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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명, 여강, 대리 여행기(2010. 2. 27 - 3. 4)
1. 서두
중국은 너무나 큰 나라이기 때문에 유명한 여행지도 많고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알려진 곳도 많은 나라이다. 특히 곤명은 4계절 봄이라고 할 정도로 일기가 따뜻하여 꽃도 많고 관광과 골프여행을 많이 다녀오는 곳이다.
이번 여행은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중국 사천성의 성도공항에서 내려 운남성의 작은 도시 여강과 대리를 관광하고 곤명을 거쳐 성도의 대불을 보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몇 년 전 곤명은 한번 가본 적이 있으나 여강과 대리는 기회가 안 되어 여러 번 일정을 잡았다가 못가고 했는데 이번에 친구 4부부 8명이 같이 여행을 하게 되었다.
2. 지리적 여건
운남성은 중국의 서남쪽에 위치하며 사천성과 티벳의 서장자치구와 접해 있고 면적은 39.4㎢, 인구 4,235만 명이 된다.
곤명은 해발 1,891m에 위치하며 운남성 중 8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는 660만명이고, 여강은 해발 2,416m에 위치하는 운남의 작은 도시로 나시족의 도시이며, 대리는 1253년 단사평이 대리국을 세웠던 백족 소수민족의 마을이다.
사천성은 인구 1억3천만명이고, 사천성의 성소재지인 성도는 사천성의 곡창지대로서 서기 220년 청나라의 도읍지이며 인구는 1,000만명이라고 한다.
3. 여행의 시작
2010. 2. 27(토)
오후 6시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투어2000 여행사에서 나온 직원을 만나 출국수속을 하고 오후 8시 인천공항을 이륙하여 네 시간 만에 중국 성도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가이드 권동철씨를 만나 호텔로 이동하는데 밤늦은 시간이라 차량이 많지 않아 한가로운 느낌이다. 도로 양쪽으로는 부용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10월경에는 50리길에 매우 아름답게 꽃을 피운다고 한다.
성도는 사천성 4대분지중 하나로 하천이 많아 수상교통이 발달되어 있으나 안개가 많고 맑은 날이 년 중 100일 정도라고 한다.
2010. 2. 28(일) 05:00 이른 기상
어제 저녁 늦게 도착하여 잠도 별로 자지 못하고 비행기 시간 때문에 일찍 일어나 성도공항에 도착하여 보니 벌써 사람들로 북적댄다. 7시40분 성도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한 시간 20여분 만에 운남성의 여강공항에 도착하였다.
여강은 해발 2,416m에 위치하는 중국 소수민족중 하나인 나시족의 마을로 인구는 110만 명이며 1,40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동파상형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나시족은 모계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총 30만명이 되는데 개구리처럼 많이 번식하여 민족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개구리를 숭배한다고 한다.
30여분 버스로 이동하여 여강고성 신시가지 입구를 지나 흑룡담 공원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청 건륭년간에 나시족이 “옥천용왕묘(玉泉龍王廟)를 짓고 청 건륭황제가 ”옥천용신(玉泉龍神)"에 봉해지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공원 내에는 푸른 버드나무 고목과 누각, 정자 등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고 명대의 오봉루, 해탈림, 청대의 득월루 등 고대 나시족의 건축들이 보존되고 있으며 밑바닥까지 맑게 보이는 넓은 연못은 주변경관과 잘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흑룡담 공원 입구
흑룡담공원 내에 있는 연못과 정자
또한 동파 문화연구소가 있어 나시족의 문화와 관련된 것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인간문화재 동파선생이 현장에서 동파상형문자를 직접 써서 보여주고 있다.
인간문화재 동파선생
동파 문화연구소를 나서니 공원 정문앞에 고전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장이 있고 나시족 전통 복장을 한 나시족들이 연주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악보가 없이 합주를 한다고 있다.
그 옆에 있는 여강시 불교협회 福國寺五鳳樓를 관람하고 이른 점심식사를 마친 후 옥룡설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며 조용하고 깨끗한 시골마을을 지나 한시간 정도 이동하니 운남대학교 여강분교 공사가 한창이다. 2층 건물을 연이어 신축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대단하다.
