라서 택시 잡기도 힘들어요. 그냥 타고 있어 요. 그래 어디에서 만나재요?" "신사동 그랜드 호텔이래요. 미안해요. 형부."
"민우씨, 여기 와 보셨어요? 이 호텔이예요. 제가 말했던 곳이예요. 여 기 많이 장식된 꽃이 제손을 거쳤죠." 예림은 호텔로비에 들어서자 이곳 저곳을 가리키며 감개한 표정을 짓 는다. 민우의 시선이 예림의 손이 가는곳을 따라간다. 천장과 로비벽을 따라 늘어선 화단에는 꽃나무를 뿌리채 심은 압화와 꽃잎을 눌러 만든 드라이플라워가 화려하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민우씨, 우리 식당으로 가요. 배고파요." 2층 양식 코너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예림은 창 문가로 가서 앉는다. 민우는 마지못한 듯 예림을 따라 식탁에 앉는다. 앉기가 무섭게 웨이터가 쟁반에 컵을 얹어서 다가왔다. 냅킨과 컵을 내려놓는다. "민우씨, 뭐 드실래요?" "그냥 아무거나 시켜요." 민우는 아무 생각이 없다는 듯이 말한다. "팀장님, 그런게 어딨어요. 빨리 드시고 싶은거 말씀하세요." 예림은 입이 한자나 나왔다. "예림씨 좋아하는걸로 시켜요." 민우는 웨이터가 내려놓은 냉수를 벌컥벌컥 마신다. "그럼 좋아요. 제가 시킬께요. 여기 윤기 자르르 흐르는 스테이크하구 요. 참 소스도 듬뿍 치구요. 상어알과 바닷가재, 그리고....회도 좀 갖다 줘요. 무슨 얘긴지 아시겠죠? 또 그리고 얼음에 잰 포도주도 좀 갖다 주세요." 그녀는 웨이터를 향해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혜원씨, 다왔어요." "고마워요 형부. 조심해서 가세요." "혜원씨, 저기 정재씨 아닌가요?" 혜원은 차에서 내리며 호텔 회전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둡지만 희 미한 불빛아래 정재가 호텔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혜원씨, 난 그만 갈께요. 내일 봐요." "형부, 조심해서 가세요." 대풍은 차를 돌려 호텔을 빠져나갔다. "오빠!" 혜원은 뛰어가며 호텔로비로 들어가는 정재를 부른다. 정재가 뒤돌아 본다. "응 혜원이 왔어?" 혜원은 정재를 쳐다보며 가볍게 웃는다. "혜원아 너 어디서 오는 길이야? 너한테 전화하기전에 가게 전화하니 미경이란 얘가 오후에 나갔다고 하던데... 그런데 그.. 옷차림은 뭐니?" 정재는 남성파카를 입은 혜원을 훓어본다. "응, 그게.....그런 일이 좀 있어...." 혜원은 정재를 쳐다보지 않고 파카 앞섬을 여미며 대답한다. "그래, 어쨋든 오늘 저녘이나 같이 먹자 오빠가 맛있는 것 사줄께." 정재와 혜원은 2층 양식코너에 들어선다. 정재는 식당에 들어서자 식 당안을 한번 둘러본다. "혜원아, 우리 저쪽 창가로 갈까." 혜원은 정재뒤를 서너걸음 뒤처져 따라 가며 주위를 둘러본다. 정재는 창가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왼쪽 창가쪽에 희미한 조명 아래 앉아 있는 민우와 예림을 발견한다. "유...민우씨 아닙...니까." 민우는 낯익은 음성에 고개를 들다가 흠칫 놀란다. "아니, 정재....씨 여긴 어쩐...일입니까." 혜원은 정재뒤를 따라오다가 민우의 음성에 걸음을 멈춘다. 식당통로 가 좁아서 정재앞을 볼수 없지만 분명 민우의 음성소리라는 것을 느낀 다. 정재옆에 삐죽히 삐져나온 식탁에서 예림이 묘한 웃음으로 혜원을 쳐다본다. 혜원은 예림의 눈빛에서 섬찟함을 느낀다. 혜원은 뒷걸음질 치다가 뒤돌아 식당을 뛰어 나간다. "혜원아!" 정재는 뒤돌아 뛰어가는 혜원을 부른다. 민우는 정재의 혜원을 부르는 소리에 소스라쳐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민우의 오른팔에 걸린 식 탁보가 딸려가면서 식탁위의 그릇과 음식들이 식탁 아래로 떨어진다. 민우는 정재를 밀치며 혜원의 뒤를 쫒아간다. "민우씨!" 예림은 민우를 부르며 달려가려하지만 정재가 예림의 팔을 잡는다. "됐어요. 가지말아요. 예림씨." "정재씨, 정말 잔인하군요. 전 정말... 이렇게 까진 하고 싶지.. 않아요. 이젠 후회해요." 예림은 얼굴을 감싸쥔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벌써 이러시면 안되죠. 어쨋든 예림씨나 김상열 씨 수고했어요."
