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보은의집 69세의 남자 어르신 한 분이
수시로 라운딩을 하면서 찾아뵈면
'전00'라는 분을 찾아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이 어르신의 고향은 전남 강진인데
젊은시절 고향을 떠나 생활을 하다가 부인과 사별을 하고
먹고살기 위해 선원으로 먼 바다에 나가 배 타는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가 군산에 홀로 정착을 하고 사셨다.
가족이 없는 관계로 기초수급자가 되어
그 동안 지인이었던 '전00'님께서 돌봐주셨는데,
이제는 돌봐주기가 벅차
우리 보은의집에서 2013년 11월에 입소되셨다.
이 어르신은 입소하기 전,
여러차레 뇌졸증을 겪어 좌측편마비가 심하고 보행이 어려우며,
당뇨와 치매질환으로 침상에만 생활하셨다.
이 어르신의 수차례 지인을 만나고 싶다는 말씀에
결국, 사회복지사에게 그 지인을 찾아드리도록 이야기를 했다.
사회복지사는 그 지인의 전화번호를 파악하여
여러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주민센터까지 가서 연락처를 파악해보자 했으나
개인정보보호관계로 알려주지 못한다고 하여
그만 아쉬움으로 남기려 했었다.
그러던 중, 우리 보은의집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찾아가는 가족행복나눔 프로그램 2번째 대상자로
이 어르신이 선정되어 비록 지인은 못 만났지만,
옛고향을 가면 그 지인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질까 싶어 고향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고향을 찾아가기로 했다.
드디어 지난 5월 27일(금), 울 보은의집의 사회복지사가
이 어르신을 모시고 전남 강진으로 출발을 했다.
어르신께서는 고향을 떠나온지 4~5십년이 넘었기 때문에
고향간다는 그 생각에 잠을 한 소금도 못 이루었다.
그런데 그 설레임도 잠깐이었다.
어르신을 모시고 고향을 가까이 가면 갈수록 고향길이 너무 많이 변했다며
"내가 지금 고향을 가도 아무도 나를 반갑게 맞이해줄 사람은 하나도 없고
길도 다 변해서 더 이상 모르겠으니, 그만 군산으로 다시 되돌아가자."고
재촉하시며, 처음 설레었던 그 설렘과 자신감을 잃어가시는 것이었다.
어르신께서 정확한 당신이 태어난 집주소도 모르겠고
단지 안다면 강진군 칠량면 봉황리라는 말만 기억하고 계셔서
그곳에 가면 혹시나 당신이 길을 다 알고 있을 것 같다고 하여서
막상 출발해 봉황리에 도착했건만
전혀 모르겠다고 하니 정말로 난감한 일이었다.
할수없이 우리 사회복지사가 답답한 마음에 잠시 쉬려고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에 주차하고
마을입구에서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서
"혹시 김모 어르신을 아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하나같이 "모른다."고 하여
결국 마을회관까지 어르신을 모시고 가서 지인을 찾아보았다.
혹시나 해서 마을회관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르신으로 하여금 옛기억을 더듬어 되살리게 하여
알고 있는 친척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말하게 하였다.
그랬더니, 말한 이름 가운데 한 이름이 나오자,
한 분이 "춘자! 춘자가 그 춘자 아닌가? 어제 저녁에 우리 동네 온 것 같은데....
오늘 갔는가?" 하시는 것이었다.
이 말에 실낱 같은 희망을 갖고 조급증을 갖고 확인해보니,
결국 그 이름이 맞았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확인을 해보니,
그 동네에 사촌 동생과 다른 친척들이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바로 어르신의 안내를 받아 사촌 동생집과
다른 친척집을 방문하던 중에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어르신 두 분을 만났다.
그런데 그 어르신이 바로 울 어르신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누님이었던 것이다.
정말로 극적인 순간이었다.
서로 이름을 확인하고 처음에는 서먹했으나,
나중에 부모님 성함등 가족관계를 확인하고 나니까,
서로 남매임을 알고 부둥켜 안고 눈시울을 적셨다.
5십여년만에 동생을 만난 누님은
"젊을 때 나가서 통 소식도 없이 살다가
5십여년만에 나타났으니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지...."하면서
"십여년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마음이 아펐는데
죽은 사람이 이렇게 살아돌아왔으니 이게 꿈이냐?"고 묻기도 하셨다.
그러면서 다른 친척들과 자녀들에게 일부러 전화를 해서
동생을 찾아서 만난 기쁨을 함께 나누며 어찌할 바를 모르셨다.
울 어르신의 누님은 그 동안 서울에서 생활하셨는
20년 전에 사별을 하고 3남매를 키워서,
현재는 경기도 시흥에서 살고 계신다고 했다.
"지난 주에 잠시 고향에 왔다가 어제 저녁에 이곳에 와서
내일 떠나려고 했는데 오늘 내가 이렇게 있는 줄을 어찌 알고
동생이 찾아왔으니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이다."면서
몇 번을 고마워하고 눈물을 지으셨다.
사촌동생도 그 자리에 있으면서 수차례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면서
"이렇게 번듯하게 요양원에 계시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잘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기쁜가. 참으로 고맙다." 고 하시면서
"앞으로 서로 연락을 하고 자주 찾아보고 잘 지내자."고 하셨다.
5십여년만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우리 사회복지사는 주어진 시간 때문에
어르신을 모시고 다시 군산으로 차를 돌려야만 했다.
무려 열 시간이 넘은 시간을 휠체어에 앉아계셨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면서 누나와 친척들을 만나게 해주어서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중간에 원장인 나에게 전화를 해왔다.
이렇게 원장과 어르신의 뜻을 받들어 장거리 운행을 통해서
어르신을 모시고 50여년만의 혈육을 만나게 해준
우리 사회복지사에게 무한한 감사를 올리면서 정말 뿌듯한 보람을 느꼈다.
첫댓글 감동적이네요! ㅠㅠ 정말 잘 되었어요! 교무님과 사회복지사님, 감사합니다. ^^;
우와! 대단한 감동스토리이군요.....원장님의 적극적인 보살핌으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꿔봅니다! 사회복지사님은 표창을 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