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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회상
이사야 63:7~9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이전에 우리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오셔서 친히 그 원수의 대표가 되는 에돔 땅 보스라에 가셔서 심판적 징벌을 행하시어 그 옷을 붉은 핏물로 물들어 오신 일에 대한 기록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아무도 함께 하지 않고 홀로 분노함으로 포도즙 틀을 밟아서 하나님의 원수를 갚으셨노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포도원 주인이 포도 수확을 하여 포도즙 틀에 던져넣고 밟아서 그 붉은 포도즙을 모으듯이, 하나님께서 친히 홀로 하나님의 원수들을 친히 맹렬한 분노로 심판하시고 당당한 전쟁의 승리자로 선언한 것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고난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 선민 하나님 백성에게는 크나큰 소망과 구원의 확신을 안겨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친히 개입하셔서 그 백성에게는 구원을 주시고 그 원수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시는 약속의 말씀을 선포한 후에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가 이어집니다. 선지자는 남은 자들 택한 백성들의 대표로서 하나님 앞에 그렇게 언약해주신 구원과 은혜의 역사를 이루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을지라도 그것을 이루어달라고 간구할 몫은 하나님 백성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 한 장 앞서 있는 이사야 62:6,7 말씀에서 이 점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이사야 62:6,7 말씀을 함께 읽어봅시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여기서 파수꾼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계시로 아는 자요 주의 백성들을 향하여 때로는 책망과 죄를 지적하면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려는 선지자 사역을 하는 자요 그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중보 기도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 파수꾼이 지금 하나님이 친히 역사에 개입하셔서 하나님 백성의 원수들을 보복하시고 그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구원 행동의 약속을 듣고는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찬란하고 희망 벅찬 것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척박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원수의 압제 아래 있기 때문이며 그 백성은 암울한 노예 생활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파수꾼의 긴 간구가 시작된 대목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 63:7 이하로부터 64:12 말씀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명한 약속을 받았을지라도 그 약속이 우리 삶 속에 현실로 이루어지기까지는 땅에서의 우리의 기도가 충분히 하나님께 올려져야 합니다. 에스겔서 36:37 말씀에 이른 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주기를 내게 구해야 할지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들을 성경에서 받거나 기도하는 중에 장차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주실 축복의 약속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 삶에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늘 기도하고 또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기억하사 우리를 위하여 넉넉히 일하시어 마침내 그 약속을 삶 속에서 체험하는 은혜를 경험하는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렇듯 하나님 백성의 파수꾼으로서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단락의 첫 부분인 오늘 본문 말씀은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셨던 은혜를 회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행하신 그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지금도 자기 백성들에게 동일하게 행하실 것임을 그가 확신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과거에 행하신 크신 은혜의 역사를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상기시킴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동일한 능력과 사랑과 자비를 현재의 고난 중에 주의 백성들을 위하여 일하시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과거 이스라엘 역사 속에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의 사역을 선지자가 상기한 것을 함께 살펴봅시다. 그리하여 그 선민 이스라엘에게 과거에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가 우리 삶에도 행하여졌음을 상기하면서, 다시 한번 우리 심령 속에 은혜의 감격이 새로워지고 기도가 뜨거워지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오늘날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삶에 성령의 감동 감화가 충만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먼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향한 그의 조건 없는 사랑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7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의 근원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많은 자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하여 은혜를 베풀어주신 동기는 하나님 백성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의 백성들이 누린 모든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 자신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와 이 땅에서 우리가 받아 누리는 모든 은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그의 선하신 뜻 가운데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들을 기르시고 먹이시는 그의 선하심과 자비로우심과 사랑의 까닭에 만물이 지금도 이렇게 존재하며 생명의 순환 질서 속에 운행되고 있습니다. 역사가 인간 자신의 부패성으로 인하여 완전히 자멸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셔서 악한 마귀와 그의 하수인들로 하여금 활동하지 않도록 제어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모든 은택 역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은혜로우심과 조건없이 그 자녀들에게 베푸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덕분임을 우리도 기억하고 항상 그 사랑과 자비를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이어서 선지자는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불러주신 목적을 밝히는 말씀을 덧붙입니다.