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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번역 : 후원회원, 안중현 고3.>
2014년 8월 9일,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K-pop 공연 관람 후 까페지기의 집 방문
까페지기의 집에서...
우리 후원회는 '아나바다'의 의미를 되살려 알뜰장터를 열었습니다. ↓
<2014년 8월 6일 현재 모습> Arely ↑
실천의 중요성
인생의 가장 먼 여행은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냉철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이그만큼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입니다.
현장이며 숲입니다.
<2009년 1월. 한국문화 알리기 행사>
매년 마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하는 산타잔치
힘내세요 당신은 귀한 존재입니다
당신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주는 사람입니다.
힘들어 하지 마세요
좌절 하지 마세요 두려워 하지 마세요.
당신 때문에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 때문에 살맛 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 있어 위안이 되고 감사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은 귀한 존재입니다.
나 또한 당신과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러나 당신 때문에 때로는 웃음 찾고
행복해 하고 당신이 주는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당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을 나 역시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신도 누구 때문에 위안을 받기도 하고 감사해 하겠지만
당신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아나 끌라우디아 호야 (중1)
Blanca Idalia Joya Quiroz Ana Claudia Joyas Jiménez. 30/ 12 /1997/ 17세. 7°
주님께 감사하기를 나에게 좋은 생각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전에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은 겁에 질려있었죠.
엄마가 조개를 캔 돈으로 항상 팥을 샀어요. 주로 엄마와 같이 조개를 캐러 갔어요.
하지만 이 일은 모기에 물리고 담배 냄새가 나서 주로 저희 엄마는 저를 배에 있게 했어요.
예전에 저의 첫 번째 집은 종려나무로 되어 있었어요.
전기가 안 들어왔고 여러 가지 이유로 저희 엄마께서는 저를 학교에 보내기 싫어하셨어요.
왜냐하면, 제 손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에요. 왼쪽 손은 물건을 집을 수 없고 들 수 없어요.
당신들이 조금 도와준 덕분으로 진보해 나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내 삶이 많이 바뀌었어요.
왜냐하면, 당신들이 보내준 후원금으로 엄마의 삶이 바뀌고 전기세를 낼 수 있게 되었어요.
조개를 캐서 얻은 돈은 3달러에서 5달러가량 벌었어요.
제 수술비가 없어서 저의 엄마는 매우 슬펐어요. 하지만 이제는 행복하세요.
수술비가 생겼기 때문이에요. 감사합니다. 한국 친구 분들 매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꿈을 현실로 이루게 해주신 한국 친구 분들께 매우 감사합니다.
제 입맞춤을 한국 친구 분들께 보냅니다.
Ana Claudia Joya
Tengo 17 años
Estoy estudiando 7° grado
Doy gracias a Dios por darme la oportunidad de ponerme en la mente de personas lindas y muy buenas.
Porque la vida que tenía mi familia y yo antes era perecedera a penas y al cazaba el dinero que ganaba mi mama curiliando para los frijolitos.
Muchas veces me llevo con ella a curriliar pero nosaben lo feo ques ese trabajo andar en el lodo exponiéndose auna picada de animal
y al humo del cigarro otras veces solo me dejaba en el bote porque no aguantaba las picadas de los insectos me acuerdo que la primer casa era de palma
no teníamos luz no contábamos con muchas cosa mi mama no me quería poner a la escuela porque tengo un problema en la mano
Izquierda no puedo presionar las cosas o sostenerlas
Con lo poco que ustedes le dan a seguido a delante y nuestra forma de vida ha mejorado mucho,
porque con el dinero que ustedes le dan a mi mama lo invierte en víveres y pagar la luz.
Porque con lo que gana curiliando no le ajusta si gana solamente a veces gana tres o cinco dólares cuando los haya
Mi mama está muy triste porque hoy que me iban a opera no tenía dinero para la operación
pero ya está muy contenta porque ya tiene el dinero para que me operen
Gracias muchas gracias amigos coreanos por hacer mi sueño realidad les mando nuchos besos a todos mis amigos y amigas coreanos
2008년 9월,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 ↑ 2014년 5월 18일 고등학생이 된 모습 ↑
<2012년, 중남미 여행하다 엘살바도르를 들린 전성희 후원회원과 코이카 권슬기 회원>
(2014년 8월 6일, 까르멘이 행사장에 성적표를 들고 와 자랑을 합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좋은 성적 내느라 고생했답니다.)
까르멘 엘레나 구이띠에레스 에레나 (고1)
Rosa Isabel Herrera Flores Carmen Elena Gutiérrez.
18/ 11/1996/ 17세. 1° año de bachillerato
6년 전에 우리는 매일매일 필요한 것들을 못 샀어요. 저희 어머니께서는 모라와 치삘링 스프를 만드시고 쌀로 된 팥을 만드셨으며 먹기 위해서 조개를 캤어요.
또는 소금을 뿌린 또르띠아를 줬어요. 왜냐하면 어떤 날들은 무엇을 먹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에요.
시간이 지나고 저희 아버지는 다른 여자랑 살게 됐어요. 그리고 저희 어머니를 포기했어요.
저희 어머니는 언제나 조개를 캤고 번 돈으로 저희들의 음식을 준비했어요.
제가 조개를 캐러 가는 것을 원하셨고 공부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어요.
하지만 저의 역사는 바뀌었어요. 한국인들이 제가 사는 섬에 왔을 때부터 저희 가족의 역사는 바뀌었어요.