민우는 1층 로비 중앙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혜원의 팔을 잡는다. "혜원씨! 잠깐만 내 얘기 좀 들어봐요!" 민우는 혜원을 가로막고는 두팔로 혜원의 목을 꽉 껴안는다. 로비를 지나는 사람들이 영화찍냐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지나간다. 민우는 혜원의 목을 감은 팔을 풀지 않은채 말이 없다. 혜원의 목을 감은 민우의 팔목에 혜원의 눈물이 젖어든다. "혜원씨...." 민우의 목소리는 열병에 걸린사람처럼 심하게 떨고 있었다. 혜원은 민우의 두팔에 갇혀 꼼짝을 할수 없지만 가볍고 여린 그녀의 두어깨는 가늘게 들썩이고 있었다. "혜원씨....내가... 이렇게 혜원씨를 매번... 아프게 해서 어떡...해요." 민우는 가슴 속 명치끝이 온통 뻐근해져 눈을 감았다. 민우의 눈시울 이 더워지고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 혜원의 머리를 타고 이마를 적신 다. "혜원씨.... 내 진심이.....내 진심이 혜원씨를 이렇게 아프게 할 수도 있 다는 것을 알았어요. 가까이 있어서, 그래서 너무 편안해서 의식조차 할수도 없었는데....나 혜원씨한테 변명같으거 하고 싶지 않아요." 민우는 그녀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민우씨, 나...나 목 아파요..." 그제서야 혜원의 목을 감은 팔을 푼 민우는 눈물이 얼룩진 얼굴로 혜 원을 내려다 본다. 민우의 가슴팍에 묻혔던 혜원의 눈에서는 눈물이 돌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띈 입술사이로 눈물이 빨려들어간다 "민우씨, 나 괜..찮아요." 혜원은 민우를 올려다보며 양손으로 눈물을 찍어낸다. 민우는 자꾸만 흐려지는 눈을 감추려고 혜원을 꼭 껴안는다.
날이 밝으면서 스멀 스멀 피어오르던안개가 오히려 이젠 지척을 분간 할수 없을 정도로 짙어지고 있었다. 태양은 형태만 간신히 유지한채 도시를 휘감고 있었다. 한 줄기의 바람이 혜원의 옷자락을 스친다. "혜원씨." 혜원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좌측 공사장 한켠으로 돌린다. 예림이 안개를 덮어쓴채 승용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혜원씨, 출근해요?" 예림은 혜원과 눈이 마주치자 어제 밤의 일은 까맣게 잊은양 활기차고 건강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흰 블라우스 칼라 사이로 그녀의 긴 목이 드러나 보였다. 혜원은 예림의 코팅한 출렁이는 머리칼이 그녀의 성격 을 말해주는 것 같은 생각을 문득 해본다. "혜원씨, 어젠 정말 미안했어요. 그냥 그제 백화점에서 팀장님한테 신 세진것도 있고해서 인사를 하려구 했던거 뿐이예요. 오해는 마세요. 혜 원씨 마음을 언짢게 했다면 사과 할께요." 예림이 안개와 바람을 안고 혜원에게 다가온다. "괜찮아요. 충분히 이해해요. 어제 조금은 당황했지만 제가 예림씨 입 장이면 저도 아마 그렇게 했을거 같아요.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예림은 혜원이 미소띈 표정으로 선선하게 대답을 하자 의외라는 표정 을 짓는다. "혜원씨는 천사군요. 저 같으면......" 예림은 빈정거리듯 말한다. 예림과 나란히 걷던 혜원이 미소를 지으며 예림을 돌아본다. "예림씨 같으면 어떻게 했을거 같아요." "그 자리에서 사단 나는거죠 뭐." 예림은 혜원을 빤히 쳐다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한다. 혜원 은 그냥 피식 웃고 만다. "왜 웃어요? 안 그럴거 같아요?" "아뇨, 예림씨 성격이면 충분히 그럴거 같아요." "제 성격이 어떤대요?" 예림은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혜원을 쳐다본다. "말투 만큼이나 냉하군요. 겨울에 내리는 무서리가 얼마나 차가운지 예림씨는 알아요?" 혜원은 예림을 한번 쏘아보고는 앞서 걸어간다. 예림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술을 깨문다.
