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추리
알이 안긴 행복
2017.8.8.
좋아하는
음식을 여유 있게 먹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며칠 전 저녁때 아들이
어려서 서울에 살 때 엄마가 가끔 해 주시던 메추리
알 장조림을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와 함께 이민 초기에
좋아했던 장어구이도 생각난다는 말을 했다.
밴쿠버는 한국보다
메추리 알 가격이 꽤 비싸고 알이 작아 다루기도 힘든
데다 아이들이 특별히 찾지도 않기에 수년간 아내가
메추리 알 요리를 한 적은 없었다.
다른 식구들이 좋아하지
않는 장어구이도 아들이 오랫동안 해 달라고 하지
않아서 굳이 하지 않았다.
밴쿠버의
여름 날씨치고 요즘은 꽤 덥다.
연일 30도
안팎으로 수은주가 오르니 옆집 사는 데비도 너무
덥다고 한다. 우리
집은 단열이 잘 되는 편이라 겨울에는 난방비가 조금
들고 여름에도 문을 닫아 놓고 있으면 저녁 무렵까지
그런대로 지낼만하다.
선풍기도 좀처럼
켜지 않아도 살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부엌이다.
부엌이 집 가운데
있어서 요리하면서 나오는 열기가 쉽게 배출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몹시 더운 여름날에는 되도록 간단한 요리만 밖에서
전기 조리기구나 휴대용 가스버너를 써서 한다.
이것이 내가 요리하는
아내에게 특히 여름이면 미안한 이유이다.
어제
아내가 시장을 봐 온다고 나가더니 메추리 알과 홍두깨살,
그리고 장어를 사
왔다. 이
더운 날씨에 창문도 없는 부엌에서 요리하기는 무리인데도
아내는 메추리 알 장조림과 장어구이를 해서 저녁상에
올렸다. 아들은
더운 날씨에 왜 고생하시면서 이런 요리를 하셨느냐고
말하면서도 모처럼 쫄깃한 장조림과 구수한 장어구이라며
신이 나서 저녁을 먹었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나는 날은 외식하면 될 것을 아들이 맛있다는
요리를 해 주려고 그 고생을 하다니!
엄마의 사랑은 그런
것이리라, 밴쿠버
날씨가 왜 이리 덥냐고 하면서도 애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 먹이려고 몇 시간씩 기꺼이 고생하는.
아내는 식구들이
먹고 싶다거나 몸에 좋다고 하면 꼭 해서 먹여야 마음이
편해지나 보다.
내가
어려서 서울로 전학 와 지내다가 방학에 시골집에
내려가면 어머니께서는 손수 만두도 빚으시고 칼국수도
해 주셨다. 초등학생이던
내가 만두를 좋아해서 부엌을 들락거리며 장정보다도
더 많이 먹는 것을 아시고 만두를 해 주시는 것이었다.
10여 명의 과수원
일꾼들의 오전 오후 곁두리 두 번까지 포함해 하루
다섯 번 식사를 준비하시면서도 언제 시간을 내셔서
수백 개의 만두를 빚으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뿐이다. 물론
나도 국수 기계를 돌려 가면 만두피를 밀고 밥공기로
동그랗게 만두피를 자르며 돕기는 했지만.
더운 여름날 아궁이에
불을 때서 그 많은 만두를 하시려면 얼마나 덥고
힘드셨을까! 그때
나는 그저 맛있다고 배가 아플 정도로 많이 먹으면서
배부른 돼지처럼 행복하기만 했었다.
이제야 그것이 말로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안 하시던 어머니께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민
온 이후로는 한국에서처럼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아내는 여전히 한국의
전통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서 명절이면 녹두 빈대떡을
부친다. 나는
더는 먹지 못하고 아이들이 날로는 잘 안 먹는 김치도
아내는 집에서 깨끗이 담가야 한다면서 여전히 담근다.
아내는 낱개로 사면
비싸다고 배추와 무를 상자로 사서 온종일 김치 재료와
씨름한다. 아이들은
김치찌개나 김치전을 부쳐 주면 아주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때로 아이들이
김치만두를 찾으면 아내는 만두피를 사다 직접 담근
김치로 만두를 해 먹이기도 한다.
그 맛있는 김치만두를
이제는 내가 못 먹기에 나를 위해서는 고기만두를
별도로 해 준다. 이런
만두를 먹고 있으면 어머니께서 어린 내가 실컷 먹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으시던
때가 떠오른다. 또,
장모님은 처가에
들리면 자주 손수 농사지으신 검정콩으로 두부를
해주셨는데.... 아,
그래!
요리는 가족을 사랑하는
주부의 마음이고 정성이야.
오늘
누나가 부모님께서 사시는 시니어 홈에 조카딸을 데리고
가서 카톡으로 페이스톡을 했다.
덕분에 한국에 가서
뵌 지 4년이
넘어 처음으로 화상으로라도 어머님을 뵈었다.
그간 어머님께서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시게 노쇠하셨다.
나도 어머님이 너무
변하셔서 '아,
어쩜 저렇게 여위셨나!'
하고 속으로 놀랄
정도였다. 어머님은
나를 위해 그 덥고 추운 날을 가리지 않으시고 맛있는
음식을 해 주셨는데 나는 그런 어머니께 아무 도움도
못 드리고 타국에 살고 있으니 마음이 영 편치 않다.
그래도 “사랑은
내리사랑”이란 말을 떠올리며 어머님도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기뻐하시리란 생각에 죄송스런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린다.
*2017년
8월
26일
밴쿠버 조선일보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