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의 산(山) (2006. 5. 1)
진안문화원
(※주화산//주화산은 진안지방에 실재하지 아니하는 산이다). 하단 3쪽(산경표)에 게재됨 )
진안의 산//鎭安-山//
이 책에는 다음의 산들이 항목으로 실려 있다. 가마봉, 가매봉, 갈마음수산, 갈미봉1, 갈미봉2, 갈미봉3, 갈쿠리봉, 감투봉1, 감투봉2, 갓모봉, 갓봉, 개산, 거늠산, 건네산, 고금당산, 고리봉, 고산, 고수봉, 공굴산, 공수봉, 공알봉, 관두산, 관봉, 구봉, 광대봉, 광덕산, 괘양산, 구봉산, 국사봉1, 국사봉2, 국사봉3, 깃대봉1, 깃대봉2, 깃대봉3, 까치봉, 고깔봉, 꼭지산, 꽃봉산, 나도산, 남산, 내동산, 노고산, 노적봉, 닭뫼, 당산, 당산봉, 당재봉, 대덕산1, 대덕산2, 대두산, 덕태산, 도굿대봉, 독뫼1, 독뫼2, 독재봉, 독태산, 동림대, 돛대봉, 두루봉, 두미봉, 두억봉, 뒤상두봉, 뒷동산1, 뒷동산2, 딴들봉, 떡뫼산, 마두봉, 마문봉, 마이산2, 마치산, 만덕산, 매방제산, 매봉1, 매봉2, 매봉3, 매봉산, 매봉재1, 매봉재2, 멍덕봉, 멍덕봉, 명덕봉1, 명덕봉2, 명덕봉3, 명도봉, 무봉산, 무봉산, 무재봉, 문필봉, 물봉산, 민살재, 바거리봉, 바구리봉, 바구리산, 방미산, 배때기산, 배미산, 배태기산, 백덕산, 백두산, 백마산1, 백마산2, 백택산, 복두봉1, 복두봉2, 복지봉, 복호봉, 봉란산, 봉우재, 봉화봉, 봉화산, 봉황산1, 봉황산2, 부구리산, 부귀산, 부엉댕이, 부운봉, 부흥산, 북덕재봉, 불당산, 사자봉1, 사자봉2, 사자산, 사창산, 산영치, 산재봉, 삼태봉, 삿갓바우산, 삿갓봉1, 삿갓봉2, 상투봉, 생남산, 서다산, 서비산, 서산, 선각산, 선봉, 성덕봉, 성뫼산, 성미산, 성봉, 성사산, 성수산1, 성수산2, 성수산3, 성안산, 성재산1, 성재산2, 성주봉1, 성주봉2, 성치산, 세리봉, 속금산, 송산, 쇠말봉, 쇠술뫼, 수원산, 시루봉, 시루봉1, 시루봉2, 시루봉3, 신앙골산, 싸리골산, 쌍교봉, 알미산, 양계봉, 여수바우산, 연석산, 영갱이산, 영구산, 옥녀봉1, 옥녀봉2, 옥새봉, 용각봉, 용강산, 용마봉1, 용마봉2, 용마봉3, 용출봉, 우제산, 우족산, 우화산, 운장산, 원산, 원암산, 원오봉, 유산1, 유산2, 응봉1, 응봉2//鷹峰, 응봉3, 장구봉, 장군바우산, 장군봉1, 장군봉2, 장군봉3, 장군봉4, 장봉, 제천봉, 조고리봉, 조리봉, 주미산, 주줄산, 중대산, 지소산, 지장산, 지초봉, 질마봉, 처사봉, 천마산, 천반산, 철마산, 초승봉, 추줄뫼, 추줄산, 측량기봉, 큰봉1, 큰봉2, 큰성터산, 큰양지산, 큰재복지산, 탁조봉, 투구봉1, 투구봉2, 팔공산, 평산, 할미동산, 형제봉1, 형제봉2, 화개산, 화산, 황정산, 훈돗골산,
진안의 고개//鎭安---//
이 책에는 다음의 고개(재)들이 항목으로 실려 있다. 가래울재, 가래재, 가막골재, 가막재1, 가막재2, 가장골재, 가정고개, 가제재, 가주기재, 가죽재, 가치, 각호막치, 각호치, 갈거리재, 갈크매기재, 강녕곡치, 강녕골재, 강정골재, 고난치, 고남재1, 고남재2, 고남치1, 고남치2, 고남치3, 고내미재, 고내미재, 고네미고개, 고듬치, 곰티재1, 곰티재2, 과거재, 광대정이고개, 광대정치, 광산재, 괴굇재, 구름재, 구신치, 구실재, 구치, 국기재, 국기재, 굴고개, 굴치, 금당재, 금현, 기암지고개, 까막고개, 꼬부랑재, 꽃재, 노래재, 노루고개, 노루목고개1, 노루목고개2, 노루목고개3, 노루목재1, 노루목재2, 놋점이재, 느름재, 느릅재, 늦은목고개, 늦은목재, 닥실고개, 단밧재, 달롱개재, 담뱃재, 당골재, 대고개, 대매골재, 대목재, 대양치, 대양치, 대웅재, 도래실재, 도짓재, 된살목재, 두남치, 두문동고개, 뒷재, 들말고개, 등땡이재, 땅재, 땅재, 띠개고개, 마구실재, 마당재1, 마당재2, 마당재3, 마령재, 마령치, 마리지고개, 마월치, 마재, 마재재, 마전치, 마치1, 마치2, 마치재, 마현, 만항치, 말고개, 말구를재, 말궁구리재, 말궁굴재, 말목재, 망바우재, 망중재, 매남이재, 매남치, 매봉재, 머구재, 머리고개재, 먹고개, 먹벵이재, 먹재1, 먹재2, 메네미재, 명밭골고개, 모래재, 묵치, 문수고개, 미치, 민상재, 밀고개, 반룡재, 반룡치, 반룡치, 방갯골고개, 방고개, 방곡재, 방곡치, 방골재, 배고개, 배남정이재, 배목재, 배치, 배치, 버들골재, 번덕고개, 벚나무재, 보룡공이재, 보룡현, 북덕재1, 북덕재2, 북적재, 불로치령, 불로티령, 비대재, 비대치, 비조재1, 비조재2, 비조치, 뻣나무재, 뼘재, 사기점골고개, 사루고개, 사옥재, 사직목재, 삭다리고개, 삭다리재, 산영재, 산영치, 살고개, 삼바실고개, 삼바실늦은질목재, 삽재, 삽치, 상남재, 상촌재, 상촌치, 새내재1, 새목고개, 새벼리재, 새질너머고개, 생암재, 서구리재//, 서구이치, 서낭당이재1, 서낭당이재2, 서낭댕이고개, 서낭댕이재1, 서낭댕이재2, 서당고개, 서두정이재, 서촌재, 서촌치, 서치, 설치재1, 설치재2, 섬티재, 성재1, 성재2, 성재3, 성지밧재, 성치1, 성치2, 성치3, 소리개재, 손곡치, 손실재, 손실치, 솝내재, 송림재, 송림치, 송현, 쇠막골고개, 쇠목재, 수리너미재, 숲밭재, 승치, 시금치재, 신광재, 신동재, 신동치, 신룡골고개, 심원재, 싸리재1, 싸리재2, 쑥밭재, 아드기재, 아래재, 아랫고개, 안산재, 앞재, 앞재, 언건이재, 여꾸실고개, 여시밭재, 연지고개, 연지고개, 열두고개, 염북재, 염북치, 염소막골고개, 영강재, 예끼재, 오계치, 오동리재, 오두재, 오두재, 오두치, 오리목재, 오리목재, 오산리재, 오얏고개, 외기재, 우무개재, 우무실고개, 운치, 웅령, 웅치, 월돈재, 윗고개, 율치, 율현, 응봉치, 응치, 이드릇재, 작은방골재, 작은싸리재, 작은재1, 작은재2, 작은재3, 장현//獐峴//⇒노루고개. 잿고개, 적내재, 적천치, 전드기재, 절연재, 절재, 젖못고개, 조심치, 조약재, 죽산치, 죽항치, 죽현, 중고개, 중고개, 중고개재, 중재, 지매실고개, 지자실고개, 진장목, 질마등재, 질마재, 질마재, 축령, 축치, 축치, 치재, 칠은이고개, 칠은이치, 코크니재, 퀴키재, 큰싸리재, 큰양재, 큰재, 탁고개, 탑고현, 탑치, 탕근바우고개, 터일재, 판치재, 하누재, 한우치, 형제바우고개, 호치, 혹도개재, 홍두깨재1, 홍두깨재2, 활목재, 활인동치, 황새고개, 황새목, 황새목재1, 황새목재2, 황소마재1, 황소마재2, 황정고개, 황조치, 후독치, 흰배넘기재
진안의 하천//鎭安-河川//이 책에는 다음의 하천들이 항목으로 실려 있다. 구량천, 구리향천, 금강, 남양강, 동천, 머우내, 모둠내, 무릉천, 무예천, 백마천, 상촌천, 서천, 섬진강, 소연천, 소축천, 소탄, 수성천, 신전천, 신정천, 안자천, 연장천, 예내, 예천, 오원천, 원천, 이천, 작은내, 적근천, 정곡천, 정자천, 제룡강, 주자천, 천천, 학선천, 학천, 합수내
진안의 수리시설//鎭安-水利施設//
이 책에는 다음의 수리시설들이 항목으로 실려 있다. 가덕1호보, 가덕2호보, 가정제, 고암보, 구렁보, 구룡1호보, 구룡2호보, 구룡제, 군상제, 군하1호보, 궁항제, 남기보, 단양보, 단양제, 대불제, 대평보, 덕천제, 물곡1호보, 물곡보, 반월1호보, 반월2호보, 반월제, 백암제, 봉암제, 부곡보, 산제보, 송풍제, 신기제, 신암제, 야부기1호보, 야부기2호보, 연장1호보, 연장2호보, 연장3호보, 연장제, 용덕1호보, 용덕제, 원월보, 월포제, 작지보, 좌산제, 좌포보, 주안보, 중평제, 지동보, 지동제, 포강제, 학천보, 황금제, 후곡보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조선 영조 때 신경준(申景濬)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의 산맥〔山經〕체계를 도표로 정리한 산경표(山經表)에 실린 산맥의 하나. 장안산(長安山), 노치(蘆峙), 수분현(水分峴), 성적산(聖跡山), 팔공산(八公山), 성수산(聖壽山), 중대산(中臺山), 마이산(馬耳山), 주줄산(珠崒山)에 이어지는 산맥이다. 금남정맥과 더불어 금강유역의 경계를 이루고, 호남정맥과 더불어 금강과 섬진강유역의 경계를 이룬다. 《참고문헌》 山經表(朝鮮光文會, 1913)
금남정맥//錦南正脈//
조선 영조 때 신경준(申景濬)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의 산맥〔山經〕체계를 도표로 정리한 산경표(山經表)에 실린 산맥의 하나. 마이산(馬耳山), 주줄산(珠崒山), 왕사봉(王師峯), 병산(屛山), 탄현(炭峴), 이치(梨峙), 대둔산(大屯山), 도솔산(兜率山), 황산령(黃山嶺), 개태산(開泰山), 계룡산(鷄龍山)으로 이어지는 산맥으로 보고 있다. 이 산맥은 마이산에서 발원하는 금강과 더불어 국역풍수(國域風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천지탑). 이 산줄기는 금강의 남쪽을 지나므로 금남정맥이라 한 것이다. 《참고문헌》 山經表(朝鮮光文會, 1913)
호남정맥//湖南正脈//
조선 영조 때 신경준(申景濬)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의 산맥〔山經〕체계를 도표로 정리한 산경표(山經表)에 실린 산맥의 하나. 마이산(馬耳山)에서 시작하여 웅치(雄峙), 사자산(獅子山), 백운산(白雲山), 정각산(正覺山), 유치(鍮峙), 새장산(塞墻山), 운남산(雲南山), 묵방산(墨方山), 운주산(雲住山), 굴치(屈峙)로 이어진다. 《참고문헌》 山經表(朝鮮光文會, 1913)
산경표//山經表//
조선 영조 때 신경준(申景濬)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의 산맥〔山經〕체계를 도표로 정리한 책. 1책. 필사본. 표의 기재 양식은 상단에 대간(大幹)․정맥(正脈)을 표시하고 아래에 산(山)․봉(峰)․영(嶺)․치(峙) 등의 위치와 분기(分岐) 관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난외 상단에 주기(註記)로 소속 군현을 명기하였다. 내용은 백두대간(白頭大幹)과 이에서 연결된 14개의 정간(正幹)․정맥으로 구분되어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으로부터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그치며, 장백정간(長白正幹)은 황토령(단천)에서 시작하여 함경도 지역의 산계들을 포함한다. 이 책은 또 낙남정맥(洛南正脈), 해서정맥(海西正脈),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한북정맥(漢北正脈),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을 논하고 있으며, 진안지방에 관련된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금남정맥(錦南正脈), 호남정맥(湖南正脈)을 논하고 있다. 이 책에는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줄기가 삼도봉, 대덕산, 덕유산, 백암봉, 봉황산, 육십령을 거쳐 장안산에 이르며, 이 장안산에서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이 시작된다고 한다. 즉 장안산(長安山), 노치(蘆峙), 수분현(水分峴), 성적산(聖跡山), 팔공산(八公山), 성수산(聖壽山), 중대산(中臺山), 마이산(馬耳山), 주줄산(珠崒山)에 이어지는 산맥이다. 한편 금남정맥(錦南正脈)은 마이산(馬耳山), 주줄산(珠崒山), 왕사봉(王師峯), 병산(屛山), 탄현(炭峴), 이치(梨峙), 대둔산(大屯山), 도솔산(兜率山), 황산령(黃山嶺), 개태산(開泰山), 계룡산(鷄龍山)으로 이어지는 산맥으로 보고 있다. 또한 호남정맥은 마이산(馬耳山), 웅치(熊峙), 사자산(獅子山), 백운산(白雲山), 정각산(正覺山), 유치(鍮峙), 새장산(塞墻山), 운남산(雲南山), 묵방산(墨方山), 운주산(雲住山), 굴치(屈峙)로 이어진다고 했다.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의 중앙에 모두 마이산이 위치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현대에 이르러 지세도를 놓고 수계를 따라 이런저런 해석이 분분한데 이는 당시의 지리사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서 오는 소치로 보인다. 이 책의 저자가 마이산을 정맥의 중심으로 본 것은 풍수지리와 실증지리가 조화된 결과라 하겠다. 이 책은 조선의 산맥 체계를 수계(水系)와 연결시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놓은 책으로서,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일본인이 분류, 명명한 산맥 구분 및 산맥 명칭 이전의 조선의 전통적인 산지 분류 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점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지만 여러 지리서에 필사본으로 널리 유포되었다. 1913년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활자본으로 간행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山經表(朝鮮光文會, 1913), 서울대학교 규장각 DB
주화산//주화산은 진안지방에 실재하지 아니하는 산이다. 그럼에도 모래재터널에서 북쪽으로 직선거리 700m 떨어진 지도상 568m의 봉우리에는 주화산이라는 팻말이 서있다. 이는 전라북도내 산악인들이 산경표(山經表)를 잘못 해석하여 벌인 일로 실제로 그 봉우리에는 예전부터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산경표 금남정맥(錦南正脈)란에 주줄산(珠崒山 : 지금의 운장산)의 ‘崒’을 ‘華’와 비슷한 글자로 잘못 기재했는데 이를 다른 산으로 보고, 또 현대의 지세도에 대입하여 금강과 만경강의 수계가 갈라지는 그 봉우리를 주화산이라 견강부회한 것이다. →운장산, →주줄산. 《참고문헌》 山經表(朝鮮光文會, 1913)
고산//鼓山[대덕산]//동향면 자산리와 안천면 신괴리와 상전면 월포리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875.6m. 전에 절이 있었는데 멀리서 그곳의 북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을 상전면 쪽에서는 대덕산이라고도 부른다. 이 산을 오르려면 동향면 자산리 고산골에서 서쪽 질마재로 오르는 길이 2km 남짓하여 가장 가깝고, 상전면 월포리 고산골로 오르는 길도 있다. 상전면 수동리 소리실 골짜기에서 오를 수도 있지만 멀뿐더러 길이 희미하다.《참고문헌》東國輿地勝覽(관찬지리서, 1530), 鎭安誌(진안향교, 1924),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광대봉//廣大峰//마령면 강정리, 동촌리와 연장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609m. 북서쪽 산자락에 태자굴이 있다. 《진안지》에 ‘마이산의 줄기가 서쪽으로 이어져 와 솟아있는데 두드러진 모양이 마치 꽃송이 뚜껑처럼 머물러 있다. 머무른 모양이 마치 부용(芙蓉)같다. 남쪽으로 펼쳐진 모양은 마치 사람얼굴처럼 생겼다. 의젓한 기상이 있고, 산허리께로 여러 봉우리를 거느렸는데 마치 자식 손주들이 나란이 늘어선 것 같아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을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봉우리 아래로는 감로천(甘露泉)과 보흥사탑이 있고., 또 용추(龍湫)가 있는데 바위사이에 세 구덩이의 소가 있다.’고 실려 있다. 이 봉우리는 마령면 강정리 보흥사에서 오르면 약 0.9km 거리이며, 마이산 등산로인 마령면 강정리 합미산성 입구로 올라가면 3.5km 남짓 거리이다. 이 봉우리를 거쳐 등산로를 따라 동쪽으로 2.5km 남짓 거리에 나옹암에 이른다. 나옹암에서 마이산 금당사로 내려올 수도 있고, 진안읍 연장리 부곡으로 내려갈 수도 있으며, 서쪽 능선을 따라가면 마이산 서봉에 이른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구봉산//九峰山//주천면 운봉리와 정천면 봉학리, 갈룡리의 경계에 있는 산. 주봉은 천황산(天皇山, 1002m)이라고도 한다. 산봉우리가 아홉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운장산의 서쪽으로 뻗은 맥이 동쪽으로 주천면 대불리 운봉리 경계에서 복두봉(幞頭峰, 1,017m)을 이루고 그 아래에 4시 방향, 직선거리 2km 지점에 구봉이 펼쳐져 있다. 정유재란때 난을 피하기 위하여 고계춘(高啓春)이 용담향교 5성위(聖位)의 위패를 이곳에 피란시켰다 한다. 구봉산은 산세가 아름답고 주변 조망이 좋아 전국에서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예로부터 이 산에는 일광선조(日光鮮朝)라는 천하명당이 있다고 전하며, 이 산자락인 정천면 갈룡리 조포마을에는 고찰 천황사가 있다. 구봉산 산행은 천황봉 동남쪽에 있는 윗양명에서 시작해서 여덟 봉우리를 다 돌아 천황봉에 오른후 남릉을 거쳐 다시 윗양명으로 내려서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윗양명에서 마을 가운데 고샅길을 지나 밭 둑길로 가는 길과 천황암이 있는 절골로 해서 오르는 방법도 있다. 윗양명 마을 앞길로 들어 저수지를 왼쪽으로 지나 개울을 따라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천황암 가는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난 작은 골짜기를 지나면 제법 널찍한 터에 오두막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오두막 앞에는 샘물이 있다. 오두막 오른쪽 길로 산등에 올라서면 널찍한 바위가 나온다. 이 바위의 남쪽은 까마득한 낭떠러지다. 여기서 산등을 타면 구봉산 동쪽 끝봉에서 윗양명으로 내려간 산줄기의 등성이에 올라서면 윗양명 마을 고샅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게 된다. 북으로 난 길을 오르면 좌우에 펼쳐지는 기암괴봉의 경치들을 감상할 수 있고 이어 그 경치속으로 직접 들어서게 된다. 마을을 떠나 40분쯤이면 제일 동쪽에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암봉들은 먼 발치에서 보면 너무 험해서 발을 도저히 붙일 수 없을 것 같지만 바위틈을 이용하여 이리저리 돌면 묘하게도 길이 뚫려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바위봉우리를 타 넘을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암봉군에서 가장 서쪽 봉우리를 멸치바위라 부르고 멸치바위 서쪽 오목능선을 돛넘이재라 부른다. 돛넘이재를 지나 장군봉에 붙으면 북쪽의 높이 솟은 암벽 아래로 길이 이어진다. 서쪽으로 깊은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날카롭게 이어지는 암릉을 오르면 작은 암봉사이를 건너게 된다. 깎아지른 바위 낭떠러지 중간에 작은 선반처럼 툭 튀어나온 곳을 돌며 건너야 하는데 암봉사이에 걸린 외나무다리마저 흔들거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찔하다. 그러나 이 고비를 넘기면 주봉인 천황봉에 오를 수 있다.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따라 하산하는 길은 암릉과 숲길이 번갈아 있어 좋다. 장군봉 정상을 떠나 40분쯤 내려가면 넓은 공터에 잔디 벗어진 묘가 있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지나온 산등성이 길을 버리고 동쪽 숲속으로 내려서는 비탈길로 들어선다. 잘 돌보아진 묘를 여러 기 지나 20분쯤 더 내려가면 오목능선에 강우량 자동관측시설이 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천황사 위 계곡으로 내려가고 북쪽으로 내려가면 산행을 시작했던 윗양명 마을로 가게 된다. 전체적인 산행시간은 4시간30분 내지 5시간이 걸린다. 또 하나의 코스는 주천면 안정동에서 마을 앞의 연화골 계곡을 따라 오르는 방법도 있다. 3㎞가 넘는 코스로 좀 멀기는 하지만 경치가 좋아 가 볼만한 코스이기도 하다. 《참고문헌》東國輿地勝覽(관찬지리서, 1530), 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꼭지산//[성주봉, 복두봉]//정천면 모정리와 상전면 월포리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447.6m. 