옥룡설산 주차장에 도착하여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리프트 탑승장에 도착하여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였다.
옥룡설산은 해발 5,596m이며 1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설산으로 지금까지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처녀산이라고 하며 연중 100일정도만 날씨가 좋아 정상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일기가 너무 좋아 정상이 깨끗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옥룡설산의 위용
고도가 높아 이동하는데 조심스러운 느낌이 든다. 걷기가 힘든다고 관광용 미니카를 타고 이동하여 운삼평에 도착하였다.
운삼평(雲杉坪)은 구름과 삼나무와 평야가 어우러진 곳으로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푸른 하늘과 만년설이 어우러져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풍취를 보여 주며 넓은 평원 너머 웅장한 옥룡설산의 위용이 우리를 감탄케 한다.
운삼평에서 기념촬영
옥룡설산을 보고 내려와 강바닥이 흰색모래로 되어 있는 백수하를 보고 30여분 이동하여 나시족들이 제사를 지내는 옥수채에 도착하였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돌기둥이 크게 만들어져 있는데 라마교, 불교, 동파교가 같이 사용하고 있어 종교의 화합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백수하
옥수채
한시간만에 여강고성에 도착하였다.
여강고성은 8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담이나 문이 없이 성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어져 있고 성벽앞과 성안 도로옆으로는 옥룡설산에서 내려온 물이 맑게 흐르고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는 모습이 정겨웁다.
여강고성 입구
지금도 6,000가구 30,0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길에는 모두 오화석을 깔아 놓았는데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이 사용하던 모습이 잘 보존된 상태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옛날부터 살고 있던 집 그대로 1층에는 가게를 만들어 관광객들을 상대로 악세사리, 장식구, 옷 등 여러 가지 선물을 팔고 있으며 2층에는 주거의 공간이다.
고성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찻집에서 차를 한잔 하며 시내를 조망하였다. 800여 년 전 송 대에 처음 조성하기 시작하여 번창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기와집들이 넓은 시내에 빈틈없이 꽉 들어차 있는 모습이 정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한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이다.
여강고성의 모습
2010. 3. 1(월) 06시 기상
아침에 일어나니 고도가 높은 영향인지 머리가 약간 무겁다. 일정이 바빠 7시반경 일찍 호텔을 출발하였다.
두 시간 정도 이동하여 옥판매점에서 잠시 휴식하였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규모가 너무 커서 놀라고 안에 들어가 보니 젊은 여자 종업원들이 온 매장에 북적거릴 정도로 많아 또 한번 놀랐다. 중국 여행객들이 많이 오는데 중국 사람들은 옥을 좋아하여 마음에 드는 옥을 보면 가격을 안 따지고 사서 가보로 보관할 정도라고 한다.
한 시간 정도 이동하여 대리시내에 진입하였다.
대리는 백족 소수민족의 마을이며 서기 937년 이해지구 최초의 나라로 남조국이 설립되었고 1253년 단사평이 대리국을 세웠다.
대리는 기후가 년중 4-25℃로 적당하여 농사도 잘 되는 중국의 살기 좋은 10대 도시 중 첫 번째 가는 도시라고 한다. 도로 양쪽에는 수확기가 되어 가는 마늘밭과 이삭이 가지런히 피어 있는 보리밭, 눈이 부시도록 산뜻한 색채를 띠고 있는 유채꽃, 막 꽃이 피기 시작하는 완두콩 등 풍성한 농토의 모습들이 이어진다.
12시경 星亞식당에 도착하여 중국 현지식 식사를 하였다. 지금까지 우리를 안내하던 여강지역의 가이드는 대리 지역의 가이드에게 우리를 인계하고 여강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식사 후 배를 타고 이해호수를 유람하였다. 이 호수는 해발 1,972m에 위치한 호수로 남북의 길이가 45km에 이르고 수심이 최고 20m가 넘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며 사람의 귀처럼 생겼다고 하여 이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평일이라 그런지 관광객은 우리뿐, 바람이 없어 고요하고 바다같이 넓은 호수, 멀리 히말라야 끝자락에 위치한 창산의 눈 덮인 흰 봉우리와 호수주변에 펼쳐져 있는 가옥들의 그림 같은 모습이 한껏 정겨웁다.