그리고 한국인들이 조개를 캐는 아이들을 찾으러 다녔어요.
그것으로 인해 저희의 삶이 바뀌었어요. 그 후 한국인들이 제 동생을 도와 줄 때부터 어머니는 함께 조개 캐러 데려가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학교에 빠짐없이 갔어요. 마지막에 학교에 돈을 납부하지 못하고 학년을 두 번이나 꿇게 되어 많은 상처를 받게 되었어요.
한국인들을 알게 되고 저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게 해줘서 주님께 감사드려요.
지금 제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실 거예요. 왜냐하면, 사랑이 담긴 돈으로 생필품 같은 것들을 샀어요.
옥수수, 식용유, 팥, 교복... 그리고 지난 12월에 의자, 책상을 선물해 줘서 이제 앉아서 먹을 곳이 생겼어요.
마지막으로 저는 모든 것에 대해 너무 만족하고 도와주신 사람들로 인해 매우 행복해요. 그리고 가족을 행복하게 해줘서 무척 감사합니다.
Carmen Elena Gutiérrez Herrera
Tengo 17 años
Estoy estudiando 1° año de bachillerato
Hace seis años nosotros no al cansábamos a comprar lo necesario para el sustento diario. Mi mama los hacia sopa de mora y chipilín,
frijoles con arroz, o asábamos los curriles para alimentarlos o los daba tortilla con sal porque habían días que no había que comer.
Con el tiempo mi padre se acompañó con otra mujer y abandono a mi madre
Mi mama como siempre sigue siendo curilera nunca lo que ella gano fue suficiente para darlos una buena comida
ella quería que yo fuera con ella a curriliar y lloraba cuando me llevaba no quería que estudiara
Pero nuestra historia cambio cuando personas de corea en el salvador vinieron a Méndez y buscaban niños y niñas que sacaran conchas
así fue como la vida de nosotras cambio y la de mis hermanas cuando los empezaron a ayudar con dinero
mi mama ya no me llevo a curriliar y ya no deje la escuela que al final me dañaba porque no rendía en la escuela aplace dos años la escuela .
doy gracias a dios por conocerlos y que me tomaran en cuenta para apoyarme no saben lo feliz que soy porque ese dinero que medan con mucho amor
me sirve para muchas cosa compramos maíz , aceite , frijoles la tela para el uniforme y gracias a las sillas, mesa,
bancos que los regalaron en diciembre ahora tenemos donde comer y sentarlo
Infinitamente estoy muy agradecida con todos y todas las personas que hacen posible esta ayuda y que han hecho feliz a una familia que lo necesita
Muchas gracias
엄마의 키를 따라 잡으려고 까치발을 딛던 아이들이... 훌쩍 커버렸습니다. ^^
<2014년 8월 6일 모습>
<2014년 8월 9일, 까페지기의 집에 들러 점심식사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호세 나따나엘 바우스트로 체베스 (중2)
Rosa Vargas José Natanael Bonilla. 24/11/1997/ 16세. 8°
저희 어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제가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저는 맹글로브 숲에 가기 싫었어요. 왜냐하면, 하루 먹기 위해 하루 종일 조개 캐는 게 괴로웠기 때문이에요.
음식이 없어서 주로 허기에 시달렸어요.
저희 아버지께서는 저희 어머니를 놔두고 다른 여자에게로 갔어요.
언제 제가 듣기로, 어떤 사람들이 일하는 아이들을 도와준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저도 공부를 하고 일을 안 하기 위해 한국 사람들을 찾고 또 찾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공부하기를 갈망했어요. 하지만 저희 어머니와 동생을 보고 슬펐어요.
한국 친구 분들이 저의 가난을 보고 저의 어머니와 저희 집을 도와주기로 했어요.
그리고 그 계기로 저의 삶이 바뀌었어요.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집에 필요한 것들을 샀어요. 저는 매우 행복해요.
많은 사람들에게 제 꿈을 알려주고 싶어요.
저는 로사 아주머니의 집에 가고 싶어요.
가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고 내 삶을 바꾸게 해 준 사람들의 얘기와 책상, 의자, 후원금, 옷, 인형, 제 어머니를 위한 냄비, 프라이팬... 선물들...
더 이상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제 행복을 뭐라 표현할 수 없어요.
제가 슬프게 느끼는 것은 시내에 거의 안 나가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저는 로사 아주머니(조은숙)네 집에 가고 싶어요. 모두 축복 받으세요.
José Natanael Basurto Cheves
8° grado
Mi madre es la mujer más linda del mundo siempre me amino a que estudiara yo no que ruia ir porque medaba lastima ver como curiliaba
todos los días para darlos el sustento diario muchas veces pasamos hambres porque no teníamos que comer.
Mi papa cuando podía los llevaba algo el dejo a mi mama.