봉우리가 박의 꼭지처럼 생겼고, 중턱에 있는 조그마한 굴에서 나오는 물이 맑고 깨끗하여 이 물을 떠놓고 성주께 복을 빌었다 한다. 이 산에 오르는 길은 등산로가 개설되어 수월하다. 상전면 월포리 망향의 동산에서 서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 40분 정도 소요된다. 《참고문헌》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내동산//萊東山//성수면 구신리, 도통리와 백운면 덕현리 및 마령면 계서리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887m. 약수암이 있다. 고지도인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는 내동산(內洞山)으로 기재되어 있다. 내동산(萊東山)의 이름은 《여지도서》에 처음으로 실려 있다. 《진안지》에 ‘가장 높은 봉우리의 형세는 대들보를 걸쳐놓은 듯 하다. 예전에 선인(仙人)이 있어 그 위에서 노닐었다 해서 봉래(蓬萊)라는 뜻에서 연유한 이름이다. 일명 백마산이라고도 하는데 옛날에 백색신마가 나타나 그 위에서 노닐었다고 해서 고을 이름을 마령(馬靈)이라 했다. 산의 서북봉 위는 봉수대 자리였다.’라고 실려있다. 이 산을 오르려면 보통 백운면 덕현리 동산마을로 들어간다. 동산마을 마을회관 왼쪽으로 난 길로 오르다 인가의 농기구 창고 옆 개울가를 따라 오르면 소나무 숲을 지나게 되는데 숲을 빠져 나오면 시야가 트이면서 내동산의 전면이 눈에 꽉 차게 들어온다. 이곳에서부터는 등산로의 경사가 가팔라진다. 약 30분 정도 오르면 30m 높이에서 물줄기가 떨어지는 내동산 폭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물을 맞으면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하여 지금도 이곳을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폭포 옆에는 1937년 오상인, 서일녀 스님에 의해 창건된 약수암이란 암자가 있다. 약수암은 두 채의 요사채가 딸린 자그마한 암자이다. 암자 오른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에 접어들면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길의 경사가 갑자기 급해진다. 다시 발을 옮겨 소나무 숲을 지나 가파른 길을 오르면 내동산 능선에 오르게 된다. 내동산 정상에서는 주변 산의 조망이 좋다. 북으로는 마이산의 봉우리와 운장산이, 동쪽으로는 성수산과 덕태산, 팔공산, 멀리 북덕유의 정상과 남덕유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도 볼 수 있다. 서쪽으로는 만덕산, 모악산을 비롯한 노령의 연봉들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지리산의 연봉들이 보인다. 하산은 정상에서 서쪽으로도 할 수 있다. 5분 정도 내려가면 1백 미터가 넘는 벽이 나타나고 절벽 밑으로는 숲이 펼쳐져 있다. 하산길에도 암릉이 2킬로미터 정도 이어진다. 이 바위능선은 한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고 경사가 급해 아찔한 느낌이 든다. 바위능선이 끝나는 오목능선에서 오른쪽 길로 내려서면 동산마을로 내려올 수 있다. 또 하나의 코스는 북릉을 따라 가다 백운면 운교리 못골(지동)로 내려가는 코스도 있다. 북릉은 날카롭지는 않지만 당찬 모습은 여전하다. 못골로 하산하려면 일단 북릉을 따라 약 2㎞ 정도 나아가야 한다. 625m봉에서 마령면 계서리 방화마을로 내려가는 길과 오른쪽 지동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갈리므로 신중하게 길을 찾는다. 좀 내려오면 너덜지대가 나오는데, 너덜지대에서 골짜기 길까지는 약 30분 거리이다. 골짜기 길은 뚜렷해서 10분 정도 내려서면 기슭도로에 닿는다. 산행은 여기서 끝나지만, 버스를 타려면 앞 냇물을 막은 보를 타고 백운면 소재지인 백암리까지 2㎞를 걸어나가야 한다. 내동산의 남서쪽 구신리쪽과 서쪽 성수면 쪽은 길이 험하고 희미해져 잘 찾지 않는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輿地圖書(전국읍지 176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덕태산//德泰山[中臺山]//백운면 백암리와 노촌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113.2m. 봉우리가 덕스럽게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덕태산이라는 이름은 예전 기록이나 고지도에도 등장하지 않고 비슷한 위치에 중대산(中臺山)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고명(古名)은 중대산인 듯 하다. 중대산은 산경표(山經表)에 실린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에 장안산(長安山)에서 팔공산(八公山), 마이산(馬耳山), 주줄산(珠崒山 : 운장산)에 이어지는 산맥중 한 봉우리라 기재되어 있다. 이 산을 오르려면 좀 애매하다. 정상 가까이까지 임도가 개설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길로 가고 싶으면 백운동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인 전진폭포 위 20m 지점에서 왼쪽으로 리본표지를 따라 들어가면 된다. 좀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전진폭포에서 정상을 거쳐 원점으로 돌아 내려오면 5시간이 걸린다. 한편 서북능선․암봉군․칼바위․신전마을 등을 지나 평장리로 가거나, 또 선각산까지 종주하려면 동쪽으로 2km쯤 가다가 다시 남쪽으로 4km쯤 가서 다시 서쪽으로 2km쯤 되는 곳에 선각산이 있는데, 선각산에서는 서릉과 762봉을 거쳐 동창리나 반송리로 갈 수도 있고, 남쪽 능선을 따라 백운면 신암리로 내려갈 수도 있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山經表(朝鮮光文會, 1913) 마이산 벚꽃축제//매년 벚꽃철에 마이산 남쪽 벚꽃길에서 열리는 축제.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 진안군이 마련하고 있는 마이산 벚꽃축제는 화사한 봄의 정취와 함께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세계유일의 부부봉 마이산의 절경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마이산 벚꽃은 매년 4월 남부 마이산 진입로에서 마이산 탑사까지 2.5km 구간 연도의 벚꽃나무가 꽃망울을 동시에 터뜨린다. 특히 이산묘앞에서 탑영제에 이르는 길은 벚꽃터널을 이뤄 한 폭의 그림를 연상케 한다. 벚꽃의 개화기간이 4~5일 정도로 짧지만 포장된 등산로로 형성된 벚꽃 길은 마이산을 배경으로 해서 더욱 운치를 자아낸다. 고랭지에 속하여 쌍계사의 벚꽃보다 10여일, 전주-군산간 도로인 번영로 벚꽃보다 1주일 정도 늦게 핀다. 행사내용은 원앙부부시상, 금척무 공연, 진안좌도풍물놀이, 전통혼례시연, 윷놀이, 제기차기, 널뛰기, 투호놀이 등 민속놀이와 산악 마라톤 등을 선보이고 인삼, 표고버섯, 더덕, 유과, 검정돼지 등 특산품을 소개하여 군민화합과 지역발전, 관광진안을 널리 홍보하고 있다. 벚꽃축제는 벚꽃 만개시기와 연동됨으로 매년 날자가 유동적이다. 만덕산//萬德山//완주군 상관면, 소양면과 임실군 관촌면, 진안군 성수면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762m. 이 산의 북쪽 허리를 통하여 곰티재가 뚫려있다. 만덕산이라는 이름은 《대동지지》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사자산(獅子山)이라고도 한다. 《산경표》에 호남정맥의 연봉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수면 중길리쪽 만덕산 기슭에는 원불교 만덕산훈련원이 있다. 이곳에 원불교훈련원이 들어선 연유는 이곳이 원불교의 시창(始創) 4대성지의 하나인 초선지(初禪地)로 기림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대종사께서 이곳에서 이 부근의 인연들과 선을 열었다고 한다. 그 초선지는 훈련원으로부터 만덕산을 향하여 2㎞쯤 올라간 곳에 있는데 벽면과 같은 깎아지른 바위 앞에 100여명은 충분히 앉을만한 평탄한 마당이 형성되어있다. 이 초선지로부터 가파른 길을 따라 600여 미터쯤 오르면 오목한 능선이 나오는데 여기가 오두재(오두치)이다. 마치 가마귀 머리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인데 여기에서 서쪽 정상으로 오르지 않고 북쪽으로 내려가면 옛 곰티 신작로에 이르고 더 내려가면 완주군 소양면 월상리(신촌마을)에 이른다. 또는 오두재에서 좀 내려가다 서쪽으로 굽어가면 미륵사에 이른다. 오두재에서 정상에 오르는 길은 서쪽으로 10분쯤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따라 오르면 된다. 현재 만덕산 정상은 수풀이 우거져 전망이 막혀있으므로 정상부에서 북쪽으로 200쯤 더 나가야 완주군 쪽으로의 조망이 트인다. 전망이 좋기로는 오두재에서 정상에 오르기 전 오른쪽 바위봉우리에 오르면 동서남북의 전망이 좋다. 이곳에서는 북으로는 운장산과 연석산, 동쪽에는 마이산과 덕유산을 모두 볼 수 있다. 만덕산 정상에서는 세 개의 하산로가 있다. 직진하게 되어 있는 코스는 소양면 월상리로 직접 떨어지는 코스이며, 오른쪽(동쪽)으로 난 코스는 미륵사와 만덕폭포를 거쳐 월상리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정상에 오른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볼거리가 있는 미륵사 코스로 내려간다. 미륵사 코스로 내려선지 5분 가량 되면 또 갈림길이 나오는데 미륵사쪽으로 가는 길은 왼쪽(서쪽)길이다. 이 길로 들어서면 다시 너덜길이 나오며, 이 하산길로 접어들어 30분 가량 되면 사거리가 나타난다. 사거리에서 미륵사로 가려면 왼쪽 길로 들어서야 한다. 또 하나는 되돌아 나와 성수면 중길리로 내려가는 길과,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정산에서 되돌아 나오다가 5분쯤이면 능선에 왼쪽으로 갈라지는 길과 직진하는 길이 나오는데 직진하는 길로 10여분 걸으면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이 길로 내려가면 마치리에 이른다. 완주군 쪽에서 이 산을 오르려는 사람은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참고문헌》大東地志(김정호, 1863), 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무이구곡//武夷九曲//→주자 무이구곡 백운동 계곡//白雲洞溪谷//백운면 소재지(백암리)에서 덕태산(1,113m) 계곡을 따라 5km쯤 올라가면 울창한 수목 사이로 30여 평의 널따란 '전진바위'와 높이 5m 가량의 폭포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 백운동 계곡이다. 봄철에 골짜기를 가득 메우는 진달래꽃의 장관은 마치 선경을 연출하는 듯한 곳이다. 진안지에 실린 임영(林泳)의 ‘백운동에서 놀다’라는 시에 이르기를, “시냇물에 비취는 천봉의 푸름에 이어/ 깊은 골짜기 붉은 단풍 속 몇 집이 계곡 기슭가에 서있네/ 인가가 드문 소로길로 들어와 보니 구름이 가득 서려있구나/ 산위에 노을질 제 시상을 가다듬다가/ 찬기운 돌고 해 기울어 고개 돌려보니/ 참으로 그림으로 보는 듯 하구나. [遊白雲洞] 溪映千峰碧楓連 萬壑丹數家倚崖 住微逕入雲蟠泛 酒山霞晩題詩澗 石寒斜陽更回首 眞似畵中看” 라고 하였다. 진안읍에서 백운면 백암리 백운동 현지까지 약 24.5km 거리이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복두봉1//幞頭峰//주천면 대불리, 운봉리와 정천면 봉학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017m. 운장산 줄기의 하나로 운장산의 북동쪽 직선거리 4km 지점에 위치한다. 봉우리가 바위로 되어 있어 두건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생긴 이름이다. 이 산 아래로는 구봉산이 늘어서 있다. 예전 이 산에는 대규모 농장이 조성되기도 하여 지금도 그 흔적이 있다. 한편 이 산 동남쪽 골짜기는 갈거리 골짝이라 하는데, 약 8km에 걸쳐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져 산림청에서 운장산자연휴양림으로 건설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 산에 오르려면 정천면 갈룡리 갈거마을에서 산림휴양지 길을 따라 올라가는 방법이 일반적이며, 주천면 대불리 칠은이 계곡에서도 오를 수 있다. 《참고문헌》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봉화산//烽火山//진안군 용담면과 충남 금산군 남일면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670.4m. 봉수대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이 산에 오르려면 용담면 옥거마을 도로 동쪽에서 북쪽 산등성이를 따라 약 3.5km 거리에 있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400여 미터를 더 가면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신동리와의 경계가 된다. 이 도계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가다가 남쪽 골짜기로 내려오면 옥천암에 이른다. 《참고문헌》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부구리산//[大德山]//상전면 수동리와 주평리, 진안읍 가막리 죽도와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602m. 상전면 주평리 회사마을 뒷산이기도 하고 진안읍 가막리 뒷산이기도 하다. 국립지리원의 지도에서는 대덕산(大德山)으로 표기되었으나 이는 착오로 보인다. 대덕산은 상전쪽에서 고산(鼓山)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참고문헌》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부귀산//富貴山[독태산, 백택산]//부귀면 두남리, 수항리, 오룡리, 거석리와 진안읍 정곡리, 군하리와 군상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806m. 정상에는 상사바위가 있다. 천지개벽 때 봉우리에 배를 맸다 하여 배때기산이란 이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산은 운장산의 내맥이 연석산을 거쳐 부귀면 궁항리, 봉암리, 오룡리를 감아돌아 진안읍 정곡리 북쪽에서 정상을 이루고 서북쪽으로 뻗어나가 진안~정천간의 대목재로 이어져 상전면 월포리의 성주봉에 이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의 북 5리에 있는 진안의 진산(鎭山)이다.’라고 기재되어 있고, 《진안지》에는 ‘가파른 산세에 용이 서린 듯 호랑이가 웅크린 듯 한 산세이다. 대인 군자의 상을 닮았다. 군의 주산(主山)이 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부귀면 정곡리쪽 기슭에 백택사가 있었다. 이 산에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 진안읍 군상리 절골에서 고림사에서 오르는 길, 진안읍 군하리 대굉이에서 TV중계탑을 거쳐 오르는 길, 진안읍 정곡리에서 오르는 길, 부귀면 수항리 한식골에서 오르는 길 등이 있다. 한편 이 산은 산경표(山經表)에 실린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에 마이산(馬耳山), 주줄산(珠崒山 : 운장산)에 이어지는 산맥도정이라 해서 정맥을 탐방하는 산악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그 도정은 마이산~활인동재~강녕골재 능선~부귀산~서쪽능선으로 가다 북쪽으로 휘어~삼수봉(568봉)~삿갓봉~황새목재~연석산~운장산으로 이어진다. 《참고문헌》東國輿地勝覽(관찬지리서, 1530), 鎭安誌(진안향교, 1925), 山經表(朝鮮光文會, 1913) 선각산//仙角山//백운면 백암리와 신암리에 걸쳐 있는 산. '仙閣山'이라고도 한다. 높이 1,041.5m. 북쪽에 망바우가 있다. 산이름의 유래는 이 부근의 지형이 선인이 춤추는 명당인 선인무수(仙人舞袖) 형국인데 선각산이 선인의 머리에 해당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진안지》에는 ‘저는 듯 쓰러질 듯 위태한 형세이지만 바라보면 흰구름 푸른 놀이 선인의 그 진면을 가리는 듯 하다. 문인소객(文人騷客)이 올라 많은 시를 읊었다.’고 실려있다. 주위에는 덕태산(德泰山 : 1,113m) ․성수산(聖壽山 : 876m) ․팔공산(八公山 : 1,151m) 등이 있다. 이 산줄기 동쪽 팔공산 오계치 아래 원신암 골짜기 벌통밭골에 있는 데미샘이 섬진강의 발원지(發源地)이다. 이 산으로 오르는 길은 원신암마을에서 오계치에 올라 서북쪽의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과, 신암리의 유동마을, 또는 대전마을에서 오르는 길, 또 백운면 백암리 백운동 골짜기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한편 덕태산에서 종주할 수도 있는데, 동쪽으로 2km쯤 가다가 다시 장수군과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4km쯤 가서 다시 서쪽으로 2km쯤 되는 곳에 위치한다.《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성수산1//聖壽山 [복지봉]//진안군 진안읍, 백운면과 장수군 천천면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059m. 이 산 북서쪽에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굴속에 박쥐가 산다하여 복지봉이라 불리운다. 본디 이 산은 미재산(美哉山 : 해동지도, 광여도)이라 했다가 《대동지지》에서는 미방산(美方山)으로 실려 있다. 이 이름들은 진안쪽에서는 복지봉에 가려 이 산이 잘 보이지 않으니 복지봉을 가리킨 이름인 듯 하다. 이 산은 산경표(山經表)에 실린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에 장안산(長安山), 노치(蘆峙), 수분현(水分峴), 성적산(聖跡山), 팔공산(八公山), 중대산(中臺山 : 덕태산), 마이산(馬耳山), 주줄산(珠崒山 : 운장산)에 이어지는 산맥중 한 봉우리라 해서 정맥을 탐방하는 산악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산악인들이 산경표를 보는 관점은 금남호남정맥이 진안지방에서는 성수산에서 10시 방향으로 능선종주~반월리의 사루개재~마이산~활인동재~부귀산~연석산~운장산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산경표》에 실린 성수산은 이 산이 아니라 동명이칭인 백운면 신암리와 임실군 성수면 왕방리의 경계에 있는 산(875.9m)이다. 진안에서 이 산을 오르려면 진안읍 반월리 고암마을에서 오른쪽 골짜기인 삼배실골로 들어가 저수지 왼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가 임도가 끝나는 부분 못미처 계곡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찾아 올라가면 40분 거리에 박쥐동굴이 나오고, 이 동굴 좌측으로 우회하여 산죽밭 길을 10여 분 올라가면 복지봉 정상에 이른다. 여기에서 동남쪽으로 성수산이 보이는데 약 1.5km 거리가 된다. 성수산 남쪽으로 2.2km 지점에 백운면 노촌리 상미치와 장수군 천천면 와룡리를 잇는 임도 신광재로 통한다. →금남호남정맥 《참고문헌》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山經表(朝鮮光文會, 1913) 어둔이//안천면 삼락리 용담댐하류 금강의 물이 진안군을 벗어나 무주로 들어가는 어귀 못 미쳐 안천면 삼락리 용담댐에서 2km에 걸쳐 펼쳐진 모래톱을 가리킨다. 