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월 5일 금요일
[(백)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명
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자녀는 그분을 뵙게 되리라는 희망으로 자신을 순결하게 하려고 애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복음).
제1독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29―3,6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29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3,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4 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9-34
그때에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주님 공현 대축일을 앞뒤로 하는 성탄 시기에 우리는 독서 말씀으로 요한의 첫째 서간을 계속해서 듣습니다. 요한 서간은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의 외아드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을 확고하게 가르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주님의 오심을 부인하고 거절하는 완고한 세상에 휩쓸려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으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1,33)으로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1,31)라고 거듭해서 증언합니다. ‘전에는 그분을 알지 못하였다.’는 말이 제게는 무엇보다 강렬한 증언으로 다가옵니다. ‘전에는 알지 못하였다.’는 이 말이 ‘지금은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뜻을 품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신학교 입학을 위한 교리 시험을 치르는데 이런 문제가 나왔습니다.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한참을 고민한 뒤 ‘진리의 길로 나를 부르시는 완고한 스승’이라는 요지로 답안을 적었습니다. 다행히 신학교에 합격하였지만 저는 분명히 압니다. 그때 저는 그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때인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턱없이 부족함을 고백하며 도와줄 이 예수님밖에 없노라 매달렸더니 그 비참에서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더 이상 스승이 아닌 주님이셨습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하고 또렷하게 말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김동희 모세 신부)
완전히 죽는 순간, 새 하늘 새 땅이 열리고, 참삶의 길이 시작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너무나 두렵고 경외로운 이름, 절대 신성시되는 이름, 그래서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는 이름이 하느님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례자 요한은 자신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공개적으로 외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변방 나자렛 출신, 목수 요셉의 아들을 향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외쳤으니, 유다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분노와 혼돈이 일어났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은 한마디로 목숨을 건 증언이자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세례자 요한의 이 간략한 증언 한 마디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과 운명에 대해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놀랍지 않습니까? 광대무변한 삼라만상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느님, 그분으로부터 이 세상 구원이라는 엄청난 사명을 부여받은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세례자 요한은 그분을 향한 표지이자 상징으로 ‘어린양’이란 호칭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복음 사가들의 상징조차 사자, 독수리, 황소등으로 표상되는데,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기 위해 붙인 칭호가, 공룡이나 호랑이가 아니라, 고작 어린양이라니요!
양은 수많은 동물들 가운데 대표적인 초식동물입니다. 힘없고 빽없는, 그래서 틈만 나면 맹수들에게 쉽사리 잡혀 먹히는 약한 동물의 대명사입니다. 그런 양들 가운데서도 갓 태어난 어린 양에다 예수님을 갖다 붙이니, 참으로 특별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비하신 하느님, 사랑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생각하니, 어린양보다 더 잘 들어맞는 호칭은 다시 또 없는듯 합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활 여정을 쭉 따라 가보니, 단 한 마디로 표현해서, 더도 덜도 말고, 딱! 어린양의 삶을 철저히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생에 걸쳐 철저하게도 고수하셨던 기본 노선은 비폭력 평화주의였습니다.
한 마리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모두를 향해 외치고 계십니다.
올라서지 말고 내려서라고! 움켜쥐지 말고 손을 펴라고! 이기려고 기를 쓰지 말고 한번 져보라고! 살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한번 죽어 보라고!...완전히 죽는 순간, 새 하늘 새 땅이 열리고, 참삶의 길이 시작될 것이라고.
