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환자의 일탈
나는 오래전부터 당뇨병을 앓고 있다.
한번 손상된 췌장은 결코 이전 상태로 돌릴 수 없다고 한다.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내가 천(千)씨 성을 가졌으니 천형(天刑)이라 해도 할 말이 없으려나.
요즘은 3개월마다 피를 뽑는다. 채혈한 피는 하크나 지멘스 같은 거대한 분석기에 들어가 추출 과정을 거치고, 마침내 엑셀 파일 위에 차가운 숫자로 찍혀 나올 것이다.
정상 범위를 벗어난 수치들은 담당 의사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알록달록한 색으로 각인되겠지.
전에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는데, 요즘은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 예상보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괜히 무슨 탈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슬그머니 피어오른다.
결국 참지 못하고 간호사 부스로 다가가 아직 안 나왔나요? 하고 조심스레 물어보곤 한다.
채혈이 끝나면 나만의 작은 일탈이 시작된다.
병원 앞 체인점 빵집으로 들어서서 당을 단번에 올릴 만한 달콤한 빵 몇 개를 고르고, 갓 뽑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주문한다.
뭐 어떤가. 서너 달에 겨우 한 번, 마음 놓고 즐기는 것인데.
오늘도 채혈을 마치고 빵집에 앉아, 나만의 소소한 일탈을 즐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