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커피숍에는 격리된 흡연실이 있었습니다. 한창 사람이 붐빌 때는 열 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곳에서 흡연자의 설움을 달래며 담배를 뻑뻑 피워대곤 했죠. 그런데 혹시 담배 연기 자욱한 그 흡연실 한 구석에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나 아빠가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담배 맛이 싹 달아나겠죠. "미친 거 아냐!"
그런데 황사가 한국을 덮친 지난 3월 21일(토요일) 우리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21일 오후 5시, 서울시 마포구의 초미세 먼지(PM2.5) 농도는 1세제곱미터당 125마이크로그램까지 치솟아 기준치(시간당 평균 120마이크로그램)를 웃돌았죠. 서울시 전체의 초미세 먼지 농도는 82마이크로그램. 이날 서울 시내는 마치 열 명이 한꺼번에 담배를 피워 대는 흡연실과 같았습니다.
혹시 이날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면, 아이가 숨을 한 번씩 들이쉴 때마다 수많은 먼지들이 폐 깊숙이 박혔을 겁니다. 겁부터 주지 말라고요? 아니요. 좀 더 겁을 줘야겠습니다. 미세 먼지의 위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니까요. 많은 언론이 미세 먼지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데도, 굳이 이런 자리를 또 마련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먼지가 사람을 공격하다
아직도 먼지 따위에 왜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반신반의하는 이들을 위해서 좀 더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맞습니다. 먼지는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강원도 산골의 공기 좋은 곳에 살더라도 날마다 최소한 15억(!) 개의 먼지 입자가 코와 입으로 들어갑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그 몇 배의 먼지를 마시며 살아가죠.
다행히도 우리 몸은 먼지의 공격에 맞서는 놀랍도록 정교한 방어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콧구멍으로 들어온 먼지는 일단 코털에 잡히죠. 운이 좋게 이 방어선을 뚫은 먼지는 나선형으로 된 (먼지 입장에서는 길고 긴) 미로(비개골)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 미로에서 코로 들어온 먼지의 대부분은 갈 길을 잃고 끈적끈적한 벽에 붙잡히죠.
운이 좋게 코를 통과한 먼지도 목 앞쪽에 위치한 후두에서 다시 한 번 저지당합니다. 끊임없이 흘러드는 침에 휩쓸려 목구멍을 통과해 위 속으로 실려 가죠. 이런 방어 체계 덕분에 자연에서 발생하는 흙먼지, 꽃가루 등 대부분의 먼지는 목구멍을 통과해서 몸속으로 침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100년간 이런 균형 상태가 깨졌습니다. 수십 만 년 동안 우리 몸이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먼지가 우리 몸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죠. 우리 몸은 그런 먼지를 막을 만한 방어 체계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바로 자동차, 공장, 발전소 등에서 나오는 아주 작은 먼지가 그 주인공입니다. 지금부터 이들을 '미세 먼지(Particulate Matter)'라고 부르겠습니다.
소리 없는 살인자, 초미세 먼지
이런 미세 먼지가 처음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당시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정도 되는 크기의 먼지가 관심을 끌었죠. 이 먼지의 크기가 10마이크로미터(10의 -6승 미터) 정도여서, 이런 먼지에 'PM10(Particulate Matter 10)'이라는 이름을 붙였죠.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과학자들은 훨씬 더 작은 먼지의 위험을 알아채기 시작했습니다. 크기가 PM10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2.5마이크로미터 이하라서 'PM2.5(Particulate Matter 2.5)'라 부르는 괴물이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죠. 과학자들은 이 괴물에게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희생당해왔는지를 짐작하고선 경악에 빠졌죠.
ⓒ프레시안(손문상)
사실 PM10만 하더라도 우리 몸이 호락호락 침입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목구멍에서 폐로 통하는 통로인 기관지 내막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점액이 먼지를 붙잡기 때문이죠. 이렇게 붙잡힌 먼지는 다시 목구멍으로 옮겨져 침에 휩쓸려 위로 넘어가거나, 기침이나 날숨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죠.
초미세 먼지, 즉 PM2.5는 사정이 다릅니다. 이 정도 크기의 먼지라면 코에서 폐까지 놓인 수많은 덫을 요리조리 피하며 폐를 직접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폐 속의 작은 공기 주머니인 허파꽈리(폐포)까지 침입합니다. 이렇게 허파꽈리에 박힌 초미세 먼지는 그곳에 버티며 폐를 망가뜨리기 시작하죠.
WHO "미세 먼지는 1급 발암 물질"
지난 100년간 PM2.5 등의 미세 먼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산업 국가의 도시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미세 먼지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내놓은 것만은 확실합니다. 보다 못한 세계보건기구(WHO)가 나선 것도 이런 사정 탓이죠.
WHO는 2013년 10월 17일, 미세 먼지를 "1급 발암 물질"로 지정했습니다. 미세 먼지와 같은 그룹(Group I)에 속한 발암 물질 가운데는 (치명적인 폐암을 유발하는 발암 물질로 악명 높은) 석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주요 성분이자 핵폭탄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자외선, 담배 연기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세 먼지를 석면, 플루토늄은커녕 자외선이나 담배 연기만큼 걱정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죠. 미세 먼지 농도가 만만치 않았던 지난 주말(3월 28~29일)에도 집 앞 공원에는 아이 손을 잡고 산책 나온 사람들로 붐비더군요. 아이가 뛰다가 숨을 가쁘게 몰아쉴 때마다 또 얼마나 많은 먼지가 폐 속에 깊숙이 박혔을까요?
그렇게 몸속에 박힌 미세 먼지는 어떻게 아이 몸을 망가뜨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