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여행 상품을 보던 남편 왈 "방콕 파타야 3박 5일 어때?"
"콜~~ 좋아요. 갑시다"
몇 년 전(내가 퇴사한 첫 해)부터 일 년에 한 두 차례 둘만의 힐링 여행을 떠난다.
더 이상 같이 따라올 아이들도 없고 홀가분하게 아무 때나 시간과 마음만 맞으면 된다.
자유여행은 신경 쓰고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 엄두나 나지 않는다.
반면 패키지여행은 저렴하고 편하고
시간, 장소. 여행 상품만 결정하면 되니 따로 신경 쓸 것이 없어 좋다.
둘이 백만 원 정도면 3박 4일 정도 구경도 하고 삼시 세끼 남이 해주는 밥 먹으며 편히 쉴 수 있다.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돈이지만 일 년 고생한 스스로를 위한 위로이자 보상이라 생각한다.
3박 5일의 태국 여행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동남아 국가에 대한 편견(?)을 깨는 시간이었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실감했다.
여행의 스타트는 좋았다. 남편 덕분(?)으로 면세점 안에 있는 50불짜리 뷔페도 공짜로 먹고.
생각지 못한 횡재다.
해당하는 카드를 사용하면 일 년에 2회 무료 식사권을 주는 우대 혜택인데 같은 카드를 쓰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런 쪽으로는 남편을 이길 수 없다.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밤 비행기로 고고 싱.
야~~ 태국 방콕이다.
거의 6시간 비행 후 새벽에 공항에 도착해 인근 호텔에서 잠을 자는데..
방음이 안되어서 옆 방의 소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린아이들이 있는지? 난리법석이다.
밤인데도 왔다 갔다 문을 두드리고 뛰고.. 불안한 징조다.
뒤척이다 겨우 잠을 잤더니 피곤하다.
파타야로 이동해서 관광을 하고 먹고 즐기는 시간은 좋았다.
사는 모습도 색다르고 사람들의 표정, 거리의 모습도 세심히 보게 된다.
거리 곳곳에 국왕과 가족의 사진이 걸려있다.
21세기에 아직도 국왕을 섬기는 나라라니? 이 나라는 공산주의 국가인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왕이 있고 공주가 있다니.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보니 태국이란 나라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도로가 막혀도 빵빵거리며 안달하는 법 없이 기다려주고.. 느긋하고 잘 웃고 흥이 많은 국민이다.
우리 같으면 빨리빨리를 수십 번도 더 외쳤을 법한데 그들에게는 바쁜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인지 태국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없다고 한다.
더운 나라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했던 것은 편견이 아닐까?
태국은
하이쏘(하이 쏘사이어티 : 상류층 전체 10% 정도)와 로우쏘(로우 쏘사이어티: 서민들)로
나뉜 계층사회라고 한다.
고층 건물도 많았지만 그 사이에 열악한 건물과 로우쏘들의 모습도 보였다.
타이 전통마사지도 저렴한 비용으로 받으며 모처럼의 릴랙스 한 여유도 즐겼다.
2시간 마사지를 받고 100밧을 팁으로 주니 고마워하던 그 표정에서 순박함이 느껴진다.
불교국가로 유명한 사원도 많고 불상도 많다.
콜로세움쇼
콜로세움쇼(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젠더 쇼로 세계 3대 쇼라고 한다)를 구경했다.
약간의 선입견이 있었는데. 막상 쇼를 보니 화려하고 볼 만하다. 태국은 4가지 성을 인정하는 나라라고 하니 그 사실도 놀랍다.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들.
그들의 삶이 불행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라고 했다.
가이드의 설명과 그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이 그들이 불행할 것이라고 단정 지었던 것 같다.
파타야 최고의 밤거리 야경을 앞에 두고 루프탑 바에서 즐기는 현지식은 먹을만했다.
향신료가 좀 세긴 했지만..
열대과일의 천국이다. 망고, 야자, 수박. 파인애플이 지천이고 망고 비빔밥도 괜찮다.
야채 위에 망고를 얹어 고추장을 넣어 비벼먹는데.. 맛있다. 망고향이 입안 가득 느껴진다.
파타야의 핫플레이스, 최고 맛집 시푸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분위기도 근사했다.
수상가옥도 볼거리고 악어 쇼도 신기했고 코끼리도 직접 타 보고 코끼리 털(?)로 만든 반지도
100밧 주고 샀다.
코끼리는 좋은 기운을 주는 동물이라고 하니 그 기운을 한껏 받고 싶어서.
요트에서 낚시도 즐기고 바다수영도 하고. 원숭이 섬 구경도 했다.
여행은 역시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만족되어야 행복하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밤. 선셋 요트크루즈다.
방콕의 아름 다운 선셋을 보며 요트에서 보내는 파티는 꽤 좋고 인상 깊었다.
태국 여행 목록으로 추천하고 싶다.
무제한의 맥주와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동. 서양인 가리지 않고 분위기에 취해 몸을 흔든다.
워낙 몸치라 춤은 못 추고 박수와 고함으로 환호를 보냈다.
맥주 한 병을 마신 남편도 제법 몸을 흔든다.
남편에게서 숨은 흥(끼)를 발견할 때가 있다. 이 남자에게 이런 모습이... 내성적인 사람인데.
흥을 돋우는 요트의 여자 직원(나이도 어려 보이는 친구들이라 더 그랬던 듯)에게 팁도 주고..
이런 세상도 있구나.. TV에서나 보던 딴 나라 세상 이야기가 현실이구나.
막상 해보니 재밌다. 제일 즐거운 경험이었다. 안 했으면 몰랐을 뻔.
요트크루즈에서 본 방콕의 야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남편과 사소한 말다툼과 신경전이 있었다. 사랑싸움할 나이는 한참 지났는데..
별것 아닌 걸로.. 돈을 쓰는 문제다. 수고했으니 얼마라도 팁을 줘라. 안 줘도 된다.
아직도 돈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지갑에 돈이 없으면 불안해서 외출을 못하는 나. (지갑을 채워야 안심이 된다. 강박증인가?)
지갑에 돈 한 푼 없어도 상관없고 돈은 아끼는 게 우선이라는 남편.
여행 가서는 좀 여유 있게 기분 좋게 쓰고 오자. 남은 돈은 현지 가이드나 기사에게 주고 오자는 것이 나.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환전하고 불필요한 돈은 쓰지 말자는 남편.
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르다.
30년 가까이 살아도 잘 변하지 않고 맞지 않는 것이 돈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춰가면서 사는 것이 부부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리다고 생각하면 답이 없고 평행선만 달릴 뿐이다.
작은 실랑이 끝에는 꼭 "다시는 같이 여행 오지 말자"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여행 보따리를 싸고 있다. 이번엔 어디로 갈까?
'마님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좋은 사랑과 추억을 만들었네요.. 사랑해'
여행 중 마음상하게 한 미안함이 있었는지.. 남편의 카톡이 왔다.
이래서 이 남자를 미워할 수가 없다. 서운하고 속상했던 기억이 금세 잊힌다.
언제 토닥거렸냐는 듯이...
부부란 이런 것인가? 부부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