"혜원씨, 다 됐어요?" 민우는 제도판에서 도면을 그리고 있는 혜원에게 다가간다. "예, 다 됐어요. 그나마 밑그림이라도 갖고 있어서 빨리 끝났어요." 혜원은 도면을 민우에게 건네준다. "민우씨, 어디 좀봐요." 예림은 민우에게서 도면을 뺏다시피 받아쥔다. 민우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대풍은 책상에 팔장을 끼고 앉아 예림의 행동에 혀를 끌끌 찬 다. "팀장님, 됐어요. 이걸로 충분하겠어요. 혜원씨는 좀 쉬죠." "그래요, 혜원씨는 좀 쉬어요. 하예림씨, 도면 파악이나 제대로 한겁니 까? 대풍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걱정스러운듯 말한다. "예. 걱정 마세요." 도면 못보는 플로리스트가 어디 있어요. 도면 작성 도 플로리스트에겐 필수적이잖아요. 이 도면 플로리스트 심혜원씨가 작성하는거 뻔히 보면서도 그렇게 말씀하세요. 절 그렇게 못믿으시나 요." 예림은 대풍을 못마땅하다는 눈초리로 쏘아댄다. "아, 그런건 아니지만....노파심에서 하는 얘기죠. 아직 공사현장도 제 대로 안둘러 봤잖아요. 그냥 도면만 갖고 어떻게 작업을 합니까. 지금 시간이 촉박한데...." 대풍은 책상에 두손을 짚고 예림을 못믿겠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아무래도 혜원씨도 같이 수고 좀해야 겠어요." 대풍이 혜원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게 낫겠죠. 예림씨 혼자 하는거 보다 같이 하는 게 능률적이고 효율적이겠죠." 그러면서 혜원은 예림의 표정을 살핀다. "혜원씨 좋을대로... 하세요. 저야..뭐 같이 하면 편하기야 하죠. 제가 혜 원씨가 그린 도면을 보고 하다보면 시행착오나 실수를 하지 말란 보장 도 없겠죠." 예림은 할 수없다는 듯 양미간을 찌뿌린다. "혜원씨, 괜찮겠어요? 피곤할텐데...." 민우는 근심스런 표정으로 혜원을 바라본다. 간밤에 혜원을 또 한번 마음 아프게 만든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렇다고 혜원이 없다면 일이 어려울 것 같다. "괜찮아요 민우씨. 어서 일 시작해요." "김상열씨, 뭐 할말 없어?" 대풍은 김상열을 쳐다보며 눈을 흘긴다. 김상열은 죽을죄를 지은냥 책 상에 고개를 파묻는다. "미안합니다. 특히 심혜원씨한테 정말 미안해요. 제 봉급 받아서 혜원 씨 다 드릴께요." 기어들어가는 상열의 말에 다들 웃고 만다. "상열씨, 너무 걱정말아요. 잘 될거예요." 혜원은 걱정하는 상열이 안되 보였던지 안심을 시킨다.
"저번달 매출이 격감했다고요?" 정재는 사무실에서 매출 장부를 뒤적이고 있었다. 영업팀장으로부터 판매실적을 보고 받는 정재는 만사 귀찮다는 듯한 표정이다. "지금 국내 경제가 1년가까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장기화로 접어 들고 있습니다. 삼사분기 매출이 전년도 대비 이 삼십프로 줄었습니다 물론 우리만 그런건 아닙니다만.... 더군다나 리모델링공사로 인해 매장 마다 어수선하기 짝이 없습니다. 고객들 대부분이 아이쇼핑에 그치는 정도입니다." 영업팀장은 정재 책상옆에서 매출부진의 원인을 정재에게 브리핑하다 시피 한다. 그이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었다. "박부장님, 마켓팅 전략을 다시 한번 전면수정을 해야겠습니다. 내일 영업회의를 소집하십시오." "이사님께서 직접.. 주제하실려구요?" "그래요. 그렇게 아시고 영업부 직원전원한테 마켓팅전략 아이템하나씩 제출하라고 하십시오. 그만 나가 보세요." 정재는 매출장부를 박부장한테 돌려주고는 돌아앉는다. 안개가 덜걷힌 희뿌연 도시의 풍경이 오늘따라 흐르는 물위에 출렁이는 산그림자 같 다. 길가의 플라타너스 나무에서 낙옆하나가 떨어지면서 정재의 시선 을 받는다. "똑똑똑..." 누군가 정재의 방을 노크한다. "오빠, 나야." "아니 정아 니가... 연락도 없이... 웬일이니?" 정재는 정아의 갑작스런 방문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오빠, 왜 그렇게 놀래? 내가 못 올곳에 왔나?" "아...아냐...그래 좀... 앉아라." 