Por otra mujer Cuando yo oí decir que unas personas ayudaban a los niños trabajadores yo los busque y busque para que me ayudaran
para estudiar y no ir a trabajar porque lo que más anhelaba era estudiar pero también me daba lastima mi mama y mis hermanito
Los amigos corianos al ver mi pobreza decidieron ayudar a mi mama y así fue como cambio muestras vidas estudio
y apoyo en los que hacerles de la casa estoy muy feliz me gustaría conocer a todas las personas que hacen posible este sueño me gustaría
ir ala cas de niña Rosita contarle muchas cosa de cuanto quiero a todas estas personas que me cambiaron la vida gracias
por la mesa , las sillas , los bancos y la ropa , el peluche el comal para mi mama que no tenia y la olla
No hay palabras para expresar mi alegría a los corazones bondadosos
por lo que mesiento triste es porque casi no salgo al pueblo me gustaría ir a la casa de rosita muchas bendiciones para todos
<2014년 2월 모습>
<2014년 8월 6일 모습>
루이즈 엔리께 아길라르 (5학년)
Marta Melani Aguilar Luis Enrique. 9/8/200/ 9세. 5°
엄마가 우리를 할머니께 버려놓고 다시는 안 돌아 오셨어요.
할머니께 왔을 때, 할머니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하루 세 끼를 못 먹어서 내 동생 블랑끼따는 많이 울었었어요.
잠을 잘 침대와 가지고 놀 장남감 그리고 입을 옷도 없었어요.
저녁쯤에 우리 할머니께서는 음식을 줄 게 없어서 우셨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우리들의 필요한 것을 보셨어요.
그리고 신께서 축복을 주셨어요.
한국인들이 우리와 할머니를 도와 줄 매우 큰 기회를 주셨어요.
왜냐하면, 이 시점부터 배고픔이 없고 춥지도 않고 매일매일 먹을 수 있게 되었어요.
우리 할머니께서 집을 좀 늘려서 잠 잘 집이 생겼어요.
나는 매우 행복하다고 느끼고, 저희 할머니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우리 할머니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해요.
Luis Enrique Aguilar
5° grado
Mi mama los abandono cuando estábamos muy pequeños nos dejó donde ni abuelita y no volvió.
Cuando los llevaron donde la abuela ella no tenía nada porque era muy pobre no comíamos los tres tiempos mi hermana
la blanquita lloraba mucho no teníamos cama donde dormir, no teníamos juguetes para jugar. No teníamos ropa para vestirnos
Mi abuela por las noches lloraba porque no tenía que darlos para comer no Pero Dios en su infinito amor vio la necesidad de nosotros
y los bendijo dándonos la oportunidad de que personas como ustedes los dieran la oportunidad de ayudarlos
que asido de gran ayuda para mi abuelita porque desde entonces ya no padecemos hambre ni frio comemos todos los días
2014년 5월 18일
2014년 8월 9일, 저희 집 앞 공원에서 축구하는 모습
라몬 우리엘 레예스 낀떼로 (고1)
María Elsa Quintero Ramón Uriel Reyes Quintero. 1° año de bachillerato
우리가 처음에 아주 작은 집에서 살았던 게 생각이 나네요.
먹을 음식이 없었고, 비가 올 때 젖었었고, 저희 어머니께서 많이 고통 받으셨어요.
언제 저희 아버지가 집을 떠날 때, 저희 어머니는 일을 하셔야만 했어요.
그리고 저희는 학교에 못 갔어요. 왜냐하면 남아서 집을 지켜야했기 때문이에요.
전에 우리의 생활은 매우 힘들었어요. 음식도 없었고 옷도, 잠잘 곳도 없었어요.
이런 시간들이 지나게 해주셔서 신께 감사드려요.
저를 후원대상자로 뽑아줘서 지원해준 것.
저희 어머니는 저를 학교에 보내주신 것에 대해 평생 무한하게 감사하고 있어요.
당신들의 도움으로 저희 삶은 더 잘 됐고, 예쁜 집을 갖게 됐어요.
왜냐하면, 매번 돈을 벌어 오시면 저축을 하셨어요.
그러므로 인해 집이 더 좋아졌고 필요한 물품들을 살 수 있게 되었어요.
현재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을 공부하고 있어요. 동생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한테는 두 명이 학교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매우 힘들어요.
왜냐하면 매일매일 한 사람 당 1불 50센트를(1,500원 정도) 줘야하고 어떤 때는 돈이 없어요.
하지만 한국인들이 돈을 보내주시는 것에 매우 행복해요.
그 돈으로 우리는 돼지랑, 닭을 샀어요. 가축을 키워서 나중에 팔수 있으니까요.
저희 어머니께서는 저와 저의 동생에게 매우 부듯함을 느끼세요.
신께서 항상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Ramón Uriel Reyes Quintero
Estudio 1° año de bachillerato
Me acuerdo que al principio vivíamos en una gran pobreza no teníamos que comer los mojábamos cuando llovía mi mama sufrió mucho cuando
mi papa se fue de la casa mi mama tuvo que trabajar en las casa y nosotros no íbanos a la escuela los quedábamos en la casa cuidándola
La vida que teníamos antes era difícil no tener que comer, que vestir, donde dormir gracias a Dios esos tiempos pasaron
Les agradezco infinitamente a verme elegido para apoyarme y que mi mama me mandara a la escuela, con su ayuda hemos mejorado
las condiciones de vida ahora tenemos una casa bonita porque mi mama cada vez que le hacían entrega del dinero iba guardando una parte
y así pudo mejorar la casa y comprar algunos cosas que necesitábamos
Hoy estoy cursando primer año de bachillerato igual que mi hermano para mi mama es difícil que los dos vayamos al instituto
porque los da 1.50 a cada uno todos los días y a veces no lo tiene pero estamos muy contento
por con el dinero que los mandaron los amigos corianos hemos comprado un cerdo y pollos para que mi mama los crie
y luego los pueda vender cuando estos estén grandes ni mama está muy orgulloso de mi y mis hermanos.