앞에는 강 가운데 섬처럼 솟아있는 섬바위(島岩)가 절경을 이루고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 여름철 행락에 제격이다. 용담댐 건설로 수문을 통해 나오는 물은 더욱 차다. 섬바위는 물위로 10m 정도 솟아있는데 약간 기울어진 듯 보인다. 전해오기를 이곳에는 영험한 기운이 어려 영재(英才)와 학자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이 섬바위를 지주석(砥柱石)이라고도 하는데 지주(砥柱)는 황하가운데 있는 산을 가리키는 말로 격류 속에 있으면서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에서 인용한 것이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연석산//硯石山//진안군 부귀면 궁항리와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신월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928.2m. 벼룻돌이 많이 나와 이 이름을 얻었다. 봉우리에는 바위가 병풍같이 서 있다. 이 산은 운장산으로 이어져 있다. 정상에서 동쪽 늦은목재[晩項峙]를 거쳐 운장산으로 가는 길은 약 3km 거리이다. 이 산을 부귀쪽에서 오르려면 부귀면 궁항리 정수암마을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약 1.8km를 오르면 늦은목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서쪽으로 0.7km 오르면 정상에 이른다.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약 3km 내려가면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연동마을에 이른다. 정상에서 진안군과 완주군의 경계를 이루는 남쪽 능선을 따라 6km쯤 내려와 황새목재[黃鳥峙]에서 하궁항이나 소태정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참고문헌》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영각사//靈覺寺//동향면 학선리 을곡에서 영구산 골짜기로 1.5km 지점에 있는 절. 영구산//靈龜山//동향면 학선리와 신송리, 장수군 계북면 임평리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802.3m. 전에 영구암(靈龜庵)이 있었다고 한다. 용강산//龍崗山//용담면에 있다. 용담현의 진산(鎭山)이었다. 높이 420.3m. 비스듬이 구불구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산 모양이 마치 비룡(飛龍)이나 벌레가 구물거리는 것 같아 이런 이름을 얻었다. 그 위에는 기우소가 있고, 남쪽 기슭 얼마안가 바로 용두동(龍頭洞)이 있다. 이 산에 오르는 길은 용담면 옥거마을 뒤 국도에서 표시된 등산로를 따라 0.5km 남짓 올라가면 된다.《참고문헌》東國輿地勝覽(관찬지리서, 1530), 鎭安誌(진안향교, 1925) 용담댐//龍潭-//용담면 월계리(月溪里)의 금강 상류에 있는 다목적댐. 건설교통부․한국수자원공사가 건립하였다. 댐 높이는 70m, 길이는 498m이다. 총저수량은 8억 1500만t, 수몰 면적은 950만 평이다. 1990년 착공해 1997년 12월에 너비 3.2m, 길이 21.9㎞의 도수(導水) 터널을 완공한 뒤, 2001년 10월 13일 완성되었다. 총 공사비는 1조 5889억 원이 소요되었다. 저수량으로 볼 때 소양강댐․충주댐․대청댐․안동댐에 이어 국내 5번째 규모이며, 도수 터널 끝에 청정에너지 생산을 위한 수력발전소가 있다. 차수벽(遮水壁)을 상류쪽 표면에 설치한 콘크리트 표면 차수벽형(facing type) 석괴댐이며, 댐 주위에 11개 노선 64.4㎞의 이설도로가 나 있다. 총 1읍, 5개 면, 68개 마을이 수몰되었다. 다목적댐으로, 전주․익산․군산․김제와 군산-장항 산업기지 등 서해안 지역 300만여 명의 주민과 공장․농지에 연간 4억 9200만t의 생활용수․농업용수․공업용수를 공급한다. 1억 3700만t의 홍수조절 능력을 갖춘 여수로(餘水路) 5개가 댐 왼쪽에 설치되어 있어 상습 침수지역인 금강 중류․하류 지역의 홍수를 대비할 수 있게 건설되었고, 수력발전소에서는 연간 1억 9800만㎾의 전력을 생산한다. 2003년 11월에는 전주권 광역상수도 1단계 사업이 완공되어 2개 도와 6개 시․군, 44개 읍․면의 생활용수․공업용수난을 해소하는 등 전라북도 지역의 물 공급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댐이다. 용담호와 주변경관이 빼어나 인근의 마이산(馬耳山)․운장산(雲長山)․구봉산(九峰山) 등과 연계한 전라북도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코스가 되었다. 그러나 용담댐은 진안군 용담면, 안천면, 정천면, 주천면 일부, 상전면, 진안읍 일부 등 1읍 5개면을 수몰시키므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수많은 수몰주민들이 실향민이 되는 아픔도 따랐다. 본디의 용담댐은 일제의 강점기에 3만 kwh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댐으로 거론되기 시작하여 1943년에 조선총독 명의로 당시의 조선전업주식회사(현 한전)에 수몰예정지의 전답과 대지 등 토지를 강제로 매도당해 등기이전까지 마치게 되었다. 당시 댐 예정지는 용담면 송풍리 감동마을 위쪽으로 정하고 일부 골재를 수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태평양전쟁의 급박한 정세로 댐 건설은 유보되다가 8․15 광복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수몰 예정지역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소작농으로 전락하여 소작료까지 납부하게 되었다. 토지보상금은 금융조합(현 농협)의 예치통장만을 교부하였기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화폐가치의 하락과 인플레 등으로 인하여 사실상 쓸모 없는 돈이 되고 말았다. 그 당시 조선전업에서는 공제조합을 설립하여 소작료를 국세징수법에 준하여 강제징수를 하였으며 6. 25 한국전쟁 후에는 상이군인을 고용, 공포분위기에서 수납을 하였다. 이에 견디다 못한 용담댐 지역주민(당시 7개면)들은 소작료 불납운동을 전개, 대책위원회를 구성(1949년~1951년) 3년 간에 걸친 소송에서 광주고법(光州高法)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았다. 1950년 전국 일제히 농지분배가 실시되었으나 용담댐 예정지역은 국가기간산업 용지란 명분으로 분배에서 제외되어 혜택을 받지 못했으나 지역주민들은 끈질긴 투쟁으로 1960년에 이르러 농지의 분배를 받게 되었고, 1968년 분배농지 상환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하여 상환을 완료했다. 이로서 30여 년만에 소작농의 멍에를 벗게 되었다. 이후 1978년 대청댐 건설로 전주권의 급수가 가능하므로 용담댐 건설계획이 백지화되었으며 1986년에는 대지와 기타 토지에 대한 용담댐 지역주민들의 양도건의를 받고 당국에서는 이를 수용하여 한전으로부터 증여를 받아 등기까지 마쳤다. 댐 예상지역 주민들은 수몰의 불안에서 벗어나 희망에 부풀던 중 1988년 7월 22일자 전북신문에 전주권역의 식수난 해결을 위하여 1일 50만톤 급수능력의 용담보 건설이란 제하의 보도가 있었다. 용담면 월계리에 길이 300m, 높이 3m의 취입보를 설치, 100마력 전력의 취수 펌프를 6대 설치하여 대아저수지로 통수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에 접한 주민들은 식수난 해결을 위한 보 설치에 대하여는 적극 협조할 것에 공감하였으며 당시의 도지사도 댐이 아닌 보라고 공언하였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보가 댐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이렇듯 일관성 없는 당국의 정책이나 계획이 갈팡질팡 하므로 수몰 예상 주민들의 불안과 실망은 대단했다. 이에 1989년 5월 28일에 용담댐 반대 용담면 투쟁위원회의 결성을 시작으로 각 면 투쟁위원회가 급속도로 결성되었고 동년 5월 30일 용담댐 수몰예상지역 5개면 대표 100여명이 용담복지회관에서 모임을 갖고 용담댐 반대 진안군 투쟁위원회가 결성되었다. 1989년 6월 10일부터 용담댐반대 용담면민 궐기대회를 시작으로 각 면에서 대회가 개최되었고, 1989년 6월 27일 군 공동위원장과 각면 위원장단이 요로 방문길에 올랐다. 전북도청과 방송공사, 언론사를 방문하여 진정서와 예상수몰주민 약 4,000여명의 연판장을 전달하고 댐 아닌 보로 설치할 것을 간절히 호소하였고, 6월 8일에는 중앙 요로 방문 길에 올라 각 정당의 중앙당, 건설부, 경제기획원, 수자원공사, 유신설계 등을 방문하였다. 1차 요로 방문을 마치고 우리의 결의를 표출하는 군 수몰예상지역주민을 중심으로 용담댐반대투쟁 궐기대회를 1989년 7월 6일 진안읍 천변에서 주민 약 4,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대적으로 열어 평화적인 시가행진에 들어갔으나 격한 주민들이 진안로타리에서의 농성으로 약 4시간 가량 진안~전주간 국도의 교통이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이어 군청광장에서 농성,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최루탄 투척과 투석 등의 불상사가 야기되어 주민 한 명이 한 눈을 실명하는 사고와 주민 몇 명이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사태수습을 위한 냉각기를 잠시 갖고 이후 계속 중앙관계부처방문 36개 부서에 ‘용담댐건설계획의 발전적 수정방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 수정안은 전문인의 고증을 거쳐 작성한 것이다. 1991년 10월 25일에는 진안군민회관에서 수자원공사 기술본부장과 수몰지역측 대표와 수몰예상 지역주민 다수 참석하여 설명회가 있었다. 수자원공사의 댐 건설안과 주민측이 제시한 수정방향에 대한 대안설명이었다. 그러나 서로의 주장만 개진하고 결실 없이 끝났다. 이어서 1991년 9월에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하였고 동년 11월 1일에 청원서 심의가 국회 소위원회에서 있었으나 수자원공사측과 잘 협의를 하라는 결론이었다. 주민들은 무조건 댐 반대를 한 것이 아니라 전주권에 충분히 물을 공급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므로서 대규모 수몰을 막으면서 효과를 얻자는 건설적인 투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간 각 면에서 순회식으로 수차에 걸치 궐기대회를 가졌고 군청광장에서의 수 일간씩의 농성 등 많은 투쟁 노력이 있었다. 댐 투쟁에 있어 전국적인 댐 반대투쟁사에서도 가장 강도높고 조직적이라는 평도 있었으나 주민들간에 댐 찬성론도 만만치 않았다. 요지는 보상을 충분히 받는 쪽으로 투쟁방향을 잡자는 주장들이었다. 그러나 1991. 11. 16 댐건설 기본계획이 공고(건설부공고 제138호)되고, 1992. 12. 26 용담다목적댐 실시계획 승인 고시되어 건설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후 사업추진에 따른 보상문제에 다시 분쟁이 발생하였는데 수몰 물건 조사과정 등에서 분쟁이 매우 심하였는데 이주대책, 이주단지조성 가능지 및 공설 토지 조성을 위한 용역을 착수 후 본격적인 보상이 실시되면서 수몰주민들이 전지역 일괄 보상 후 공사착수와 공특법 개정을 요구하며 집단농성으로 일시 공사중단을 하였으나 일부 수용하면서 재착공하였다. 한편 수몰주민들이 97년 보상을 목적으로 화훼류 식재가 급증하여 수몰지역 미보상 대부분 토지에 화훼류 식재 및 식재 준비를 이유로 물건조서를 전면 거부하며 보상업무가 마비되기도 하다가 1997. 8. 15 주민들과 합의하여 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이처럼 분쟁이 일어난 이유로는 정치․행정적으로는 밀실행정, 관주도적 행정, 주민참여의 배제, 사회․경제적으로는 이주대책, 보상대책의 미비, 심리적으로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주민의 권리의식과 피해보상 심리의 팽배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참고문헌》두산세계대백과사전 DB 용담호//龍潭湖//→용담댐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 →용담댐 운일암․반일암 28경//雲日岩半日岩二十八景//《원용담군지》 운일암․반일암 항에 실려 있는 주천 관내 28경. 그러나 이중에는 운일암․반일암 경내가 아닌 곳도 상당수 있어 주천 28경으로 보아야 할듯하다. 제1경 와룡암(臥龍菴), 제2경 한천(寒泉), 제3경 백록담(白鹿潭), 제4경 조영지(鳥影池), 제5경 견우탕(牽牛湯), 제6경 텃골못, 제7경 삼선탕(三仙湯), 제8경 명천(明泉), 제9경 중선바위(僧立岩), 제10경 형제바위(兄弟岩), 제11경 천렵바위, 제12경 만곡바위(晩谷岩), 제13경 옥폭연(玉瀑淵), 제14경 열두굴, 제15경 대불바위(大佛岩), 제16경 세불연(洗佛淵), 제17경 옥정연(玉鼎淵), 제18경 운일암 산장(雲日岩山莊), 제19경 복룡암(伏龍岩), 제20경 용쏘(龍沼), 제21경 옥정봉(玉鼎峯), 제22경 취적암(吹笛岩), 제23경 캠핑장, 제24경 칠은산(七隱山), 제25경 태평봉수대(太平熢燧臺), 제26경 노적봉(露積峯), 제27경 오성대, 제28경 운장산(雲長山). 《참고문헌》元龍潭郡誌(용담향교, 1973) 운일암․반일암//雲日岩半日岩//주천면 주양리에서 대불리까지 10리에 걸쳐 펼쳐져 있는 계곡. 옛 기록에는 ‘반일암’이라고만 실려 있다. 명도봉과 명덕봉이 마주보는 계곡에 위치함. 운장산 북쪽 대불리에서 발원한 주자천이 이곳을 감돌아 가며 장관을 펼친다. 진안읍에서 북쪽으로 정천을 거쳐 24km를 달리면 주천면에 이르고, 운장산쪽 주자천 상류로 2km쯤 더 올라가면 운일암․반일암의 장관이 시작된다. 운장산 동북쪽 명덕봉(845.5m)과 명도봉(863m)사이의 약 5km에 이르는 주자천 계곡을 운일암.반일암이라 하는데, 70여년 전만해도 깎아지른 절벽에 길이 없어 오로지 하늘과 돌과 나무와 오가는 구름뿐이었다 한다. 그래서 운일암이라 했고, 또한 깊은 계곡이라 햇빛을 하루에 반나절 밖에 볼 수 없어 반일암이라 불려졌다 한다. 한편 옛날에는 전라감영인 전주와 용담현과의 사이에 가장 가까운 통로는 이 길이었기에 이 길을 통과해 가야 했는데 길이 어찌나 험하던지 공물을 지고 가다보면 불과 얼마가지 못하고 해가 떨어진다 하여 떨어질 운(隕)자를 써 운일암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예전에는 천혜의 절벽같은 험로에 나무를 걸고 돌을 쌓아 기어가다시피 다녔으니 사람들이 이르기를 허공중의 다리라고 했다. 군수를 지낸 김우식(金宇植)이 석공 김치권(金致權)을 시켜 정으로 바위를 뚫어 길을 뚫어 다니기 쉽도록 하여 이를 칭송하는 비가 서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험로였던만큼 경치가 좋아 지금은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운일암․반일암 대불바위에는 긍구당 김중정(肯構堂金重鼎)의 글 ‘쌍고도덕․대명일월(雙高道德大明日月)’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운장산//雲長山//부귀면, 정천면, 주천면과 완주군 동상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126m. 노령산맥 중의 주봉으로, 정상 부분은 세 봉우리로 이루어진다. 동봉(東峰, 1,133m)은 주천면과 정천면의 경계가, 서봉(西峰, 1,118m)은 완주군 동상면과 주천면․부귀면의 경계가 되며, 중봉(中峰)은 운장산의 최고봉을 이룬다. 이곳에 국립지리원의 삼각점 기표석이 꽂혀있으며 이 중봉으로 통하는 입구에는 예전에 이곳에 산성을 쌓았던 흔적이 있다. 산 정상을 예전에 오성대(五聖臺)라 부르기도 했다. 운장산 정상에서는 멀리 서해바다를 볼 수도 있다. 구봉(九峰) 송익필(宋翼弼)이 이곳에서 글을 읽었으므로 그의 자인 운장(雲長)을 따서 운장산이라 하였다고 하나 송익필이 이곳에 은거한 사실도 확실하지 않으므로 신빙성이 없다. 그보다는 산이 높아 구름이 감돈다고 해서 운장산(雲藏山)이라 했다는 《진안지》 기록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옛 기록에는 주줄산(珠崒山 : 신증동국여지승람, 비변사호남지도, 해동지도), 추줄산(崷崒山 : 여지도서, 광여도, 1872년 군현지도, 진안지), 주이산(朱伊山 : 진안지) 등의 이름을 가졌다. 이중 주이산(朱伊山)은 주자천(朱子川), 이천(伊川, 정자천)의 발원지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은 동쪽으로 이어져 복두봉과 그 아래 구봉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연석산을 굽어보고 있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의 신라층군에 속하는 퇴적암류와 불국사 화강암류로 되어 있다. 산 사면은 셋으로 나뉘는데, 서쪽 사면은 동상면으로 동상(東上)․대아저수지(大雅貯水池)의 집수역(集水域)이 되고, 북쪽 사면은 금강의 지류인 주자천(朱子川)의 집수역이 되며, 남쪽 사면은 역시 금강의 지류인 정자천(程子川)의 집수역이 된다. 동상․대아저수지는 만경강의 상류이므로 운장산은 만경강과 금강의 분수계가 된다. 주자천 계곡은 물이 맑고 계곡이 좁아서 여름철의 피서지로 이용되는데, 특히 주양리 서쪽에서 명덕봉(明德峰, 846m)과 명도봉(明道峰, 863m)이 주자천에 근접하여 하천의 폭이 좁아져 계곡의 입구가 되는 곳이 운일암(雲日巖)․반일암(半日巖)이다. 운장산으로 오르는 길은 보통 다음의 6개의 등산로가 있다. 주천면 대불리 외처사동에서 서봉으로 오르는 길, 주천면 대불리 내처사동에서 동봉으로 오르는 길, 부귀면 궁항리 정수궁에서 서봉으로 오르는 길, 황금리 봉곡에서 서봉으로 오르는 길, 정천 봉학리 가리점에서 중봉으로 오르는 길, 완주의 동상면 검태에서 서봉으로 오르는 길 등이다. 어느 길이나 3~4시간 걸리는 등산시간은 비슷하다. 다만 부귀면 황금리 봉곡으로 오르는 길은 정상가까이 까지 임도가 개설되어 있어 4륜구동의 자동차라면 오를 수도 있으며 외지에서 운장산을 찾는 사람은 완주군 동상면에서 진안군 주천면으로 가는 포장도로를 따라 오다가 군계(郡界)인 새질마재 운장산 휴게소까지 자동차로 와서 능선을 따라 오를 수도 있다. 운장산 주봉에서 동쪽 능선을 따라 갈크막재를 거쳐 복두봉(僕頭峰 1,017m)까지 종주하는 산길이 있다. 복두봉(ꡍ頭峰)은 운장산 줄기의 하나로 운장산의 북동쪽인 주천면 대불리, 운봉리와 정천면 봉학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봉우리가 바위로 되어 있어 두건을 쓴 모양 같아 이 이름을 얻었다. 복두봉 아래로는 구봉산이 늘어서 있다. 진안읍에서 등산로 입구인 부귀면 황금리 봉곡이 약 16km, 부귀면 궁항리 정수암이 약 16km, 주천면 대불리 내처사까지 약 33km가 된다. 《참고문헌》東國輿地勝覽(관찬지리서, 1530), 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웅치전적지//熊峙戰蹟地//부귀면 세동리 신기마을에서 덕봉마을을 지나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로 이어지던 옛 웅치에 있는 전적지. 선조 25년(1592) 1592년 4월 14일 왜군이 부산진을 함락시킨 이후 임진왜란 초기 육상에서 조선 관군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데 반하여 해상에서는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왜군을 제압하고 바다를 통한 호남땅 진출을 차단하고 있었다. 한편 선조 임금을 추격하여 북상을 계속하던 왜적의 육군이 5월 말부터 전라도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왜군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장수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군수 물자의 보급이 어려워지자 소모전을 지양하고 분할 지배 전략으로 전환하였다. 