불의 세례 받는 법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물의 세례와 불의 세례에 관해 말을 합니다.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물의 세례를 거치지 않고서는 불의 세례로 건너갈 수 없습니다. 요한이 불의 세례를 받은 이유는 바로 물의 세례를 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안중근 의사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하얼빈’입니다. 주인공 현빈은 처음에 안중근 역을 맡을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칫 현빈이 일본에서 인기가 높아서 그 인기를 잃게 될까 봐 거부하려 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빈은 그런 이유 때문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안중근 의사의 무게감을 자기가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워낙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처럼 근대에 가장 위대한 인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혹시나 자신의 부족한 연기가 그분의 위대함을 저해할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안중근을 표현하기 위해 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영하의 추위에서 관객을 속이지 않는 현실감을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고생해서인지, 현빈은 마지막 장면을 다 찍고 나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드디어 그 무거운 압박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안중근의 무게가 컸으면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우리가 현빈처럼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 수 있을까요? 현빈은 그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연구하고 실제로 추위와 전투 장면 속에서 그를 체험해냈습니다. 그만큼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고뇌와 인생을 올바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 그가 흘린 눈물이 ‘불의 세례’와 비견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영웅’이나 ‘하얼빈’과 같은 안중근 의사의 삶에 대해 알기 위해 뮤지컬이나 영화를 본다면 이는 물의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세례는 새로 태어남인데 그분으로부터 직접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분을 알리려는 누군가에 의해 알게 되는 지식입니다. 이것으로 그분을 온전히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요한도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물의 세례를 주기 위해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리려고 할 때 불의 세례를 받게 됩니다. 요한은 이어서 말합니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제가 신학교에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하실 때 그건 불의 세례였습니다. 눈물이 났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제가 되어 그분의 증거가 되겠다는 물의 세례를 주는 존재가 되겠다는 결심 다음에 온 것입니다. 불의 세례를 받아야 그분으로부터 직접 새로 태어납니다. 이것까지 가기 위해서는 세례자 요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에서 유관순 역을 맡았던 고아성 배우도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유관순 열사는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의 고문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음식을 먹이지 않는 것은 고문도 아니었을 정도입니다. 유관순 열사는 죽을 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으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 없다.”
고아성 배우는 유관순 열사의 강렬한 눈빛을 갖기 위해 실제로 닷새 동안 음식을 먹지 않으며 유관순을 자신처럼 느껴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3·1운동 1주년을 맞아 감옥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선창하는 장면에서는 자기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 무선 마이크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 달아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이 심장으로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 불의 세례인 것입니다. 물의 세례를 주려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새로 태어남의 축복입니다. 이 장면을 8호실 안에 있던 25명과 아이컨택을 하면서 낭독했고 컷이 되자마자 다들 약속한 듯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뜻깊은 기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주연 짐 카비젤은 이 영화를 찍다가 그리스도를 만나 그 이후에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짐 카비젤은 십자가에 매달리는 장면을 찍기 직전 의사로부터 심장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멜 깁슨 감독은 계속 찍을 것이냐고 짐에게 물어봅니다. 짐은 대답합니다.
“이것은 저와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십자가에 매달렸던 그는 자신에게서 탈혼이 되어 십자가에 매달린 자기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곧 그리스도를 본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려고 할 때, 곧 물의 세례를 주려고 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해 주십니다. 이에 관하여 짐 카비젤은 말합니다.
