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야 우지마라>는 일제시기인 1936년 상연됐던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공연 중에 나오는 노래이지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4막으로 된 연극으로서 주고객인 기생들과 부녀자들을 타켓으로 기획됐습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일제 시기 공연한 연극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공연되고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인기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홍도야 우지마라> (1962)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홍도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오빠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홍도는 전문학교 학생인 오빠를 공부시키고자 기생이 됩니다. 홍도는 우연히 오빠의 동창생을 알게 되고 연애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명문 가문의 자제였던 오빠의 동창생은 이미 약혼녀가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홍도가 과거 기생이었다는 것을 문제삼아 홍도와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홍도는 오빠 친구와 결혼에 성공합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홍도의 남편이 유학을 떠나자 홍도를 쫒아내고자 홍도를 부정한 여자로 조작합니다. 유학에서 돌아온 남편은 그 소문을 믿고 전 약혼녀와 결혼을 하려 합니다. 그에 홍도는 결혼식장을 찾아가서 전 약혼녀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이후 홍도의 결백이 밝혀지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순사(경찰)인 오빠는 홍도를 연행하고 맙니다. 이후 홍도는 무죄로 석방되고, 전 남편은 홍도에게 사과합니다. 그러나 홍도는 오빠와 함께 시골로 낙향합니다.
이 연극의 공연 도중에 오빠가 홍도를 달래면서 홍도야 우지마라를 부를 때는 감정이입이 된 기생들과 부녀자들이 집단적으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고 합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홍도와 남편과의 연애 장면, 갈등 국면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홍도 대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갈등 구도로 되어 있고, 결국 그 갈등이 홍도를 파멸로 이끕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기생 출신의 가족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연극은 외견상 연애극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족극의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됩니다.
김영춘 님이 노래한 <홍도야 우지마라> 앨범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인기의 여세를 몰아 1939년 영화로 제작됐고, 동시에 콜럼비아레코드사에서도 음반을 출시합니다. 이 음반의 전면은 남일연 님이 노래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수록되어 있고, 후면에는 김영춘 님이 노래한 <홍도야 우지마라>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홍도의 입장에서 노래한 곡이고, <홍도야 우지마라>는 오빠의 입장에서 노래한 곡이며, <엄마의 노래>는 엄마의 입장에서 노래한 곡입니다.
https://youtu.be/-TKc3w5v12g
이 음반은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타이틀곡이라 할 수 있고, <홍도야 우지마라>가 부수곡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음반은 후면에 실린 <홍도야 우지마라>의 인기에 힘입어 10만장 이상의 음반이 판매되는 기록을 남기지요. 그 결과 당시로서는 엄청난 판매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타이틀곡보다 부수곡이 더 인기를 끄는 경우는 왕왕 있지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와 <홍도야 우지마라>는 모두 동일한 작사가와 작곡가가 곡을 만들었지만 노래의 분위기는 다르다고 보여집니다. 먼저 <홍도야 우지마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니다. <홍도야 우지마라>는 연극의 전편 내용을 묘사한 부분으로서 오빠의 입장에서 노래한 것입니다.
<홍도야 우지마라>의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2. 구름에 싸인 달을 너는 보았지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
하늘이 믿으시는 네 사랑에는
구름을 걷어주는 바람이 분다
3. 홍도야 우지마라 굳세게 살자
진흙에 핀 꽃에도 향기는 높다
네 마음 네 행실만 높게 가지면
즐겁게 웃을 날이 찾아오리라
가요 <홍도야 우지마라>의 가사는 세상을 구름, 홍도를 달빛으로 묘사합니다. 여기서 구름은 지조없이 흘러다니는 세태를 의미하고, 달빛은 순정을 의미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요 <월량대표아적심>도 달처럼 은은하고 변함없는 일편단심의 순정을 표현한 바 있지요. 오빠는 홍도가 기생 출신이지만 일편단심의 순정을 소유한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홍도가 꿋꿋히 제 갈 길을 걸어가도록 권유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홍도는 비록 기생 출신이지만 전통문화 교육을 받고, 예의범절을 익혀 자부심이 강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지요. 일제 시기 기생은 조선의 전통문화를 유지하는데 주요 역할을 담당했지요. 특히 기생학교는 전통문화를 체계적으로 교육시켜 조선의 명기 계보를 계승하게 했습니다. 기생학교는 200명이 정원이었고, 보통학교를 졸업한 13세에서 17세 사이의 처녀를 대상으로 일반 여학교와 같이 3년 동안 교육했습니다. 1년차에는 조선어, 산수, 평시조 등의 가곡을 교수하고, 2년차에는 시조와 피리, 거문고 같은 관현악 등을 가르쳤고, 3년차에는 사군자와 고난이도의 조선 춤인 승무, 검무 등을 교육시켰지요. 그 결과 기생은 뛰어난 가무실력과 예의범절로 무장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 기생은 조선의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지요.