그리하여 점령지역을 각 장수에게 할당하여 직접 조세를 거두며 지배하도록 하고 아직 점령하지 못한 지역은 장수를 배정하여 점령 지배하도록 하였다. 전라도에 침입하려는 왜적의 주장은 소조천융경(小旱川隆景)으로 그는 처음에 모리휘원(毛利輝元) 등과 같이 바다를 건너와 그 군사를 성주․선산 등 여러 곳에 주둔케 한 다음 한성에 올라와 있었다. 그는 창원에 주둔하고 있던 부장 안국사혜경(安國寺惠瓊)으로 하여금 별군을 지휘하고 전라도를 도모케 하였다. 안국사혜경은 전라감사를 자칭하면서 격문을 뿌리고 경상도로부터 전라도로 향하였다. 그는 창원으로부터 먼저 남원을 거쳐 전주로 올라가려고 작정하고 의령으로 향하다가 의병장 곽재우의 군사에 의해서 그 진로를 저지당하게 되어 성주로 물러났다. 소조천응경은 이 소식을 듣고 곧 한성을 떠나서 청주를 지나 남하한 다음 군사를 모아 전라도로 쳐들어가기로 하고 일로(一路)는 지례와 거창을 치고 또 일로는 황간과 순양을 거쳐서 전라도로 향하였다. 이것이 6월 중순경의 일이었다. 이에 조선군측에서는 전라도 방어사 곽영(郭嶸)은 금산에, 이계정(李繼鄭)은 육십령에, 장의현(張義賢)은 부항(釜項)에, 김종례(金宗禮)는 동을거지(冬乙巨旨)에 진을 치고 방어하였다. 그러나 6월 19일경 왜적이 지례로부터 무주로 침범해 들어오고 마침내 6월 23일 금산으로 쳐들어오니, 그곳을 지키던 군수 권종(權悰)은 적을 막아 싸우다가 전사를 하게 되고, 금산을 지키던 방어사 곽영과 김종례는 고산으로 퇴각하여 금산이 적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금산에는 호남을 공격하려는 소조천응경의 군대가 들어오고, 곽재우에게 밀려 성주로 퇴각해 있던 안국사혜경 부대도 합류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산의 왜적은 용담․진안을 친 다음 웅치를 넘어서 전주로 들어가려고 하였고, 또 별군 1천명은 진산을 치고 이치를 통해서 전주로 가려고 하였다. 6월말에는 이미 용담과 진안이 적의 수중에 들어갔던 것이다. 위와 같이 왜적이 금산으로부터 진안을 점령하여 전주 부성이 위협을 느끼자, 전라감사 이광(李洸)은 광주목사 권율(權慄)을 도절제사로 삼고 영남과 호남의 경계를 지키게 하는 한편, 방어사 곽영, 동복현감 황진(黃進), 나주판관 이복남(李福男)과 김제군수 정담(鄭湛) 등으로 하여금 웅치와 이치의 관애(關隘)를 지키게 하여 대비하였다. 그런데 이때 웅치의 수비는 동복현감 황진, 나주판관 이복남, 김제군수 정담 등이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제군수 정담은 동복현감 황진과 더불어 미리 웅치에서 지세와 적정을 살피는 한편 간첩활동을 하고 있던 금산 월옹사의 중을 처형하고 목책을 세우고 진지를 구축하는 등 방어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와 같이 왜적의 금산 함락과 호남 위협에 직면하여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지만, 만약 웅치와 이치에서 양면으로 공격해 온다면, 전라도의 방어부담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적의 이러한 전략을 견제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니 그것은 북상중이던 고경명이 지휘하는 호남의병의 동향이었다. 고경명은 연산에서 방어사 곽영에게 전령을 보내 금산에 남아있는 왜적을 치기로 하였다. 이때 전라감사 이광은 고경명과 방어사 곽영에게 전령을 보내 군대를 돌려 전주부 성을 같이 지킬 것을 요청하였으나 고경명은 이를 들어주지 않고 진산으로 이동하였고 곽영 역시 의병을 따라 금산으로 향하였다. 이와 같이 고경명이 금산을 향하여 움직이자, 금산에 잔류하고 있던 왜적은 진산 이치를 공격하지 못하고, 금산성에서 머무르고 있게 되어 왜군의 호남 침공은 진안방면에서 먼저 이루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전주부를 침공하고자하는 왜적과의 일대 접전이 당시 진안과 전주의 경계였던 웅치(곰티재) 부근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때 웅치에는 김제군수 정담, 나주판관 이복남, 동복현감 황진 등이 군사를 이끌고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7월 2일 일군의 왜적이 용담으로부터 장수 방면으로 향하는 것을 안 전라감사 이광은 웅치를 지키고 있던 황진을 남원경계로 옮겨 지키게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웅치에는 나주판관 이복남, 김제군수 정담 등이 남아 지키게 되었는데, 그때 전 전주만호 황박(黃璞)도 의병 200명을 모아 웅치에 가서 복병하여 조력하고 있었다. 이러한 방어 태세는 임란 초기 다른 지역의 전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야무진 대비책이었다. 드디어 7월 5일 적병이 진안으로부터 전주로 향하니 전라감사 이광은 이정란(李廷鸞)을 시켜 전주 부중의 각종 군사를 거느리고 성을 지키게 하는 동시에 자신은 각 읍 군졸을 거느리고 남고산성 만경대 산정으로 나가 진을 쳤다. 그리고 남원으로 파견하였던 황진으로 하여금 다시 웅치로 돌아와 막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황진이 아직 남원으로부터 돌아오기 전인 7월 8일 새벽부터 진안에 주둔하고 있던 왜적은 웅치방면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때 권율은 전라감사 이광의 지시에 따라 남원에서 영남과 호남의 경계를 지키고 있었고, 황진도 전라감사 이광의 명에 따라 남원으로부터 오는 도중에 있었으므로 실제로 웅치에서는 김제군수 정담, 나주판판 이복남, 의병장 황박 등이 적을 맞아 싸우게 되었고 여기에 전라감사 이광이 군사를 보내 응원하였던 것이다. 의병장 황박이 최전방에 나가 지키고, 나주판관 이복남은 제2선을, 그리고 김제군수 정담은 정상에서 최후 방어를 담당하여 쳐들어오는 왜군을 막아 싸웠다. 이때 웅치에 침입한 왜적 규모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선봉부대만도 수천 명에 달하는 대부대였다. 선봉부대의 공격을 이복남 등이 결사적으로 싸워 물리쳤으나, 해가 뜬 뒤에 적의 전면적인 공격을 받아 치열한 접전이 전개되었고 이날 하루동안 치열한 접전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저녁 무렵 마침내는 힘이 다하고 화살이 떨어진 틈을 타서 왜군은 다시 전면 공격을 가해왔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복남과 황박 등은 안덕원으로 퇴각하고, 웅치에서는 김제군수 정담 휘하의 장정들이 끝까지 사투를 전개하여 김제군수 정담을 위시하여 종사관 이봉․강운 등 많은 장정들이 전사하였다. 유성룡의 《징비록》에서는 해남현감 변응정(邊應井)도 김제군수 정담과 함께 싸우다가 전사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때 호남 방어군의 용맹에 감동한 적군은 전사한 아군의 시체를 모아 길가에 묻고 큰 무덤을 만들고 “조선국의 충간의담을 조상한다(弔朝鮮國忠肝義膽)”라는 푯말을 세우고 지나갔다고 한다. 웅치에서 조선군과의 접전에서 가까스로 웅치를 넘은 왜적은 7월 9일경 전주 부근으로 진출하여 왔다. 그러나 왜적은 전주부성을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안덕원 너머에서 아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미 웅치에서 주력부대가 큰 타격을 입어 전력이 손상된 잔여세력에 불과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안덕원에는 웅치에서 퇴각한 이복남 등이 이미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었고, 전주 부중에서는 이정란과 전라감사 이광 등이 방어하고 있었다. 이때 이광의 명으로 남원으로부터 군사를 이끌고 웅치로 가던 황진이 전주에 도착하여 이들 왜적을 안덕원 너머에서 격파하게 되었다. 이때 황진의 반격으로 안덕원에서 패배한 왜군은 소양평으로 도주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황진은 밀어붙여 대승리 골짝에서 크게 무찔렀다. 이 싸움을 안덕원 싸움이라고 하는데, 웅치전이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전주의 안덕원으로부터 금상리의 세마천을 지나 완주군의 소양평과 대승리 일대는 웅치를 넘어온 왜군을 격파하였던 전적지였다. 이때 황진에게 패배한 왜적은 진안․용담을 거쳐 금산으로 퇴각하였다. 이와 같이 웅치 전투는 아주 치열하였으며 비록 접전 끝에 무너지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적에게 치명적 타격을 입힌 대혈전이었으며 대승리였던 것이다. 웅치의 혈투가 있었기에 안덕원의 승리도 가능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전주를 수호할 수 있었던 것은 웅치전에서의 혈전이 가져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임란 당시 조정의 중추인물이었던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전라도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웅치전 때문이라고 평하고 있다. 즉 “적병의 용맹있는 자는 웅령싸움에서 많이 죽었으므로 기운이 이미 다 없어졌다.”고 하고, “전라도 한도만이라도 보전되게 된 것이 이 싸움으로 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웅치전은 그 전투에 참여한 주장인 김제군수 정담 이하군사들이 거의 순절하게 되어 그 행적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였다. 다만 정담 휘하의 선비 조성립이 웅치전의 실상을 조정에 고하고 정담을 포상해줄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림으로써 그 사실이 알려지고, 이 내용이 《난중잡록》이나 《선조실록》에 수록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웅치전 참전 장수들은 전란이 계속되는 동안 모두 순절하였다. 의병장 황박은 이어지는 이치전투에서, 그리고 동복현감 황진은 다음해 충청병사로 진주성 제2차 전투에 참전하여 순절하였으며, 나주판관 이복남도 정유재란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하게 된다. 한편, 진안사람으로 이 전투에 참가한 사람들의 기록도 보인다. 《진안지》에 실린 사천인(泗川人) ‘김수(金粹)․김정(金精) 사적’에 의하면 김수, 김정 형제도 웅치전에 일가와 가동을 이끌고 참전하여 전사하였다고 전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순찰사(巡察使) 권율(權慄)이 조헌(趙憲, 호는 중봉[重峰]임)과 약속하고 전령(傳令)을 보내서 분의(奮義)하여 병을 일으키기를 청하매, 공이 강개함을 이기지 못하여 모든 동복(僮僕)을 이끌고 열읍(列邑)의 의사(義士)들을 초모(招募)하여 한 곳에 모이니, 모든 숙질(叔姪)이 다 따랐다. 김제(金堤)의 정군수(鄭郡守)와 더불어 웅령(熊嶺,)에 진을 치니 본 고을 선비들이 와서 참전하였으나, 병졸은 겨우 5백 명이었고, 본 고을(진안)의 군병은 나오지 않아 종전의 약속이 와해(瓦解)되었다. 공이 기모(奇謀)를 내어 출전하여 여섯 번이나 이기니, 적이 건지봉(乾止峰)으로 퇴각하였다. 우회하여 습격할 수 있는 길을 찾아놓고는 몰래 영남(嶺南)의 2진(陣)을 끌어들여 힘을 합쳐 짓밟을 계획을 세워놓고 거짓으로 앞으로 나와 싸움을 걸었는데, 공은 깊은 골짜기에 진을 굳게 쳤으나 사방의 구원병은 오지 않았다. 적들이 에워싸고 진격하니 시석(矢石)이 비오듯하였다. 공이 진(陣) 하나를 돌파(突破)하여 적의 괴수(魁首) 둘의 목을 베고 병졸 수십 명을 죽였으나 총탄과 창이 공의 몸에 어지럽게 가해져 전사하였다. 공의 아우 정(精)은 몸으로 공을 엄호하다가 죽었는데, 공의 장자 원룡(元龍)과 조카 응룡(應龍)이 등에 업고 돌아와 장사지냈다. 그리고 공의 차자 형룡(亨龍)과 종제 서(糈), 재종 종(棕)의 시체는 겨우 수습하여 귀장(歸葬)하였으나, 셋째 아들 이룡(利龍)과 정(精)의 아들 인룡(仁龍), 의룡(義龍), 서(糈)의 아들 익룡(翼龍), 종제 당(糖)과 그의 아들 경룡(景龍)은 한날 같이 죽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하였으니, 그 참담함을 어찌 다 말하겠는가.“ 웅치전적지는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고,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산 1번지, 곰티재 정상으로부터 약 50m 되는 곳에 1979년 12월에 전라북도에서는 “웅치전적비(熊峙戰蹟碑)”를 세웠는데, 이것은 조선시대의 곰티재길과 일제시대에 개설된 신작로의 곰티재길을 동일시한데서 나온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한 위치 고증도 없이 적당히 고개 마루부근에 전적비를 세워두고, 이를 지방기념물 제 25호로 지정하여 전적지로서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물론 이 지역이 임진란 때의 전쟁과 전혀 관련이 없는 지역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보다 사실에 가까운 웅치전적지의 위치는 제대로 찾아져야만 한다. 현 전적비가 서 있는 위치에서 보면 진안군 부귀면 장승리에서 세동리 우정마을 거쳐 부암 마을에 이르는 골짜기와 고개 정상에서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월상에 이르는 지역이 웅치 전적의 현장으로 오인하기가 쉽다. 그러나 이 지역은 다음에 설명하는 내용과 같이 임진왜란 당시의 전적지로 볼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 첫째로, 이 지역은 매우 험하여 당시에 사람들이 통행할 수 없었던 곳이다. 이곳에 도로가 나게 된 것은 일제시대에 이곳에 신작로를 개설함으로써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의 교통로상의 웅치와 근대에 개설된 도로에 위치한 곰티재를 동일한 것으로 파악한 것은 잘못된 것이며 그에 따른 웅치 전적지의 위치 비정(比定)도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임진왜란 당시 전주와 진안의 경계로서 웅치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둘째로, 여기에는 이곳을 전적지로 인정할 만한 유적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이곳이 웅치의 대혈전장이었다면 진지 지형이나 성터와 같은 전쟁에 관련된 유적이 존재할 것이다. 그간 시일이 장구하여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다면, 그 자취나 전쟁과 관련된 전설이나 지명같은 것이라도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진안군 관내의 지역인 우정 마을이나 부암 마을에서는 그 근거가 될 만한 자료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실제 웅치전적지는 어디일까. 그곳은 현재 전적비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2km 정도 떨어진 곳으로서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신기마을에서 덕봉마을을 지나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두목리) 청소년 야영장에 이르는 고개길로 여겨진다. 이곳을 웅치 전투의 현장으로 보는 데는 다음의 이유 때문이다. 첫째, 두 말할 것도 없이 앞의 고개길이 옛 웅치(熊峙, 熊嶺)이기 때문이다. 또 덕봉 마을에는 이른바 원터라고 전해오는 옛 요광원의 유적지가 있어서 이곳이 주요 교통로였던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이곳에 임진란과 관련된 유적과 지명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기마을에서 덕봉마을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하천을 중심으로 양쪽에 논밭이 형성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크고 작은 골짜기가 약 4km 전개된다. 이 골짜기들에는 그 옛날 전쟁과 관련된 유적과 지명이 전해져온다. 먼저 입구의 큰 계곡을 소정골이라고 하는데 일명 소조곡이라고 한다. 이것은 임진왜란때 이곳에 침입한 왜장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전한다. 당시 호남으로 진출하려던 왜적의 주장이 소조천륭경(小早川隆景)이다. 이 소정골은 바로 소조곡에서 온 것이고, 소조곡은 바로 왜장 ‘소조’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금 올라가다 보면 여사골, 일명 여의곡이 있는데, 이곳은 진안쪽에서 침입하는 왜군의 동정을 엿보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하며, 덕봉마을을 지나 고개 마루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최초의 승리를 왕에게 고하였다고 전하는 승고곡(勝告谷)이 있고 군대를 주둔 매복시켰다고 하는 징친골(진친골)이 있는데, 큰칭친골, 작은 징친골이 전한다. 또한 그 옆에 있는 높은 봉우리는 관망대로 이용되었다고 전한다. 여기서부터는 임진왜란시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전쟁 유적지가 현존하고 있다. 큰징친골과 작은 징친골 사이의 길목에는 계곡을 가로막아 쌓았던 성터가 남아있는데 지금은 다 허물어져 없어지고 약 10m에 걸쳐 돌무더기가 남아있다. 한편 성터의 윗쪽에는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많이 흩어져 있는데, 왜란 당시 계곡 정상으로부터 왜군을 공격하기 위해서 굴려내린 것들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계곡 끝으로부터 지그재그 형태로 남아 있는 옛길의 자취를 따라 고개마루까지 올라가다 보면 길 양쪽에 크기가 아주 작은 폐고분(廢古墳)이 산재하여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싸우다 죽은 사람들의 무덤이라고 전한다. 고개 정상의 양편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많이 쌓여 있는 규모가 큰 돌무더기 성낭당 터가 지금도 남아 있어 이곳이 옛날의 중요한 교통로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고개 마루로부터는 완주군 소양면 관할지역으로 들어가는데, 여기서부터는 전적지였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진지시설이 남아있다. 여기서부터는 능선이 비교적 좁고 가파르게 펼쳐지는데, 지형지세를 적절히 이용하여 진지를 구축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고개 정상으로부터 일시에 내려오는 적을 차단하기 위해서 바닥의 흙을 파서 주위에 쌓아서 인위적인 장애물을 만들어 전략적 가치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주변에는 왜장이 잡혔다는 왜장바위, 왜장무덤, 봉수대로 전하는 곳이 있다. 위와 같이 일대의 골짜기, 산마루 길목마다 명명된 지명과 산재한 전쟁 유적으로 보아 이 지역이 임진왜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원 주자 무이구곡//朱子武夷九曲//김재호(金在浩)가 주천의 경승 9곳을 취하여 구곡가를 지어 주자무이구곡이라 했는데 그 스승 송래희가 큰 글씨로 해당처 바위 위에 새겨 이로서 이름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아홉 곳은 1곡 학선동(學仙洞), 2곡 무이암(武夷岩), 3곡 칠은산(七隱山), 4곡 백록동(白鹿洞), 5곡 화산봉(華山峯), 6곡 와룡암(臥龍岩), 7곡 옥순봉(玉筍峯), 8곡 안정동(顔程洞), 9곡 고무동 대락동(鼓舞洞大樂洞) 등이다. 