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베트남은 모두 한문을 사용하는 한자문화권 즉 유교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구요.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국에 사신을 수시로 보냅니다.
그러다 보면, 베트남에서 중국으로 온 사신과 조선에서 중국으로 간 사신들이
서로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베트남의 풍씨 외교관 풍각관이 북경에서 조선에서 온 사신 지봉 이수광을 만났구요.
이때 이 두 분은 필담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풍씨 외교관은 지봉 이수광의 시문집을 가지고 베트남으로 귀국합니다.
그런데, 임진왜란 당시 포로가 되었던 조완벽이라는 사람이 베트남을 세번 왕래하게 되구요.
결국 조선으로 돌아온 조완벽의 경험담을 지봉 이수광은 자신의 문집에 <조완벽전>으로 남기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전근대사회에서 베트남과 한반도가 직접 교류하기는 힘들었겠지만,
중국이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만남의 고리가 있었기 때문에 고려시대에는 베트남 이(ly)왕조가 고려로 피난을 오게 되고,
결국 고려에서 화산 이씨라는 성을 하사받고 지금까지 그 후손들이 살게 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고 생각됩니다.
노예로 팔려가 베트남에서 살아 돌아온 조선인 이야기; 4.34.
조선 최고의 청백리 유관과 이수광이 살았던 집, 비우당!; 3.13.
종로구 낙산공원에 가면 이수광이 살았던 집 비우당이 있구요.
단종의 왕후였던 정순왕후가 사용했던 우물 유적도 지금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