정아는 예의 그 금발의 머리에 빛 바랜 청바지위에 굵은 털실을 짠 빨 간 자라목 스웨터 차림을 한채 성큼 성큼 걸어들어왔다. "오빠, 오랜만에 보니 얼굴이 어째 좀 안돼 보인다. 뭔일 있어?" 정아는 소파에 다리를 포개고 앉으며 정재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일은 무슨일....요즘 장사가 좀 안돼서 그래." "오빠도 참 , 여기만 그런게 아닌데 너무 맘 쓰지마. 좀 있으며 나아지 겠지." "그래 소서방은 잘 있어?" "응, 잘있어. 문제는 내가 꽉 쥐고 산다는게 문제지." 정아는 그러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깔깔깔 웃는다. "오빠, 참 혜원이는 잘 있는지 모르겠네. 여기 오다가 연락을 했는데 가게에 없던데... 일 나갔다고 하던데... 핸드폰도 꺼놓은 것 같고.." 정아는 사뭇 궁금하다는 듯이 말한다. "근데, 혜원이 어디서 일을 하는 거지. 오빠, 웬만하면 여기 공사를 혜 원이 한테 부탁하지 그랬어." "내가 얘기 했잖아. 다른 공사를 맡고 있다고...." "참, 그렇지. 내 정신좀봐. 그러고 보니 예림이를 잊었네. 오빠? 예림이 는....? 일 잘하고 있겠지?" 정아는 팔장을 끼고 연신 웃으며 말한다. "응...그래 잘하고 있겠지.. 우리 나가서 점심이나 먹을까? 어서 나가 자." 정재는 정아팔을 잡으며 재촉을 한다. "오빠도 참 지금 오후 2시야. 점심 먹은 지 언젠데...오빠 이상하다 오 랜만에 찾아온 동생을 막 쫓으려고 하네." 정아는 정재의 팔을 떼어 놓으며 의아해한다. "그게....무슨 소리..야. 쫓긴 ...너 바쁘지 않니?" "아니 이번에 우리나라 성악가들의 잔치인 가을과 클래식의 만남이란 콘서트 이벤트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대가로 휴가를 얻었어. 그 동안 에너지 충전도 좀하고...내가 얘기 했잖아." "응, 참 그렇지.." 정재는 머쓱해하며 다시 소파에 앉는다. "오빠, 나 예림이 한번 보고 가야겠다. 지금 현장에 있겠지?" 정아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아야. 잠깐만......" 정재가 정아의 팔을 당긴다. 정아는 소파에서 일어나다 다시 앉는다. "오빠, 왜 그래?" 정재는 정아를 한참 쳐다본다. "오빠? 왜 그래?" "너....민우씨 알지." 정아의 미간이 좁아든다. "민우씨....? 오빠, 유민우 선배 얘기 하는거야? 유민우선배 이태리에 있잖아. 근데... 민우선배는 왜....?" 정아는 말을 더듬으며 설마하는 눈빛으로 정재의 얼굴을 뚫을 듯이 쳐 다본다. "민우씨....지금 여기서... 일하고 있어." "오...빠, 그...게 정말..이..야?" 정아는 반가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 이다. "사실이야. 이번 공사를 맡은 기획사와 계약을 했나봐. 나도 공사 개시 전까지 몰랐지. 그게 다야." 정재의 꽉 다문 입술이 일순 일그러진다. "언제 귀국했대?" "......." "오...빠 그럼 민우선배와 혜원이....." 정아는 머리를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정재를 심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빠 왜 그래...? 설마 민우선배와 혜원이... "그래....둘이 만나고... 있나봐." 정아는 속에서 알수없는 뭔가가 솟구쳐 오르는것 같았다. "오빠, 내가 뭐랬어 반드시 이런일이 있을 거라고 얘기 했잖아. 혜원이 한테서 미련을 버렸더라면 이러지 않아도 되잖아." 정아는 오빠의 혜원에 대한 일념이 한심하면서도 안따깝다. 언제까지 혜원의 주변을 돌며 오빠를 자처하고 결혼도 안하고 살것인지 정작 혜 원은 오빠를 사랑하는 감정이 전혀 없는데....그런데 이제 그 토록 사랑 했던 사람을 다시 만났으니... "오빠, 나 나가 볼께." "현장에 갈거냐?" 정아는 대답을 않고 문을 열고 나간다. "예림씨, 이쪽 부분은 채광에 맞게 색을 결정해야 겠는데요. 그리고 색 은 너무 화려 하지 않은 걸로 선택을 해야 겠네요. 예림씨 생각은 어 때요?" "그래요, 색깔을 단순화해서 주변내벽 색채와 조화를 이룰수 있는 꽃으 로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네요. 