《참고문헌》元龍潭郡誌(용담향교, 1973) 죽도//竹島//진안읍 가막리와 상전면 수동리 소리실, 동향면 성산리의 경계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진안읍 가막리에 속하는 이곳은 장수와 장계에서 내려오는 천천과 무주군 안성면에서 동향면을 거쳐 흘러오는 구량천이 합수하여 Ω형으로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생긴 곳이다. 이곳에는 산죽이 많아 죽도(竹島)라는 이름을 얻었다한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전 어떤 사람이 직강(直江)공사를 하여 농경지를 개간하고자 당국의 허가를 얻어 동향에서 흘러 내려오는 구량천을 발파 절개하여 직접 하류로 흐르게 하므로써 지금의 폭포가 생기고 죽도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섬이 되었다. 죽도는 병풍처럼 솟은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가막천의 풍부한 물과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 죽도에서 4시 방향으로 직선거리 2km지점의 동향면과 장수군 천천면의 경계에는 천반산(天盤山, 647m)이 있는데 정여립(鄭汝立)이 군사를 조련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산성터가 있으며, 송판서가 은신했다는 송판서굴, 할미굴이 있다. 진안읍에서 상전면 수동리 내송마을까지 약 12km의 거리이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지장산//智藏山//용담면 송풍리 및 안천면 삼락리, 무주군 부남면 고창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772.9m. 활짝 핀 연화가 장막을 친 듯, 은은한 모양의 형상은 보살의 모습 같고, 줄기줄기 뫼부리들은 마치 나한들이 나란이 서 있는 듯 하므로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 산에 오르는 길은 용담댐관리사무소에서 안천면 방면으로 400m쯤 가면 왼쪽에 지장골이라는 골짜기가 나오는데 이 골짜기를 따라 2.5km 남짓 올라가면 된다.《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천반산//天盤山//동향면 성산리와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647m. 소반처럼 생겼으며, 한 때에 정여립(鄭汝立)이 은신하였던 곳이라 하는데, 천반옥저(天盤玉箸) 하선선인(何羨仙人)이라 하여 동향 8경의 하나이다. 천반산의 주봉 서쪽 약 1.5km 지점에는 옛 성터가 있는데 평평하여 군사가 주둔할 만하다. 그 아래에는 송판서굴과 할미굴이 있다. 이 산에 오르는 길은 등산로가 나있는데 죽도 폭포 동쪽 구량천 물굽이에 길다랗게 내민 산등성이를 따라 천반산 성터로 올라가는 길, 동향면 성산리 진밭과 섬계 사이 구량천 건너 천반산 휴양림이라는 음식점 뒤로 약 1.2km쯤 올라 천반산 주봉으로 오르는 길, 진안읍 가막리에서 내를 건너 장수군 천천면 신기마을 북쪽 골짜기 입구 등산로로 오르는 길, 그 골짜기에서 동쪽으로 더 들어가 예전에 나 있는 길을 따라 오르는 길 등 다양하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팔공산//八公山//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와 장수군 장수읍 용계리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151m. 진안고원의 남쪽, 소백산맥 중에 솟은 산으로 북쪽에는 성수산(聖壽山, 1,059m)․마이산(馬耳山, 673m)으로 연속되고, 서북쪽에는 동명이칭의 성수산(聖壽山, 876m), 서쪽의 영대산(靈臺山, 666m), 남쪽의 신무산(神舞山, 897m)․묘복산(猫伏山, 846m)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의 서구이치(西九耳峙), 서쪽의 마령치(馬靈峙) 등이 있어 산을 넘는 통로가 된다. 동쪽사면 산록에는 팔성사, 남쪽에 합미성(合米城) 등의 명승고적이 있다. 정상에는 군경 통신대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산을 성적산(聖跡山), 또는 성수산(聖壽山)이라 했는데, 이 산에 8인의 도인이 각 적공(積功)을 하던 팔공암(八功庵)이 있어 이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진안쪽에서 이 산을 오르려면 예전에는 신암리 고중대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신암리에서 서구리재를 통하여 장수읍과 통하는 신설도로의 터널에서 등성이로 올라 약 3km 오르면 정상에 이른다. 이 산은 산경표(山經表)에 실린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에 장안산(長安山), 노치(蘆峙), 수분현(水分峴)에서 이 산을 거쳐 성수산(聖壽山), 중대산(中臺山 : 덕태산), 마이산(馬耳山), 주줄산(珠崒山 : 운장산)에 이어지는 산맥중 한 봉우리라 해서 정맥을 탐방하는 산악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참고문헌》東國輿地勝覽(관찬지리서, 1530), 鎭安誌(진안향교, 1925), 山經表(朝鮮光文會, 1913) 풍혈․냉천//風穴冷泉//풍혈은 대두산 기슭에 20여 평의 동굴로 뚫려 있는데 한여름에도 찬바람이 스며 나와 20여평의 동굴안을 섭씨 6°정도로 유지해주고 있어 예전에는 잠종보관소로 이용했고, 지금도 자연냉장고로 이용되고 있다. 풍혈로부터 50여 미터 옆에 있는 냉천은 석간수(石澗水)로써 사시사철 변함없이 섭씨 4°의 찬물이 솟아나 몹시 차가워 한여름에도 발을 담그고 1분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차갑다. 피부병, 위장병 등에 특효가 있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겸해서 찾아오는 곳이다. 옛날에는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풍혈과 냉천 부근에 온천이 솟았다고 하는데 이 온천은 성분이 특이하여 피부병에 특효가 있어 많은 환자들이 이 곳을 찾았다한다. 이 마을 이름이 양화(陽化)인바 겨울에 눈이 내려도 이 마을에 내린 눈이 가장 일찍 녹는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이 마을 대두산 너머 용포리에는 현재 23만평의 성수온천관광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진안읍에서 성수면 좌포리 현지까지의 거리는 약 23km이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가막천//加幕川//진안읍 가막리 앞을 흐르는 천천을 부르는 이름. 여름철 유원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구량천//[구천, 구리향천]//무주군 안성면 덕유산 골짜기에서 발원, 공정리를 지나 서북쪽으로 흘러 장기리에 이르러 덕산리에서 발원하여 흘러오는 서나둘이를 합하고 진도리에 이르러 금평리에서 흘러오는 물과 이목천을 합하여 서쪽으로 흘러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에 이르러 학선천을 합하고 여러 굽이를 이루며 구천이 되고 상전면 수동리에서 금강으로 들어간다. 구리향천//九里鄕川//→구량천. 금강//錦江//장수군 장수읍의 신무산(神舞山, 897m)에서 발원하여 군산에서 황해로 흘러드는 강. 우리나라 6대 하천의 하나이다. 유역 면적이 9,885㎢, 유로 연장이 401㎞로 남한에서는 낙동강․한강 다음으로 큰 강이다. 본류는 장수읍의 수분리에서 발원하여 진안군 동부와 덕유산 지역에서 흘러오는 학천(鶴川), 구량천(九良川, 34㎞)이 상전면 수동리에서 합류하고, 정자천(程子川, 30㎞)이 정천면 모정리에서 합류하여, 용담면 용연(龍淵)에서 주자천(朱子川)과 합류하여 무주로 들어갔으나 이 지역이 모두 용담댐으로 수몰되었다. 용담댐에서 나온 물이 무주 지역에 이르러 남대천(南大川)․봉황천(鳳凰川)과 합류하고 옥천․영동 사이의 충청북도 남서부에서 송천(松川) 및 보청천(報靑川)과 합류한 뒤 북서쪽으로 물길을 바꾼다. 다시 갑천(甲川) 등 여러 지류가 합쳐 충청남도의 부강에 이르러 남서 방향으로 물길을 바꾸면서 미호천(美湖川)과 합류하고, 공주․부여 등 백제의 고도(古都)를 지나 강경에 이르러서는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道界)를 이루며 황해로 흘러들어 간다. ≪당서(唐書)≫에서는 금강을 웅진강(熊津江)이라고 기록하였다. 금(錦)은 원어 ‘곰’의 사음(寫音)이다. 곰이라는 말은 아직도 공주의 곰나루〔熊津〕라는 명칭에 남아 있다. 일명 호강(湖江)이라고도 부른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금강의 명칭은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즉, 상류에서부터 적등진강(赤登津江)․차탄강(車灘江)․화인진강(化仁津江)․말흘탄강(末訖灘江)․형각진강(荊角津江) 등으로 되어 있으며, 공주에 이르러서는 웅진강, 부여에서는 백마강, 하류에서는 고성진강(古城津江)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CD) 남양강//南陽江//상전면 용평리 앞을 흐르던 강. 용담댐으로 수몰되었다. 무주군 안성면에서 발원하여 동향천을 합하고, 죽도에서 장계에서 흘러오는 물을 합수하여 수동리에서 학천을 합수하고, 금강으로 흘러간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동천//東川//진안읍 반월리 복지봉에서 발원하여 진안읍 군하리에서 마이산에서 발원한 물을 합하여 진안읍을 관류하여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내. 《참고문헌》東國輿地勝覽(관찬지리서, 1530) 머우내//梧川//진안읍 죽산리 성수산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안머우내와 평촌을 지나 오천리 먹뱅이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흘러오는 바깥머우내를 합하여 물곡리 종평 앞에서 서북쪽으로 꺾여 물곡에 이르러 구룡리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흘러오는 무예천과 솟터실에서 흘러오는 물을 합하여 북쪽으로 꺾이고, 웃되재와 아래되재를 지나 진안읍 운산리 송대 앞에서 금강으로 들어간다. 모둠내//동향면 능금리를 지나 흐르는 내. 학선리 하신에서 흘러 내려온 냇물이 베실바우 북쪽에서 구량천과 합류함. 무릉천//武陵川//주천면 무릉리 선바우 근처의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대불리 삼거리 앞에서 주자천에 합류하는 내. 무예천//진안읍 구룡리 예리구미에서 발원하여 머우내로 들어가는 내. 백마천//白馬川//→제룡강. 상촌천//上村川//진안읍 군상리 절골과 어영골의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중앙동에서 금강에 합류하는 내. 서천//西川//마령면 동촌리 마이산 서쪽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금촌 앞에서 남쪽으로 꺾여 신촌에 이르러 가름내와 합하여 강정리 월운 앞에서 제룡강에 합류하는 내. 《참고문헌》東國輿地勝覽(관찬지리서, 1530) 섬진강//蟾津江)//[적성강, 순자강]//백운면 신암리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임실군 관촌면에 이르러 오원천이 되고, 운암면에 이르러 추령천을 합하여 운암저수지(옥정호)를 이루고 남쪽으로 흘러 전북과 전남을 감돌아 남해로 들어가는 강. 섬진강//蟾津江//백운면 신암리 팔공산(八公山, 1,151m) 골짜기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전라남․북도의 동쪽 지리산 기슭을 지나 남해의 광양만(光陽灣)으로 흘러드는 강. 길이 212.3㎞. 유역 면적 4,896.5㎢.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긴 강이다. 노령산맥의 동쪽 경사면과 소백산맥의 서쪽 경사면인 진안군 백운면의 팔공산에서 발원하여 백운면과 마령면 등에 충적지(沖積地)를 발달시킨다. 또한 성수면에서 구불구불하게 흘러 임실군 운암면에서 갈담저수지로 흘러든다. 순창군 적성면에서 오수천(獒樹川)과, 남원시 금지면과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의 경계에서 요천(蓼川)과, 곡성군 오곡면 압록(鴨綠)에서 보성강(寶城江)과 합류하여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서부터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의 도경계를 이루며 광양시 골약면의 광양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섬진강은 본디 모래가람․다사강(多沙江)․사천(沙川)․기문화․두치강 등으로 불릴 만큼 고운 모래로 유명하다. 1385년(우왕 11)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 한다. 1928년 동진농업주식회사(동진농장)가 임실군 강진면의 해발고도 200여 m에 운암제(雲巖堤)를 축조한 뒤, 1965년 운암제 아래 섬진강다목적댐(갈담저수지)이 건설되었다. 이 댐은 유역변경식 발전을 하며 계화도(界火島) 간척지의 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CD) 소연천//→작은여내. 소축천//小木丑川//주천면 무릉리 싸리재골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무릉천에 합류하는 내. 소탄//小灘//→작은여울. 수성천//壽成川//주천면 운봉리 복두봉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구암에 이르러 구봉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을 합하여 용담면 와룡리에서 주자천에 합류한다. 《참고문헌》東國輿地勝覽(관찬지리서, 1530), 鎭安誌(진안향교, 1925) 신전천//薪田川//상전면 주평리 가막치 남쪽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이 북쪽으로 흘러 지사거리, 회사동 앞을 지나 갈현리의 신전에서 금강으로 들어가는 내. 신정천//新亭川//부귀면 세동리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신정리를 지나 진안읍 연장리 하평에서 정곡천을 합하여 서남쪽으로 꺾여 강정리 월운 앞에서 제룡강과 합류한다. 안자천//顔子川//안천면 신괴리, 노성리, 백화리의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이 삼락리 안자동 앞에서 한줄기로 되어 북쪽으로 흘러 금강으로 들어가는 내. 주자천 정자천에 빗대어 안자천이라 했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연장천//延長川//부귀면 정곡리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연장을 지나 용지동 앞에서 서쪽으로 꺾여 하평 앞에서 신정천과 합류함. 예내//[예천]//진안읍 구룡리와 오천리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흘러 웃되재와 아래되재를 지나는 내. 예천//禮川//→예내. 오원천//五院川//제룡강이 서천과 신정천을 합하여 성수면 좌포리 용포리를 지나 오원천이 되고, 임실군 관촌면을 지나 신평면 용암리에 이르러 다시 남쪽으로 꺾이고, 운암면 지천리 가좌터에서 지천을 합하고, 오봉산을 돌아 용운리를 지나 운암저수지로 들어간다. 원천//院川//성수면 신기리 신기저수지에서 발원한 물이 서북쪽으로 흘러 평지를 지나 좌산리 가수에 이르러 염북재 밑에서 발원하여 흘러오는 물을 합하여 면 경계를 따라 흘러 임실군 관촌면 방현리 공덕 앞에서 오원천으로 들어간다. 월평천//月坪川//정천면 월평리 앞을 흐르는 정자천을 부르는 이름. 여름철 유원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이천//伊川//정천면 망화리 앞을 흐르던 정자천의 하류이다. 이 물이 용담 용연에서 주자천과 합수되어 금강으로 들어간다. 정자(程子 : 程灝)의 동생 정이(程頤)의 호가 이천(伊川)이므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작은내//[적근천]//정천면 월평리 아래새내 남쪽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월평에서 정자천에 합류하는 내. 적근천//赤根川//→작은내. 정곡천//井谷川//진안읍 정곡리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마령면 연장리를 지나 하평에서 신정천과 합류한다. 정자천//程子川//《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정자천(亭子川)이 보이는 바 주변에 정자가 있다해서 정자천이라 불렸는데 주자천(朱子川)과 합수하므로 대비하여 중국의 현인 정자(程子)의 이름과 음이 같아 이름붙인 듯 하다. 부귀면 궁항리 운장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이 남쪽으로 흘러 봉암리를 지나, 오룡리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오는 물을 합하여 동쪽으로 꺾이고, 거석리를 지나 수항리 물목에 이르러 황금리에서 흘러오는 물을 합하여 두남리를 지나 정천면 월평리 원월평에서 북쪽으로 꺾이고 조림에서 동쪽으로 꺾이고, 갈룡리 교등에서 북쪽으로 꺾이고, 모정리 진그늘에서 동북쪽으로 꺾이어 여의실 앞에서 금강으로 들어간다. 《참고문헌》東國輿地勝覽(관찬지리서, 1530),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제룡강//濟龍江 [백마천]//백운면 신암리 팔공산 골짜기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서북쪽으로 흘러 반송리, 동창리를 지나 덕현리에서 북쪽으로 꺾이고, 백암리에서 흘러오는 물을 합하고, 운교리에 이르러 노촌리 성수산 골짜기에서 흘러오는 물과 마재에서 흘러오는 물을 합하여 마령면 계서리와 평지리 사이로 뚫고 서북쪽으로 흘러 강정리 월운 앞에서 가름내와 신정천을 합하여 오원천으로 들어간다. 《참고문헌》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주자천//朱子川//주천면 대불리, 무릉리, 용덕리의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이 주양리에서 합류하고 동남쪽으로 흘러 운봉리 운장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을 합하고 용담면 와룡리와 수천리를 지나 월계리 월계 앞에 이르러 호계리에서 발원한 물을 합하고 황산 앞에서 금강으로 들어간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천천//天川//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신문산에서 발원하여 덕유산 골짜기에서 발원한 장계천을 합하여 상전면 수동리에서 구량천을 합하여 금강으로 들어간다. 학선천//鶴仙川//장수군 계북면 양악리와 임평리에서 발원한 여러 골짜기의 물이 무주군 안성면과의 경계인 원촌리에서 합류하여 경계를 따라 서북쪽으로 흘러 진안군 동향면 학선리를 지나 서남쪽으로 꺾여 능금리에서 구량천으로 들어간다. 학천//鶴川//진안읍 반월리 성수산에서 발원하는데, 진안읍 군하리에서 마이산 계곡물을 합하고 진안읍 군상리에서 부귀산 계곡물을 합하여 흘러 내려간다. 그래서 이 냇가 옆의 동네를 학천동이라 한다. 《참고문헌》鎭安誌(진안향교, 1925) 합수내//진안읍 가막리 하가막 서북쪽, 부구리산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천천으로 들어가는 내.