한시간 정도 유람을 마치고 백족 민속촌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백족 소수민족의 마을로 최근 현대식으로 깨끗하게 마을을 정돈하여 이곳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백족 민족들이 자기들의 문화를 소개하고 삼도차를 대접하며 민족 고유의 민속쇼를 보여준다. 삼도차는 세가지 맛이 나는 차를 말하는데 처음의 쓴맛은 인생살이의 어려움을 나타내고, 두 번째 달콤한 맛은 인생의 기쁨을 나타내고, 세 번째 생강차 같은 맛은 인생의 황혼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백족 민속 쇼
반시간 정도 관람을 마치고 대리삼탑(崇聖寺三塔)으로 이동하였다. 대리삼탑은 9세기경 만들어진 대리를 상징하는 고탑으로 천심탑이라고도 불리는데 가운데 있는 주 탑은 당나라 때 지어진 것으로 16층에 높이가 70m이며 좌우에 있는 10층 40m의 작은 탑은 송대 대리국이 있었던 시기에 지어진 것인데 서기 199년 지진으로 약간 기울어진 모습이다. 지진이 나기 전에는 안에 있는 계단으로 해서 주 탑을 올라갈 수가 있었다고 하는데 웅장한 모습의 주 탑을 가까이서 보면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습이 정말 잘 보존하여야 할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리삼탑
주 탑은 흙, 모래, 생석회로 산을 만든 후 이를 깎아서 탑을 만들었기 때문에 기반이 없는데도 지진에 견디어 내는 것이라고 하며 1926년 지진때 주 탑이 크게 둘로 갈라졌었다가 며칠 후 지진에 의해 다시 붙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고 한다.
탑을 뒤로 하고 정원을 돌아가니 삼탑도영공원(三塔倒影公園)이 나타난다. 한가운데 있는 연못에 거꾸로 비친 삼탑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삼탑도영공원의 대리삼탑의 모습
그 뒤로 돌아가니 홍콩 반환기념으로 건축하였다는 3층 건물의 종각이 나타나는데 3층에는 무게가 16톤이나 되는 거대한 종이 달려 있다. 3층 종각에서 내려다보니 삼탑과 정돈된 대리시내의 모습이 잘 어우러져 거대한 한 장의 그림을 보는 것과 같이 아름답다.
대리석박물관에 도착하였다. 대리의 유명한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 작품들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진열되어 있는데 가지고 싶을 욕심이 날 만큼 정교하게 잘 만들어 놓았다.
4시경이 되어 대리고성에 도착하였다. 명나라 홍무제 15년에 건설되었는데 성 밖으로는 호성하(護城河)가 흐르고 성 안으로는 동서남북으로 길이 뻗어 있다.
우리는 남문에서 출발하여 북쪽 끝에 있는 오화루(영빈관)까지 돌아 보았는데 길바닥에는 넓은 돌을 깔아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으며 옛날부터 살아오던 가옥의 1층에 가게를 만들어 옥제품, 악세사리, 자수제품 등을 진열해 놓았는데 아주 번화가의 상가 모습 그대로이다.
대리고성
오늘 저녁은 곤명까지 가서 숙박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5시경 이른 저녁을 먹고 왕복 6차선의 고속도로를 따라 이동하는데 어제가 보름이라 둥그렇게 떠오른 달이 우리를 밝게 비추고 있다.
대리에서 곤명까지 360km정도인데 고속도로의 노면이 고르지 못하여 차가 털털거리고 차량이 낡아 속도를 내지 못하여 5시간 반 정도 걸려 곤명 호텔에 도착하였다.
곤명은 해발 1,891m에 위치하며 중국의 소수민족인 이족이 살고 있는 도시인데 담배와 옥수수로 만든 술이 유명하다고 한다.
2010. 3. 2(화) 06시 기상
8시경 호텔을 출발하여 구향동굴로 향하였다. 구향동굴은 1984년에 처음 발견되었다고 한다. 입구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니 협곡이 나타나고 물이 출렁거린다.