근데 설계도가 꽃색깔을 단순화하기에 는 조금 복잡한거 같지 않아요." 혜원과 예림이 꽃장식을 어떻게 할것이냐를 두고 설계도면을 보면서 머리를 맞대고 있다. 민우는 시공 반장에게 뭔가를 지시 하고 있다가 혜원과 예림을 돌아본다. 아까 현장사무실에서 두사람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는 찾아볼수가 없을 정도로 일에 몰입해 있는 모습이 정겹다는 생각이 든다. "혜원씨, 전화 왔어요." 예림은 혜원의 목에 걸려있는 휴대폰의 전원이 깜박거리는 것을 보고 혜원에게 말한다. "어머, 고마워요." 혜원이 휴대폰을 귀에다 댄다. "언니, 저 미경이예요." "응, 그래 미경이니......응 그래 아직도... 그래 알았어." "예림씨, 저 좀 나갔다 올께요. 미안해요. 금방 올께요." 혜원은 도면을 예림에게 건네주고는 민우에게로 간다. 혜원이 민우에 게 뭔가를 얘기를 하고는 밖으로 나간다. 예림이 민우에게 다가간다. "민우씨, 혜원씨 어디 간데요." 예림은 민우를 빤히 올려다 보며 묻는다. "반장님, 이제 됐죠. 좀 서둘러 주세요." 민우는 예림은 보지 않고 시공반장에게 말을 한다. "예 팀장님 알았습니다." 민우는 옆에 서있는 예림을 못 본건지 앞으로 가려고 한다.. "민우씨, 제가 부르면 그렇게 모른척 하나요?" 민우가 무표정하게 예림을 돌아본다. "예림씨, 직함을 부르라고 했죠." "좋아요 팀장님, 근데 어제 그일때문에 아직 화가 안풀렸나요? 혜원씨 와 싸우기라도 했나요? 지금 제가 이렇게 사과를 할려구 하잖아요." "예림씨가 사과할 일이 뭐가 있나요?" 민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예림을 본다. "근데 오늘 아침부터 팀장님이 저를 보는 시선이 다르던데요. 아주 차 갑게 느껴져요." "달라진거 없어요." 민우는 걸음을 옮긴다. "팀장님!" 예림이 앞서 걸어가는 민우의 팔을 나꿔챈다. "예림씨, 누가 보겠어요. 이팔 놓아요." "못 놓겠는데요."
"유민우 선배!" 민우와 예림이 매장 회전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정아가 성큼성큼 민 우와 예림에게로 다가온다. 예림이 민우를 잡고 있던 팔을 놓는다. "아니...너...박정아..아니니...?" 민우는 정아를 보자 십년지기를 만난 것 같은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그녀의 옴팡지게 파진 눈이 간혹 사늘한 느낌을 줄때가 있지만 미운 구석은 없는 여자다. 정아의 금빛 머리칼이 오늘 따라 유난히 빛나 보 인다. "야, 박정아 정말 오랜만이다." 정아가 민우에게 악수를 청한다. "선배 정말 오랜만이네. 참 예림아 너도 어때 일 할만해." 정아는 민우와 악수를 하면서 예림에게 말을 건넨다. "응... 정아야.. 할만..해." 민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두사람을 번갈아 본다. "예림씨와 아는 사이니?" "참 민우선배는 예림이 모르지 예림이는 대학동창이야." "응,그래... 예림씨와... 동창이...었어." 예림은 겸연쩍은 표정을 하면서 당황해 한다. "그런데 두사람 뭐하고 있었어? 팔을 잡아 당기고 ....벌써 싸우는거 야?" 정아는 심히 의아스럽다는 시선으로 두사람을 번갈아 본다. "아트디렉터하고 플로리스터, 싸울수도 있는 일 아니니...실과 바늘처럼 맨날 같이 붙어있으니..원." 예림이 팔장을 끼며 정아에게 밉지 않은 시선을 흘긴다. "민우선배 오늘 저녘에 저녘이나 같이 먹을까? 그냥 헤어지기가 아쉽 잖아. 선배를 3년만에 만났는데..." "그래..그러지 뭐.." "민우야, 어디로 전화하냐? 혜원씬 오늘 꽃 준비 때문에 못 온다면 서..." 대풍은 신호만가고 받지않는 전화기를 계속 들고 있는 민우를 이상하 게 생각한다. "형 , 조전무님 한테 하는거야." "조 전무는 왜?" "응, 그...냥." 민우는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민우는 예림이 정아와 동창이라는 것과 어제 호텔에서 정재의 등장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형, 퇴근하자." "너 먼저 가라 난 3층 극장 설계도 손좀 봐야겠어."