가마봉//성수면 도통리 산주 서쪽에 있는 산. 가매봉//마령면 강정리 월운 남동쪽에 있는 산. 가마같이 생겼다고 한다. 갈마음수산//渴馬飮水山//부귀면 봉암리 소태정 북쪽에 있는 산. 갈미봉1//동향면 자산리 하노 북동쪽에 있는 산. 모양이 갈모 같음. 갈미봉2//부귀면 거석리, 봉암리, 황금리와 궁항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812.5m. 갈모처럼 생겼다고 한다. 갈미봉3//백운면 백암리, 동창리, 반송리와 신암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762m. 갈모처럼 봉우리가 뾰족하다. 갈쿠리봉//[구봉]//⇒성덕봉 감투봉1//백운면 백암리 갈미봉 동쪽에 있는 선각산 줄기의 산. 위에 있는 바위 모양이 장군의 투구 같다고 한다. 감투봉2//상전면 월포리 대구평 동남쪽에 있는 산. 높이 692m. 대덕산 서쪽 줄기로, 모양이 감투처럼 생겼다고 한다. 갓모봉//[관봉]//주천면 무릉리 선바우 남쪽에 있는 산. 높이 731m. 갓봉//[관암]//진안읍 연장리 용지동 동쪽에 있는 산. 개산//용담면 월계리 월계 동쪽에 있는 동산. 거늠산//상전면 구룡리 세동 남쪽에 있는 산. 건네산//마령면 덕천리 판치 북서쪽에 있는 등성이. 고금당산//마령면 동촌리 금촌 서쪽에 있는 산. 높이 524m. 상봉쪽에 나옹암이 있다. 고리봉//부귀면 신정리 방각 남쪽에 있는 등성이. 모양이 꼬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고수봉//동향면 학선리 중신 동쪽에 있는 산. 공굴산//안천면 삼락리 상안천 동북쪽에 있는 산. 공수봉//성수면 좌산리 좌산 서쪽에 있는 산. 공알봉//진안읍 군상리 손실재 북동쪽에 있는 봉우리. 모양이 불알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 관두산//冠頭山//진안읍 군하리 관산동 북쪽에 있는 산. 관봉//冠峯//⇒갓모봉. 구봉//鉤峯//⇒성덕봉. 광덕산//廣德山//⇒광대산. 괘양산//掛陽山[규양재]//마령면 평지리 동쪽에 있는 산. 높이 352m. 국사봉1//國師峰//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와 진안군 동향면 능금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756.6m. 국사봉2//國師峰//성수면 용포리와 중길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549m. 국사봉3//國士峰//정천면 갈룡리 교동 북쪽에 있는 산. 높이 456m. 전설에 의하면 이 산중에 불당이 있었고, 도사가 났다고 한다. 깃대봉1//동향면 학선리 웃새울 서쪽에 있는 산. 높이 520m 깃대봉2//마령면 덕천리 비누골 북쪽에 있는 산. 높이664m. 깃대봉3//부귀면 신정리 방각 서쪽에 있는 산. 높이 664m. 측량표준기를 세웠었다고 한다. 까치봉//부귀면 궁항리 상궁항 남쪽에 있는 산. 높이 605m. 모양이 까치같이 생겼다고 한다. 꼬깔봉//백운면 동창리 석전 동쪽에 있는 고깔 모양의 산. 높이 499m. 꽃봉산//상전면 주평리 구슬개 남쪽에 있는 산. 나도산//마령면 동촌리 탑사 남동쪽에 있는 산. 남산//용담면 수천리 원장 남쪽에 있는 산. 노고산//老古山//⇒할미동산. 노적봉//주천면 운봉리 안정동 남쪽에 있는 산. 높이 607.1m. 닭뫼//용담면 옥거리 동헌 터 북쪽에 있는 산. 당산//진안읍 군상리 중앙동 서쪽에 있는 산. 속칭 신사당 터라 한다. 당산봉//정천면 모정리 여의실 남쪽에 있는 산. 전에 둘레 한 아름 되는 당산나무가 있었으며, 정월 초에 당산제를 지냈다. 당재봉//용담면 송풍리 호룡골 북쪽에 있는 산. 높이 396.1m. 전에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대덕산1//大德山//⇒고산. 대덕산2//大德山//⇒부구리산 대두산//大頭山//성수면 좌포리 양화 서북쪽에 있는 산. 높이 459m. 도굿대봉//마령면 동촌리 용암동천 북동쪽에 있는 바위. 도굿대처럼 생겼다고 한다. 독뫼2//[圓山]//백운면 운교리 상원산과 하원산 사이에 있는 산. 둥그런 산이 들가운데 떨어져 있다. 원산//圓山//⇒독뫼2 독뫼1//마령면 계서리 서산 가운데 외따로 서 있는 산. 독재봉//상전면 주평리 가막재 남동쪽 진안읍 가막리 상가막과 경계에 있는 산. 높이 675.2m. 독태산//獨泰山//⇒부귀산. 동림대//東林臺//마령면 평지리와 백운면 평장리 사이에 있는 산. 높이 515m. 돛대봉//⇒마이산. 두루봉//용담면 와룡리 호미동 남쪽에 있는 둥그런 산. 높이 547m. 두미봉//斗尾峯//진안읍 가림리 가름내 서남쪽에 있는 산. 높이 533m. 모양이 말꼬리처럼 생겼다 한다. 두억봉//斗億峰//동향면 양지리 북쪽에 있는 산. 모양이 마치 곡식을 쌓아 올린 노적처럼 생겼다고 한다. 뒤상두봉//백운면 동창리 번뎀이 동쪽에 있는 산. 뒷동산1//진안읍 군상리 향교골 뒤(북)쪽에 있는 산. 뒷동산2//진안읍 물곡리 궁동마을 윗산 꼭대기에 소나무 20여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그 소나무 숲 속에 바위가 있어 그 바위가 밖으로 노출될 때에는 궁동마을에 큰 재앙을 당한다 하여 오래 전부터 마을에서 소나무를 가꾸고 있다. 딴들봉//주천면 용덕리 시루봉 서남쪽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산. 떡뫼산//부귀면 거석리 신평 서쪽에 있는 산. 노적같이 둥그스름하게 생겼다고 한다. 마두봉//馬頭峰//마령면 동촌리 비로소골 서쪽에 있는 바위. 말머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마문봉//馬門峰//부귀면 세동리 새터 남쪽에 있는 산. 말을 조련시켰다 한다. 마이산2//馬耳山//용담면 월계리 황산 서남쪽에 있는 산. 모양이 말의 귀처럼 생겼다고 한다. 마치산//馬峙山[마재]//진안읍 가림리 선인동 동남쪽에 있는 산. 높이 578m. 백운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다. 매방제산//梅芳齊山//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장기리 죽점리, 공진리와 진안군 동향면 학선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775.5m. 매 형국이라 한다. 매봉1//[鷹峰]//상전면 용평리 평은 서쪽에 있는 산. 높이 312m. 매봉2//안천면 노성리 보한리 북쪽에 있는 산. 매봉3//[鷹峙]//진안읍 가림리 안골 뒤(동)쪽에 있는 산. 매처럼 생겼다고 한다. 매봉산//[鷹峰]//용담면 수천리 송림 뒤(남)쪽에 있는 산. 높이 489.4m. 전에 산봉우리에서 막을 지어 놓고, 매를 받았던 곳이라 한다. 응봉락조(鷹峰落照)라 하여 용담 8경의 하나임. 매봉재//[응봉]//부귀면 삼봉리 서쪽에 있는 산. 높이 416.9m. 복치혈(伏雉穴)이 있다고 한다. 매봉재//[응봉]//주천면 신양리 하성암 동쪽에 있는 산. 멍덕봉//[명덕봉]//동향면 학선리와 대량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660m. 봉우리가 멍덕처럼 생겼다고 한다. 멍덕봉//부귀면 거석리 작은여내 옆에 있는 등성이. 모양이 벌멍덕처럼 생겼다고 한다. 명덕봉1//明德峰//⇒멍덕봉. 명덕봉2//明德峰//정천면 봉학리 맞바위 북쪽에 있는 산. 높이 790m. 봉우리가 멍덕처럼 생겼다고 한다. 명덕봉3//明德峰//주천면 무릉리, 주양리와 용덕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845.5m. 봉우리가 멍덕처럼 생겼다고 한다. 명도봉//明道峰//주천면 대불리, 주양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867m. 명덕봉의 남쪽에 있다. 무봉산//舞峰山//⇒물봉산. 무봉산//진안읍 죽산리 어은동 서북쪽에 있는 산. 무재봉//마령면 계서리 중숨골 남동쪽에 있는 산. 전에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문필봉//文筆峰//동향면 대량리 보말 동쪽에 있는 산. 높이 598m. 모양이 붓끝처럼 생겼다. 조선조 때 봉화를 올렸다 하며, 경호연수 문필분명(鏡湖沿水文筆分明)이라 하여 동향팔경(銅鄕八景)의 하나이다. 물봉산//[무봉산]//진안읍 오천리 석고개 서남쪽에 있는 산. 높이612m. 민살재//성수면 좌산리 송촌 북쪽에 있는 산. 높이 387m. 바거리봉//마령면 계서리 오동 남쪽에 있는 산. 바구리봉//성수면 도통리 중평 동쪽에 있는 산. 모양이 바구니처럼 생겼다고 한다. 바구리산//백운면 덕현리와 마령면 계서리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626m. 바구리같이 생겼다고 한다. 방미산//枋米山//⇒배미산. 배때기산//⇒부귀산 배미산//[주미산, 방미산] 성수면 용포리와 좌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568.6m. 배같이 생겼다 한다. 배태기산//[독태산, 백택산, 부귀산]//⇒부귀산 백덕산//白德山//정천면 월평리 족대벌 서남쪽에서 부귀면과의 사이에 있는 산. 백두산//부귀면 세동리 세동 앞(남)쪽에 있는 산. 백마산1//白馬山//성수면 도통리와 구신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727m. 내동산 서쪽 줄기가 됨. 백마산2//白馬山//성수면 구신리 상염북리 서쪽에 있는 산. 높이 525m. 전에 백마가 났다 한다. 백택산//白澤山//⇒부귀산. 복두봉1//幞頭峰//주천면 대불리, 운봉리와 정천면 봉학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017m. 봉우리가 바위로 되어 있어 감투를 쓰고 있는 것 같음. 복두봉2//福頭峰//⇒꼭지산. 복지봉//성수산 북쪽, 진안읍 반월리 삼베실 정상에 있는 봉우리, 전에 박쥐가 많았다 한다. →성수산1 복호봉//정천면 모정리 훈돗골 동북쪽에 있는 산봉우리. 모양이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것처럼 생겼다고 한다. 봉란산//鳳卵山//부귀면 봉암리 봉암 서쪽에 있는 산. 높이 597m. 채봉포란(彩鳳抱卵)형의 명당이 있다 한다. 봉우재//부귀면 봉암리 죄약골 남쪽에 있는 산. 높이 548m. 전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봉화봉//백운면 평장리 가전 북서쪽에 있는 산. 높이 515m. 봉화대가 있었다 한다. 봉황산1//성수면 좌포리 봉촌 뒤에 있는 산. 봉황 형국으로 생겼다고 한다. 봉황산2//鳳凰山//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동북쪽, 장수군 장수읍과 천천면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 높이 927.9m. 부엉댕이//부흥산//정천면 모정리 논골 동북쪽에 있는 산. 부운봉//부귀면 세동리 덕봉 서북쪽에 있는 산. 높이 583m. 부흥산//復興山//⇒부엉댕이. 북덕재봉//부귀면 거석리 김제실 동쪽에 있는 산. 높이 400m. 불무혈이 있다 한다. 불당산//佛堂山//부귀면 거석리 거문들 동남쪽에 있는 산. 높이 654.3m. 전에 불당이 있었다 한다. 사자봉1//獅子峯//백운면 남계리 오정과 남계 사이에 있는 등성이. 사자 형국이라 한다. 사자봉2//獅子峯//성수면 도통리 산주 동쪽에 있는 산. 사자산//獅子山//만덕산의 옛 이름. →만덕산 중대산//中臺山//덕태산의 옛 이름. →덕태산 사창산//상전면 월포리 대구평 서쪽에 있는 산. 산영치//山影峙//동향면 성산리와 상전면 수동리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599m. 남쪽 줄기에 고개가 있다. 산재봉//주천면 용덕리 산제봉 서북쪽에 있는 등성이. 삼태봉//진안읍 물곡리 종평 북쪽에 있는 산. 높이 501.5m. 큰 봉우리가 셋이다. 삿갓바우산//안천면 삼락리 하안자동 동쪽에 있는 산. 삿갓봉1//[입봉]//완주군 소양면 신월리와 진안군 부귀면 봉암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640.8m. 봉우리가 삿갓처럼 생겼다고 한다. 삿갓봉2//동향면 능금리 안쇠실 동남쪽에 있는 산. 상투봉//마령면 덕천리 용바우 동쪽에 있는 상투 모양의 산. 산 너머에 태자굴이 있다. 생남산//生男山//⇒성수산. 서비산//西飛山//⇒서산 서다산//西多山//⇒마이산. 서산//西山[서비산]//마령면 계서리 오동실 서북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제비집 같아서 제비가 나는 것 같다 한다. 선봉//仙峯//주천면 무릉리 어자리 동쪽에 있는 산. 높이 699m. 성덕봉//聖德峰[구봉, 미봉]//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충남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496.7m. 무주군에서는 구봉, 충남에서는 미봉이라 한다. 성뫼산//진안읍 군하리 관산동 남동쪽에 있는 산. 높이 361.9m. 전에 산성이 있어 이름을 얻었다. 성묘산//聖墓山//성뫼산의 잘못. →성뫼산. 성미산//城米山//성수면 좌산리와 임실군 관촌면 방현리 및 덕천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427m. 성터가 있다. 성봉//城峯//⇒성재산. 성사산//聖寺山//진안읍 가림리 선인동 동쪽에 있는 산. 성수산2//聖壽山[생남산, 의암산]//진안군 백운면 신암리와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의 경계에 있는 산. 이 산에 있는 상이암(上耳庵)에서 조선 태조가 기도를 드리다가 성수만세(聖壽萬歲)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높이 876m. 《참고문헌》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성수산3//聖壽山[생남산]//성수면 도통리, 용포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483m. 《참고문헌》鎭安의 地名(진안문화원, 1993) 성안산//[성치]//용담면 월계리 성남 북쪽에 있는 산. 높이 293m. 성터가 있다. 성재산1//용담면 옥거리 옥거 서북쪽 1.7km에 위치한 산. 높이 540m 전에 석성이 있었다 한다. 성재산2//[성봉]//주천면 용덕리 대촌 동북쪽에 있는 산. 높이 420m. 성주봉1//聖主峰//동향면 성산리와 신송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509.7m. 조선조 태조가 산제를 지냈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성주봉2//聖主峰//⇒꼭지산. 성치산//城峙山//진안군 주천면과 충남 금산군 남이면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673.2m. 세리봉//마령면 동촌리 서촌 남쪽에 있는 써레 모양의 등성이. 속금산//束金山//⇒마이산. 송산//성수면 도통리 산주 서쪽에 있는 산. 쇠말봉//[철마산]//안천면 삼락리와 상전면 구룡리, 정천면 망화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478.3m. 이 산에 철마를 묻었다고 한다. 쇠술뫼//주천면 주양리 와룡암 동남쪽에 있는 산. 수원산//壽源山//⇒추줄뫼. 시루봉//[문필봉, 필봉]//부귀면 삼봉리 동쪽에 있는 산. 높이 652m. 먼 곳에서 보면 붓처럼 생겼고, 가까이서 보면 시루같이 생겼다고 한다. 시루봉1//동향면 능금리 능길 동쪽 학선리와 경계에 있는 산. 시루봉2//부귀면 궁항리 하궁항 동남쪽에 있는 산. 높이 585.4m. 모양이 시루처럼 생겼다고 한다. 시루봉3//주천면 용덕리 산재봉 남쪽에 있는 산. 높이 620m. 모양이 시루처럼 생겼다고 한다. 신앙골산//마령면 계서리 방화 남쪽에 있는 산. 높이 710m. 싸리골산//상전면 구룡리 세동 동남쪽에 있는 산. 높이 493.5m. 쌍교봉//雙轎峰//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와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573.4m. 알미산//[鳳卵山]//성수면 좌포리 좌포 앞(남서)쪽에 있는 산. 봉의 알 형국임. 양계봉//兩鷄峰//백운면 운교리와 노촌리, 평장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408m. 닭 형국이라 한다. 여수바우산//용담면 와룡리 여수바우가 있는 산. 영갱이산//안천면 백화리 중배실 남쪽에 있는 등성이. 옥녀봉1//玉女峰//부귀면 황금리와 정천면 봉학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738.5m. 옥녀창가의 명당이 있다한다. 옥녀봉2//진안읍 반월리 남쪽, 진안읍 가림리 옥산동 북쪽에 있는 산. 높이 709.8m. 옥새봉//玉璽峯//동향면 신송리 안누룩골, 쇠용골, 절골에 걸쳐 있는 산. 높이 670.5m. 옥새봉립 제산봉조(玉璽峯立諸山奉朝)라 하여 동향 팔경(銅鄕八景)의 하나이다. 용각봉//龍角峰//⇒마이산. 용마봉1//마령면 동촌리 탑영제 남동쪽에 있는 산. 용마봉2//부귀면 신정리 노루목고개 북쪽에 있는 산. 말 형국이라 한다. 용마봉3//龍馬峰//부귀면 세동리 우정리 앞(동)쪽에 있는 산. 모양이 용마 형국이라 한다. 용출봉//湧出峰//⇒마이산. 우제산//牛蹄山[우족산]//진안읍 군상리 중앙동 동북쪽에 있는 산. 우족산//牛足山//⇒우제산. 우화산//羽化山//진안읍 군상리 우화동 남쪽에 있는 산. 원암산//부귀면 황금리 운장산 남동쪽에 있는 산. 원오봉//진안읍 반월리 지매실고개 북쪽에 있는 산. 유산1//성수면 도통리 음수동 남동쪽 내동산 아래(북)쪽에 있는 산. 유산2//乳山//진안읍 운산리 검북 서쪽에 있는 마을. 뒷산이 와우형(臥牛形)이고, 유봉(乳峰)이 있으며, 또 샘이 있다. 응봉1//鷹峯//⇒매봉. 응봉2//鷹峰//⇒매봉산. 응봉3//鷹峯//⇒매봉재. 장구봉//용담면 송풍리 호룡골 남쪽에 있는 산. 높이 340m. 모양이 장구처럼 생겼다고 한다. 장군바우산//상전면 구룡리에 있는 산. 장군바우가 있다. 장군봉1//將軍峰//부귀면 세동리 터골 동쪽에 있는 산. 높이 477m. 장군대좌혈(將軍大座穴)이 있다고 한다. 장군봉2//將軍峰//성수면 외궁리 새말 서쪽에 있는 산. 장군대좌혈(將軍大座穴)이 있다 한다. 장군봉3//將軍峰//주천면 대불리 개화동 서쪽에 있는 산. 높이 724.3m. 장군봉4//將軍峰//⇒천황봉 장봉//長峰//부귀면 삼봉리 북쪽에 길게 뻗쳐 있는 산. 높이 545m. 제천봉//祭天峯//주천면 신양리 상성암 북쪽에 있는 산. 높이 468m. 조고리봉//부귀면 거석리 맛골 동북쪽에 있는 등성이. 모양이 저고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조리봉//성수면 구신리 신평매골에 있는 산. 조리 명당이 있다 한다. 주미산//舟尾山//⇒배미산. 주줄산//珠萃山//⇒운장산. 지소산//智小山//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와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441.6m. 지초봉//芝草峰//안천면 신괴리 지새 남쪽에 있는 산. 지초가 많다 한다. 질마봉//백운면 동창리 화산 뒤쪽에 있는 산. 질마(길마)처럼 생겼다고 한다. 처사봉//處士峯//마령면 동촌리 금당사 북쪽, 진안읍 연장리 대성동 남쪽에 있는 산. 암마이봉 서쪽이 된다. 천마산//天馬山//상전면 수동리 터일 앞 서남쪽에 있는 산. 철마산//鐵馬山//⇒쇠말봉. 초승봉//진안읍 물곡리 북쪽에 있는 산. 모양이 뾰죽하고 고깔같이 생겼다고 한다. 추줄뫼//[수원산]//용담면 옥거리 태고정 북쪽에 있는 산. 추줄산//崷崒山//⇒운장산. 측량기봉//부귀면 오룡리 오룡동 동쪽에 있는 산. 높이 644m. 큰봉1//백운면 평장리 동평장 북동쪽에 있는 산. 높이 511m. 큰봉2//진안읍 연장리 대연장 북쪽에 있는 산. 높이554m. 큰성터산//주천면 운봉리 탁고개 서쪽에 있는 산. 성터가 있다. 높이 584m. 큰양지산//성수면 도통리 산주 북쪽에 있는 산. 높이 463m. 큰재복지산//상전면 갈현리 음지골 북쪽에 있는 산. 높이 493.5m. 측량 표준기가 있었다 한다. 탁조봉//啄鳥峰//용담면 와룡리 고무동 서쪽에 있는 산. 산형이 비조탁목형(飛鳥啄木形)이라 한다. 투구봉1//부귀면 세동리 세동 동쪽에 있는 산. 모양이 투구처럼 생겼다고 한다. 투구봉2//성수면 외궁리 고미동 동쪽에 있는 산. 평산//용담면 와룡리 신정 앞(남)쪽에 있는 산. 할미동산//[노고산]//진안읍 군상리 노계동 북쪽에 있는 산. 모양이 할미처럼 생겼다고 한다. 형제봉1//兄弟峰//안천면 백화리와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에 걸쳐 있는 산. 높이 579m. 형제봉2//兄弟峰//상전면 구룡리 비대 동쪽에 있는 산. 봉우리 수가 2개이다. 화개산//華開山//진안읍 군상리 범모통이 동쪽에 있는 산. 화산//華山//주천면 주양리 양지말 남쪽에 있는 산. 높이 438m. 황정산//상전면 구룡리 세동 서북쪽에 있는 산. 근처에 와우형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훈돗골산//정천면 모정리 훈돗골 뒤에 있는 산. 높이 430m.
