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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3-03-16 오전 5:30:00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1845년, 마침내 조선에서도 가톨릭 신부가 탄생했다. 한국 교회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1821~1846년) 안드레아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귀국한 역사적인 해였다. 세계 교회 역사상 유례 없이 자생적으로 설립된 한국 천주교는 김대건 신부의 사제 서품과 귀국으로 비로소 명실상부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성당이 바로 경기도 안성에 자리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이다.
16일 문화재청은 이 성당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고시했다. 김대건 신부의 복자품을 기념하기 위해 일제시대인 1928년에 세워졌다. 무려 90년이 넘은 성당으로 건축 형태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외관은 하얀색으로 칠해 작고 아담하고, 내부에서 예배를 집전하는 제단과 신도들이 앉은 소박한 의자가 놓여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해당 기념성당은 원형이 상당히 잘 유지되어 있다”며 “성당 앞에 위치한 묘역들이 성당의 상징성을 더욱 잘 보여준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이 성당은 김대건 신부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성당과 묘역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해당 유구들을 통해 천주교의 발전 역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 등록 검토에 참여한 한 문화재위원은 “지방에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다양한 성당들이 있지만 김대건 신부와 직접 관련된 성당은 그리 많지 않다”며 “김대건 신부를 기념하는 역사적·종교적·장소적 의미와 가치뿐 아니라 기념 성당과 묘역이 함께 있는 드문 사례로 건축적 특징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위원은 “한국 천주교사의 개척 과정에서부터 변화 과정을 상징하는 곳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성당 이름의 주인인 김대건 신부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한국인 최초의 신부일뿐 아니라 ‘병오박해’로 순교하기까지 한국 천주교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태생부터 남달랐다. 김대건 신부는 1821년에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순교했을 만큼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다. 1836년(헌종 2년) 프랑스 신부 모방에게 세례를 받은 그는 예비 신학생으로 선발돼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중국과 고국을 왕래하며 가톨릭을 배우고 전파하는 데 힘을 쏟았다. 24세 때인 1845년 8월 17일에는 상하이 진자샹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조선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고 신부가 됐다. 신부가 된 김대건은 외국인 주교를 비롯한 10여 명의 교우와 함께 작은 목선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길에 오른다. 그리고 상하이를 떠난 지 42일 만에 전북 익산의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닻을 내린다. 1845년 10월 12일 밤이었다.
김대건 신부가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조선에 첫발을 디딘 포구였다.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를 기념해 그 자리에 1907년 나바위성당이 세워졌다. 1897년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베르모렐 신부가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를 기념해 세웠다. 원래 이름은 화산 천주교회였지만, 지금은 나바위성당으로 개명했다. 이 성당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옥’과 ‘고딕’ 양식을 보여주는 성당으로, 채광을 위한 팔각형 창문은 밤이 되면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해 예술성도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천주교 성지답게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에 세워진 순교비도 갖추고 있다. 이같은 역사성과 건축양식으로 인해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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