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을 보겠습니다.
1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낳아 주신 분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 그에게서 태어난 이도 사랑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자녀랍니다. 4장에서, 저자가 말하는 형제자매 사랑은, 일차적으로는 자기들의 공동체 즉 요한공동체 안에 있는 신도들이 서로 단결하고 돌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요한공동체가 추구하는 사랑이, 긍극적으로는 자신들의 공동체를 넘어 모든 그리스도 공동체까지 포함하는 것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 가운데서 12절을 보겠습니다.
12 그 아들을 모신 사람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지 않은 사람은 생명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기독교의 배타성을 싫어하는 사람들 중에 바울은 싫어하면서도 요한은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독교 영성가라고 할 수 있는 다석 유영모 선생은 요한복음을 영성의 눈으로 읽은 분입니다. 그는 요한이 말하는 ‘아들을 모신 사람’을, 진리를 추구하여 하늘의 뜻을 구하는 모든 사람을 뜻하는 말로 읽었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요한복음을 읽으면 요한복음서는 동양의 고전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열린 책이 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는 요한복음 14장 6절의 말씀도, 예수님만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는 배타적인 교리의 말씀으로 읽지 않고, 누구나 자신 안에 있는 ‘얼나’, 그러니까 영적인 자아에 눈을 뜨면 자신 안에 있는 길과 진리와 생명을 발견하고 하나님과 합일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읽은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의 기록 의도가 그런 것일까요?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지요. 다석 선생의 해석은 요한공동체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고 오히려 영지주의자들의 해석과 통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신학자들이 영지주의를 재평가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선과 악을 나누고 정신과 물질을 나누는 이분법적 철학이 갖는 문제도 작지는 않지만, 물질적 욕망을 극복하고 보다 높은 차원의 정신적 또는 영적 행복을 추구하는 영지주의 철학과 신앙은 동양적 명상철학과도 통하는 것으로 그렇게 간단히 무시해도 좋은 사상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공동체의 글에도 영지주의적인 시각이 상당 부분 들어가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예수의 선재성과 신성, 그러니까 예수님을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분으로 본다든가 하나님과 같은 분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영지주의적인 관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요한일서로 돌아와서, 16절을 보겠습니다.
16 누구든지, 자기의 형제나 자매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가 아니면,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죽을 죄를 짓지 않은 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죽을 죄가 있습니다. 이 죄를 두고 간구하라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죄를 지은 형제나 자매가 있으면 기도해주랍니다. 당연하고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죽을 죄도 있답니다.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은 아니랍니다. 본문이 말하는 죽을 죄는 무엇이며, 그 죄를 지은 사람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전후문맥으로 보건데, 예수가 육체로 오셨음을 부인하는 것이 죽을 죄고,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셨음을 부인하는 영지주의 기독교의 해석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영지주의적인 해석이 자칫 기독교의 역사성, 운동성, 현실개혁성이라는 빼어난 가치를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것이 그들의 정직한 신앙이라면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한공동체 사람들은 사랑을 말하면서도 자기들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은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핍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다른 견해를 용납하지 않는 태도는 사실 사도 바울의 글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잘못하면 기독교 신앙이 무너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내 해석만 옳고 다른 해석은 모두 틀리다는 생각은 세상에 갈등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는 생각은 오늘날에도 종교와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깊이 숙고해야 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