Dios los bendiga siempre.
2008년 7월 모습
<2014년 8월 6일 현재 모습> ↑
마누엘 움베르또 플로레스 (고1)
Sandra Maribel Castro Manuel Humberto flores. 24/9/1995/ 18세. 9°
제가 열두 살 때, 저희 어머니는 산살바도르로 일하러 가셨고 우리를 친척에게 맡기고 가셨어요.
저희 친척은 항상 조개 캐는 것 때문에 집에 없었고 그리고 가끔씩 같이 가서 일을 했어요.
그 때문에 학교에는 조금밖에 참석을 못했어요.
저는 4년을 꿇었어요. 왜냐하면 일을 공부보다 많이 하고 저희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을 하셔서...
많은 그런 일 때문에 저와 여동생(누리엘)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전에는 잘 못 먹었고 매번 배 아픔에 시달렸어요.
양철집은 구멍이 많아서 여과기 같았어요.
하지만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저희 삶이 바뀌었어요.
처음 받은 돈으로 저희 친척이 양철을 사서 지붕을 고쳤어요.
시간이 지나고 저희 어머니가 저희를 더 이상 버리지 않으셨어요.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이 돈을 주는 것으로 여러 가지를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어요.
신께 감사하기를, 안드레아 아주머니, 미스 신, 로사 아주머니 세 분께 감사해요.
만약 저희가 사는 것을 못 봤다면 슬퍼질 거예요.
이 단체에서는 “공부가 조개 캐는 것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끔 자극시켜주었고 공부할 수 있게 동기부여 해 주셨어요.
지금 제가 얘기하는 건데, 공부 없이는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이번 해에 열심히 해서 좋은 점수 받는 것을 약속할게요.
그리고 한국인들이 와서 필요한 용품을 나눠줘서 감사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요.
제 꿈을 가능하게 해주신 사람들에게 신의 축복이 내리시길 원합니다.
지금은 매우 다른 생활이에요. 당신들의 일이 다 잘되기를 바랍니다.
Manuel Humberto Flores
Estudio 9° grado
Cuando tenía 12 años mi mama se fue a trabajar a san salvador y los dejos con una tía,
mi tía casi no pasaba en la casa porque se iba a curriliar también ,algunas veces iba con ella y poco asistía a la escuela,
aplace cuatro años la escuela porque trabajaba más que estudiar mi papa se separó de mi mama muchas veces y esos nos afectó mucho tanto a mi como a mis hermanas .
No comíamos bien en a aquellos tiempos , solo pasaban con dolores de estómago la casa parecía un colador porque la lámina tenía muchos hoyos
pero cuando los en pesaron a ayudar los coriano nuestras vidas cambiaron del primer dinero mi tía compro unas la minas para arreglar el techo de la casa , alimentos.
Con el tiempo regreso mi mama y ya no nos dejó nunca más porque el dinero que los dan los servían para muchas cosas, me dedique a estudiar .
A gradezco a Dios , niña Andrea , señorita Chin ,niña Rosita que si no vieran venido a conocer la realidad que vivimos a motivarlos
y hacerlos conciencia de lo importante que es el estudio fuera un currilero más de la comunidad .
Hoy me doy cuenta que sin educación las personas no son nada, prometo esforzarme este año para tener buenas calificaciones
y que se sientan muy orgullosos de mi gracias a cada uno de ustedes que siempre nos vienen a regalar una cosita que nos sirve mucho.
Y muchas bendiciones de todo corazón a las personas que hacen posible mi sueño.
Ahora todo es diferente vivo mejor al esfuerzo de cada uno de ustedes
<후원회 집짓기 1호>
<왼쪽에서 두 번째가 마르따, 오랜동안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엄마가 2014년 봄. 정신이 온전하게 돌아왔습니다. 가장 축하할 일입니다.>
마르따의 할머니와 엄마는 2014년 8월 9일, 1년에 한 번 성대하게 열리는 K-pop 공연을 보러 수도 산살바도르 여행에 동행하셨습니다.
마리아 마르따 끄루 사발라 (중1)
Consuelo María Marta Cruz Zavala. 5/9/1997/ 16세. 7°
전에는 매우 슬펐어요. 왜냐하면 저의 엄마께서 ‘기억상실증’으로 고통을 받으셨어요.
저희는 야자수 잎으로 된 집에서 살았어요. 책상, 의자, 접시, 프라이팬 등이 없었어요.
저희는 할머니와 엄마와 내 동생들과 같이 살아요.
저희 할머니는 매번 나가셔서 조개를 캐 와요. 그리고 거의 항상 저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셨어요.
하지만 저희는 가난해서 팥만 먹었어요. 하지만 현재 지금은 한국인들의 도움으로 저희 삶이 크게 바뀌었어요.
왜냐하면 저희는 비가 새도 안 젖는 예쁜 집(후원회가 지어준 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할머니께서는 더 이상 팥만 주시지 않으세요.
가끔씩 고기, 생선, 그리고 새우를 맛있게 먹어요.
이제는 비누가 있어서 옷을 빨 수 있게 되었어요.
저희 할머니께서는 후원 받은 돈으로 이번 달에 닭을 사셨어요.
닭을 키우게 되어서 더 이상 계란을 안 사게 되었고 학교에 매번 갈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요.(깊은 숲속에 집이 있어, 도보 1시간 정도. 전기, 수도, 화장실이 없음)
그리고 저는 행복해요. 저의 엄마께서 기억상실증 병에서 나았기 때문이에요.
