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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공동체
빌 2:1-4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천국도 가고 오늘 여기서 복음도 누려야
어느 백화점에서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릿느릿하게 움직여서 고객들이 많은 불평을 했습니다. 그것은 고장이 나서 그런 게 아니라, 본래부터 그렇게 느리게 움직였습니다. 고객들의 요구가 빗발치자, 백화점 사장은 엘리베이터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습니다. 담당부서에서는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신속하고 쾌적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있는 계획이었습니다. 사장은 그 계획서를 받고는 이제 문제가 해결되겠다고 기대하며 그 계획서를 받아들었습니다. 그러나 계획서를 읽어본 사장은 큰 걱정에 빠졌습니다. 돈이 엄청나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소식을 이 백화점에서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가 듣고, 사장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내게 단돈 5만원만 주면 이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사장은 속는 셈치고 5만원을 줬어요. 그랬더니 이 청소부 아주머니가 가서, 커다란 거울을 사다가 엘리베이터 안에다가 걸어놨어요. 전에는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릴 때, 그 상자 속에 들어가서 무료하게 서 있노라니까 지루하게 느꼈는데, 거울이 있다 보니까 얼굴을 비춰보고, 넥타이를 고쳐 매고, 머리도 다시 만지고, 어떤 여자들은 루즈도 바르고, 또 어떤 사람은 생긋 웃어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니까 금방 자기가 목적한 층까지 도달했어요. 그리고 내리게 됐어요. 이제는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문제가 해결됐어요.
사장은 문제를 해결한 것이지만, 고객의 입장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즐겁게 목적한 곳으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즐겁게 가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 잘 믿어서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가는 것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즐겁게 복음을 누리면서 천국에 가야 합니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
이 세상에서 즐겁게 복음을 누리며 살아야 하는데 인간세상은 늘 외롭습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우리는 늘 같이 있지만 외로움으로 죽어간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롭게 산다는 거예요.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현실입니다. 사람들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외로움 속에 사는 것을 싫어하시고 그 외로움으로부터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을 만드신 후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서 보면, 그가 혼자 있는 것을 보고는 보기에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외로운 아담을 보고 하나님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는 배필을 창조합니다. 하와지요.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2:18)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외로움을 본 것입니다.
씨줄날줄의 온전한 사랑을 누리자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점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시고 그와 교제하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고독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는데도 아담은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데, 왜 해결되지 못하는 것도 있을까?’ 라고 질문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아담의 외로움을 달래주지 않고 그와 사랑을 나눌 대상을 만들어 줍니다. 그게 하와인 거죠.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영적으로 충만하고 만족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죄에서 사해 주시고, 우리의 영을 죄책감에서 해방시켜주시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찬양할 때,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양식으로 영이 만족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기를, 인간 사이에서 채워져야 할 공간을 만들어 두셨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교제하면서도 외로움을 느낀 것은 이런 인간 사이에서 인간을 통하여 채워져야 할 정서적인 공간이 마음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곳을 채우기 위해 우리 인간들은 서로 만나고 부대끼며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공간이 있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아담에게 하와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정서적인 공간을 채우면서 살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공동체를 주신 것입니다. 교회에서 서로 사랑하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 정서적인 만족을 누리며 사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의 3대 목표는 복음선포(케리그마), 봉사(디아코니아) 그리고 친교(코이노니아)입니다. 친교가 바로 교제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성도들은 서로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자기 것을 서로 나눴습니다. 사랑의 교제를 진정하게 실현했다는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성도 간에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은 한 편에서 우리가 교회에 와서 수직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사랑을 체험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 성도들을 만나 수평적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옷감을 짜는 원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옷감을 짜기 위해서는 수직적인 씨줄과 수평적인 날줄이 만나서 짜여집니다. 씨줄만 있어도 안 되고 날줄만 있어도 옷감을 짤 수가 없습니다. 수직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수평적인 인간 사이의 사랑이 씨줄 날줄이 되어 행복이란 옷감을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사랑의 농도만큼 아름다운 문양을 수놓으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만나서 사랑받고 성도들 간에서 사랑을 나눠서 아름다운 인생의 문양을 새기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공동체 교회로부터 익명의 신도로 도피는 잘못
그런데 교회공동체가 수평적으로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데, 서로 사랑을 하지 못하고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람관계’를 피할 수 있는 대형 교회로 가기도 합니다. “나는 수직적 사랑만 필요하지 수평적인 사랑은 필요없어” 하면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만 받고 수평적인 사랑을 나누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반영된 거예요. 차라리 외로움이 낫다고 신앙적인 은둔을 택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이 교회를 세운 목적과 배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공동체로 교회를 세웠는데, 성도들이 그 사랑으로부터 도피해서 사랑나누기를 거절한다면 교회의 목적이 잘못 실현되는 겁니다.
