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싯다르타’로 만나본 우리들의 스승
글/스텔라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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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말, 문화예술공연의 PR을 전문으로 맡고 있는 Davidson & Choy로부터 초청장을 받았다. 뮤지컬이라면 빼놓지 않고 보아왔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뮤지컬의 공연이 있을 예정이니, 와달라는 것이었다.
공연은 단 이틀간이었고 장소는 Herb Alpert’s Vibrato Grill Jazz Restaurant(2930 Beverly Glen Circle, Bel Air CA 90077)이었다. 극장도 아니고 작은 재즈 바에서 하는 뮤지컬 공연이라? “뭐 학예회 하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Siddhartha, the musical’이라는 제목이 범상치 않은데다가 이 뮤지컬이 탄생된 배경이 이태리 밀라노 형무소 수감자들의 교화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에 급관심을 갖게 됐다.
흉악범 수감자들의 재활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뮤지컬
2006년, 싱어송 라이터인 Isabella Isabeau Biffi는 이태리 밀라노에 있는 Opera Jail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Opera Jail이라는 조직에서는 흉악범 수감자들의 재활을 돕고자, 오페라와 뮤지컬 등의 공연에 수감자들을 캐스팅하는 워크숍을 이끌고 있었는데, Isabeau에게 이 프로그램을 맡아달라는 청이 들어온 것이다.
Isabeau는 헤르만 헷세의 원작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한 ‘싯다르타’를 뮤지컬로 만들어 수감자들이 공연을 하게 되면, 음악뿐의 순화적 기능뿐만 아니라 그 내용까지도 수감자들의 삶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Fabio Codega와 함께 소설 싯다르타를 각색하고 작곡해 ‘뮤지컬 싯다르타”를 완성한 후, 수감자들을 스태프와 캐스트로 한, 워크숍을 연출했다.
싯다르타를 공연하면서 일어난 기적들
형무소에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적 같은 일이 수없이 일어났다고 한다. 부정적이고 분노에 가득차 있던 수감자들의 얼굴은 평화로워지고 가슴 속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고백을 하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된 작품은 이제 형무소 극장을 넘어 일반 극장에서까지 공연되었다. 그리고 밀라노의 비평가들과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아내기에 이른다.
LA에서의 공연 당일, 제작자 가운데 하나인 Gloria Grace Alanis는 ”뮤지컬 싯다르타로 이태리 형무소 시스템을 진화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이 실험적 뮤지컬이 풀스케일로 다시 만들어져 이탈리아 전역을 순회 공연한 후, 이번에 미국에도 소개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뮤지컬 싯다르타는 이태리 전역의 순회 공연 이후, 유럽 투어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고 미국에서도 콘서트 버전으로 비평가들과 일부 제한된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뉴욕에서는 LA 공연의 일주일 전인 1월 23일과 24일, ‘54 Below’라는 곳에서 프리미어를 가졌고, 1월 27일과 28일에는 LA, 그리고 2월 1일에는, 멕시코 Costa Careyes Private Estate Resort에서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싯다르타’ 콘서트 버전은 지난 8월, 에딘버그에서 공연되기도 했고 그 후, 아시아 투어에 들어갔다.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가 원작
뮤지컬은 헤르만 헷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원작에 충실하게, 싯다르타 왕자의 영적 구도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이태리와 남 아시아의 영향을 받은 Pop Rock 풍의 뮤직 스코어에서는 관능미마저 넘친다. 이날 공연은 이태리어로 진행됐고, 영어 나레이션을 곁들여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공연 기획사, 브로드웨이 인터내셔널 엔터테인먼트
이 공연을 기획하고 추진한 Broadway International Entertainment (BIE)는 Marc Routh와 Simone Genatt Haft가 설립한, 전 세계 공연 시장을 타켓으로 하는 프러덕션, 매니지먼트, 공연 기획 컨설팅 회사다. 바로 얼마 전까지 20여 년 동안, Broadway Asia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40개국의 400개 도시에서 Sound of Music, The King and I, The Producers, Hairspray 등, 수많은 뮤지컬 공연들을 기획하고 유치해왔다.
프로듀서와 한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특히나 공동 설립자인 Simone Genatt Haft는 한국의 토종 공연 ‘난타’를 ‘Cooking’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국제적 규모의 공연으로 키우고 50여 나라에 수출한 장본인. 워너 브라더즈, 드림웍스, 유니버셜, MGM 등 할리웃의 대형 영화사에서 탄탄한 기획 능력과 인맥을 쌓아온 그녀를 공연장에서 만나, 한국과의 인연, 그리고 한국 뮤지컬 관객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난 20년간 Simone Genatt Haft 는 한국을 100번도 넘게 방문했다. 목적은 브로드웨이의 뮤지컬들을 한국에서 공연하기 위해서였다. 이제까지 그녀가 한국에서 오프닝을 도왔던 뮤지컬은 42nd St. King & I, Sound of Music, Catch me if you can, Legally blond, Rock of ages 등 50작품도 넘는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한국 뮤지컬 팬들은 가슴이 뜨거워요.
