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운명적 저주, 디아스포라 혹은 역마살
디아스포라는 그 원뜻에는 흩어지다, 산개하다, 이주하다 등이 있고 이 개념이 적용되는 원칙에는 먼저 추방, 혹은 강제 이주 그리고 이주 사회에서의 동화 혹은 관계 마지막으로 귀환이 있다.
이 개념이 가장 먼저 적용된 사례는 그 무엇보다도 널리 알려진 유대민족이다. 이 유대민족은 민족적인 적용사례도 그러하지만 그들이 오랜 세월 지켜온 종교 교리와 율법에도 그런 운명적 예언이 나타나 있다고 스스로 공인하는 자타에 잘 알려진 경우에 해당한다.
그들은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나타난 내용 그대로 그들의 성전이 2번이나 타국 이민족에게 파괴된 이후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제 추방당하거나 노예로서 타국으로 흩어져 명맥을 잇는 삶이 수천 년에 해당되는 특이한 민족이다. 기원전 바빌론 제국의 침탈에 의해 뿔뿔이 흩어졌고, 그 후 기원 후 70년에 로마의 침공으로 그들의 성전이 파괴되면서 이민자의 삶으로 전락하면서 전 세계 곳곳으로 전쟁의 침화를 벗어나기 위해 강제 이주 혹은 자발적 이민을 단행하게 된다. 그런 고향을 벗어나 흩어져 살아온 디아스포라적인 삶이 수천 년간 이어지다가 근대들어 민족주의 국가의 건국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들의 본향인 골란고원이 있는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정착하는 대표적인 민족이 된다.
그 외 디아스포라적인 삶의 대표적인 민족으로 아르메니아, 근대 산업혁명으로 이어지기 전단계인 제국주의들의 식민국가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대서양을 건너 북미대륙과 그 연안 국가, 그리고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주 등 광범위한 대륙으로 노예로 끌려간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있다.
그들은 피부만 검은 흑인이지 끌려오기 전에 살았던 고향은 저마다 다른 풍습과 전통, 언어, 그리고 정치적 상황이 있었지만 제국주의가 운영하는 광범위한 플랜테이션에서는 그야말로 노예같이 부려먹을 수 있는 흑인 이외에는 아무것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들은 백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서로 간에 그 어떤 것도 처음에는 소통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비인간적인 상황에 놓인 짐승과 같은 열악한 처지에서 고통을 받으며 언제 돌아갈지 기약도 할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죽어가거나 한없이 기다리는 지루한 인내의 삶을 살아내야 했다.
그 외에도 역사적으로 노예 제도가 폐지되면서 그들의 인력을 대체해줄 대안으로 당시 영국의 식민지하에 있으면서 인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아 삶의 조건이 열악했던 인도와 중국의 반강제 이주 사례가 있고, 1890년대 대기근으로 많은 인구가 사망한 아일랜드인들의 미국 이민 사례가 꼽히고 있다. 그들은 당시 강제 추방이라는 원한을 가슴에 품고 미국으로 이주하고 있는데 이것은 제국주의 영국이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음에도 정치적인 술수로 자신들을 강제로 추방했다고 여기는 것인데, 이런 그들의 생각이 전혀 맞지 않다고 할 수는 없는 정황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기는 하다.
우리나라 역시 중국과 인도와 같이 대량의 인구가 빠져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같은 사례 혹은 더 열악한 조건으로 나가게 되는데, 일본의 대동아 전쟁당시 남자는 전쟁도구로 여자는 위안부로 그리고 그 이전에는 미국의 대단위 플랜테이션에 흑인 노동력을 대체할 목적으로 갔다가 종전 후 돌아오지 못하고 미 대륙이나 동남아시아 그리고 일본에 영구적으로 정착한 사례가 있는데 이들 역시 강제 이주, 현지와의 관계 그리고 종전 후 귀환이라는 전형적인 디아스포라적인 원칙을 따르는 사례가 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국제적으로는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디아스포라는 그 오랜 역사적인 사례들로 인한 아픔으로 인해 문화 예술계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난민들과 이주민들에 대해서도 그 개념이 자주 차용되어 쓰이며 영감을 주기도 한다.
어떤 이는 인류 전체가 어쩌면 디아스포라적인 삶의 원칙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닐까 라며 인류 그 원래적 동질성을 불어넣는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디아스포라적인 삶에서 이제는 슬픔은 따로 떼어놓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내놓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젠 각종 문명의 발달로 드넓은 세계는 지구촌화되어 버렸고 너나 구분할 것 없이 그 정체성에서 인류라는 그 원래적 형질로 단순 귀결되고 있는데, 너나 구분이 의미가 없을 만큼 거리가 좁혀졌는데 새삼 슬픔에 겨워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어 갈 것은 없지 않느냐는 단순명쾌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관념 안에는 디아스포라에 비견되는 나그네가 있기는 하다. 단순하게 연관성을 찾아본다면 디아스포라의 이주 혹은 이민의 개념에서 찾아보는 것인데 우리 모두는 본래 고향(본향)에서 떨어져 나와 이민자적인 나그네 삶을 꾸려나가며 잘 때 머리는 항상 고향을 향해 두며 잔다는 사상인데 이런 전통적인 사상측면에서, 그리고 실제적으로 각종 문명의 이기의 발달로 인해 좁아진 국제 지역 간의 거리를 체험하며 어느 작가는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의미기는 하지만 역마살이라는 전래적으로 내려오는 부정적인 개념도 우리에게는 널리 사용되는데, 물론 이것은 국경을 넘어 음식과 길과 문화가 낯선 광대한 지역으로 떠나게 되는 관념과는 자못 다르긴 하지만 이동이나 이주라는 측면에서는 비슷하다고 하겠다.
이 책은 디아스포라의 개념을 놓고 역사적인 사례와 아울러 그 개념적 경계를 긋는 작업과 아울러 인류 역사에 미치는 각종 영향들을 역시 역사적 사례들을 들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2017. 8)
1.제목 : 디아스포라 이즈is
2.저자 : 케빈 케니
3.역자 : 최영석
4.출판 :도서출판 앨피 2016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