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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짓 선생들 때문에 진리가 비방을 받는다
초대 교회때도 이미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이 일어났었다. 이들이 멸망하게 하는 이단을 끌여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거짓 선지자의 뜻을 찾아보면 '종교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거짓 선생들은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단의 뜻은 '선택한 자들의 무리'를 말한다. 즉, 멸망의 길을 선택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사화복 중에 선택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중에 잘못된 교리를 통해 죽는 길을 선택하게 하는 자들이 바로 이단이라고 할 수 있고 이들은 말씀이신 주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여기서 멸망의 길은 불순종하는 것이므로 교리적으로 율법에 불순종 하는 것을 가르친다면 이들이 성경이 말하는 이단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자들은 호색을 따른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선생 노릇을 하지만 이들이 따르는 비진리로 인해 결국 진리와 순종하는 삶이 비방을 받게 된다. 여기서 호색의 뜻은 방탕, 부정, 방종등의 뜻으로 법이 없는 자유 즉, 책임도 의무도 없는 자유를 뜻한다. 영어 성경에서는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길을 선택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즉, 사람들로 하여금 불순종하게 만드는 비진리의 삶을 살게 하는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자들이다 (벧후2:1,2)
2 거짓 선생들은 미혹하는 영과 사단의 가르침을 따른다
거짓 선생들은 사람들을 사단의 가르침으로 미혹한다. 하와도 이렇게 넘어졌다. 사단에게 미혹을 받았고 그 가르침을 받아들여 그런 삶의 열매를 먹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선하게 지으셨으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고 모두 먹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돼지 고기는 어떠할까? 돼지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귀신의 가르침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왜 모든 것은 선하다고 말씀하시는가?
먼저 음식의 뜻이 무엇인지 보자. 음식의 어원은 유대법에 의해 허락되거나 금지된 품목이라고 써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이 있다. 금지된 것이 음식이 될 수 있을까? 한국어 사전을 보면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을 말한다. 과연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동물을 음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쥐고기를 먹는다. 그러면 우린 쥐를 보고 음식이라고 부르는가? 그 나라는 음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린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 돼지는 음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모든 음식은 바로 하나님께서 허용한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톨릭은 지금도 고기를 금하는 요일을 정해놓고 있다. 혼인을 금하는 종교는 가톨릭 뿐 아니라 불교도 마찬가지고 소고기를 금하거나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고기까지도 금하는 종교들이 있다. 심지어 결혼도 금지한다 이렇게 진리를 대적하는 가르침이 사단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거룩하다고 정하셨다면 거룩한 것이다. 심지어 주님께 기도하며 드려진 동물들은 거룩하고 거룩한 곳에서 거룩한 자들만 먹을 수 있다고 성경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것이다.(딤전4:1~5)
3 거짓 선생들은 죄의 종이므로 자유를 줄 수 없다
마치 거짓 선생들은 자유를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말씀을 지키라고 가르치는 선생보다 말씀을 지킬 수 없다고 가르치는 선생들이 더 겸손해보이고 자유를 주는 교사들로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반대로 말한다. 그들은 이미 죄의 종들이므로 자유를 줄 수 없다고 증언하고 있다. 자유가 없는 자가 어찌 자유를 주겠는가?! 오히려 죄를 끊고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는 자들이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다.(벧후2:19) 율법은 진리이고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하기 때문이다 (약1:25)
4 말씀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예슈아를 부인하면 아버지 앞에서 나를 부인하신다는 말이 예슈아를 믿고 안믿고의 가벼운 말이 아니다.