“한국은 제가 전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 시장입니다. 저는 한국과 사랑에 빠졌어요. 1994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죠. 그 후 80번도 넘게 한국을 방문했고, 그동안 한국의 수많은 파트너들과, 소극장 작품에서부터 대형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저는 한국의 대학로를 너무 좋아합니다. 대학로의 젊은 관객들로부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뜨거운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거리에서 데스크를 배치해 놓고 티켓을 팔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공연 시장으로서 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기회와 미래를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한국인 스태프들과 일하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에요. 공연하는 배우들의 태도에서는 삶을 예술에 걸었다는, 진지한 태도가 엿보입니다. 가슴에서부터 모든 게 나오죠. 공연 기술의 발전도 눈부십니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지만 뮤지컬 관객의 숫자는 아주 큽니다. 한국은 일본 중국과 함께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마켓인데요, 그 가운데서도 최고예요.”
그녀는 한국 음식은 물론, 한국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며 전 세계에 대한 한류의 영향력에 대해, “싸이는 온라인에서 수억의 팔로워를 가진 아티스트에요. 미국의 수퍼볼에서도 싸이의 공연을 보여줍니다. 대단한 거죠.”라고 말했다.
그녀는 “‘뮤지컬 싯다르타’가 세계 시장에서 성장할 가능성을 믿는다”며, “아직 한국에서는 공연되지 않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이 작품을 뉴욕, 런던, 서울 등 국제적인 도시에 올리는 것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관객들은 가장 활발해요. 소리지르고 박수 치고, 가슴을 모두 열고서 공연을 즐깁니다. 관객층도 아주 젊어요. 이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미래가 무척 밝다는 것을 의미하죠.”
뮤지컬과 공연 마켓에 있어서도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며 주목해야 할 나라임을 Simone Genatt Haft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르마 형제들
뮤지컬 ‘싯다르타’를 공연하며 흉악범 재소자들의 표정이 평화로워지고 가슴 속 상처가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분명 음악에는 치유의 에너지가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한 치유의 역사를 우리들은 기억하고 있다.
알라바마 도널슨 형무소에서 일어난 기적
도널슨 형무소(Donaldson Correctional Facility)는 버밍햄의 남서부, 알라바마 교외 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수감돼 있는 1,500명의 제소자들은 미 전국에서 가장 위험한 흉악범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쎈 놈들을 가두어 두고 조절하기 위해 도널슨 형무소의 시큐리티 타워는 아주 높게 만들어져 있었고 전기가 흐르는 이중 쇠창살은 삼엄하기만 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다
이처럼 어두운 공간에 불꽃이 일었다. 누군가가 제소자들을 대상으로 정규적인 명상 클래스를 시작한 것이다. 이 독특한 집단 사이에서의 명상 클래스에 관심을 갖게 된 Jenny Phillips라는 몬화인류학자이자 심리치료사는 1999년 가을, 도널슨 형무소를 방문하고 명상 클래스에 참가한 재소자들을 관찰했으며 그들과 인터뷰를 나누어 ‘다르마 형제들(The Dhamma Brothers)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개별 면담을 해나가면서 그녀는 재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기꺼이 대화를 나누려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있음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들 중에는 평생 형무소 밖 세상을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긴 형량을 받거나 종신형을 선고받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보다 의미있는 삶과, 사회적 감정적 변화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그녀가 그 형무소에서 들었던 고백들은 그냥 잊어버릴 수가 없는 내용들이었다. 그녀는 명상 클래스에 참가하는 재소자들이 열악한 감옥 안에서도 내면의 평화와 자유로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 자신도 명상을 생활화하고 있던 터라 명상이 개별적 삶의 고통과 문제들을 객관화시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심플하면서도 강력한 도구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600년 전, 붓다의 가르침이 21세기 북미 지역의 형무소 안에서 이처럼 영향력을 발휘하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쉽지 않았다.
재소자들의 존재와 삶을 변화시킨 명상
이 재소자들이 100시간이 넘도록 침묵하며 깊은 명상에 이르는 위빠싸나 프로그램을 모두 마쳤다는 것은 그녀에게나 우리들에게나 커다란 감동을 준다. 그들은 이처럼 고요에 머무는 명상을 통해 삶이 할퀴고 간 개인의 상처들을 모두 다 이겨냈다.
“다르마 형제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이 멋진 프로그램에 참가한 죄수들의 삶을 가까이서 조명해 봄으로써 인간 본성의 개선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형무소는 죄인들을 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명상은 이들을 진정으로 교화시키고 갱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명상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재소자들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커다란 몸집에 언제 했던 싸움 탓인지 모르지만 이빨도 나가 흉칙한 모습, 얼굴과 몸에는 당연 깊은 칼자국이 위협적으로 자리하고 있고 살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총천연색 문신은 그들이 세상을 향해 얼마나 큰 분노를 가지고 살아왔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좌정하고 앉아 가만히 호흡을 바라보며 숨쉬기에 집중하는 명상을 통해 재소자들은 다시 태어났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그들의 표정에서는 평화, 안식, 편안함이 읽혀진다.
명상은 험악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희망
세상은 점점 험악해지고 살벌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내 한 몸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처절하게 고민해왔다면 당장 눈을 감고 명상을 시도하자.
내 영혼이 평화를 얻고 내 주변의 파장이 평화로 가득해지면 가정과 사회가 평화로워지고 나라 또한 그렇게 된다.
새해에는 나의 마음, 그리고 더 나아가 인류의 평화를 위해 명상을 생활화해야겠다고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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