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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
성경 시편 147:1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이는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 좋으며, 그것이 즐거움이요, 찬양은 합당한 것임이라.
주를 찬양하라. 이 말씀은 명령이다.
따라서 찬양은 드려도 되고 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드려야 한다.
찬양(讚揚)은 아름답고 훌륭함을 크게 기리고 드러냄, 찬송(讚頌)은 기록된 것을 기리고 칭송한다는 의미로 두 단어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면 안 되는 참으로 많은 노래들이 있다.
그 노래들을 장르에 따라 구분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발라드, 댄스, 팝, r&b, 힙합, 록, 일렉트로니카, 재즈, 클래식, ost, ccm, 국악, 트로트, 뉴에이지, 동요 등(15개)으로 분류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142개 장르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 노래를 성경적으로는 보면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육적인 음악이다.
주로 육신적인 쾌락을 추구하며 흥을 돋우는 음악이다.
락(Rock)은 1950년대 초 미국에서 생겨난 대중음악의 한 형식으로 강한 비트로 구성되어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며 젊은이들의 욕구 불만을 표현하는 음악이다.
힙합(Hip Hop)은 1980년대 미국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했고 헐렁한 옷을 입고 다이내믹한 춤을 추는 음악의 총칭이다.
이처럼 육신적인 음악은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토속음악과 같이 북이나 나무통을 두드리며 흥을 돋우는 음악으로 우리나라 전통가요나 요즘 아이돌이 부르는 댄스와 같은 것들이다.
둘째 혼적인 음악이다.
클레식 18세기 가장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시대에 작곡된 음악이다.
발라드, R&B, OST와 같은 음악이다.
그러나 교회에 침투한 세 종류의 혼적인 음악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뉴에이지 음악 (New Age) 가사가 들어가 있지 않은 악기 형식의 음악으로 무드음악, 환경음악, 무공해 음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징은 비트가 없는 서정적인 음악으로 동양적 관점에서 보면 명상음악이라 볼 수 있다.
주로 어구스틱이나 신시사이저와 같은 최첨단 악기를 사용한다.
사람의 감성을 자극해서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음악이다.
복음성가(福音聖歌) 예수님의 가르침과 구원을 노래하기 위해 미국에서 생겨난 노래로 가스펠송 (gospel song)이라 한다.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동시대 대중음악의 형식을 취하면서 내용 면에서는 기독교 정신을 담아내는 모든 장르를 포함하는 음악으로 대부분 교회에서 받아 들이고 있기에 가장 위험하다.
이 음악은 마치 위에는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었지만 아래는 트레이닝 바지에 흰 고무신을 신은 것처럼 조화와 균형을 깨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영적인 음악이다.
바로 우리가 부르고 있는 찬송가다.
찬송가는 기교나 꾸밈이 없이 진실 되게 불러야 한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는 대부분 필라델피아 시대에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 속에서 겪은 사실을 눈물로 쓴 은혜로운 간증이며 신앙고백에다 곡을 붙인 것이다.
수많은 찬송곡이 있지만 그 중에 일부를 알고 있으며 경배 때 부른다.
하지만 찬양은 지금도 살아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간증으로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또한 불려 져야 한다.
오늘 설교제목은 왜!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가? 이다.
찬송가 306장(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찬송을 부를 때마다 구주이신 주님을 생각할 것이다.
그 찬송을 작곡한 파니 제인 크로스비(Fanny Crosby, 1820-1915)는 95년 동안 무려 8,500곡을 만든 위대한 찬송 작가이며 하프연주자요, 오르간니스트였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생후 6주 만에 약사의 잘못 된 처방으로 실명되어 평생을 암흑과 함께 살면서 사도 바울처럼 육체의 가시인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고 오히려 자신이 눈 먼 것에 감사하며 살았던 그리스도인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영적인 눈으로 어느 누구보다도 주님을 밝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날마다 찬양해야 한다.
왜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가?
날마다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힘들 때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찬양은 감사한 일이 있을 때 뿐 아니라 병상에 있는 환자를 찾아가서도 부르고, 결혼식장에서도 부르고, 심지어 장례식장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찬양을 부른다.