저희와 평생 대화를 못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희가 학교에 가는 것이 좋은 거라고 말씀하세요.
괴롭힘 당하지 않기 위해서예요.
일요일 마다 교회에 가요. 저희의 삶이 많이 바뀌었어요.
당신들 같은 예쁜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당신들에게 신의 축복이 임하시길 바랍니다.
María Marta Cruz Zavala
Estudio 7° grado
Antes estaba muy triste porque mi mama está padeciendo de una enfermedad que la había hecho perder el conocimiento
vivíamos en una casa de palma no teníamos mesas, sillas, plato, cacerolas, vivimos con mi abuela y mi mama y mis hermanas mi abuelita siempre iba a sacar conchas
y muchas veces las hacia cocidas para que las comiéramos y como éramos muy pobres solo comíamos frijoles,
Pero hoy con la ayuda que recibimos de los coreanos nuestras vidas cambiaron en gran manera porque ahora tenemos una casa muy bonita
donde ya no nos mojas cuando viene la lluvia mi abuelita ya no nos da solo frijoles, de vez en cuando copra carne, pescado camarones y
comemos bien rico los hace fresco y ahora lavamos todos los día porque tenemos jabón para lavar la ropa mi abuelita compro unas gallinas
este mes con el dinero que los dieron para hacer una crianza y a si ya no comprar los huevos
vamos a la escuela todos los día aunque caminamos cierta distancia No los impide ir a la escuela, estamos muy contentas
porque mi mama ya está sana de su enfermedad que le imposibilitaba hablar con nosotros ella nos dice que es bueno que vayamos a la es cuela para que nadie
los engañe los días domingos vamos a la iglesia Muestras vidas cambiaron mucho gracias a lindas personas como ustedes que dios las bendigas siempre
<후원회 집짓기 2호>
<깔끔하게 정리 된 새 집을 자랑하는 가족들. 2012년 10월>
<한국에서 오신 분들께 태양열 판을 3상자 얻게 되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숲 속 집에 설치했습니다.>
베로니까 델 까르멘 이라에따 (중2)
Martha Edid Iraheta Verónica del Carmen Ramírez. 6 /10 /1998/ 15세. 8°
이 줄(문장 행)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얘기를 할 거예요.
저희 엄마는 조개 캐는 사람(Curilera)이며 항상 맹글로브 숲으로 조개를 캐러 가세요.
그리고 자주 어지러워하세요. 어느 날들은 아침에 나가셔서 낮에 오세요. 하지만, 언제는 하루 종일 있으세요.
매번 물만 가져가시고 그리고 일에서 돌아오시면 그때 드세요.
내동생과 나는 엄마 일을 위해 집을 지키고 어떤 날들은 우리가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께서 계속 일하느라 집에 안 계세요.
학교에 가기 까지는 한 시간이 걸려요.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곳은 멀기(숲속) 때문이에요.
예전에는 집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집은 비가 올 때 많이 젖었는데 양철지붕과 벽 많은 부분에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이에요.
옛날에 엄마께서 닭을 가지고 오셨어요. 알도 낳고 그걸 먹기도 하고 팔았어요.
하지만 어느 날, 무슨 병인지 바이러스에 걸려 다 죽었어요. 저희 엄마는 매우 슬퍼서 울었어요.
저희가 학교 갈 때 매번 돈을 못 가지고 갔어요. 하지만 어느 날 아주 예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저희에게 양철을 주고 와서 직접 동네에서 가장 예쁜 집을 지어줬어요. 닭을 사주었고 지금은 많이 키우고 있어요.
현재 많은 옷, 살림집기, 담요 등이 있어요. 그리고 후원해주신 돈으로 다른 것들을 샀어요.
학교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있고 계속 공부하고 싶어요.
신께서 항상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Verónica del Carmen Iraheta
Mi mama es curilera ella va todos los día a sacar conchas a los manglares,
las mareas varían ya que algunos día esta de irse de mañana para regresar al mediodía, pero otros día están de todo el día.
Muchas veces solo lleva agua y come hasta cuando regresa , nosotras mi hermana y yo los que damos en la casa para cuidarla y hacer el oficio,
algunas veces no allegado nuestra mama de curriliar cuando los vamos para la escuela caminamos una hora para llegar a la escuela
porque la comunidad donde vivimos está lejos antes teníamos una casa que cuando venía la lluvia los mojábamos muchos
porque la lámina tenia hoyos por todas partes mi mama antes tenía unas gallina que le daban huevos y con eso los daba de comer o
las vendía pero un día les llego una enfermedad y se murieron todos mi mama se puso muy triste y lloraba .
Cuando nos íbamos para la escuela muchas veces no llevábamos dinero a la escuela.
Pero un buen día conocimos a unas personas muy bellas mis queridos amigos coreanos que les dimos lastim
y los mandaron hacer una casita la más bonita de mi comunidad, los compraron pollos para que hiciéramos una crianza
y ahora tenemos muchos, a hora tenemos más ropa, trastos, cobijas.
Y con el dinero que los dan mi mama compra otras cosas como vivires.
Llevo muy buenas calificaciones en la escuela y quiero llegar al instituto
Dios los bendiga siempre
2014년 8월 9일, 엄마들과 자녀들 수도 산살바도르 여행 옴.