앞에서도 이단(멸망의 길을 선택한 무리)들은 하나님을 부인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슈아를 부인하는 것은 불순종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만약 우리가 불순종을 선택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말씀은 육신의 생명보다 귀하다. 왜냐하면 영원한 삶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위해 육신의 생명을 버리는 자가 결국 얻을 거라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슈아를 시인하는 것은 순종을 선택하는 것이고 그 가치는 생명보다 나음을 알 수 있다(마10:33~39)
5 불법한 삶을 보고 들음으로 영이 고통을 받는다
의로운 롯은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심령이 상했다. 무법한 자들의 뜻은 무법한 자들, 범죄자들, 사악한 자들이다. 또한 행실의 뜻에 행동과 대화이다. 무법한 행실과 악한 대화는 의로운 롯의 영을 상하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믿음이 없는 무법한 말과 행동은 의로운 자들을 고문하고 고통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아주 심각한 죄라고 할 수 있다 (벧후2:7,8)
6 불법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자를 심판의 날에 지키신다
다윗은 주의 법도를 지키지 않는 자들로 인해 눈물을 시냇물처럼 흘렸고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거짓된 자들로 인해 슬퍼했다. (시119:136,158)
또한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여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그리고 표가 없는 자들을 심판할 거라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가증한 일의 뜻은 '가증한 관습, 우상숭배'등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는 이방인의 관습, 우상 숭배, 가증한 먹거리등을 모두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이 심판을 하나님의 성소부터 시작하신다. 마땅히 거룩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가장 먼저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겔9:4~6)
7 말씀을 지키면 심판으로부터 지키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내함으로 지켜낼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말씀을 지킨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시험의 때에 지켜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면하게 하신다'라는 단어는 원어에는 없다. 그저 전치사로 '~로부터'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시험의 때로부터 우리를 지키신다'는 말씀이다. (계3:10)
어떻게 지키실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 당하게 하신다. 시험을 통해 인내하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하신다. 그러므로 시험은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성장시키는 방법이다. 우리는 연약함으로 반드시 시험이 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감당할 시험뿐이다. 분명히 우린 이 고난을 패스할 수 있고 능히 이길 수 있다 (고전10:13) 다윗은 고난이 유익이라고 증언했다. 고난을 통해 율례를 배우기 때문이다. 율법과 규례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은 고통과 훈련의 시간을 통해서이다. 우리는 이런 시험을 통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분이 어떤 분인지 더 깊이 알아가게 된다(시119:71)
8 악한 자와 반역자들이 형통하고 평안한 이유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은 항상 애통하고 여러 어려운 일들을 당하는데 불경건하고 말씀을 범하는 자들이 형통하고 평안한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오히려 그들을 하나님께서 심으셔서 뿌리가 든든하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다. 그들은 입으로만 하나님을 말하는 자들이며 마음은 없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에 대해 예레미야는 죽일 날을 위해 그들을 구별해 달라고 탄원하고 있다. 그것이 공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한 자들은 이땅에서 심판받지 않을 수 있다. 심판의 날이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억울해하지 말자. 신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소망을 갖자 하나님은 그대로 갚으시는 분이시다(렘12:1~3)
9 하나님의 백성이 땅에서 고난 당하는 이유
예슈아께서는 육체의 고난을 받았다. 우리도 육체의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로 인해 죄를 그치기 때문이다. 육체의 고난을 통해 무법했던 이방인의 삶을 버리고 남은 삶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즉, 죄를 그치도록 하신다 우리가 몰라서 이방인처럼 살아간 것은 과거로 충분하다. 미련을 갖지도 말고 아쉬워하지도 말자. 그저 가증한 멸망의 삶이었을 뿐이다 우린 더이상 이교도가 아니다. 접붙임을 받은 이스라엘이고 약속이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다(벧전4:1~3)
10 이성적이지 않은 사람은 짐승과 같다