그리스도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시50:23 누구든지 찬양을 드리는 자는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시편 기자는 시편 마지막 편 마지막 절에 인간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 즉 호흡이 있는 자들은 창조주를 숭앙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찬양해야 함을 기록하고 있다.
찬양은 입술의 열매요, 정직한 사람에게 합당한 것이라고 찬양에 대한 정의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찬양 드려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이 땅위에 모든 신들, 우상들은 다 저주의 대상이지 찬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찬양의 대상을 알고, 찬양의 당위성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어떤 때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가를 정확하게 알고 찬양해야 한다.
시147:3 그는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들을 싸매어 주시는 도다.
신앙생활이 힘들 때일 수 록 찬양이 오히려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소망을 준다.
힘들 때 위로가 되는 것은
1. 절망 가운데서도 힘을 얻기 때문이다.
누구나 생각지도 않은 일들로 인하여 절망에 빠질 수 도 있다.
천재지변을 통해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온갖 정성을 다해 지은 건물과 가꾼 농작물들이 유실되고 삶의 터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다윗은 시편에서 절망과 슬픔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불안해하지 않는다.
시42:11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담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내 안에서 불안해 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내 얼굴을 강건케 하시는 분이요, 나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내가 여전히 찬양하리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바로 이러한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절망에 빠져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주님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절망 가운데서 건져 내주시는 주님을 찬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28:7 주는 나의 힘이시요 나의 방패시라.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받았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즐거워하니, 내가 내 노래로 그를 찬양하리라.
따라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생활이 닥쳐도 절망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찬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 때 위로가 되는 것은
2. 속사람을 강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출생한 오거스터스 토플레디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슬픔과 절망 속에서 낙심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영국을 떠나 아일랜드로 가는 도중 한 시골 작은 집 곡간에서 쉬고 있었다.
한 밤중에 시골 농부가 주님을 찬양하는 내용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비록 그의 육신은 춥고 배고프고 초라했지만 그의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부자가 되었다.
그가 그때 자신에게 일어난 감격했던 마음을 써내려간 찬송시가 바로 265장 “만세 반석 열리니” 다.
이름 없는 시골 농부의 찬양이 훌륭한 설교자이며 작곡자를 만든 것이다.
고후4:16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라. 오히려 우리의 겉 사람이 썩어질지라도 우리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나니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이 원하고 계획하는 모든 일들이 다 잘되지 않을 수 있다.
때로는 다시는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낙심되고 좌절에 빠질 수 도 있다.
그리스도인은 좌절을 겪을 때도 동일하게 찬양해야 한다.
낙심하여 슬픔에 잠겼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찬양을 부르는 것보다 더 큰 위로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장례식장에서는 어찌 찬양을 부를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낙심해서는 안 된다.
찬양을 통해서 날마다 속사람이 더욱 강건해져야 한다.
힘들 때 위로가 되는 것은
3. 고난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이 닥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주님은 참으로 놀라운 분이시다.
왜냐하면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기 때문이다.
고난과 역경에서도 참고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은 바로 찬양을 부를 때 얻을 수 있다.
고난가운데도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다.
베드로와 바울은 감옥에 갇혔을 때도 찬송을 부르므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시32:7 주는 나의 은신처시니 주께서 고난으로부터 나를 보호하시며 구원의 노래들로 나를 두르시리이다. 셀라.
여기에 셀라는 반석이신 주님을 의미한다.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닥친다고 해도 주님이 함께하시는 한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시50:15 고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구해 낼 것이요, 너는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다윗은 고난의 날에도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었던 사람이다.
시86:7 내 고난의 날에 내가 주를 부르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응답하실 것임이니이다.
다윗이 수 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어려움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확신 가운데 찬양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날마다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둘째 영적 전쟁에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찬양은 감사 할 때나 힘들고 어려울 때만 부르는 것이 아니다.
마귀와 대적해서 싸울 때도 찬양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크던 작던 영적전쟁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말씀의 칼과 믿음의 방패뿐 아니라 찬양역시 참으로 중요한 무기 중에 하나다.