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선지자 이사야는 먼저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이렇게 여기서 언급합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만민 중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만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음을 여기서 상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민족과 족속과 나라와 가문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 살던 셈 족속의 후손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에게 자기를 계시하시고 그를 불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들이시고 약속하시기를,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으며 그 후손과 언약을 맺고 그 후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 그들을 불러와서 하나님과 성민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이 받은 축복 중에 이 축복처럼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을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고 구별하여 부르셨으니 이것처럼 큰 축복이 달리 없는 줄 믿습니다. 우리도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 잘난 사람, 재능있는 사람, 가문 좋은 사람, 신수가 훤한 사람, 많은 재물과 권세가 대물림되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천 사람 가운데 하나, 만 사람 가운데 하나 이렇게 불러서 자기 백성으로 삼아주셨으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요 행운이요 은총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여기서 밝히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그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신실한 자, 진실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2:4 이하에 ‘모세의 노래’ 중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비뚤어진 세대로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신명기 32:4~6)
여기서 보면 모세는 하나님을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요 지으신 창건자라고 소개하면서 그들의 하나님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시다고 선언하신 후에 그들이 그러한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흠이 있고 비뚤어진 세대로서 행함으로써 아버지를 배신했노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자기 자녀로 부르신 주의 백성들은 모름지기 우리를 지으시고 낳으시고 기르신 아버지 하나님을 본받아 거짓 없고 진실하고 반듯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서 함께하시며 역사해주셨던 바를 상기하고 있습니다. 8절 마지막 부분에서 시작하여 9절까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고난 중에 있을 때 그냥 홀로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삶 속에서 고난이 있을 때마다 늘 개입하셔서 그들을 곤경에서 구원해주셨음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오기까지 친히 그 앞을 인도해오셨으며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큰 기근이 찾아와서 아브라함이 애굽 땅에 갔을 때에 그곳의 왕 바로에게 그 아내 사라가 빼앗겼을 때에 하나님은 바로에게 무섭게 경고하여 그 아내를 범하지 못하고 돌려보내게 해주셨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와서도 조카 롯과 그 가족이 소돔 성에 살다가 동방 왕 그돌라오멜 연합군에게 잡혀갔을 때에 아브라함이 겁도 없이 자기 종들과 헤브론의 마므레 형제의 종들과 연합하여 그돌로오멜 연합군을 뒤쫓아가서 그들을 싸워 대승을 거두고 조카 롯의 가족과 그 포로 된 자들을 다 데려오는 놀라운 승리를 안겨주셨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가 자식이 없이 나이 90이 되었을 때에도 놀라운 회춘의 은혜를 주시고 나이 든 사라를 통하여 아들 이삭을 낳게 해주셨습니다. 이삭도 자라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믿음으로 살다가 기근을 만났을 때에 애굽으로 내려가려 했는데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여 순종했을 때에 기근 시에도 그가 농사를 지으면 백배의 결실을 맺게 해주셨고 양을 기르면 양이 새끼를 쌍태로 낳게 해주셨고 우물을 파면 파는 데로 물이 솟게 해주셨습니다. 그를 하나님께 보호해주시므로 그랄왕이 군대 장관을 거느리고 와서 평화조약을 체결할 정도로 이삭을 도와주시고 보호해주셨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 역시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속임수도 능란한 사람이어서 인격이 부족하였으나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자비로 그를 사랑하시고 그가 외갓집에서 고생살이할 때에 도와주시어 장인의 양떼를 기를 때에 놀랍게 양떼가 번성하게 해주시고 그 개인 소유를 늘어나게 하시므로 큰 부자가 되고 자식들도 번성하게 해주셨습니다. 그 후손들이 대 기근으로 죽게 될 일을 만났으나 야곱의 아들 요셉을 미리 애굽에 보내어 그들을 위하여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도록 역사해주셔서 대 기근 시에 그 가족들이 애굽으로 건너가 평안히 살게 하시고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때가 차매 애굽의 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박해하도록 허락하시므로 그 백성들이 더 이상 애굽에서 평안히 살기보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나올 마음을 갖게 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많은 이적과 표적을 통하여 애굽에서 건져내게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9절 첫 번째 말씀처럼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라는 말씀대로 행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생할 때에도 그들을 동정하시고 마음으로부터 동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보내실 때에 이르신 말씀에 보면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으로 데려 가려 하노라”(출애굽기 3:7~8)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곤고함과 연약함을 보고, 듣고, 그 근심을 알고, 건져내고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겠노라고 말씀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 백성들의 삶에 찾아온 곤고함과 환난에 대하여 방관자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형편과 사정을 늘 살피시고 그 마음을 알아주시고 그 눈물을 닦아주시고 친히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찾아와 일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사기 10:16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슬픔과 고통 중에 있을 때에 멀리 눈감고 귀막고 외면하고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고통 중에 함께하시며 슬픔을 함께 나누시는 분입니다. 저 북녘 땅에 있는 자기 백성들의 고통을 주님은 모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들과 함께하시며 함께 아파하시며 근심하고 슬퍼하시고 괴로워하십니다.