불경건하고 무법한 자들, 거짓 선생이나 거짓 선지자들은 이성없는 짐승 같아서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한다. 이들은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다. 공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진리를 비방한다. 말씀은 이해함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셨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동의하지 못한다고 진리가 비진리가 되지 않는다. 이성은 믿음을 위해 쓰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므로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이성과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통해 우린 순종한다. 인간의 머리로 하나님을 이해 할 수 없다. 우리의 본분은 순종이다. 이것이 이성이다. 그러나 짐승같은 자들은 자신이 이해가 안되면 진리를 변개한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자들 때문에 진리가 비방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결국은 멸망이다. 또한 이들은 불의를(불법) 통해 돈 버는 것을 기뻐한다. 이런 자들이 공동체를 더럽히는 점과 흠이다.(벧후2:12,13)
11 불의의 삯을 사랑하는 마음도 훈련되고 강화된다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은 결국 발람의 길을 가게 된다 발람도 갑자기 패역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삶에서 연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연단된다는 것은 훈련되고 연습된다는 뜻이다. 즉, 불법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도 작은 것부터 연습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작은 시험에서 이기는 것이 나중에 큰 시험에서 이기게 되는 방법이다.(벧후2:14,15)
12 선지자도 불법으로 미칠 수 있다
발람은 불법에 대해 나귀가 말을 하는 기적으로 책망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다. 하나님께 불법은 미친 행동일 뿐이다. 우리가 율법을 따르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는 것이 미친 생각이다. 마땅이 하나님의 법도를 따르는 것은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미친 사람들은 물없는 우물과 같고 그럼에도 광풍에 밀려 구름이 다 없어진 자들과 같다. 물없는 곳, 말씀이 없는 곳은 더러운 영이 좋아하는 곳이다. 이들에게 캄캄함이 예비되어 있다. 이유는 허탄한 자랑을 늘어놓아 겨우 죄에서 피한 자들을 다시 음란(방종과 방탕의 뜻도 들어있다)으로 정욕(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으로 유혹하여 망하게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히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다.(벧후2:16~18)
13 여호와께서 선지자로 유혹을 받게 하신다
아무리 꿈을 꾸고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본다해도 하나님의 진리를 거절하고 불순종을 가르치고 불법을 행한다면 고라와 그 무리처럼 멸망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유1:8,11)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잘못된 예언을 한다면 이는 여호와께서 그 선지자로 유혹을 받게 하신 것이다. 이 선지자의 죄악은 그에게 예언을 묻는 자의 죄악과 같다. 이들은 함께 하나님의 백성중에서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이 죄로 더럽히지 않고 미혹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겔14:9~11)
14 변론할지라도 악담으로 비난하지 말라
천사장 미가엘과 마귀가 서로 다투어 변론하였다. 이들의 주제는 모세의 시체라고 한다. 그러나 원어로 보면 시체가 아니다. 몸, 신체라는 뜻이다. 모세의 육신에 대해 마귀과 변론한 것이다. 이때 천사장임에도 감히 마귀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심판을 내리지 않았고 오히려 "주께서 너를 꾸짖으신다"라고 이야기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과 변론 할 때 비난하거나 조롱하거고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하나님께서 책망하신다 또는, 하나님께서 금하신다"라는 아름답고 온유한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재판관이 아니다 그저 모두 준행자일 뿐이다. (꾸짖는다는 꾸짖다, 책망하다, 훈계하다, 금하다 등의 뜻이다)(유1:9)
15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더러움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여호와와 예슈아에 대한 지식을 통해 세상의 더러움에서 도망칠 수 있었지만 다시 죄에 빠지면 처음보다 더욱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린 죄를 혐오해야 한다. 결코 죄짓는 삶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의로운 삶에 대해서 알았고 거룩한 명령을 받았는데 그것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지식이 없었을 때만 못하다. 그러므로 지식을 거절하라는 것이 아니라 결코 다시 죄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벧후2:20,21)
16 다시 죄로 돌아가는 자는 개와 같다
거룩한 명령을 받고 의로운 삶에 대해 깨달았음에도 다시 죄에 빠지만 참된 속담이 이루어진다. 그런 자는 마치 개가 토한 것으로 돌아가서 다시 먹는 것과 같고 목욕한 돼지가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서 뒹구는 것과 같다. (벧후2:22) 미련한 자는 미련한 것을 반복한다고 경고하고 있다(잠26:11)
17 예슈아께서 재림하시는 이유는 말과 행동을 심판하기 위해서다
에녹이 하나님께서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실 것을 예언하였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예슈아께서 재림하시는 이유는 불경건한 행동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경건한 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다. 행동으로 하지 않고 말로만 비난하고 미워하고 용서치 않아도 그것은 분명 죄이고 심판의 대상이 된다. 의로운 자들이 불법한 자들의 말과 행동에 고통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입에 거룩함으로 재갈을 물리고 행동을 고쳐야 할 것이다. 그래서 거룩한 삶으로 심판으로부터 건짐을 받자(유1:14,15)
샤밧 예배: 토요일 10시 30분
헌금 계좌: 농협 301 0293 8190 01 레올람토라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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