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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42
[1~4]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동아·중앙·서울·경향이요, 하는 식으로 여느 아이들처럼 약칭을 쓰지 않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신문의 순서가 바뀌거나 생략되어지는 일도 절대 없었다. 녀석은 여덟 가지 신문을 빠짐없이 마련해 가지고 와선 토씨나 어미 하나 뒤바뀌는 일이 없이, 그의 그 속수무책인 듯한 눈웃음을 던지면서, 느릿느릿 판에 박힌 대사를 외어 나가곤 하는 것이었다.
— 동아일보요, 서울신문이요, 중앙일보요, 민국일보요…….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맘속으로 은근히 녀석을 아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좀 건방진 신문팔이 녀석이었다.
밤 버스가 서대문 정류소만 들어서면 신문 뭉치를 옆구리에 낀 그 잠바 소년의 가분수형 머리통이 제일 먼저 출입구를 비집고 올라왔다. 시간이 바쁠 때는 가끔 그를 못 보고 서대문을 지날 적도 있었지만, 우리는 이제 그 서대문을 지날 때는 자기도 모르게 녀석의 모습을 찾게 되곤 했다. 녀석을 못 보고 서대문을 지나게 되는 날은 제물에 괜히 마음들이 서운해지곤 했다.
녀석은 우리들에게 가로등 같은 소년이었다. 녀석은 우리들에게 서대문의 가로등이었다. 녀석이 보이지 않는 날은 그의 등불이 꺼져 있는 날이었다. 우리들의 가로등 하나가 불이 오지 않는 날이었다. 녀석을 보지 못하는 날은 불이 오지 않은 가로등 사이를 건너갈 때처럼 마음의 균형이 어긋나 있곤 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좀처럼 드물었다. 녀석은 언제나 서대문에서 우리를 기다렸고 우리는 그 소년의 가로등을 지나갔다.
하지만 녀석에겐 그보다 아직 더 인상 깊은 일이 있었다.
녀석은 늘 신문을 팔기 위해 차를 비집고 올라와서도 신문을 파는 데는 정작 마음을 쓰지 않았다. 녀석은 언제나 느릿느릿 여유가 만만했고, 은밀스런 비밀을 숨기고 있는 소년처럼 그 가는 실눈 속에 괴상한 웃음기를 참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자신의 목소리를 즐기고 있는 듯한 가성기의 목소리로 예의 대사를 외어 나갔다.
하지만 딱 한 번이었다. 언제나 그 한 번뿐이었다. 느릿느릿 여덟 개의 신문 이름을 외고 나면, 차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번 되풀이할 시간이 없었다. 신문을 팔 시간도 없었다. 대사만 외고 나서 번번이 차를 쫓겨 내려가야 했다. 하지만 그는 목소리를 서두르거나 중간에서 대사를 중단한 일이 없었다. 대사를 외우면서 신문을 파는 일도 없었다. 대사를 외워 주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던 듯이, 그것만 끝내고 나면 미련 없이 차를 내려가 버릴 때가 많았다.
[중략 부분 줄거리] 그러던 어느 날부터 우리는 신문팔이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신문팔이의 소식을 궁금해하던 ‘나’는 몇 달 뒤 신문팔이를 찾아간다.
어느 날 저녁 마침내 다시 한 사내가(다시 말하지만 그 사내가 굳이 나, 누구였다고 말하기 싫은 것은 이 이야기 중의 모든 경험을 나 혼자의 것으로 말하지 않고 ‘우리’라고 말하고 싶은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것으로 무슨 특별한 뜻을 담으려는 것이 아니라, 나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소년을 알고 있을,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광화문에서부터 서대문까지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갔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한번 소년을 만났다. 이번에는 사내 혼자 소년을 몰래 만난 것이 아니라 녀석과 사내가 함께 상대방을 만난 것이다. 소년은 물론 사내가 좀 이상스러운 눈치였다. 별걸 다 묻는다는 식이었다.
— 그런 건 왜 물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여전히 그 눈가의 웃음기만은 잃지 않고 있었다.
— 다시 신문을 팔아야지요. 하지만…….
㉠조금은 어른스런 말투가 찻속에서 신문 이름들을 외어 댈 때 하곤 판이하게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뜻밖인 것은 예기치 않은 녀석의 불평이었다.
— 민국일보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에요. 민국일보가 빠지니까 소리가 맞지 않아요. 동아일보요, 서울신문이요, 중앙일보요……. 민국일보가 없으니까 자꾸만 짝이 어긋나 버리거든요.