나오미 아르구에따 (중1)
Ana Gilma Hernández Tirza Nahomy Argueta Hernández. 6/04/2000/ 14세. 7°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모르겠어요. 내 삶은 매우 짧기 때문이에요.
그냥 말하고 싶은 것은 전에 많은 사랑으로 덮어주셔서 현재 이렇게 지내기 때문이에요.
당신들의 사랑에 대해 많이 감사드리고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셔서 매우 감사드려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제 꿈을 이루게 해주셨고 저희 가족이 필요한 것들을 갖추게 해주셔서요.
그리고 당신들의 큰 사랑에 매우 감사드리며 당신들의 결속력으로 불쌍한 아이들을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이 세상에는 당신들 같은 천사들이 있어요. 애들의 꿈을 현실화 시켜주기 때문이니까요.
제 얘기를 하기 전에, 제 가족은 너무 달랐었어요. 엄마는 현재 44세이며, 부모가 없으신 고아였어요.
그래서 저의 엄마는 오로지 자식밖에는 없었고 저희는 가난해서 많은 도움이 필요했어요.
어느 날들은 두 끼밖에 못 먹은 적도 있어요.
학교를 다닐 때 신발이 없었으며 다른 애들은 저를 보고 웃었어요.
학교에 입고 갈 옷들이 별로 없었고 학교에 가서 써야하는 돈을 안 주셨어요.
이번 달 마지막 일요일에 저희 엄마께서 닭 스프를 하셨어요.
저는 10명의 남매들이 있고 몇몇은 결혼해서 다른 집에서 살아요.
저의 엄마는 학교에 한 번도 다닌 적이 없어요.
하지만 지금은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으셨어요.
그리고 44세이신데 공부를 시작하셨어요.
왜냐하면 공부의 필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당신들이 선물해주신 것에 대해 무한하게 감사하며 후원해주신 돈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사고 신발을 사고 학교에 갈 돈이 생겼어요.
책상, 의자, 선물바구니, 옷을 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인형도요.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당신들의 사랑으로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번 해에 7학년이 되어 학교에서 컴퓨터를 배우게 됐어요.
Tirza Nahomy Argueta
Grado 7° / Edad 14 años
No sé por dónde comenzar narrándoles mi vida a tan corta edad solo quiero que conozcan como estábamos antes de que ustedes nos cobijaran
con tanto amor y como estamos hoy de bendecidos gracias al amor que tienen por nosotros y por todos los niños y niñas que les ayudan doy gracias a Dios
primeramente y a ustedes amigos /as coreamos que han hecho posibles mi sueños y de toda mi familia todo lo que mi mama tiene
y tengo es gracias a su corazones llenos de mucho amor, de solidaridad y de cariño hacia los niños pobres es maravilloso saber que en el mundo todavía
hay ángel como ustedes que hacen realidad los sueños de los niños y niñas
Antes de conocerlos mí vida y la de mi familia era diferente.
Mi mama no conoció a sus hermanos ella es huérfana no tiene papa ni mama ella tiene cuarenta y cuatro años de edad
Ella solo los tiene a nosotros sus hijos somos pobres hemos pasado muchas necesidades, habían días que comíamos solo dos tiempos de comida
cuando comencé air a la es cuela no tenía zapatos y los de más niños y niñas se reían de mí , no tenía mucha ropa para ir a la escuela no medaban
y no medaban dinero para la escuela el último domingo del mes mi mama nos hacia un pollo en sopa para todos mis hermanos
tengo diez hermanos algunos ya se casaron otros viven con nosotros, mi mama nunca fue a la escuela, pero ella ahora en tiende que la educación es muy importante
y así con cuarenta y cuatro años de edad ella está estudiando porque ha reconocido que la educación es importante.
Infinitamente estoy muy agradecida con cada uno de ustedes que con ese regalo que nos hacen mensualmente
mi mama puede comprar alimentos, comprarme zapatos, darme dinero para la escuela y otras cosas más.
gracias por la mesa , las sillas , los bancos y la ropa , el peluche el comal para mi mama que no tenia y la olla
Y para recompensar todo ese amor que ustedes
sienten hacia mi estudio muchos todos los días este año estoy cursando 7° grado, estoy aprendiendo computación en la escuela Mi familia y
yo vamos todos los días a la iglesia y en mis oraciones pido a Dios por todas las personas que hacen posible este sueño,
2008년 11월, 이렇게 어린 꼬마들이 엄마 키보다 훨씬 커졌습니다. 2014년 5월 18일 모습 ↑
<2013년 12월>
조나딴 이사이 가스뜨로 에스꼬바르 (6학년)
Sandra Esmeralda Castro Martínez Jonathan Isaí Escobar Amaya. 9/ 03 /1998/ 15세. 6°
제 삶은 매우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다섯 살 때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셨어요.
우리 엄마가 일을 하러 나가시면 동생과 저를 친구 집에 맡겨놓아 늦게까지 있었어요.
내가 8살이 되었을 때 우리 엄마가 나를 처음으로 조개 캐러 데려가셨어요.
엄마는 내가 공부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어요. 왜냐하면, 돈을 적게 벌기 때문이에요.
하루에 두 끼 먹는 것은 많은 것이었어요. 음식이 없어서 가끔씩 밥을 안 먹고 잠을 잤어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저희 외할아버지께서 저희와 살기위해 오셨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엄마를 위해 아이들을 돌봐줬어요.