협곡의 길이는 600m정도 되는데 보트를 타고 10여분 협곡을 구경한 후 돌아 나와서 다시 80m의 절벽을 내려가면 동굴이 나타난다.
구향동굴 입구
협곡 입구
1,400여 년 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 종유석과 석순들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으며 동굴 안에 큰 하천이 흐르고 있어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50분정도 이동하니 구향수석관이 나타나는데 길이가 200m나 되는 넓은 광장에 여러 종류의 수석과, 옛날 어두운 굴속에서 생활하여 눈이 퇴화하였다는 맹어도 전시되고 있었다.
구향동굴안에 있는 광장에서 보이는 출구의 모습
1시간반정도 구경을 마치고 케이블카장에 도착하여 케이블카를 타고 처음 들어오던 입구에 도착 하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부근에 있는 석림에 도착하였다.
석림 입구
석림은 해발 2,000m에 위치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카르스트 지형중의 하나로서 2억7천만 년 전 바다가 솟아 올라온 그대로의 바다 모습이라고 한다.
주차장에서 셔틀 관광차를 타고 정문을 지나 석림의 뒤편으로 한 바퀴 돌아 소석림을 구경하고 대석림을 구경하였다.
기묘한 바위들을 모두 모아 놓은 듯 실로 감탄스럽다. 높은 중앙 부근에 지어놓은 정자에 오르니 사방이 탁 트이고 나무줄기처럼 솟아오른 아름다운 바위 기둥들이 사방으로 펼쳐지고 한참 피어오르는 봄꽃들의 모습과 잘 어우러져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석림
석림
석림
석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중에 길이가 16km나 된다는 양중해 호수가 보인다. 이 호수는 이 지역의 중요한 수원지인데 큰 화력발전소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2010. 3. 3(수) 05시 20분 이른 기상
7시경 곤명공항에 도착하였다. 이 공항은 1922년 중국에서 제일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중국에서 4번째로 큰 공항인데 이른 아침인데도 여행을 하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7시 반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1시간 반 정도 걸려 성도공항에 도착하였다.
사천성의 성도는 서기 220년 청나라의 도읍지로 촉나라 땅이다.
세계 문화유산 낙산대불을 보기위하여 160km 정도 떨어져 있는 낙산으로 이동하는데 차량들이 많지 않아 소통이 원활하다.
사천성은 중국의 곡창지대로 이모작을 하며 민강, 내강, 외강이 만나 양자강이 되는 곳으로 4개의 하천이 만나는 곳이라 하여 사천(四川)이라고 유래되었으며 죽엽차와 오랑액, 수정방, 금난초 등의 술이 유명하다고 한다.
중국은 4대 요리가 유명한데 상해요리, 북경요리, 광동요리, 사천요리이다. 상해요리는 해산물이 주재료이고, 북경요리는 짜고 참기름을 많이 쓰는데 오리구이가 유명하며, 광동요리는 원숭이 골, 뱀, 고양이, 쥐 등 재료가 다양하고, 사천요리는 날씨가 나쁘고 습도가 많아 관절염 환자가 많으므로 그 예방책으로 기름과 산초를 많이 써서 매운맛을 내는 진한 요리가 발전되었다고 한다. 특히 원숭이를 묶어 놓고 그 발밑에 징을 놓은 후 원숭이 머리를 망치로 때리면 원숭이가 아프다고 몸부림을 치며 발로 징을 차게 되는데 그 징소리가 끝나기 전에 골을 까서 먹어야 싱싱한 골을 먹게 된다고 하는 광동요리가 특이하다.
11시경 낙산대불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낙산대불은 1,300여 년 전 당나라 시대인 서기 713~803년에 완공되었는데 성도의 남쪽에 위치한 낙산시의 민강, 청의강, 대도하 세 개의 강이 모여 흐르는 지점에 위치한 통운산 절벽을 깍아 만든 것으로 높이 71m, 머리카락 1,021개, 눈썹의 두께 24m이며 대불 주위로 100명이 둘러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석각불상이다.