기생학교에서 전통가요 교육을 받은 기생들은 대중가요 가수로 등장했고, 탁월한 기예를 바탕으로 신민요 등을 부릅니다. 기생 가수는 <고도의 정한>으로 유명한 왕수복, <조선팔경가>로 인기를 모은 선우일선, <화류춘몽>으로 인기를 끈 이화자 등이 유명하지요. 1930년대 중반 인기가수 투표에서 기생 가수들은 상위 5명 중 3명이 선정될 정도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의 기생에 대한 이미지를 철저히 왜곡시켜 버립니다. 일제는 조선 전통문화를 유린하는 차원에서 기생관광을 독려하는 등 기생의 본모습을 훼손했지요.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주체성을 약화시키고자 한국 황실의 신성 지역인 원구단을 호텔, 창경궁을 유원지로 만드는 등 조선 전통문화를 말살하는 정책을 취하지요.
다음으로 가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연극의 후편 내용을 묘사한 부분으로서 홍도의 입장에서 노래한 것입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거리에 핀 꽃이라 푸대접 마오
마음은 푸른 하늘 흰구름 같소
짓궂은 비바람에 고달퍼 우다
사랑에 속았다오 돈에 울었소
2. 사랑도 믿지 못할 쓰라린 세상
누구를 믿으리요 아득하구려
억울한 하소연도 설운 사정도
가슴에 쓸어담고 울며 살까요
3. 계집의 고운 뜻이 꺾이는 날에
무엇이 아까우랴 거리끼겠소
눈물도 인정조차 식은 세상의
때아닌 시달림에 꽃은 집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각 절의 도입 부분에 남일연 님이 읽어 내려가는 홍도의 고백이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대사의 요지는 ‘기생 홍도는 인력거를 타고 다니며 피곤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학생 영철과 귀천없는 사랑을 한다. 홍도는 돈보다는 순수한 사랑을 중시한다. 홍도는 마음만 맞으면 셋방살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홍도는 알뜰하게 일편단심으로 영철을 뒷바라지할 것을 다짐한다’라는 내용이지요. 대사는 홍도의 확고한 결혼관을 보여주지요.
그러나 실제 노래 부분에 들어가서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홍도가 남편과 결별하면서 회한에 잠긴 듯한 어조로 노래합니다. 이 곡은 나지막히 읊조리는 듯한 어조로 일관하여 노래라기보다는 절절히 호소하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지요. 그 결과 이 노래는 큰 인기를 얻지는 못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홍도야 우지마라>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요인은 가사의 탁월성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 곡의 가사를 쓴 이서구 님은 유명한 극작가였지요. 일제 시기에는 시인이나 극작가들이 대중가요의 가사를 많이 써서 가사의 수준이 높습니다. 이 분들은 시대의 흐름이나 세태를 제대로 반영하여 대중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우월한 능력을 발휘하지요.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해방 이후에도 라디오 드라마, 영화, 연극으로 끊임없이 리바이벌됩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1960~1970년대 인기를 끈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시리즈로 계승되는 등 한국 최루극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제작되는 드라마, 영화, 연극에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흔적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방영되는 가요무대에는 <홍도야 우지마라> 가 선곡되었지요. 그런데 <홍도야 울지마라>로 잘못 소개했습니다. 아래 음반에서 보듯이 이 곡이 발표될 당시 sp 음반의 제목은 <홍도야 우지마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