우리가 환난과 고통 중에 힘겨워 할 때에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같은 마음을 품고 근심하시며 위로해주시며 도와주시고자 일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구원의 사역을 베푸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고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께서 그의 앞에 있는 사자 곧 천사들을 보내어 그들을 돕고 구원하시는 일을 계속 하셨음을 여기서 상기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천사를 보내어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진 애굽 땅 고센 땅의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넘어가게 하시고 애굽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의 장자와 가축의 첫 것은 다 죽임으로써 애굽 왕 바로를 굴복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어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실 때에 애굽 왕 바로의 군대가 달려오자 그 앞으로 달려가 여호와의 사자가 막아섰습니다. 광야에서도 여호와의 천사, 여호와의 사자가 앞서 장막 칠 곳을 찾아 주시고 대적들을 물리쳐주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전히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이후에 이스라엘 왕국 시대에도 여호와가 보낸 천사들이 주의 백성들을 지켜주셨으니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에 다윗이 기도하며 뽕나무 위로 천사들이 진군하여 블레셋 군대를 쳐서 다 물리쳐주심으로써 그들이 다 패퇴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후에 히스기야 왕 때에도 힘 있는 천사 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군대 진영에 다니면서 치니 하룻밤 새에 앗수르 군인들 십팔 만 오천 명이 떼죽음을 당하여 부끄럽게 패퇴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천사들을 통하여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돌보시고 있음을 우리는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곤경에 있을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인도하고 지키하며,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천사를 붙여주셔서 돌보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님께 기도하고 맡김으로 평안을 누립시다.
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구원 행동에 대하여 한 가지 더 언급한 내용이 9절 하반절에 나옵니다.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하나님께서 옛적 이스라엘을 구원하시어 애굽에서 그들을 데리고 나오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드시고 안으셨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모세는 독수리가 그 새끼를 그 날개에 받았던 것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신명기 32:10~12 말씀에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높은 낭떠러지에 만든 보금자리에서 떨어뜨려 공중에 날게 하려고 할 때에 힘이 없어 밑으로 떨어지는 새끼 독수리를 그 날개로 받아서 다시 보금자리에 올려놓고 또 날게 하기를 반복하여 드디어 창공을 나르는 어엿한 독수리로 만드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인도해오고 광야에서 이끌어가실 때에 하나님께서 독수리 어미 아비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날개를 펴서 받으며 그 날개로 업어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31:20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스라엘을 애끓는 부정애와 모성애로 눈동자같이 지키고 보호하며 인도하셨으며 잘못을 범할 때에도 책망하더라도 그 마음은 창자가 들끓듯이 애간장이 녹으면서 안타까워하시면서 책망하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고 계시며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신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사랑과 자비로 주의 백성을 그 사랑의 날개로 우리를 이 세상 모든 나날에 우리를 드시고 안으시고 날개로 펴서 받으시고 애끓는 사랑으로 우리를 붙들고 지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심히 부족하고 연약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어긋난 길로 갈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한없는 자비와 사랑과 애끓는 부성애와 모성애를 우리를 붙드시고 놓지 아니하실 것이니,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결코 망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들을 모든 환난 가운데에서도 내버려두지 않고 우리 환난에 동참하시고 그의 사랑과 자비로 구원하시고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