밀짚으로 만들어진 집이었으며 앉을 의자가 없었고, 놓고 먹을 책상과 잠을 잘 침대가 없었어요. 저희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저희 엄마는 항상 슬퍼하며 울었어요.
하지만 어느 날(2008년 7월) 이슬라 데 멘데스에 어떤 사람들이 왔어요.
그 사람들은 조개를 캐는 아이들을 알아보기 위해 왔는데 우리 집에도 왔고 그리고 기적을 만드셨어요.
이 사람들은 멀리서 온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말하기를, “일을 그만 두면 공부를 할 수 있게 되고 삶이 바뀌게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대한민국 사람들이 우리들의 삶을 완전히 바꿨어요.
애정이 담긴 후원금으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약을 살 수 있게 됐고, 신발도 살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학교에 돈을 가져갈 수 있게 되었고 집에 없는 것들을 살 수 있게 되었어요. 당신들에게 매우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나와 동생이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저의 엄마께서는 매우 행복해 하시고 나는 행복한 모습을 계속보고 싶어요.
방문하시면서 가지고 오는 선물들... 다시 새롭게 감사드립니다. 모두 축복 받으세요.
Jonathan Isaí Castro Escobar
Mi vida fue muy dura porque mi padre los abandono cuando yo tenía tan solo cinco años de edad
Cuando mi madre se iba a trabajar nos dejaba a mi hermano y a mí con una amiga la veíamos asta en la tarde
Cuando cumplí ocho años mi mama me llevo por primera vez a sacar conchas no quería que estudiara porque lo que ella ganaba era muy poco
Si comíamos dos tiempo de comida era bastante, a veces nos acostábamos sin comer porque no había que cenar,
pocos años de pues mi abuelito se fue a vivir con nosotros el ayudaba a mi mama a cuidar a mi hermano
La casa era de paja no teníamos sillas en que sentarlos, mesa en que comer, cama en que dormir, no teníamos cobijas no teníamos nada
Mi mama siempre está muy triste y lloraba
Pero un día en a la Isla de Méndez llegaron una personas que querían conocer los niños que sacaban conchas
llegaron a mi casa y se hizo un milagro estos señores eran de un lugar muy lejos
Me dijeron que si dejaba de trabar e iba a estudiar mi vida iba a cambiar
Y así fue estas personas de la Republica de corea cambiaron nuestras vidas por completo ese dinero que ustedes con mucho sacrificio,
amor y cariño nos mandan nos sirve muchas veces para comprar medicinas cuando estamos enfermos, zapatos,
llevar dinero a la escuela u otras cosas que nos hacen falta en la casa.
Gracias a todos ellos hoy estamos estudiando mi hermano y yo.
Mi mama está muy contenta me gusta verla feliz
Gracias nuevamente por los regalos que los hacen en sus visitar a muestras casa. Muchas bendiciones para todos
크리스띠안의 엄마 수산나가 제게 꽃씨를 선물로 주셨었는데... 마당 뒤뜰에 이렇게 예쁘게 피었답니다. ^^
크리스띠안 안또니오 플로레스 보니아
Susana del Carmen Bonilla Flores Cristian Antonio. Flores 23/12/1999/ 15세. 8°
첫 번째로 신께 감사를 드리고 내 삶을 바꾸게 해준 한국인들께도 감사를 드려요.
그리고 당신의 가족이 아름답게 바뀌었어요.
내 엄마의 삶과 내 동생의 삶을 바뀌게 해준 친절한 마음에 감사를 드려요.
현재 좋은 삶을 가지고 있고, 전에는 내 동생과과 같이 조개를 캐는 사람이었어요.
여덟 살 때부터 내 동생들을 데리고 가서 조개를 캤어요.
엄마는 공부를 안 하시고 평생 조개 캐는 일만 하셨어요.
저희 동생들은 어린나이에 담배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하루 세 끼를 못 먹을 때가 있었고 저희 엄마와 동생들은 가끔 어지러워했어요.
그리고 돈을 조금씩 벌었어요. 2달러, 3달러 그리고 1달러도 받았어요.
저희가 캐는 양에 따라 달라져요. 전에는 매우 가난했어요.
음식을 놓고 먹을 책상이 없었고 앉을 의자가 없었고 잠을 잘 침대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물침대가 하나밖에 없었고 조개 캐는 어린이의 삶은 정상이 아니에요.
못 먹고, 학교에도 안 가고 학교 다니는 꿈만 꿀뿐이에요.
저희 아빠는 저희가 어릴 때 버리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엄마를 위해 일을 해야 했어요.
가난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두 명의 동생이 있어요.
하지만 어느 날 하늘의 천사들이 산살바도르에서, 이 아름다운 섬에 조개 캐는 일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러 왔어요.
그리고 조개 캐는 어린이들을 찾았고 그 후 후원대상자가 된 아이들은 삶이 바뀌게 되었어요.
내 가족에게 많은 것을 해주셔서 행복하며 평생 무한하게 감사를 드려요.
방문하실 때 저는 매우 기뻐요. 저의 엄마께서는 저희들을 매우 행복해 하세요.
왜냐하면,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희 엄마의 얼굴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엄마의 손에 상처가 전 보다 나아졌어요.
Cristian Antonio Flores Bonilla.
Doy gracias primeramente Dios y a todos los amigos/as Coreanos que han hecho posible que mi vida y la de su familia tu viera un cambio muy bonito.