가래울재//성수면 중길리 하달길에서 마령면 덕천리 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가래재//동향면 자산리 하노에서 능금리 가래골로 가는 고개. 가막골재//진안읍 가막리 상가막에서 물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가막재1//진안읍 가막리 하가막에서 상전면 주평리 가막치로 넘어가는 고개. 가막재2//진안읍 물곡리에서 상전면 주평리 가막치로 넘어가는 고개. 가장골재//진안읍 연장리 가장골로 넘어가는 나지막한 재. 가정고개//부귀면 오룡리 오룡동에서 신정리 가정으로 가는 고개. 가제재//[과거재]//백운면 남계리 명박골에서 시묘골로 넘어가는 고개. 과거에 급제하여 금의환향하는 선비를 온 마을 사람들이 환영하러 나온 곳이라 하며, 가재 모양으로 생겼다 한다. 가주기재//부귀면 신정리 가정자에서 오룡리 오룡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가죽재//부귀면 오룡리 오룡동에서 신정리 가정으로 넘어가는 고개. 가치//歌峙//⇒노래재. 각호막치//角虎幕峙//⇒갈크매기재. 각호치//角虎峙//⇒갈크매기재. 갈거리재//정천면 봉학리 조림에서 갈룡리 갈거로 넘어가는 고개. 갈크매기재//[각호치, 각호막치]//정천면 봉학리 가림점 북쪽에서 운장산 동쪽 줄기를 지나 주천면 대불리로 넘어가는 고개. 가팔라서 갈크매기진다(가파르다) 함. 강녕곡치//康寧谷峙//⇒강정골재. 강녕골재//[강녕곡치]//⇒강정골재. 강정골재//[활인동치]//진안읍 정곡리 활인동에서 군하리 재실로 넘어가는 고개. 고난치//苦難峙//⇒고남재. 고남재1//[고난치]//동향면 양지리 북쪽에 있는 하노를 거쳐 안천면으로 가는 고개. 경사가 심하여 넘어다니기 힘들다고 한다. 고남재2//[고남치]//정천면 모정리 신촌 동북쪽에서 용담면 호계리 호암으로 넘어가는 고개. 고남치1//古南峙//⇒고남재. 고남치2//高南峙//⇒고네미고개. 고남치3//古南峙//⇒고남재2. 고내미재//동향면 자산리 후평에서 양지로 가는 고개. 고내미재//상전면 수동리 외송에서 주평리로 넘어가는 고개. 고네미고개//[두문동고개, 고남치]//주천면 무릉리 고네미에서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 두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고듬치//동향면 신송리 안누룩골에서 흰바위로 가는 고개. 고등혈묘가 있다고 한다. 곰치재//⇒곰티재. 곰티재1//부귀면 세동리 부암에서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로 넘어가는 도로. 모래재가 완공되기 전 전주, 진안간의 도로였다. 곰티재2//[곰치재, 웅령, 웅치]//부귀면 세동리 덕봉에서 서쪽으로 산등성이를 따라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로 가던 옛 전주, 진안간의 역로(驛路). 과거재//⇒가제재. 광기동재//부귀면 오룡리 오룡동에서 진안읍 정곡리 광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광대정이고개//[광대정치]//주천면 용덕리 대촌 동쪽에서 충청남도 남이면 흑암리 광대정으로 넘어가는 고개. 광대정치//光大亭峙//⇒광대정이고개. 광산재//진안읍 정곡리에서 활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괴굇재//동향면 성산리 웃열원리 남쪽에서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로 넘어가는 고개. 고양이 형국이라 한다. 구름재//백운면 신암리 예드림에서 임실군 성수면 왕방리로 가는 고개. 구신재//[구신치]//성수면 구신리 원구신에서 백운면 덕현리 덕현으로 넘어가는 고개. 구신치//求臣峙//⇒구신재. 구실재//⇒굴고개. 구치//龜峙//⇒국기재. 국기재//[구치, 국기재]//성수면 좌포리 산수동에서 마령면 강정리 월운으로 넘어가는 고개. 거북과 같이 생겼다 한다. 국기재//⇒구기재. 굴고개//[굴치, 구실재, 서낭댕이고개]//안천면 삼락리 안자골에서 수좌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지장산에 석가봉이 있어 중이 쓰는 굴갓처럼 생겼으며, 서낭나무가 있었다 한다. 굴치//屈峙//⇒굴고개. 금당재//진안읍 연장리 용지동에서 동촌리 금촌으로 가는 고개. 금현//琴峴//⇒기암지고개. 기암지고개//[금현]//⇒동향면 능금리 내금곡에서 능길로 가는 고개. 거문고 형국임. 까막고개//용담면 와룡리 영강에서 주천으로 넘어가는 고개. 꼬부랑재//진안읍 죽산리 모시골 남쪽에서 장수군 천천면 남양리 송탄으로 넘어가는 꼬부라진 고개. 꽃재//주천면 용덕리 산제봉 북쪽과 느지목 사이에 있는 골짜기. 내동재//마령면 덕천리 내동에서 놋점이로 넘어가는 고개. 노래재//[가치]//⇒부귀면 황금리의 가치에서 정천면 봉학리로 넘어가는 고개. 노루고개//[장현]//⇒능길 북쪽에서 무주로 가는 고개. 노루목고개1//부귀면 거석리 하거석 동쪽에서 김제실로 넘어가는 고개. 노루목처럼 생겼다고 한다. 노루목고개2//부귀면 신정리 가정에서 세동리 우정으로 넘어가는 고개. 노루목처럼 생겼다고 한다. 노루목고개3//성수면 좌포리 좌포 서쪽에서 양화로 넘어가는 고개. 노루목처럼 생겼다고 한다. 노루목재1//부귀면 세동리 우정리 남쪽에서 덕봉과 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의 모양이 노루목처럼 생겼다고 한다. 노루목재2//[장항]//주천면 신양리 날망뜸 북쪽에서 용덕리 미적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노루목처럼 생겼다고 한다. 놋점이재//[서낭당이재, 신동치]//부귀면 신정리 방각에서 마령면 덕천리 놋점으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 마루턱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한다. 느름재//진안읍 구룡리 돌고개에서 단양리로 넘어가는 고개. 느릅재//주천면 무릉리 선바우에서 싸리재골로 넘어가는 고개. 늦은목고개//부귀면 수항리 번덕담에서 거석리 김제실로 넘어가는 고개. 경사가 완만함. 늦은목재//[만항치] 부귀면 궁항리 정수암에서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로 넘어가는 고개. 닥실고개//백운면 운교리 갈우손이에서 노촌리 하미치로 가는 고개. 고개 서쪽에 양계봉이 있음. 단밧재//[월돈재]//정천면 월평리 아래새내에서 상전면 월포리 양지말로 넘어가는 고개. 달롱개재//안천면 노성리 보한리에서 백화리 상배실로 넘어가는 고개. 달롱개(달래)가 많이 있었다 한다. 담뱃재//⇒새버리재. 당골재//정천에서 백운면 평장리 하평장으로 가는 고개. 전에 당집이 있었다 한다. 대고개//[죽산치]//동향면 학선리 구석새울에서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머구재로 넘어가는 고개. 봉이 대고개에서 죽실(竹實)을 먹고, 머구재의 오동숲에서 쉰다는 전설이 있었다. 대매골재//부귀면 오룡리 오산에서 세동리 적천으로 가는 고개. 대목재//[죽항치, 배목재]//정천면 월평리 족대벌에서 상전면 운산리 후사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대양치//[비대재]//상전면 구룡리 비대에서 안천면 노성리 대양으로 넘어가는 고개. 대양치//大陽峙//⇒코크니재. 대웅재//백운면에서 임실군 성수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안구신골을 거쳐감. 도래실재//[방곡치, 방골재]//안천면 백화리 도래실에서 무주군 부남면 고창리로 넘어가는 고개. 도짓재//진안읍 연장리 원연장 안동네와 대성동 사이의 동구(洞口)에 해당하는 재 아닌 마을 입구. 된살목재//상전면 구룡리 세동 동남쪽에서 안천면 신괴리 지새로 넘어가는 고개. 두남치//斗南峙//⇒매남이재. 두문동고개//杜門洞//⇒고네미고개. 뒷재//백운면 남계리 뒤쪽에 있는 고개. 들말고개//동향면 자산리 후평에서 대량리 양지리로 가는 고개. 등땡이재//정천면 망화리 자금 북쪽에서 이깨로 넘어가는 고개. 땅재//⇒동촌리의 “땅재”. 땅재//마령면 동촌리 금촌에서 연장리 관암으로 가는 고개. 띠개고개//상전면 용평리 운암에서 모정리 망덕으로 넘어가는 고개. 마구실재//진안읍 정곡리에서 부귀면 거석리 마구실로 넘어가는 고개. 마당재1//부귀면 신정리 방각에서 서촌으로 넘어가는 고개. 전에 이곳에서 타작을 했다고 한다. 마당재2//성수면 도통리 뒷들 동쪽에 있는 고개. 닭이 마당에서 노는 형국이라 함. 마당재3//주천면 운봉리 윗양명에서 정천면 갈룡리 수암으로 넘어가는 고개. 모양이 펀펀하게 생겼다고 한다. 마령재//[마령치]//백운면 신암리 고림하 남쪽에서 장수군 장수읍 대성리 필덕으로 가는 고개. 백제 때 장군의 말이 죽어 이 고개에 묻힌 후 3년 동안 밤마다 말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마령치//馬靈峙//⇒마령재. 마리지고개//[두문동고개]//주천면 무릉리 어자에서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 두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마월치//馬越峙//⇒매남이재. 마재//[마치, 마치재]//성수면 중길리 마재골에서 완주군 상관면 마치리로 넘어가는 고개. 근처에 천마시풍(天馬嘶風)형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마재재//백운면 노촌리 마재에서 진안읍 가림리로 넘어가는 고개. 마전치//馬轉峙//⇒말구를재. 마치1//馬峙//⇒마재. 마치2//馬峙//⇒마재2. 마치재//⇒마재. 마현//馬峴//⇒말고개. 만항치//晩項峙//⇒늦은목재. 말고개//[마현]//동향면 능금리 외금곡 서쪽에서 대량으로 가는 고개. 말구를재//[마전치]//성수면 좌포리 양화 서남쪽에서 임실군 관촌면 회봉리 하회로 넘어가는 고개. 험하고 비탈져서 말이 굴렀다고 한다. 말궁구리재//부귀면 두남리 새뜸에서 독정으로 넘어가는 고개. 말궁굴재//⇒말구를재 말목재//상전면 월포리 양지말에서 정천면 갈룡리로 가는 고개. 망바우재//[큰공굴]//안천면 삼락리 수좌동 동쪽에서 무주군 부남면 고창리 밤골로 넘어가는 고개. 망중재//마령면 계서리 오동 남서쪽에서 성수면 도통리 중평으로 가는 고개. 매남이재//[두남치, 마월치, 마남이재, 매남치]//부귀면 두남리 매남이에서 상전면 운산리 구운들로 넘어가는 고개. 전에 남쪽 사람들이 상경하는 길목인데, 말을 타고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매남치//梅南峙//⇒매남이재. 매봉재//[응봉치]//마령면 계서리 서산 서쪽에서 성수면 좌포리로 가는 고개. 앞산에 복치(伏雉)형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머구재//[오동리재]//상전면 월포리 금지에서 정천면 월평리 오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머리고개재//백운면 동창리에서 백암리 원촌으로 가는 고개. 먹고개//주천면 신양리 남정자에서 주양리로 넘어가는 고개. 먹벵이재//마령면 동촌리 서촌에서 금촌으로 가는 고개. 산이 막혀서 어둡다고 한다. 먹재1//[묵치]//동향면 성산리 웃열원리 서쪽에 있는 고개. 천반산을 끼고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 북쪽을 거쳐 진안읍 가막리로 넘어감. 나무가 울창했었다고 한다. 먹재2//진안읍 가막리 하가막에서 상전면 주평리 가막치로 넘어가는 고개. 메네미재//[두남치]//진안읍 군상리 어영골 북쪽에서 운산리를 지나 부귀면 두남리로 넘어가는 고개. 명밭골고개//주천면 운봉리 명밭골에서 용담면 호계리 소방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모래재//부귀면 세동리 적내에서 완주군 소양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진안, 전주간의 국도에 위치함. 모사골에 위치했다 해서 모사를 모새(모래)로 보고 붙인 이름. 묵치//墨峙//⇒먹재1. 문수고개//정천면 모정리 복골 북쪽에서 도룡골로 넘어가는 고개. 미치//美峙//⇒밀고개. 민상재//성수면 외궁리 활목에서 좌산리 중기로 넘어가는 고개. 밀고개//[미치]//진안읍 가림리 옥산동에서 반월리 외기로 넘어가는 고개. 옥녀의 밀기름 단지가 있다고 한다. 반룡재//[반룡치]//성수면 용포리 반룡에서 외궁리 난들로 넘어가는 고개. 반룡치//盤龍峙//⇒반룡재. 반룡치//盤龍峙//⇒용포리의 ‘반룡재’. 방갯골고개//진안읍 고암리에서 외기로 넘어가는 고개. 방고개//[栗峙]//진안읍 오천리 동구지미에서 장수군 천천면 봉덕리 새재로 넘어가는 고개. 먹뱅이 가까이 동쪽을 지남. 방곡재//⇒도래실재. 방곡치//方谷峙//⇒도래실재. 방골재//⇒영강재. 배고개//백운면 백암리 상백암에서 운교리 신전으로 가는 고개. 배남정이재//백운면 남계리 오정 남서쪽에서 성수면 구신리로 넘어가는 고개. 전에 배나무 정자가 있었음. 배목재//⇒대목재. 배치//拜峙//⇒절티. 배치//拜峙//성수면 도통리 중숭골에서 마령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전에 절이 있어서, 중이 이 고개에서부터 머리를 숙이고 갔었다고 한다. 버들골재//마령면 계서리 오동 남쪽에서 성수면 도통리 음수동으로 가는 고개. 전에 버드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번덕고개//백운면 동창리 번뎀이에서 웃뫼실로 가는 고개. 벗나무재//백운면 남계리 분토동에서 임실군 성수면 갈골로 가는 고개. 보룡공이재//[보룡현]//부귀면 봉암리 소태정에서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로 넘어가는 고개. 구룡농주(九龍弄珠)의 형국으로 되었다고 한다. 보룡현//寶龍峴//⇒보룡공이재. 북덕재1//부귀면 거석리 김제실에서 수항리 불무실로 가는 고개. 북덕재2//진안읍 연장리에서 부귀면 정곡리 정곡으로 가는 고개. 북적재//부귀면 수항리 불무실 서쪽에서 거석리 김제실로 넘어가는 고개. 불로치령//不老峙嶺//안천면 신괴리 지새에서 정천면 구룡리 세동으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 불로티령//⇒불당골재. 비대재//鼻大一//⇒대양치. 비대치//鼻大峙//⇒코크니재. 비조재1//[비조치]//주천면 주양리 양지말 서쪽에서 대불리와 무릉리로 넘어가는 고개. 근처에 비조탁목(飛鳥啄木)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비조재2//성수면 좌포리 봉촌 북쪽에서 중기리 오암으로 넘어가는 고개. 비조치//飛鳥峙//⇒비조재. 뻣나무재//백운면 남계리 분토동 남쪽에서 임실군 성수면 갈골로 가는 고개. 전에 벚나무가 있었음. 뼘재//상전면 구룡리 베틀바우 뒤(동)쪽에 있는 고개. 사기점골고개//정천면 갈룡리 사기점 뒤에 있는 고개. 사루고개//진안읍 반월리 서남쪽에서 가림리의 은천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사옥재//진안읍 오천리 외오천에서 가막리로 넘어가는 고개. 사직목재//성수면 구신리 상염북리에서 도통리 중평으로 넘어가는 고개. 삭다리고개//진안읍 반월리 지소에서 금마곡으로 넘어가는 고개. 삭다리재//진안읍 구룡리 돌고개 북동쪽에서 물곡리로 넘어가는 고개. 산영재//[산영치]//상전면 수동리 기배기에서 동향면 자산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 예전에는 산림이 울창하여 십여 명씩 떼지어 다니지 않으면, 도둑들에게 소지품을 빼앗길 정도로 험악하다고 한다. 산영치//山影峙//⇒산영재. 살고개//⇒새밀고개. 삼바실고개//부귀면 궁항리 정수암에서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로 넘어가는 고개. 전에 삼밭이 있었음. 삼바실늦은질목재//진안읍 가림리 옥산동에서 죽산리 삼밧골로 넘어가는 고개. 가파르지 아니한 길목이라 함. 삽재//[삽치]//백운면 남계리 분토동 북쪽에서 반송리 두원으로 가는 고개. 삽치//揷峙//⇒삽재. 상남재//용담면 월계리 황산 북쪽에서 왕두동 뒷산을 지나 송풍리로 넘어가는 고개. 상촌재//[상촌치]//성수면 외궁리 웃활목에서 좌산리 송촌으로 넘어 가는 고개. 상촌치//上村峙//⇒상촌재. 새내재1//상전면 갈현리 늪실에서 정천면 월평리로 넘어가는 고개. 새내재2//상전면 월포리 금지에서 정천면 월평리 아래새내로 넘어가는 고개. 새목고개//마령면 원평지에서 동촌리 하동촌으로 가는 고개. 새밀고개//[살고개]//진안읍 은천리 동북쪽에서 단양리 개덕바우로 넘어가는 고개. 새벼리재//[담뱃재]//상전면 월포리 월포 북쪽에서 정천면 용평리 새벼루로 넘어가는 고개. 단밭을 지나감. 새질너머고개//성수면 좌포리 내좌에서 마령면 덕천리 입구로 넘어가는 고개. 생암재//백운면 신암리 임하에서 고림하로 가는 고개. 서구리재//[서구이치]//백운면 신암리 임하 동쪽에서 장수군 장수읍 용계리 용추동으로 가는 고개. 서구이치//西九耳峙//⇒서구리재. 서낭당이재//⇒놋점이재. 서낭당이재//⇒절티. 서낭댕이고개//⇒굴고개. 서낭댕이재1//백운면 남계리 남쪽에서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갈골로 가는 고개. 서낭당이 있었음. 서낭댕이재2//진안읍 운산리 내후사 남쪽에서 정천면 월평리로 넘어가는 고개. 서낭당이 있었음. →대목재. 서당고개//정천면 망화리 잿마을에서 음지땀으로 넘어가는 고개. 서두정이재//주천면 운봉리 안정동에서 대불리로 넘어가는 고개. 서촌재//[서촌치, 판치재]//부귀면 신정리 널치에서 서촌을 지나 마령면 덕천리 판치로 넘어가는 넓은 고개. 서촌치//西村峙//⇒서촌재. 서치//鼠峙//⇒설치재. 설치재1//[서치]//성수면 외궁리 난들에서 좌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 중턱에 쥐바위가 있음. 설치재2//성수면 좌산리 좌산에서 임실군 관촌면 경계로 넘어가는 고개. 섬티재//동향면 성산리 하행원에서 섬티로 가는 고개. 성재1//정천면 망화리 진소뿔 남쪽에 있는 산. 전에 성이 있었다고 한다. 성재2//[성치]//용담면 와룡리 영강 뒤 서쪽에 있는 산. 전에 돌성이 있었다고 한다. 성재3//부귀면 두남리 독정이에서 세동리 노루목재로 넘어가는 고개. 성지밧재//백운면 신암리 마령재 남쪽에 있는 고개. 성치1//城峙//⇒성재. 성치2//城峙//⇒성재. 성치3//城峙//⇒성재. 소리개재//성수면 도통리 도통교에서 외궁리 신리로 넘어가는 고개. 뒷산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 하며, 솔개가 닭을 채가려는 형국이라 한다. 손곡치//孫谷峙//⇒손실재. 손실재//[손곡치, 손실치]//진안읍 군상리 절골에서 부귀면 수항리 손실로 넘어가는 고개. 부귀쪽에 손실이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손실치//峙//⇒손실재. 솝내재//마령면 동촌리 서촌에서 백운면 평장리 송림으로 넘어가는 고개. 송림재//[송림치]//진안읍 가림리 탄곡에서 백운면 평장리로 넘어가는 고개. 송림이 울창함. 송림치//松林峙//⇒송림재. 송현//松峴) ⇒솔재. 쇠막골고개//주천면 주양리 쇠막골에서 용덕리 미적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쇠목재//주천면 대불리 학선동 동쪽에서 칠은이로 넘어가는 고개. 수리너미재//주천면 운봉리 윗양명에서 용담면 호계리 대방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숲밭재//백운면 노촌리 마재에서 비사랑으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 승치//僧峙//⇒중고개. 시금치재//정천면 봉학리 상조림에서 부귀면 황금리 가치로 넘어가는 고개. 노래재 북쪽이 됨. 신광재//백운면 노촌리 윗미재에서 장수군 천천면 와룡리 신광으로 가는 고개. 신동재//마령면 덕천리 놋점이에서 가래골로 넘어가는 고개. 신동치//新洞峙//⇒놋점이재. 신룡골고개//부귀면 수항리 불무실에서 강정골로 넘어가는 고개. 심원재//정천면 봉학리 가리점에서 학골로 넘어가는 고개. 가리점에 절 심연사가 있었음. 싸리재1//[축령]//주천면 대불리 웃진등에서 서북쪽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로 넘어가는 고개. 높고 가파르며, 싸리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싸리재2//[축치]//동향면 자산리 새땀 서북쪽에서 안천면 신괴리 새터로 넘어 다니는 고개. 