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간단하게 제 소개를 해 볼까 합니다.
저는 그 말 많은 58년 개띠입니다.
나무위키를 보니, 58년에 태어난 사람이 99만명이고 2018년 기준 생존해 있는 사람이 78만명이라 합니다.
아직은 역할을 찾아 일을 해야 하는 세대에 속해 있는 사람들 중 한명이 아닌가 합니다(동의 안하실 수도 있겠네요).
저는 제주도에서 태어 났는데, 태어나자 마자 육지(?)로 올라 와 서울에서만 살았기에 제가 제주도 산이라 하면 놀라기도 합니다.
제가 살아 온 환경이나 경험들에 대한 것은, 대 부분 우리세대들이 그러하듯, 그저 가난하고 힘들고.... 군대 이야기가 그러하듯, 나에게는 특별할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듣기 힘든 그리고 너무도 뻔한 술자리 안주들이지 않을까 하여 대충 생략합니다.
어쨌든 부모님의 피 눈물나는 헌신에 힘입어 오늘의 제가 있게 되었네요.
대학까지 무사히(?) 졸업했으니...
대학 졸업때까지 공부한 기억은... 흐지부지 합니다. 그렇다고 논 기억도 없는 것 같아요. 쩝
어쩌다 보니 올해 박사학위까지 받았는데요, 할 것 다하게 만들어 주신 부모님과 가족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요양병원에 누워계신 어머님의 눈에는 아직도 철 들지 않은 아들의 모습일 것이고... 불효자로 살아 온 나날들... 지금도 걱정하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에... 이제야 후회와 반성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꼰대들의 이야기로 만 알았던 "나이먹어보면 안다"라는 이야기가 바로 제 이야기 였습니다.
우리때 대 부분(전부는 아니겠지요?)이 그랬듯, 학교성적과 무관하게 회사에 취직(한창 붐이었던 건설경기의 영향도 있었겠지요)이 되었고 그것이 제 운빨 사회인생의 시작(사실은 대학을 들어 가게 된 과정부터)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그 운빨이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인생이라는 것이 뭐 대단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저 먹고, 자고, 할일이 있으면 성공한 인생 아닌가요?
저는 제대로(?) 된 공부를 회사에 들어가서 시작한 것 같아요.
대우건설이라는 건설회사에 운 좋게(정말이지 이 회사는 아무나 뽑아주나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취직이 되고나서 번떡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 일(건설계약/클레임/분쟁해결)이 현재까지도 저를 지탱해주고 있습니다.학교때 못했던(정확하게는 안 했지요) 공부를 30년 이상 줄기차게 하고 있으니...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은 것이 이 분야 전문성이라 생각되네요.
언제가 어머니에게 "엄마 내 이름 누가 지었어?"라고 물었더니 어머니께서 지었다 하시더라고요.
현학봉... 아마도 배움에 대한 한을 제 이름으로 풀어 보시려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배울 "학"자에 받들 "봉"이니 제 생각이 맞을 것 같네요. 그리고 그 이름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의도 하고 있고, 책도 몇권 내기도 하고... 이런 커뮤니티 활동도 하고 있고...
인터넷 검색창에 현학봉을 치면, 두 사람의 현학봉이 뜹니다 .
한 사람은 북한 현학봉이고 한 사람은 남한의 현학봉 저 입니다. 흔하지 않은 성씨와 이름이라 두 사람만 있는 줄 알았는데 확인해 보니 한 분이가 더 있네요.
어쨌든, 북한 현학봉은 북핵관련 6자회담에 북한 대표로 참여하였고, 영국대사까지 지냈으니 저와는 비교가 안되는 위치에 있었네요.
영국대사로 있을때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태영호씨가 남한으로 넘어 왔고, 그래서 북한으로 송환된 것까지가 제가 알고 있는 북한 현학봉에 대한 소식의 전부입니다.
체재나 이념 그리고 살아 온 환경을 떠나 한번은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분입니다(이름이 뭐라고...).
이야기가 좀 샜는데...
대우건설에서 20년 정도 근무하였는데... 정말 행복한 직장생활이 아니었나 합니다. 먹고 살 정도로 돈도 주었고요,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으니... 아마도 그 당시의 대우건설 문화가 제 운빨을 지속시켜 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그 당시는 클레임 분야 자체가 생경한 것이 었고, 그러 하기에 보잘 것 없었던 제 전문성이 통할 수 있었지 않았나 합니다. 정말 건방질 정도로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립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고, 계약관리 분야에 척박한 우리 건설환경에서는 통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지요.
그러던 중 대우건설에서의 운빨이 다 해 가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 순간, 즉시 퇴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모한 짬뽕이 아니었나 합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10년 이상 독립을 위한 준비를 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자신감과 믿음이 있었으니... 퇴사 일주일만에 현재의 회사법인을 만들게 됩니다.
홀로 법인으로 1년 정도...
한참 잘 나갈때(?) 20명정도까지의 조직을 건방지게...
지금은 쪼그라 들어 있긴 하지만...
15년 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탱을 하고 있으니 이 또한 운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혼자 하면 금전적으로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있을텐데... 라는 조언(?)을 수 없이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가 버티려는 것은, 단순히 돈을 목적으로 업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합리화?).
물론 돈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요. 단지 돈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너무 슬프고 비참해 질 것 같은... 핑계거리가 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업을 한다는 것은 돈 이외에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우리 회사의 가치는 건설계약 전문성을 무기로 한 세계 제 1의 토종 컨설팅 회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물론 사회적 가치도 생각하여야 할 숙제이고요...
전문가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 해외 선진국가의 건설팅에 목 매는 현실... 우리만의 건설계약 문화(기존의 문화가 아니고 창출되어야 할 문화입니다)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다는 믿음... 건설의 미래를 여는 길...
프리랜서의 길이 아닌 조직을 부둥켜 안아 보려는 발 버둥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몇년 전에 어떤 큰 조직과 협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5년 내 세계적인 건설 컨설팅사가 되겠다는 각오를 밝힌 적이 있었고, 지금도 가보고 싶은 희망의 길 입니다.
당장의 돈 벌이 문제로 금방 끝나 버린 꿈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글이 길어 지고 있네요...
여하튼 아직도 운빨은 진행 중이고...
언제까지의 운빨일지 모르겠으나...
그 운빨이 다 할때 까지는 계속 운빨에 기대어...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