둘째로 성도가 사랑나누기를 거절한다면, 인격적인 성장을 거부하는 겁니다. 성도는 교회생활을 통하여 자기의 인격을 발전시켜서 점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발전하려면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인내, 친절, 희생, 용서 등을 배워야 합니다. 그 배움과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곳입니다. 교회에서 인간관계를 하지 않고 그것을 어디에서 배우고 키울 수가 있겠습니까?
영국의 소설가 다니엘 디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1719년에 “로빈슨 크루소”라는 소설을 발표해서 대단한 호평을 받고, 각국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렸습니다. 그 소설에서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는 평범한 뱃사람이었는데, 무역선을 타고 아프리카 기니아로 향하던 도중 서인도에서 배가 좌초됩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죽고 그는 홀로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그는 거처를 만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등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합니다. 무인도였기에 원시인처럼 살면서 외로움에 몸부림칩니다. ‘사랑을 나눌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인간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다가 그는 어느 날 해안가에서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그 발자국을 보고 좋아해야 했을 겁니다. 그가 그렇게 그리워하고 바랐던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는 막상 사람의 발자국을 봤을 때, 공포로 온 몸이 얼어붙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를 해칠까 두려워한 거죠. 로빈슨 크루소는 한 옆으로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또 한 옆으로는 사람을 만날까 두려워한 거예요.
이 로빈슨 크루소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외로움에 몸부림치면서도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랑을 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인생이 어디 인생입니까? 사람은 사랑한 만큼 행복한 거고, 사랑한 만큼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사랑함으로 인생의 행복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 속에서 그 사랑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그 비결을 알려주는 거예요. 소극적으로 자기를 폐쇄시키지 말고 적극적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사랑을 나눠서 복된 삶을 살라는 거예요.
이 비결을 알면 우리도 사랑을 할 수 있는데, 사실 인간은 근본적으로는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존재입니다. 왜냐? 인간은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행위를 하긴 하는데, 그 뒤에 이기심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기심있는 행위는 사랑이 아니라 이기심일 뿐입니다,
인간이 사랑을 할 줄 모르기에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만 사랑을 할 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을 보여주신 거예요. 자기를 희생하며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힌 것, 그 희생이 바로 사랑입니다. 이 희생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보여주신 거예요. 우리는 이 사랑을 공동체 속에서 나눠야 합니다. 이기심을 숨기고 사랑이란 겉모습으로 나와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비결-①자기의 부족함을 알라
그러면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냐?
첫째로 네 자신의 부족함을 알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라고 합니다. 이 본문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으라’는 말은 같은 뜻입니다. 반복을 통해 ‘한 마음이 되라’고 강조하는 겁니다.