“놀라운 것은, 모두들 부활은 원하지만, 고통은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유발 하라리의 신작 ‘넥서스’를 읽고 있습니다. 그는 서문에서 ‘파에톤의 신화와 마법사의 빗자루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파에톤은 자신의 욕망으로 태양을 끄는 마차를 움직이겠다고 합니다. 태양을 끄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고, 성실해야 합니다. 파에톤은 성실하지 않았습니다.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태양이 지나치게 지구에 가까우면 화재가 발생했고, 지나치게 지구와 멀어지면 지독한 추위가 생겼습니다. 결국 제우스는 파에톤을 끌어 내렸습니다. 그리고 태양을 끄는 마차는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괴테는 마법사의 빗자루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빗자루 마법을 하는 스승이 제자에게 항아리에 물을 담아 놓으라고 명령하고, 여행을 떠납니다. 제자는 꾀를 내서 빗자루에 마법을 걸었습니다. 빗자루는 강에서 물을 길어서 항아리에 옮겨 담았습니다. 마법을 걸 수는 있지만 푸는 방법을 몰랐던 제자는 겁이 났습니다. 빗자루가 계속 물을 길어오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이 빗자루를 둘로 잘랐습니다. 그런데 둘로 잘려진 빗자루는 더 많은 물을 길러왔습니다. 동네가 물바다가 될 즈음에 스승이 돌아왔습니다. 스승은 마법을 풀어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파에톤은 자기의 능력을 과신하며 태양 마차를 몰았지만, 그 결과는 세계적 파괴였습니다. 이는 리더가 자기의 능력과 권한의 한계를 인지하지 못할 때 어떤 위험이 초래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지도자가 권력의 도구(마차)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음을 드러냅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위기를 명분으로 과도한 권력을 행사할 때, 이는 국민과 사회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아직도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에는 매우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겁니다. 마법사의 빗자루는 힘을 제어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혼란과 재앙을 상징합니다. 비상계엄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으로, 남용될 때, 경우 헌정 질서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이미 45년 전에 경험했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 삼청 교육대는 인간의 권리와 인간의 품위를 짓밟은 사건이었고, 그 이면에는 비상계엄이 있었습니다. 제우스가 파에톤의 직무를 정지하였듯이, 대한민국의 국회는 탄핵을 통해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켰습니다.
파에톤은 자신의 자격과 책임에 대한 숙고 없이 태양 마차를 몰겠다는 자만으로 인해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이는 권력을 책임 없이 사용하는 태도의 위험성을 상징합니다. 반대로 세례자 요한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철저히 인식하고 겸손히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역할을 제한했습니다. 마법사의 빗자루는 통제되지 않은 욕망과 무분별한 힘 사용의 상징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인정하며,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더욱 작아져야 한다."라는 고백으로 힘과 영향력을 욕망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비상계엄은 지도자의 권력 사용에 있어 신중함과 책임을 요구하는 문제입니다. 만약 이를 무분별하게 실행한다면, 이는 파에톤처럼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권위를 오직 하느님의 뜻에 두었고, 자신의 역할을 넘어서지 않았습니다. 이는 지도자가 자신에게 맡겨진 권한을 책임감 있게 사용해야 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지나친 욕망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가진 걸 기쁜 마음으로 나누었습니다. 우리 몸의 지체가 한 몸을 이루어 성장하듯이, 초대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여유가 있는 공동체는 어려운 공동체를 기쁜 마음으로 도왔습니다. 굶주린 형제에게는 먹을 걸 나누어 주었습니다. 옷이 없는 형제에게는 입을 옷을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사회복지는 초대교회에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공동체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된다면 분열과 갈등은 사라질 겁니다. 지금 교회에 당면한 문제가 있다면, 지금 교회가 익숙함에 젖어있다면, 지금 교회가 성장을 멈추고 늙어가고 있다면 초대교회가 성장했던 이유를 다시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교회가 가고 있는 방향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인지 알고 싶다면 역시 초대교회의 삶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과연 나는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 고르디오 (Gordius)
신분 : 백부장 순교자
활동지역 : 카파도키아(Cappadocia)
활동연도 : +304년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 주둔한 로마군의 백인대장인 성 고르디우스(또는 고르디오)는 그의 종교 때문에 군대에서 쫓겨났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처음 발발했을 때 그는 사막으로 피신했었다.
그러나 순교에 대한 열망 때문에 그는 공중 경기가 열리는 동안 카이사레아에 들어가서 그의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로인해 그는 체포되어 행정관의 심문을 받고 참수형을 선고받아 순교하였다.
그는 고르디누스(Gordinus)로도 불린다.