동학농민전쟁 때 관군이 이곳에 싸리나무를 쌓아 놓고 동학군을 막았다고 한다. 쑥밭재//진안읍 가림리 안골에서 숯실로 넘어가는 고개. 아드기재//용담면 옥거리 상거 동남쪽에서 월계리 달계로 넘어가는 고개. 아래재//동향면 자산리 뒷들에서 대량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랫고개//⇒형제바우고개. 안산재//마령면 계서리 오동 동쪽에서 시장으로 가는 고개. 앞재//상전면 월포리 월포에서 정천면 구룡리로 넘어가는 고개. 앞재//진안읍 오천리 동구지미에서 죽산리 중말로 넘어가는 고개. 언건이재//진안읍 구룡리 예리구미에서 물곡리 소토실로 넘어가는 고개. 여꾸실고개//[여곡]//진안읍 가림리 가름내에서 은천리로 넘어가는 고개. 여시밭재//백운면 동창리 화산에서 석전으로 가는 고개. 연지고개//상전면 갈현리 중터에서 주평리 가막재로 넘어가는 고개. 연지고개//상전면 주평리 후가막치에서 갈현리 중터로 넘어가는 고개. 열두고개//부귀면 두남리 도룡골에서 세동리 노루목재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의 능선이 열두 개가 있음. 염북재//[염북치]//성수면 구신리 상염북리에서 좌산리 상촌으로 넘어가는 고개. 염북치//念北峙//⇒염북재. 염소막골고개//진안읍 가림리 수실 동쪽에서 안골로 넘어가는 고개. 염소가 새끼에게 젖먹이는 형국이라 한다. 영강재//[방골재]//용담면 와룡리 영강에서 호계리 방골로 넘어가는 고개. 예끼재//마령면 계서리 서산 북쪽에서 성수면 좌포리로 넘어가는 고개. 오계치//五溪峙//⇒외기재. 오동리재//⇒머구재. 오두재//[오두치]//성수면 중길리 상달길에서 부귀면과 완주군 소양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까마귀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한다. 오두재//[오두치]//주천면 무릉리 고네미 북쪽에서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의 유곡으로 넘어가는 고개. 오두치//烏頭峙//⇒오두재. 오리목재//상전면 용평리 오리목에서 구룡리 금당으로 넘어가는 고개. 오리목재//정천면 망화리 자금에서 상전면 용평리 오리목으로 넘어가는 고개. 오산리재//부귀면 세동리 적내에서 오룡리 오산으로 넘어가는 고개. 오얏고개//안천면 노성리 보한리에서 백화리 하배실로 넘어가는 고개. 오얏고개//안천면 백화리 하배실에서 노성리 보한리로 넘어가는 고개. 외기재//[오계치]//백운면 신암리 신암 북쪽에서 장수군 천천면 와룡리로 넘어가는 고개. 팔공산 줄기 사이의 다섯 골짜기에서 이 고개로 향하여 내가 흐른다고 한다. 우무개재//진안읍 연장리 원연장 양지뜸에서 동북쪽의 부귀산기슭 금광으로 넘어가는 지름길 고개. 우무실고개//부귀면 수항리 대곡에서 우무실로 넘어가는 고개. 운치//백운면 신암리 고림하 남쪽에서 장수군 산서면 백운리 가재로 넘어가는 고개. 매우 높다고 한다. 웅령//熊嶺//⇒곰티재. 웅치//熊峙//⇒곰티재. 월돈재//⇒단밧재. 윗고개//⇒탕근바우고개. 율치//栗峙//⇒방고개. 율현//栗峴//⇒밤고개. 응봉치//鷹峰峙//⇒매봉재. 응치//鷹峙//⇒매봉. 이드릇재//용담면 호계리 큰방골에서 주천면 운봉리 양명으로 넘어가는 고개. 작은방골재//용담면 수천리 송림 서쪽에서 호계리 작은방골로 넘어가는 고개. 작은싸리재//주천면 대불리 싸리재의 작은 고개. 진등 북쪽에서 완주군 운주면으로 넘어감. 작은재1//동향면 능금리 가래골에서 갈골로 넘어가는 고개. 작은재2//백운면 남계리 뻣나무재 옆에 있는 작은 고개. 작은재3//용담면 옥거리 상거에서 한젓골을 지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장현//獐峴//⇒노루고개. 잿고개//상전면 주평리 구슬개에서 갈현리 중터로 넘어가는 고개. 적내재//[적천치]//부귀면 세동리 적내에서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송정으로 넘어가는 고개. 적천치//笛川峙//⇒적내재. 전드기재//용담면 수천리 송림 남쪽에서 작은 방골로 넘어가는 고개. 절연재//정천면 갈룡리 조포에서 주천면 운봉리로 넘어가는 고개. 절재//진안읍 오천리 저릿골에서 장수군 천천면 용광리 불선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신광사가 있었음. 젖못고개//진안읍 군상리 웃샛골 북쪽에서 상전면 운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조심치//상전면 용평리 신연에서 월포로 넘어가는 조약재//부귀면 봉암리 봉암에서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로 넘어가는 고개. 경사가 심하여 새걸음을 걷듯 종종걸음으로 걸어간다고 한다. 죽산치//竹山峙//⇒대고개. 죽항치//竹項峙//⇒대목재. 죽현//竹峴//⇒대고개. 중고개//[승치]//부귀면 궁항리 상궁항에서 황금리로 넘어가는 고개. 호승예불형(胡僧禮佛形)이라 한다. 중고개//부귀면 황금리 봉곡에서 궁항리로 넘어가는 고개. 중고개재//성수면 중길리 하달길에서 사기점으로 넘어가는 고개. 중재//백운면 신암리 한밭에서 백암리 백운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선각산으로 가는 길목에 중이 살았다고 한다. 지매실고개//진안읍 반월리에서 지매실로 넘어가는 고개. 지자실고개//진안읍 단양리 역마을에서 사양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진장목//진안읍 죽산리 어은동에서 성수산을 넘어 장수군 천천면 와룡리 신광으로 가는 긴 고개. 질마등재//진안읍 군상리 어영골에서 운산리로 넘어가는 고개. 질마재//동향면 자산리 고산골에서 고산을 넘어 상전면 수동리로 가는 고개. 질마재//주천면 대불리 처사등에서 완주군 신월리 밤목으로 넘어가는 고개. 질마(길마)처럼 생겼다고 한다. 축령//杻嶺//⇒싸리재. 축치//杻峙//⇒싸리재1. 축치//杻峙//⇒싸리재2. 치재//부귀면 수항리 사기점골에서 늦은목고개로 넘어가는 고개. 칠은이고개//주천면 주양리 양지말 남쪽에서 대불리 칠은골로 넘어가는 고개. 칠은이치//七隱峙//⇒칠은이고개. 코크니재//[비대티, 대양치]//안천면 노성리에서 정천면 구룡리로 넘어가는 고개. 퀴키재//⇒국기재. 큰싸리재//주천면 대불리 싸리재의 큰 고개. 웃진등 서북쪽에서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로 넘어감. 큰양재//마령면 계서리 배치제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크고 양지 바름. 골 끝에 샘이 있음. 큰재//용담면 옥거리 상거에서 한젓골을 지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으로 넘어가는 고개. 작은재의 동쪽. 탁고개//[탑치]//주천면 신양리 봉소동 남쪽에서 운봉리 구암으로 넘어가는 고개. 탑이 있었다고 한다. 탑고현//塔古峴//⇒탁고개. 탑치//塔峙//⇒탁고개. 탕근바우고개//[윗고개]//마령면 강정리 구기재 북쪽에 있는 고개. 탕건같이 생긴 바위가 있다. 터일재//정천면 월평리 아랫새내에서 상전면 수동리 터일로 넘어가는 고개. 판치재//마령면 덕천리 널재에서 부귀면 신정리 서촌으로 넘어가는 고개. 하누재//[한우치]//부귀면 궁항리 정수암에서 운장산으로 넘어가는 고개. 한우치//寒牛峙//⇒하누재. 형제바우고개//[아랫고개]//마령면 강정리 구기재 아래쪽에 있는 고개. 월운에서 성수면 좌포리로 가는데 형제바우가 있다. 호치//虎峙//용담면 월계리 달계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 혹도개재//백운면 동창리 은안에서 반송리 동쪽으로 가는 고개. 홍두깨재1//백운면 백암리 백운동에서 장수군 천천면 와룡리로 가는 고개. 홍두깨재2//성수면 중길리 상달길에서 부귀면 세동리 부암으로 넘어가는 고개. 모양이 홍두깨처럼 생겼다고 한다. 활목재//주천면 대불리 독자동에서 부귀면 궁항리로 넘어가는 고개. 활인동치//活人洞峙//⇒강정골재. 황새고개//⇒황새목재. 황새목//[황새고개]//성수면 좌산리 좌산에서 용포리 개올로 넘어 가는 고개. 황새의 목과 같이 길다. 황새목재1//[황조치]//부귀면 궁항리 궁항 서쪽에서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황조리로 넘어가는 고개. 황새목재2//진안읍 가막리 아래새터에서 황새목을 넘어 죽도로 가는 고개. 황소마재1//마령면 덕천리 가래골에서 성수면 중길리 중군으로 넘어가는 고개. 황소마재2//성수면 좌포리 좌포에서 마령면 덕천리 대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황정고개//안천면 노성리 장터에서 노채로 넘어가는 고개. 황조치//黃鳥峙//⇒황새목재. 후독치//後獨峙) ⇒뒤뛰기재. 흰배넘기재//부귀면 궁항리 상궁항에서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시평리로 넘어가는 고개. 배가 넘어갔었다고 한다.
가덕1호보//진안읍 단양리에 있는 취입보. 1961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6m 높이 0.8m 수혜면적은 3㏊이다. 가덕2호보//진안읍 단양리에 있는 취입보. 1961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8m 높이 1m 수혜면적은 2㏊이다. 가정제//柯亭堤//부귀면 가정리에 있는 저수지. 1960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16m 높이 12.33m 저수량 124천톤이며 수혜면적은 8.7㏊이다. 고암보//古岩洑//진안읍 반월리에 있는 취입보. 1961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5m 높이 0.7m 수혜면적은 5㏊이다. 구렁보//진안읍 단양리에 있는 취입보. 1988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5.3m 높이 1.5m 수혜면적은 4㏊이다. 구룡1호보//龜龍-號洑//진안읍 구룡리에 있는 취입보. 1960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5m 높이 m0.5 수혜면적은 5㏊이다. 구룡2호보//龜龍-號洑//진안읍 구룡리에 있는 취입보. 1960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4m 높이 0.5m 수혜면적은 4㏊이다. 구룡제//龜龍堤//진안읍 구룡리에 있는 저수지로 일명 예리방죽이라고 부른다. 1960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47m 높이 15.73m 저수량 122천톤이며 수혜면적은 32.8㏊이다. 군상제//郡上堤//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저수지로 일명 중학교방죽이라고 부른다. 1962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31m 높이 12.6m 저수량 181천톤이며 수혜면적은 25.4㏊이다. 군하1호보//郡下-號洑//진안읍 군하리에 있는 취입보. 1998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9.5m 높이 0.8m 수혜면적은 5㏊이다. 궁항제//弓項堤//부귀면 궁항리에 있는 저수지. 1986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78m 높이 18.55m 저수량 411천톤이며 수혜면적은 35.1㏊이다. 남기보//진안읍 연장리에 있는 취입보. 1984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26.5m 높이 1.5m 수혜면적은 2㏊이다. 단양보//丹陽洑//진안읍 단양리에 있는 취입보. 1998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7m 높이 0.5m 수혜면적은 3㏊이다. 단양제//堤//진안읍 단양리에 있는 저수지로 일명 사양동방죽이라고 부른다. 1962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27.1m 높이 12.66m 저수량 98천톤이며 수혜면적은 17.9㏊이다. 대불제//大佛堤//주천면 대불리에 있는 저수지로 일명 학선동방죽이라 부른다. 1974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30m 높이 16.2m 저수량 278천톤이며 수혜면적은 43.3㏊이다. 대평보//大坪洑//동향면 대량리에 있는 취입보. 1967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02m 높이 1.5m 수혜면적은 43.2㏊이다. 덕천제//德川堤//마령면 덕천리에 있는 저수지로 일명 추동방죽이라고 부른다. 1960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85m 높이 16.2m 저수량 281천톤이며 수혜면적은 25.6㏊이다. 물곡1호보//物谷-號洑//진안읍 물곡리에 있는 취입보. 1960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3m 높이 0.7m 수혜면적은 2㏊이다. 물곡보//物谷洑//진안읍 물곡리에 있는 취입보. 1960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39m 높이 1.5m 수혜면적은 5㏊이다. 반월1호보//半月-號洑//진안읍 반월리에 있는 취입보. 1961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25.5m 높이 0.7m 수혜면적은 3㏊이다. 반월2호보//半月-號洑//진안읍 반월리에 있는 취입보. 1961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3.5m 높이 0.7m 수혜면적은 2㏊이다. 반월제//半月堤//진안읍 반월리에 있는 저수지. 1943년에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22m 높이 12m 저수량 229천톤으로 수혜면적은 42.1㏊이다. 백암제//白岩堤//백운면 백암리에 있는 저수지. 1960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82.4m 높이 10.2m 저수량 67천톤이며 수혜면적은 28.9㏊이다. 봉암제//鳳岩堤//부귀면 봉암리에 있는 저수지로 일명 죄약골방죽이라고 부른다. 1960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16m 높이 15.03m 저수량 245천톤이며 수혜면적은 60.9㏊이다. 부곡보//釜谷洑//진안읍 연장리에 있는 취입보. 1984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30m 높이 2.5m 수혜면적은 3㏊이다. 산제보//山祭洑//주천면 용덕리에 있는 취입보. 1962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8m 높이 2.5m 수혜면적은 5㏊이다. 송풍제//松風堤//용담면 송풍리에 있는 저수지. 1967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16m 높이 18.19m 저수량 504천톤이며 수혜면적은 62.6㏊이다. 신기제//新基堤//성수면 신기리에 있는 저수지. 1943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30m 높이 9.3m 저수량 84천톤이며 수혜면적은 24.1㏊이다. 신암제//莘岩堤//백운면 신암리에 있는 저수지. 1962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25m 높이 24.45m 저수량 551천톤이며 수혜면적은 74.4㏊이다. 야부기1호보//진안읍 단양리에 있는 취입보. 1961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5.5m 높이 0.5m 수혜면적은 3㏊이다. 야부기2호보//진안읍 단양리에 있는 취입보. 1961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4.5m 높이 0.5m 수혜면적은 3㏊이다. 연장1호보//延長-號洑//진안읍 연장리에 있는 취입보. 1960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30m 높이 2m 수혜면적은 5㏊이다. 연장2호보//延長-號洑//진안읍 연장리에 있는 취입보. 1996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6m 높이 1m 수혜면적은 3㏊이다. 연장3호보//延長-號洑//진안읍 연장리에 있는 취입보. 1960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7m 높이 0.5m 수혜면적은 4㏊이다. 연장제//延長堤//진안읍 연장리에 있는 저수지. 1960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85m 높이 12.1m 저수량 461천톤이며 수혜면적은 43.6㏊이다. 용덕1호보//龍德-號洑//주천면 용덕리에 있는 취입보. 1961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2m 높이 0.7m 수혜면적은 4㏊이다. 용덕제//龍德堤//주천면 용덕리에 있는 저수지. 1961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48m 높이 12.41m 저수량 159천톤이며 수혜면적은 25.5㏊이다. 원월보//진안읍 단양리에 있는 취입보. 1961년 준공된 돌보로써 제방길이 27.5m 높이 1.5m 수혜면적은 3㏊이다. 월포제//月浦堤//상전면 월포리에 있는 저수지로 일명 금지방죽이라고 부른다. 1943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41m 높이 15.5m 저수량 129천톤이며 수혜면적은 5.4㏊이다. 작지보//진안읍 단양리에 있는 취입보. 1999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9.5m 높이 0.8m 수혜면적은 4㏊이다. 좌산제//佐山堤//성수면 좌산리에 있는 저수지로 일명 진룡방죽이라고 부른다. 1959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13m 높이 9.54m 저수량 133천톤이며 수혜면적은 23.6㏊이다. 좌포보//佐浦洑//성수면 좌포리에 있는 취입보. 1959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91.5m 높이 1.5m 수혜면적은 39.1㏊이다. 주안보//진안읍 군하리에 있는 취입보. 1962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8m 높이 1.7m 수혜면적은 2㏊이다. 중평제//中坪堤//성수면 도통리에 있는 저수지로 일명 음수동방죽이라고 부른다. 1960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210m 높이 13.55m 저수량 167천톤이며 수혜면적은 47.2㏊이다. 지동보//紙洞洑//성수면 도통리에 있는 취입보. 1965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63.3m 높이 1.3m 수혜면적은 16.1㏊이다. 지동제//紙洞堤//성수면 도통리에 있는 저수지. 1961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88m 높이 7.43m 저수량 19천톤이며 수혜면적은 20.9㏊이다. 포강제//--堤//진안읍 반월리에 있는 저수지로 일명 반월포강이라고 부른다. 1943년에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45.5m 높이 2.7m 저수량 11천톤이며 수혜면적은 24.8㏊이다. 학천보//鶴川洑//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취입보. 1999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24m 높이 1.2m 수혜면적은 10㏊이다. 황금제//黃金堤//부귀면 황금리에 있는 저수지로 일명 봉곡저수지라고 부른다. 1978년 준공된 흙댐으로 제방길이 165m 높이 25m 저수량 638천톤이며 수혜면적은 74㏊이다. 후곡보//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취입보. 1960년 준공된 콘크리트보로써 제방길이 15m 높이 1.2m 수혜면적은 4㏊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