내가 다른 사람과 한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부족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완벽하고 내가 항상 옳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과 한 마음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늘 내 의견만을 따라 주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곳에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는 서로 부족하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내 생각이 부족하고, 내 행동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존 오트버그라는 사람이 쓴 책 「우리는 만나면 힘이 납니다.」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상점에는 으레 엄청나게 싸게 파는 ‘하자 상품 코너’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써있습니다. “이 물건들은 하자가 있는 상품들입니다. 얼룩이 남아 있거나 지퍼를 올릴 수 없거나, 단추가 채워지지 않는 등 어딘가 하나씩 하자가 있는 상품입니다. 죄송하게도 어떤 하자가 있는지 일일이 알려줄 수가 없습니다. 찾아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하자가 있다고 해도 항의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싸게 파는 것이니까요. 아울러 이 물품들은 반품 불가, 환불 불가, 교환불가입니다. 이 물건을 구입하실 때는 이 점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또한 ‘우주’라고 하는 커다란 쇼핑몰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하자품 코너와 같다는 거예요. 우리가 인생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다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보세요. 우리는 또 얼마나 부족한 점이 많습니까? 우리도 하자 상품처럼 꼬리표를 붙여야 합니다. “저에게는 하자가 있습니다. 저는 잘 속입니다. 함부로 말합니다. 우유부단합니다. 내 입장에서만 봅니다. 걸핏하면 화를 잘 냅니다. 다른 사람의 허점을 전파하기 좋아합니다. 언제 그런 하자가 드러나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튼 그런 하자가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하자가 발생하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성경은 우리가 하자 상품임을 명시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다.’ 모든 사람이 하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다’고 말합니다. 양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목자가 이끌어주지 않으면 자기 앞길을 모르는 존재예요. 하자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하자 없는 사람처럼 자기 것만 옳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 보시면 얼마나 한심할까요? 부족하게 인식하는데, 억지를 부릴 일이 없습니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내 잘못도 중요하게 작용한 거예요. 이렇게 우리 자신의 부족성을 알고 겸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높이며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자신의 부족성을 알고 겸손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서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비결-②다툼지 말라
둘째로 우리는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툼은 왜 발생합니까? 다툼은 ‘자기를 내세우고자 하는 욕심’이나 자기 이익을 확보하려는 ‘이기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욕심이나 이익을 취하려는 마음을 버릴 때 다툼이 없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툼을 버리라고 합니다.
사랑은 주는 거예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줬습니다. 자기의 목숨도 주었어요. 초대교회는 그 예수님을 닮아 서로 자기를 주었어요. 자기의 재산도 주었어요.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이 태어났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었어요. 독생자 외아들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셨어요. 우리는 그 받은 은혜에 감격하며 다른 사람에게는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서 사랑이 꽃피웁니다.
사랑의 비결-③인내하라
셋째로 성도 간에 사랑하는 비결은 ‘참아야 한다’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했는데, 교회에서는 화낼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합니다. 참고 나면 나중에 상대방이 한 일이 다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 바로 화를 내면 나중에 후회하게 돼 있어요. 어떤 분은 ‘나는 원래 뒤끝은 없어’ 라고 하면서 참지 못하고 할 얘기 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얼마나 큰 상처를 받고 시험을 당하겠습니까? 참다 보면 그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것은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상담가인 딘 마틴이란 사람이 「좋은 결혼은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아내들을 대상으로 “당신은 좋은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하여 통계를 그 책에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먼저 결혼 후 1년 된 아내들은 “좋은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는 설문에 98%가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2년 지난 아내들은 그 수치가 뚝 떨어져서 56%만 예라고 대답하고, 결혼 10년차들의 경우 겨우 6%만이 예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제일 위험한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지 20년이 지난 뒤에는 95%가 “나는 좋은 남자를 만났습니다”라고 응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통계를 보면서 저는 ‘사람들은 결국 인내로 승리하는 것이구나!’ 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교회에서 보면, 서로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오해하고, 그것을 참지 못하고 감정으로 표현하고, 그래서 상처받게 됩니다. 나에게 어떤 오해가 있고 나를 얼마나 모함을 하든 ‘하나님은 아시지’하고 참으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다 밝혀집니다. 잠시 오해받는 일에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것이 사랑의 비결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의 부족을 인식하고 겸손하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시고, 받으려고 하지 않고 내가 줄 것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시고, 어떤 오해도 참으셔서 진정한 사랑을 누리는 우리 교회공동체를 이루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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