Gracias a estos corazones bondadosos la vida de mi madre y mis hermanos cambio, a hora tenemos una mejor vida ya que antes ara un niño currilero igual que mis hermanos,
A los 8 años llevo curriliar a mis hermanos, ella no estudio solo trabajaba este trabajo no era nada fácil ya que mis hermanos aprendieron a fumar a tan corta edad
no comíamos los tres tiempos y lo que le pagaban a mi mama y mis hermanos en cada marea a veces era muy poco, dos dólares,
tres dólares apunto a veces de ganar un dólar de pende como los ayeáramos .
En aquellos tiempos estábamos muy pobres que no teníamos mesa en que comer, sillas en que sentarlos, dormíamos dos en una cama porque solo teníamos una y una hamaca,
la vida de un niño curilero no es normal no comen , no van a la escuela siempre andan con sueño
Nuestro padre los abandono cuando éramos muy pequeños por eso tu vimos que trabajar a la par de mi madre porque éramos pobre. Tengo dos hermanos
Pero un día Ángeles del Cielo vinieron a esta hermosa Isla un lugarcito muy lejos de San Salvador a ver cómo era este trabajo de sacar conchas,
y los encontraron trabajando o sea sacando conchas y desde entonces nuestras vidas cambiaron por fui uno de los niños elegidos
agradezco in finita mente todo cuanto hacen por mi familia soy muy feliz.
me alegro mucho cuando vienen a visitarme mi mama está muy contenta con nosotros
porque hemos aprendido mucho en la escuela el rostro de mi mama ahora es mejor sus manos no están tan herida como antes .
우리들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혀주는 것 처럼, 등을 살살 긁어주는 것처럼... 오후의 햇볕은 친구처럼 다정했습니다.
이 분들의 편안한 미소가 좀 더 오래 지켜지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까페지기 조은숙-
첫댓글 이게 정말 우리가 한 일이란 말인가요? 믿기지가 않네요. 이건 아마도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 손을 빌어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직도 계속하라고 하네요.^^:
아이들 편지가 갑자기 흐려지네요. 우리 아이들이나 부모님들께서 교육의 중요성을 아시게 된것 같아 정말 다해이네요.
이 부분적인 성공 스토리에 작은 돌이 될 자격을 주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 출발이였던 마누엘의 소식도 궁금합니다. 마누엘에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주세요. 꼬옥요. 끝으로 은숙님 감사합니다. 은숙님께 선생님이라고 불러 봅니다. 제겐 최고의 극존칭입니다. ^^:
편지를 통해 제 눈물샘도 옹달샘이 되었었답니다. 뭔가 큰 것을 바라고 시작한 일들이 아니었는데... 보세요. 아이들이 건강하고 학교에 다니고 편지 내용에서처럼 긍정적이며 행복해하잖아요.
후원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열매는 사랑을 주신 분들 몫입니다.
아이들이 정말 훌쩍 자랐네요. 은숙샘 먼곳에서 항상 애써주시는 것 감사합니다. 꼭 뵈어요, 언젠가는 ㅠㅠ
어린 소녀들은 숙녀가 되고, 남자 아이들은 목소리 걸걸걸해서 총각 같답니다. ㅋㅋ 이렇게 오랜 시간을 지켜보니 직접 안 만났지만, 누가 누군지는 대충 아시지요? 아이들 크는 모습 참 대견합니다.
루이스와 블랑카가 참 잘 자랐네요..... 할머니도 건강해보이십니더
작가님, 살짝 오셨네요. 잘 지내지요? ^^ 블랑까는 루이즈 보다 한 살 어린데도 신체 성장 속도가 참 빠름니다. 살찌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데 이곳 식생활이 좋지 않습니다.
정말 좋은 소식이 들려 감사하네요~매 번 열심이신 조은숙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꾸준히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일" 그것은 툭툭 던져주는 어떠한 선물 보다도 더욱 더 크고 귀한 선물이지요.
우리 후원회의 프로젝트가 언젠가 때가 되어 끝날 때 끝나더라도... 미정 씨가 할 수 있는 동안, 제가 여기 머무는 동안... 지치지 말고 좀 더 힘을 내도록 합시다. 나도 미정 씨가 늘 고마워요.
개인적인 일로 한 일년동안 카페에 들어오는거며 후원도 제대로 못했네요^^;; 정말 죄송하구요. 이 아이들을 보면서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정말 좋네요
저 조그만 아이들이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게 옆에서 지켜봐주고 고생하신 은숙님께 감사드려요.. 이번달 부터는 1년치를 제가 하는 후원금에 조금씩이나마 분할해서 열심히
후원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은숙님에게 고마움과 죄송함을 느끼면서.. 우리 아이들 지금처럼 옆에서 지켜주세요 - 행복한 아이들을 위해 -
이 벅찬 감동을 함께 나눌 회원님들이 계셔서 얼마나 좋은지요. 모두가 말하길 "뭐든 길게 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말하며 우려하더군요.
하지만, 우리 후원회원님들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히 지켜봐 주시고 사랑 보내주시는 것 다 압니다.
저야 아이들 나라에 사는 사람이지만, 멀리서 만나지도 말을 건네지도 못하는 형편이면서 지속적으로 가슴에 품고 계시는 회원님들이 더 대단하십니다.
드문드문 방문하시면 어떻습니까? 시간 되시는 대로 잊지않고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재영님! 진심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