성급하게 찾아드는 첩첩산중의 어스럼같이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멀 리 내려다 보이는 한강물도 시커멓게 잠겨있었다. "민우선배, 나 결혼한거 알고 있지? 한 4개월 됐어." 정아는 레스토랑을 둘러보며 민우에게 말을 건넨다. 레스토랑은 저녘 시간대라서 그런지 제법 사람들로 붐볐다. "그래 알고 있어. 내가 이태리에서 귀국한 시점에 했더구나." 민우는 시킨 음식은 먹지 않고 수프만 숟가락으로 휘젓고 있다. "선배, 왜 밥맛이 없어? 나 만난게 별로 반갑지 않은가봐." 정아는 포크와 나이프로 비프커틀릿을 썰다가 민우를 쳐다본다. "아..냐. 그럴 리가 있어.그냥 입맛이 없어서 그렇지." "선배 그래도 오늘만큼은 인상좀펴. 3년만에 만났는데 표정이 그게 뭐 야. 선배참... 결혼안해?" 정아는 생각난 듯 말한다. ".........." 민우가 정아의 눈을 응시한다. "선배 왜? 내 말이 이상해? 하긴 뭐 결혼해도 나을 것 하나도 없더라." 그러면서 정아는 먹기 싫은양 포크로 음식을 끄적인다. "선배, 지금 내가 선배한테 무슨 얘기 할것인지 한번 맞춰봐?" 민우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정아를 쳐다본다. "민우선배...빨리 혜원이 하고 결혼하란 말이야. 민우선배 귀국하고 혜 원이 하고 두세 번 정도 통화를 한 것 같은데 죽어도 선배 얘긴 하지 않더라. 어쩜 다들 그렇게 의뭉을 떠는지...정재오빠도 그렇고 혜원이도 그렇고....정말 섭섭했어." 정아는 컵을 들어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선배, 내가 민우선배나 혜원이를 위해서 이런 소리 하는게 아냐. 정재 오빠...우리 오빠를 한번 봐. 아직도 혜원이한테 미련을 못버리고 저러 고 있는게 보는 동생으로서는.... 정말 가슴이 너무.. 아파. 속이 미어진 단 말이야. 내가 민우씨를 포기하듯이 정재오빠가 혜원이를 포기...했으 면... 좋겠는데.....정재오빠가....이젠 정말 바보같다는 생각밖에 안들어... 바보보다 더해....등신같아... 오빠맘도 몰라주는 혜원이도 밉고....그 동안 우리 가족이 어떻게 해줬는데....." 정아가 냅킨을 눈으로 가져간다. 희미한 불빛이지만 정아의 눈이 물기 때문에 빛나고 있었다. "정아야, 그래 니맘 안다. 정재씨 맘도 알고..." "알면서도 그러고 있는거야? 선배가 혜원이와 빨리 결혼해버리면 정재 오빠도 혜원이를 포기 할거 아냐." 밖은 길고 음침한 어둠이 무겁게 내리고 있었다.