성 안테로 (Antherus)
활동년도 : +236년
신분 : 교황,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안떼로, 안떼루스, 안테루스
로물루스의 아들이나 그리스인으로 알려진 성 안테루스(또는 안테로)는 235년 11월 21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불과 43일 동안을 재임하다가 다음 해 1월 3일에 운명하였는데 순교하였다고 믿는다. 비록 극히 짧은 재임 기간이었으나, 그는 순교록을 만들고 주교들의 문서고에 비치하여 후대에 남기라는 명령으로 많은 순교자들의 전기를 수집한 공로가 높이 평가된다
성녀 제노베파(Genevieve)
신분 : 수녀
활동지역 : 파리(Paris)
활동연도 : 419/422?-512년
같은이름 : 게노베바, 게노베파, 제노베바, 제느비에브, 주느비에브, 즈느비에브
성녀 제노베파(Genovefa)는 419년 혹은 422년 파리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 낭테르(Nanterre)에서 태어났다. 성녀의 부모는 가난한 농부였다고 하지만, 부유하고 존경받는 도시 사람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녀의 전기에 따르면 429년에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7월 31일)를 만났다. 이때 성 게르마누스는 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성 루푸스(Lupus, 7월 29일)와 함께 영국으로 파견되어 가는 도중이었다. 성 게르마누스는 설교 도중 어린 여자 아이가 경건하고 진지한 자세로 듣는 모습을 보고, 설교가 끝난 뒤 여자 아이를 불러 여러 가지를 물은 뒤 성덕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라고 격려하였다.
그러나 낭테르 근처에는 수녀원이 없었기에 성녀 제노베파는 집에 머물면서 기도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성녀 제노베파가 언제 수도자가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성 게르마누스가 사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게 수도복을 입혀 주었다고도 하고, 16세 무렵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두 명의 동료와 함께 파리의 주교 빌리쿠스(Vilicus)에게서 수도복을 받았다고도 한다.
어쨌든 그녀는 부모가 돌아가자 곧 파리로 가서 대모와 함께 머물며 자선과 금욕의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시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성녀 제노베파가 신성을 모독하는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또한 성녀 제노베파가 환시를 자주 체험하자, 그녀의 환시와 예언을 기만과 사기로 취급했다. 그러나 성 게르마누스의 중재와 지원으로 반대자들의 음모는 모두 무위로 돌아갔고, 파리의 주교는 그녀에게 파리에 살며 수도생활을 원하는 처녀들을 돌보는 임무를 맡겼다.
451년 훈족의 왕인 아틸라(Atila)가 쳐들어와 파리를 위협하자, 주민들은 모두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이때 성녀 제노베파는 하느님을 믿고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면서 회개와 보속을 하면 파리는 안전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었고, 아틸라의 군대는 오를레앙(Orleans)에서 패배하였다.
몇 해 뒤 프랑크족의 왕인 메로비히(Merowig)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성녀 제노베파의 자선과 희생은 더욱 빛났다. 그녀는 굶어 죽어가는 시민들에게 음식을 날라 주고, 점령자를 설득하여 포로 석방을 교섭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영향을 받은 메로비히와 후계자인 아들 힐데리히 1세는 파리 시민들을 특별히 관대하게 대했다. 특히 힐데리히 1세는 파리의 초대주교이자 순교자인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0월 9일)의 무덤 위에 성당을 짓게 하였다. 또 메로비히의 손자인 클로비스 1세를 설득하여 파리에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를 기념하는 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성당이 완공되자 그녀의 유해는 성당에 안치되었고, 이 성당은 이후 그녀의 프랑스어 이름대로 주느비에브(Genevieve) 성당이라고 불렸다. 성녀에 대한 신심은 많은 기적을 낳았다. 834년 홍수가 일어나 파리가 완전히 침수되는 위기에 놓였을 때 성녀에게 전구하여 이 위험에서 벗어났다. 1129년에 열병으로 만 사천 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성녀를 기리는 행렬 도중 병마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녀는 파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성 테오펨프토 (Theopemptus)
신분 :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니코메디아(Nicomedia)
활동연도 : +284년
니코메디아(Nicomedia)의 주교 성 테오펨프투스(또는 테오펨프토)는 일련의 기적적인 탈출 후에 순교하였고, 마법사였던 성 테오나(Theonas)는 성 테오펨프투스의 모범에 의해 개종한 후 순교하였다.
그들의 행적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인물로 여겨진다.
성 테오나는 시네시우스(Synesius)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