찬송 373장은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담대하게 싸울지라 저기 악한 적병과...찬양은 놀라운 능력이 있다.
찬양은 마귀의 공격을 능히 방어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만들기도 한다.
담대하게 적진을 향해 돌격해 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매일 영적 전쟁을 치르기에 찬양은 매일 드려져야 한다.
영적전쟁에 무기가 되는 것은
1. 담대한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전쟁을 앞에 두고 있다면 두려움과 불안함이 없을 수 없다.
아무리 여러 번 전쟁에 참여한 베테랑이라 할지다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은 조금도 방심하거나 한 눈을 팔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담대함과 용기를 주는 것이 바로 주님을 향한 찬송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영적 전쟁의 용사가 되어야 한다.
요일5:14 우리가 그의 안에서 가지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그가 우리를 들으시는 것이라.
영적 전쟁에 앞서 찬양은 진실 된 그리스도의 군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딤후2:3 그런즉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로서 고난을 견뎌내라.
고난을 이겨낸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는 찬송은 더욱 힘이 넘친다.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매일 매일 입에서 찬양이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든 찬양을 듣고 부를 수 있다면 보다 더 효과적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영적전쟁은 담대한 용기가 없이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으며 이러한 담대함과 용기는 바로 찬양을 통해서 얻는다.
영적전쟁에 무기가 되는 것은
2. 적의 기선을 제압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악한 자와의 대적에서 찬양은 적의 기선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다.
찬송 374장은 십자가 군병 되어서 주 위해 싸울 때 저 마귀 무서워하여 주 모른 체 할까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전쟁에 관한 찬송을 통해 더욱 강력한 군사가 되어야 한다.
우렁찬 함성과 함께 부르는 찬송은 마귀를 당혹케 만들기 때문이다.
찬양 할 수 있다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러한 싸움이 역대기하20장에 나오는데 참으로 대단한 싸움이다.
대하20:22 그들이 노래하고 찬양하기 시작하자 주께서 복병들을 두시어 유다를 치러 오는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을 대항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패하였더라.
찬양은 마귀의 공격을 부수는데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다.
“죠지 더필드장례식에서 설교를 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용사가 되기로 헌신했는데 그 때 설교 본문이 바로 찬송가 375장이다.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십자가 높이 들고 굳세게 싸워라. 주께서 승전하고 영광 다 얻도록 주 군대 거느리사 늘 이김 주시네....
영적 전쟁에서는 한시도 마귀에게 틈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누구라도 언제든 쓰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귀를 대적하여 싸우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찬양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적전쟁에 무기가 되는 것은
3. 놀라운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찬양은 세상 사람들이 상상 할 수도 없는 힘을 준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영적전쟁을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부르는 찬양이 있다.
찬송 377장은 선한 싸움위해 받은 십자가 군기를 굳게 잡고 왕의 기수되어 용감스럽게 찬송하며 나가세 나가세 나가세 담대한 주의 군사여 목숨 다하여 싸우면 최후 승리 얻겠네.
영적 전쟁은 목숨을 다하여 싸워야 할 만큼 치열한 전투다.
따라서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약4:7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로부터 도망하리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마귀를 대적하여 그리스도의 군사로 굳게 서야한다는 경각심을 갖도록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들과 싸워야 하기에 더욱 주님이 주시는 능력의 힘이 필요하다.
따라서 마귀와 담대하게 싸우기 위해서 힘 있게 찬송을 부르는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더 신실하게, 더 열정적으로, 더 진실 된 마음으로, 더 지속적으로....찬양 드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를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셋째 경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할렐루야는 히브리어(הללףה), 헬라어(Αλληουια)로 우리말로 해석하면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다.
하지만 그 단어 안에는 참으로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기에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찬양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간증을 노래하는 것이다.
“할렐루야”라는 단어는 개역성경(27번)한글 킹제임스 성경에는 오직 요한 계시록에 4번 기록되어있다.
그것도 만물이 회복이 되어 천년왕국 직전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 할 때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이 세상에 살면서 계속해서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특히 경배는 설교와 기도와 예물 드리는 것과 함께 반드시 찬양이 있어야 한다.