냅킨을 무릎 위에 펴는데 예림의 손이 가늘게 떤다. 정재는 피묻은 스 테이크를 썰다말고 예림을 가만히 쳐다본다. "예림씨 어서 들어요. 왜, 음식이 맛이 없어요? 한식 먹을걸 그랬나...? "아뇨. 먹고... 있어요." 예림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고기를 가른다. "정재씨." 예림이 고기를 썰다가 정재를 부른다. "그냥 오빠라 불러요. 정아 친군데 그렇게 부르니 좀 어색하군요." 예림은 갑자기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는다. "왜 그래요?" "정재씨나... 유민우씨나 왜 그렇게... 호칭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네요. 유민우씨도 내가 유민우씨라고 부르면 직함을 부르라고 핀 잔을 줘요." "일할땐 직함을 부르는게 좋잖아요 서로 부담없고...? 굳이 이름을 불러 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건...그렇지만..." "참...예림씨 뭐 할 얘기 있다고 그랬죠?" "그건...." 예림은 고기 한쪽을 입에다 넣고는 술잔을 들이킨다. "정재씨, 제 인상이 어때요?" 정재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예림을 본다. "혜원씨...심혜원씨가 제 인상이 굉장히 차갑데요..뭐라더..라? 겨울 에 내리는 무서리 만큼이나 차대나...정재씨가 보기에도 제 마스크가 그렇게 차갑게 느껴져요? 어때요..?" 정재가 쓴 웃음을 짓는다. "주위 사람들은 뭐래요?" "뭐...대부분 ...좀 그런쪽으로 보는것 같아요."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지느냐는 참 중요하죠. 주의사람들이 느 끼는 예림씨의 성격을 절대 무시할 수는 없어요. 자기 자신을 자신이 평가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문제는 외모가 아니라 내적인 심성이겠죠. 사람들이 외모로 절대 사람을 평가하지는 않아요. 요즘 사람들이 생긴 것 가지고 흉을 보는 유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들은 없어요. 대개 인 상이 차갑다고 하면 성격이 차갑다는 말로 받아들이면 될겁니다. " 예림은 정재를 빤히 쳐다본다. "꼭 심리학자 처럼 얘기하시는 군요. 아니..전 정재씨 생각을 묻고 있 는 거에요." 예림이 퉁명스런 표정을 짓는다. "전 뭐..예림씨 안지도 얼마되지도 않는데 뭐라 얘기하기는 좀 그러네 요.....정아한테 듣기로는 ...성격이 좀 날카롭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정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대답한다. "어머, 정아가 그래요? 고 기집애 ...지 성격은 어떻고 내 성격이나 지 성격이나 오십보 백보고 부창부수지..." 예림은 콧방귀를 뀌면서 얼굴이 달아오른다. "부창부수란 말을 그럴때 쓰나요?" 정재는 나오려는 웃음을 참는다. "정재씨는 웃음이 나와요? 어휴 속상해..기집애 만나기만 해봐라." 예림은 팔장을 낀채 정재에게 눈을 흘긴다. "제가 갑자기 악녀가 된거 같아 무척 힘들어요. 안그래도 성질 이 못됐다고 소문났는데 이젠 서서히 길들여지는 것 같아 내심 걱정되 요. 이러다가 정말 제 감정을 추스리지 못할까봐 걱정되요." "..........." "그런데 이런식으로 해서 무슨 효과를 기대할수 있을까요? 어제 호텔 에서의 일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어요. 정재씬 두사람의 관계를 너무 과소평가 하시는거 같아요. 정재씨, 좀 유치하다는 생각 안들어요? 그 리고 정아가 이 사실을 알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두렵기도 해요. 그리 고 유민우씨도 오늘 정아와 내가 친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조만간 정재씨의 계획이 탄로 날 것 같아요. 민우씨와 혜원씨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둘을 떼어 놓는다는 건 불가능 하게 보여요." 정재는 왼손으로 턱을 괴고는 눈을 감는다. 예림은 정재의 혜원에 대 한 집착이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정재씨, 정말 두 사람을 떼어 놓을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정재씨 는 누구보다도 민우씨와 혜원씨를 잘 알고 계실거 아닙니까. 과연 가 능한 일일까요?" 정재는 술잔을 들이킨다. "예림씨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어요. 한번 결정적으로 충격을 줄수 있 는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자꾸 심약한 소리를 하면 어떡하겠 단 겁니까." "누구한테 충격을 주란 얘기예요? 민우씨요? 아님 혜원씨요? 혜원씨 는 동생이나 다름 없다면서요. 그리고 이런생각은 안해 봤어요. 민우씨 의 충격이 곧 혜원씨의 충격이고 혜원씨의 충격이 민우씨의 충격이 될 거란 생각을 안해 봤어요? " 정재는 예림의 말에 넋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게...그렇게...되나..요." 예림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정재를 바라본다. 정재는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짫은지 실감을 하는 듯 왼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턱을 괸다. "예림씨...그럼 하지 말아요 .없었던 일로 해요.. 그냥.....일이나 해요." 정재는 쓴 웃음을 지으며 예림에게 미안한 표정을 한다. "설사 그렇다 쳐도 3년동안 정재씨한테 마음을 주지 않았는데 이런다 고 혜원씨가 정재씨한테 돌아갈까요?" 정재는 고개를 들어 입술을 깨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 충격이란건 뭐예요? 저 보고 민우씨를 좋아하란 말 아닌가 요? 만약에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제가 받을 충격은 생각안해 봤나 요....사람이 어쩜 그렇게 이기적이예요." 예림은 다그치듯 정재에게 내뱉는다. "........" "정재씨...그만 두라고 했나요...하지만 늦었어요...저...유민우씨...좋아..해 요." 예림은 진지한 표정으로 정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정재는 놀란 표정 으로 예림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정재는 이미 모든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듯이 표정이 어두워진다. 예림의 두눈이 조명아래 반짝인다. 솔직히..저도 모르게..." 예림은 창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정재에게 시선을 둔체 말을 더듬는 다. 정재는 예림에게 고개를 돌린다. "솔직히 저도 모르게...그 사람에게 자꾸 끌...려요. 이런 감정 첨이예 요....사실이예요...유민우..그사람 설명할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어요. 정 재씨는 바로 이런걸 노린거죠.." 예림은 정재를 쏘아본다. 그녀의 얼굴은 박정재 당신의 속내를 다 알 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다. 정재는 애써 그녀의 시선을 피하듯 술잔을 들이킨다.