하고 보니 녀석이 보이지 않기 시작한 것은 몇십 년간 발간 실적을 가진 그 민국일보가 뚜렷한 명분도 없이 어물어물 자진 폐간 형식으로 신문 발간을 중단해 버린 다음부터였던 것 같았다. 이상스런 얘기지만, ㉡녀석은 그 민국일보가 나오지 않으니까 신문을 팔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일테면 ㉢녀석에겐 민국일보가 빠져버렸기 때문에 그의 대사 전체 질서에 골격이 무너져 나가 버린 셈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그 때문에 신문을 팔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는 다시 연습을 시작하고 있노라 했다. 남은 신문들의 순서를 꿰맞춰서 대사의 억양과 호흡을 다시 연습하고 있는 중이랬다. 소리가 좀처럼 짝이 맞질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연습이 끝나면 반드시 다시 신문을 팔겠노라고 했다.
— ㉣말하나 마나지요. 신문을 팔아야지요. 한데도 아직 소리가 그전처럼 신이 나질 않아요. 민국일보가 다시 나와 준다면 좋겠지만…….
녀석은 정말로 알 수 없는 신문팔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누구나 녀석을 기억하고 있었다.
- 이청준, ‘건방진 신문팔이’
1.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인물 간의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이 나타나 있다.
② 시간을 역전적으로 배치하여 사건의 인과성을 높이고 있다.
③ 등장인물의 외양을 상세하게 묘사하여 인물을 희화화하고 있다.
④ 공간적 배경에 따라 서술자를 달리하여 상황을 입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⑤ 서술자가 인물의 행동을 중심으로 의미를 찾아가는 탐색 구조로 되어 있다.
2. 신문팔이 소년을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설정하여 얻은 효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소년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숨길 수 있다.
② 소년에 대한 작품 속 인물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③ 주인공의 내면을 직접 묘사하여 독자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다.
④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입체적으로 보여 줄 수 있다.
⑤ 소년의 행동에 대해 독자에게 객관적인 입장에 서도록 유도할 수 있다.
3. ‘그’가 다른 신문팔이들과는 달리 ‘나’의 이목을 끄는 이유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실눈 속에 숨겨진 은밀하고 괴상한 눈웃음 때문에
②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신문을 파는 성실한 모습 때문에
③ 시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두르지 않는 여유 만만한 모습 때문에
④ 신문을 팔기 위해 차에 올라와서도 딱 한 번만 외치고 가는 행동 때문에
⑤ 신문의 이름들을 자기 식으로 읊조리는 일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 때문에
4. <보기>를 바탕으로 ㉠~㉤을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1970년대 당시 정부는 독재 체제를 비판, 부정, 비방하는 모든 행위를 보도할 수 없도록 했으며, 언론 자유에 앞장섰던 언론인들을 강제 해고했다. 이 작품은 이 같은 당시의 언론 탄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한 신문팔이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언론 탄압이 자행되었던 현실을 비판하고, 언론의 자유를 갈망하는 내용을 우회적인 수법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① ㉠: 강제적 언론 탄압이 자행되던 시대적 분위기를 생각하게 해.
② ㉡: 소년을 통해 언론 탄압에 대한 저항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
③ ㉢: 언론 탄압 정국으로 균형이 깨져 버린 언론계에 대한 비유라고 할 수 있겠어.
④ ㉣: 소년을 통해 언론의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바람을 엿볼 수 있어.
⑤ ㉤: 자진 폐간한 언론 매체에 대한 당대 독자들의 비판을 연상하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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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건방진 신문팔이」
http://blog.naver.com/studyplan12801/220751619775
http://blog.naver.com/kyorai/120058145508
이 작품은 신문팔이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1970년대 정부의 언론 탄압을 비판하고 언론의 자유를 갈망하는 내용을 우회적 수법으로 표현했다. 대개의 경우 불쌍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신문팔이 소년이, 이 작품에서는 여유 있고 웃음기 있는 모습이다. 신문 파는 것보다 신문의 이름을 한 번씩 외치는 것을 즐기는 소년의 모습은 독자의 호기심과 애정을 유발하고 있다. 소년의 외침은 당시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언론의 자유에 대한 외침으로 들렸을 것이다. 또한 민국일보의 폐간으로 신문팔이를 그만둔 것은 언론 탄압에 대한 저항의 의미이며, 언론의 자유에 대한 우리들의 갈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갈망
저녁 9시 버스로 서대문 정류소를 지날 때면 으레 신문팔이 소년을 만날 수 있다. 웃음기 머금은 소년은 독특한 억양으로 순서를 바꾸거나 생략하는 일 없이 여덟 가지 신문의 이름을 외운다. 녀석은 흔히 보는 신문팔이들과는 달리 신문을 파는 일보다 신문 목록 외우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우리’는 소년을 가로등과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신문을 팔지 않게 된 것이다. 이유인즉 소년은 민국일보가 폐간되는 바람에 신문 목록 외우는 대사의 억양과 호흡이 맞지 않아서 신문을 팔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연습이 끝나면 신문을 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소년은 신문을 팔지 않는다. 녀석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건방진 신문팔이로 남아 있을 것이다.