주님을 찬양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경배를 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자는 반드시 거듭나야 하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리를 따라 드려져야 한다.
경배의 일부가 되는 것은
1. 영적인 산 제물이기 때문이다.
경배를 드리는 것은 영적인 행위다.
영적인 예배를 관장하고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성령이시다.
하나님의 자녀가 경배드릴 때 찬양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게, 가장 정성을 다하여, 가장 진심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어떠한 악도 잡념도 마귀적인 생각도 침투하지 않도록 기도하고 찬양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이는 제물인 물질을 준비하여 드리듯이, 또한 찬양도 영적인 제물인 것이다.
히13:15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해서 찬양의 제물을 하나님께 계속해서 드리자, 이것이 그의 이름에 감사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
찬양의 제물은 한, 두 번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드려져야 한다.
우리는 찬양을 부르기 전 찬송가 오른쪽 하단에 있는 주제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찬송을 작사하고 작곡한 신실한 형제, 자매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된다면 더욱 큰 은혜가 될 것이다.
이처럼 찬양은 경배를 드리는 데 필요한 하나의 준비 과정이 아니라 찬양을 드리는 것이 바로 경배 그 자체다.
경배의 일부가 되는 것은
2. 주님을 향한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다.
찬양은 꼭 전문적인 음악을 공부한 사람들에 의해 작사되고 작곡되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신실한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간증들을 적은 것이 바로 찬송시다.
시편은 바로 다윗이 겪는 다양한 과정 속에서 주님을 향한 마음을 적은 것이다.
따라서 찬양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생생한 체험을 통한 진리를 제시한다.
다윗은 시편150장을 통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시150:6 호흡이 있는 모든 것들로 주를 찬양케 하라. 너희는 주를 찬양할지어다.
찬송가 33, 34, 50, 57장 외 에도 9곡을 작시한 필립 폴 블리스는 복음 전도자로 1876년에 겨우 38세의 나이에 주님 품으로 갔으나 그가 남긴 찬송가는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켜 주님께로 인도했다.
그는 열차가 추락할 때 기적적으로 탈출했으나 아내를 구하려다가 결국 죽게 되었는데 그의 여행용 트렁크 속에서 발견한 찬송시가 바로 찬송가 57장이다.
“저주받을 나의 영혼 자유 얻게 하셨네 속죄하신 주의 사랑 내가 찬송하리라.”
이처럼 그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지옥에서 구원해주신 주님을 향한 마음으로 찬송시를 썼던 것이다.
경배의 일부가 되는 것은
3. 마귀의 방해를 막아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가장 큰 목적은 자신의 구주이시고 창조주이신 주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다.
주님은 지금도 자신의 이름들 드높이는 그리스도인의 찬양을 받으시길 원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좌를 덮은 기름부음 받은 그룹이었던 루시퍼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임무를 맡았었지만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보좌를 감히 찬탈하려다 실패하여 결국 반역자로 사탄이 되었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왜냐하면 찬송가 가사를 들어보면 모두 주님께 드리는 감사와 기쁨에 대한 내용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시149:1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새 노래로 주께 노래하며 성도들의 회중 가운데서 그를 찬송하라.
찬양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해 드려지는 경배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기교를 부린다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찬양을 마치 세상 음악처럼 대해선 안 된다.
찬양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재능이며 은사다.
그러나 그런 좋은 재능을 세상적인 일이나 자신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사용한다면 교만해지거나 자만하게 되어 가장 큰 죄를 짓는다.
따라서 특별찬양을 준비하고 참여하는 지체들은 더욱 기도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지휘자는 물론 반주자도 마찬가지다.
비록 연습할 때도 기도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마귀는 주님의 사역이 확장되고 강성해 지는 것을 절대 구경만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에는 오히려 다양한 음악을 통해 마귀는 많은 사람들을 실족 시킬 것이며 영적 무지한 자들을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미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음악 속에도 다양한 문화 스포츠에도 마귀의 사악한 계략이 숨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