더욱 짙게 배인 어둠에 도심은 더욱더 찬란한 빛을 발하고 발하고 있 었다. "혜원아." "응 정아 왔어. 용케 잘 찾아왔네." 혜원은 책상에 앉아서 장부 정리를 하고 있다가 정아를 맞는다. "이게 얼마만이니." 정아는 혜원을 가볍게 안는다. "어머, 얘... 누가 보겠다." "보라면 보라지 여자끼리 연애 한다 그러지 뭐." "정아야.. 좀 앉어. 차 한잔 줄께." 정아는 가게를 둘러보며 소파에 앉는다. "역시 혜원이 너답게 가게를 아름답게 꾸몄구나. 꼭 꽃 박람회에 온 느 낌이다. 정말 대단하다." 정아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정아의 시선이 천정으로 향한다. 그녀는 카라리조트를 떠올린다. "혜원아, 천장의 꽃은 문라이트 아니니? 꼭 3년전 카라리조트 프로포즈 방을 연상케 하는구나." 혜원이 커피잔을 들고 정아의 맞은편에 앉는다. "혜원아, 니가 좋아하는 꽃은 카라꽃 아니니? 왜 온통 문라이트니?" 정아는 눈을 살짝 흘기며 혜원을 본다. "나 저..꽃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는..데....." 정아가 천장과 혜원을 번갈아 본다. 혜원은 말없이 커피를 마신다. "정아야 차 마셔..." 정아는 혜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채 찻잔을 든다. "혜원아, 나 지금 민우선배 만나고 오는 길이야." 정아가 다리를 꼬면서 자세를 고쳐 앉는다. "응..그래 민우씨 만...났어...." 혜원은 고개를 들지 않고 찻잔만 만지작 거린다. "혜원아...너 빨리 결혼해라. 민우선배랑...." "응....그래.." 혜원은 여전히 시선을 탁자에 둔채 대답한다. "혜원이 니가....우리 정재오빠를 봐서라도 빨리 결혼 했으면 좋겠어. 혜 원이 니가 빨리 정재오빠를 떠나야 오빠가 자유로울수 있을 것 같아." "그...렇지 ...정아야.. 내가 정재오빠를 구속하고 있는게 사실이지..?" 혜원이 입술을 깨물고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지금 아빠 엄마도 걱정을 여간 하시는게 아냐. 오빠가 뭐가 부족해서 장가를 안가려 하는지......." 정아는 혜원을 한번 쳐다보고는 말을 멈춘다. "혜원아, 솔직히... 혜원이 니가 정재오빠의 결혼에 걸림돌이 되는..게 사...실이..야. 난 혜원이 니가 정재오빠한테 단호한 입장을 보여줬으면 해....가령 지금 민우씨와 결혼을 안하더라도 민우선배와 결혼 할거라고 정재오빠한테 쇄기를 박으란 말이야. 지금 정재오빠가 혜원이 너만 포 기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결혼할수 있는 배필감이 많아. 정재오빠의 결혼 여부는 전적으로...혜원이 니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어..." 혜원은 고개를 들어 정아에게 엷은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녀는 정 아 앞에서 알수없는 미안함에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낀다. "응, 정아야.. 알았어. 정재오빠를 더 이상 마음아프게 .. 하지 않도록 노력할께." "그래 혜원아 이렇게 부탁한다. 참, 그리고 아버지 생신때 꼭 오도록 해라. 엄마 아빠도 혜원이 널 보고 싶어 하셔. 안본지 오래 됐다고 보 고싶으시대." "응, 알았어.. 꼭 갈께." 혜원은 정아한테 자신이 해 줄수 있는말이 이렇게도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포토출처 - 드라마 여름향기 / 편집-여름향기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