1 서사 구조에 대한 이해 ⑤
이 작품에서 이상한 외양과 행동을 보이는 소년은 ‘나’의 호기심을 유도한다. 이런 호기심은 소년의 행동이 지니는 의미를 탐색하게 만든다. 소년의 건방진 행동을 통해 얻어지는 의미가 이 작품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① 인물 간의 갈등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는 신문팔이 소년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언론 탄압이 자행되던 당시의 현실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② 시간의 역전적 배치는 나타나지 않는다.
③ 소년의 범상치 않은 모습과 행동 등을 묘사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하지만 인물의 희화화로 볼 수 없다. 이런 묘사는 소년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점을 인식시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소년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④ 공간적 배경에 따라 서술자를 달리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우리’라는 서술자를 설정하고 있다.
2 서술상 특징 파악 ②
이 작품은 ‘우리’라는 1인칭 복수 관찰자가 서술자로 설정되어 있다. ‘나’가 아닌 ‘우리’를 서술자로 설정함으로써 신문팔이 소년에 대한 시선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 주며, 독자를 하나로 묶어 독자의 심리적 동화를 유도해 준다. 또한 일련의 사건들이 특정 개인만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며 다수의 내면적 욕구로 일반화할 수 있다. 결국 이와 같은 설정은 신문팔이 소년에 대한 작품 속 인물들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①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서술자의 비판적 태도를 숨기려는 의도와는 관계가 없다.
③ 신문팔이 소년에 대한 정보가 직접 진술이 아닌 관찰자의 제한된 시선을 통해서 제시되고 있다. 이는 독자들이 소년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다.
④ 소년의 행동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적용하지 않았으며 입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⑤ ‘우리’는 소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 주고 있으며, 독자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입장과는 관계가 없다.
3 인물의 성격 및 태도 파악 ②
신문팔이 소년의 범상치 않은 모습과 행동은 ‘나’와 사람들에게 소년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신문팔이 소년이 ‘나’의 이목을 끄는 이유는 성실하게 신문을 파는 모습 때문이 아니라, 신문의 이름을 자기 식으로 읊조리는 일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 때문이다.
① 소년은 눈웃음을 잃지 않으며, 가는 실눈 속에 괴상한 웃음기를 참고 있는 듯한 모습 때문에 다른 신문팔이들과는 달리 ‘나’의 이목을 끈다.
③ 신문을 팔 시간도 없을 만큼 빠듯한 순간이지만, 소년은 느릿느릿 여유를 가지고 대사를 중간에 중단하는 일 없이 신문 이름을 외운다.
④ 소년은 신문을 팔기 위해 여러 번 되풀이해서 외친다거나 사람들에게 사정하지 않는다.
⑤ 소년은 다른 신문팔이와는 달리 신문을 파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오직 자신의 독특한 어조로 신문 목록 외우는 일에만 집착하고 있다.
4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⑤
사람들은 소년을 ‘알 수 없는 녀석’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들에게 오래 잊혀지지 않을 만큼 우리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 존재이다. 그런데 이를 자진 폐간한 언론 매체에 대한 당대 독자들의 뜨거운 비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소년의 행동이 위안을 주며, 언론 자유에 대한 갈망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일 뿐이다.
① 소년은 신문을 팔 수 없게 된 현실에 우울해 하고 있다. 강제적 언론 탄압이 자행되던 시대적 분위기를 알 수 있다.
② 소년은 단지 민국일보가 폐간되어 대사의 전체적인 리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신문을 팔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당국의 언론 탄압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③ <보기>의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은 다양한 색채의 언론이 존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국을 비판하는 언론사를 폐간하는 언론 탄압 정국을 배경으로 한다. 따라서 민국일보가 빠짐으로써 소년의 대사 전체 골격이나 질서가 어긋나게 된 것은 균형이 깨져 버린 언론계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④ 새로운 대사 연습 후 다시 신문을 팔겠다는 의미는 결국 언론의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바람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