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7일
제목 고난의 세 가지 유익
본문 시편 119:65-72
고난 없이 살아온 인생이 몇이나 될까요? 바람 없는 바다가 없듯이 고난 없는 인생도 없습니다.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고난이 길목을 가로막습니다. 고난 앞에서 우리는 실망도 하고 주저앉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진리가 있습니다. 신자에게 주어진 고난은 유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고난이 유익이 될 수 있다는 것일까요? 지금 내가 겪는 고난이 어떻게 복이 될 수 있을까요?
죄를 그치게 함
고난이 유익한 것은 죄를 그치게 함 때문입니다. “고난 겪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겪기 전에는 죄를 범하였지만, 고난을 겪은 후 죄를 멈추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고난 겪은 후 죄를 멈추게 되었다면 고난이 축복입니다.
죄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원수를 맺는 일입니다. 죄를 범하며 사는 것은 잃어버린 삶입니다. 죄의 결과는 언제나 비참함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결국은 죽음과 파멸입니다.
누구나 죄를 지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멈추면 파국을 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한 번 죄에 길들면 멈추기가 어렵습니다. 죄악을 멈추지 않으니 불가피하게 고난이라는 도구를 꺼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기 백성들이 망하지 않기를 원하셔서 고난이라는 아픔을 주십니다. 고난을 겪게 하심으로 죄를 멈추기를 원하셨습니다.
시인은 고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에 고난을 슬픈 것으로 여기지 않고 유익한 일로 받아들였고, 고난을 물리쳐 달라는 기도 대신에 죄를 그치게 되었음을 찬양했습니다.
고난은 죄를 그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죄를 멈춘다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해지고, 하나하나님과 관계회복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죄를 멈추면 영혼이 맑아지고, 기도의 문도 넓게 열립니다. 죄를 그치면 마음에 강 같은 평화가 들어옵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축복의 문이 다시 열리게 됩니다.
지금 내게 어떤 고난이 주어져 있는가요? 나를 겸손하게 돌아보는 기회로 삼기를 바랍니다. 끊어야 할 죄는 없는가를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지른 죄, 알고도 지은 죄를 그쳐야 합니다. 고난으로 죄를 멈추게 되었다면 내게 유익한 것이며,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게 됨
시인은 고난을 겪기 전에는 말씀대로 사는 일에 전심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겪은 후부터 119:67절 하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69절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말씀을 지켰습니다. 억지로 지키거나 무서워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지켰습니다. 70절 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71절하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주의 말씀을 지키었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시인은 고난으로 인하여 말씀을 따라 살겠다고 거듭 다짐합니다. 고난으로 인하여 말씀 회복되었습니다. 심령의 부흥, 말씀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고난으로 큰 유익을 얻었고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게 합니다. 고난은 말씀에 순종하도록 이끄십니다. 그래서 고난당함이 유익이라는 말씀이 백번 옳은 말씀입니다.
말씀의 회복은 하나님과 관계도 회복이 되게 합니다. 말씀 듣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말씀을 따라 살려는 뜻을 가졌다면 하나님과 가까워졌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말씀과 가까워짐은 우리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니 고난을 주어서라도 우리를 말씀으로 더 가까이 이끄십니다.
바울 사도는 고후1:8-9에서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이 끊어졌고,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을 통하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라는 뜻을 받았습니다. 이같이 고난은 말씀의 회복과 신앙의 회복을 가져옵니다.
시인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쏙쏙 박혔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만끽했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말씀을 즐겁게 듣고 배웠으며 지키는 일이 무거움이 아니었습니다. 고난이 준 유익이고, 축복이었습니다. 우리도 믿음이 회복되면 설교가 은혜가 되고 기쁨이 됩니다. 설교가 귀에 쏙쏙 박힙니다. 욥은 고난을 통하여 귀로 들었던 말씀을 눈으로 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신앙부흥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말씀 듣고 배우는 일이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고난당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겁게 배우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면 고난이 유익이며 축복이 될 것입니다. 고난을 겪지 않고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따라서 살면 더욱 잘한 일입니다.
말씀의 가치를 배움
시인은 고난을 통해서 주의 말씀의 가치가 어떠함을 배웠습니다. 72절“주의 입에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금과 은입니다. 고난을 당한 후 하나님의 말씀이 금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배웠습니다. 고난이 없었더라면 하나님 말씀의 가치보다 금과 은을 더 소중한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고난으로 보배로운 말씀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으니 큰 복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 되었다고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말씀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말씀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진주를 돼지에게 던져 주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50년 전 신안 앞바다에서 어부들은 그물에 엽전이 나오면 짜증내며 버렸고, 청자가 나오면 개 밥그릇으로 사용했습니다. 보물의 가치를 몰라서 그런 거지요. 음악가 헨델은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에게 친필 악보 오라토리오 메시아 곡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며칠 후 애인이 일하는 이발소에 갔더니 그 악보를 가지고 머리는 마는 데 사용하는 것을 보고 명곡을 알아보지 못한 여인과는 사랑을 나눌 가치가 없다며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청자를 개 밥그릇으로 사용하는 사람과 같고 소중한 악보로 머리 마는 이발소 아가씨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고난이 없이 말씀의 가치를 깨우친다면 더 잘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게을러서 평안할 때는 말씀의 가치를 깨우치지 못합니다. 고난이 올 때야 비로소 말씀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가뭄이 들어야 물의 소중함을 알듯이 말입니다.
고난을 당한 후에라도 말씀의 가치를 깨우칠 수 있다면 그것도 복입니다. 고난이 오거든 하나님 말씀을 소중함을 깨우칠 기회로 삼으십시오. 고난은 말씀의 소중함을 배울 기회입니다. 고난을 통해서 말씀의 소중함을 안다면 금은을 얻는 것보다 더 큰 보물을 얻는 것입니다. 말씀 듣고 배울 수 있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우칠 수 있다는 큰 복을 받은 자입니다. 한 여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라고 할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의 가치를 금보다 더 귀한 것으로 삼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시인은 고난을 주심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68절) 라고 했습니다. 고난은 유익했다고 노래했습니다. 고난을 통해 죄를 그치고, 말씀에 순종할 마음을 갖게 되었고, 말씀의 소중한 가치를 깨우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고난의 목적은 우리를 유익게 하시려는 선한 뜻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니 고난을 통해서도 선을 베푸시고, 유익게 해주십니다. 내게 주어진 고난을 축복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듯이 고난의 보자기 속에 나를 유익하게 하는 복이 담겨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