낙산대불
대불을 만들게 된 동기는 옛날에는 낙산을 가주라 불렀으며 20만명이 거주하는 도시였다고 한다. 그런데 민강, 청의강, 대도하 3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사고가 빈번하고 홍수가 잦아 불심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귀주사람 해통스님이 백성들로부터 시주를 받아 건립을 시작하였는데 30년이 걸려 부처님의 머리부터 목까지를 만든 후 위고가 30년을 걸려 몸을 만들고 장구경이 30년을 걸려 다리를 만들어 90년 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불상 제일 꼭대기에 해통스님의 동상이 있는데 한손에 접시를 들고 있고 그 접시 안에는 눈알을 담아서 들고 있는 모습인데 해통스님이 불상을 건립할 돈을 백성들로부터 시주 받은 것을 알고 탐관오리인 가주 성주가 돈을 뺏으려 하자 내 눈은 주어도 돈은 내놓을 수 없다고 하니 그럼 눈을 내놓으라고 하자 해통스님이 정말로 자기의 눈알을 빼어 주므로 성주가 놀라서 도망을 가고 무사히 대불을 건립하게 되어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5분정도 보트를 타고 낙산대불 밑에까지 가서 낙산대불을 구경하였다.
규모가 웅장하고 섬세하게 잘 만들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대불 옆에 있는 산으로 해서 대불의 위까지 올라가고 내려가고 한다.
다시 성도시내로 돌아와서 무후사를 관람하였다.
무후사
무후사는 1,800여년 전 삼국시대에 위나라(낙양 조비), 오나라(남경 손권) 와 겨뤘던 촉나라(사천성 유비)의 유명한 재상 제갈공명을 모시는 사당으로 당나라 이전 6세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정문의 나무로 만든 큰 간판에는 “한소열묘(漢昭烈廟)”라 쓰여 있는데 “한”은 유비를 가리키며 “소”는 유비가 죽은 후 내려진 시효이다.
들어가는 입구 좌측에 있는 명비는 1,547년 만들어진 것인데 먹기만 하고 싸지는 않는 동물로 재물을 모으는 것을 나타낸다고 하며, 우측의 당비는 809년 조각된 당나라 명 승상 배도가 지은 “촉승상 제갈무후사당비(蜀丞相 諸葛武侯祠堂碑)”로 무후사 내에서는 제일 값진 명품이라고 한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도로 좌우로 14개씩의 문관과 무관의 상이 이어져 있고 보게 되는 최초의 건물이 유비전인데 황금의 유비(서기 161년-223년 생존)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왼쪽에 손자 유심의 동상, 그 옆에 운장 관우상, 오른쪽에 익덕 장비상이 있다.
뒤로 돌아가면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 무후사가 있고 뒤로 돌아 들어가면 세 사람을 모시는 사당인 삼의묘(三義廟)가 있다.
그 옆에 있는 공명원에 들어가면 제갈량의 가계표가 적혀 있고 공명원을 보수하기 전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으 옛날에 사용하던 각종 도구들과 전쟁 물건들, 제갈량이 타던 차가 전시되어 있다.
제갈량이 타던 수레
공명원 앞에는 높이 12m, 둘레 180m가 되는 큰 동산만한 유비의 묘가 있는데 수많은 분재로 잘 단장하여 놓은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관람하게 되어 있다.
관람을 마치고 나와 정문 맞은편에 있는 박물관에 들어가 보니 동물상, 여인상, 생활용품 등 삼국시대 유물이 잘 구분되어 전시되고 있다.
저녁에는 민속공연장에 가서 공연을 보았다.
손 인형 공연은 한손으로 움직이는 인형의 모습이 무척 섬세하여 감탄스럽고 이어지는 가면 교체공연은 순식간에 가면을 교체하는 장면이 민속공연으로서는 아주 특이하여 즐겁게 관람하였다.
2010. 3. 4(목)
00 : 20 늦은 시간에 성도공항을 이륙한 우리의 비행기 아시아나 항공은 04 : 40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새벽에 도착하게 되어 피곤하기는 하지만 짧은 기간에 참으로 알차고 잘 선택한 여행이었다는 기쁨을 안고 귀국하였다.
즐거운 여행은 끝났다.
우리의 여행을 위하여 성심껏 수고하여 주신 가이드분들께 거듭 감사드리며 표현력이 부족하여 그동안 보았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이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