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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애들 보여 주려고 영화관에 갔다가 어른들이 울며 돌아 왔다는 영화, 짱구는 못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이다. 특히 sns를 통해서는
짱구 아빠의 과거 회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짱구 극장판 시리즈가 모두 그렇듯 이 영화 역시 대립 구도를 취하고 있는데, 본 리뷰는 그 구도에 집중하도록 하겠다. 처음 작성하는 리뷰라 조금 서투른 면이 있고, 할 말이 많아 길이 다소 긴 점 양해 바랍니다. 본 리뷰는 필자의 견해가 많은 부분 들어가 있으니, 혹시 견해가 다른 부분은 댓글로 다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Ⅱ. 본론
1. 어린이 vs 어른
영화의 도입은 어린이 방범대가 어른들을 피해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자식을 못 알아볼 뿐만 아니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데,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20세기 박물관의 자유 이용권이다. 단순히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줄만 알았던 20세기 박물관은 어느새 어른들을 매료해서 어린이처럼 만들어 버렸다. 이는 어른들의 정신연령이 낮아졌다는 말이 아니다. 만약 단순히 정신연령이 낮아진 것이라면 짱구와 짱구 아빠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을 텐데, 영화에서는 짱구 아빠가 짱구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모습만을 다룰 뿐이다. 즉, 어른들은 21세기를 벗어 나 20세기로 돌아가고 싶어 했음을 알 수 있고, 20세기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박물관의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다시 말해, 어른들에 대한 짱구와 친구들의 저항은 단순히 부모님을 돌려받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20세기 박물관의 목표는 온 세상에 20세기의 냄새를 퍼뜨려, 시대를 다시금 20세기로 역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님을 돌려받기 위한 짱구의 행동은,
사실은 21세기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20세기 사람들에게 잡힌 아이들은 세뇌 후 20세기 박물관에서 아이들로 지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이유 치고는 아이들을 잡는 일에 너무 열을 낸다. 막말로 아이들 한 둘 없다고 해서 20세기 박물관에 해가 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어른들은 아이들을 잡는 데 열을 올렸고, 우리는 어린이들의 존재 자체가 20세기 복원 프로젝트에 방해가 됨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는 더 이상 밝히고 있지 않지만, 아마 21세기의 흔적 자체를 모두 지우기를 원하지 않았나 싶다. 건물은 부술 수 있지만, 사람을 쉽게 죽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 아이들을 잡는 데 동원된 가장 폭력적인 방법은 장난감 총을 쏘는 것이었다.
2. 21세기 vs 20세기
우리는 앞서 짱구의 행동이 21세기를 유지하려는 행동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떻게 보면 짱구가 21세기를 대표한다고도 볼 수 있다. 어떻게 고작 5살짜리가 한 세기를 대표 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런 세계관이니 특별히 신경 쓰지 말도록 하자.
대뜸 21세기와 20세기가 대립 구도에 있다고 했으니, 그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하도록 하겠다. 필자는 중요한 핵심으로 ‘책임감’을 꼽는다. 필자는 계속해서 어른들의 ‘기억’에는 큰 문제가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우선 짱구의 부모님들이 집 구조에 대해서 훤히 꾀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만일 그들의 기억 자체가 20세기로 돌아갔거나, 정신연령이 낮아진 것이라면 집 구조에 대해 모두 알고 있다는 설정은 조금 이상하다. 또한 짱구가 ‘어른이면 일 하러 가야죠!’ 라는 말에 ‘어른이라고 일 해야 하는 법 있냐?’라고 반문한 것으로 보아, 본인이 어른이라는 자각은 있는 듯하다. 또한 유치원 선생님이 모두들 유치원에 모여 있는 장면에서 본인들이 동료임을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두목.. 아니 원장 선생님이 ‘이 버스는 내 거다!’ 라고 외친 장면에서, 어른으로써의 기억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짱구의 부모님들은 짱구와 짱아에 대해서 모르는 척을 한 것일까. 필자는 20세기의 냄새가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웠다고 추측하고 있다.
즉,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대상에 대해서는 모두 잊고, 자신에게 재미를 주는 사실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살펴 볼 것은 20세기 박물관 내부의 모습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해가 지는 저녁이다. 저녁노을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추억하고 싶은, 즉 돌아가고 싶어 하는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일단 필자는 해질녘이라는 설정에서 한 가지 특징을 더 발견했다. 해가 지는 시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학생들은 학교를 마치고 자유롭게 놀 수 있으며, 직장인들은 서로 모여 술을 마시거나 연인이나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다. 조금 오버하자면 해질녘이란 하루 중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황금시간인 셈이다.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하던 20세기. 어쩌면 어른들이 정말로 얻고 싶은 것은 시대와 상관없이 자신이 제일 즐거웠던 순간은 아니었을까. 그러기 위해 20세기라는 아이템이 필요했던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지금보다 과거를 떠올릴 때 행복을 느끼는 법이기 마련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과거가 행복하다 하더라도 굳이 과거로까지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모름지기 추억이란 추억으로 남을 때 아름답다는 것을, 과거로 돌아가도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을 사람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필자는 20세기 vs 21세기라는 구도에서 더 중요한 키워드를 제시하는 바이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족이라는 존재에 의해 얻게 되는 무게감.’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가족’이라는 이름에 무게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어른제국의 역습에서 냄새에 감염된 사람 중 가장 최연소는 ‘붉은 장미 삼총사’라는 여고생들이다(사실 이 부분은 설정 상 오류가 아닌가 싶다. 보통 고등학생을 ‘어른’으로 보지는 않으니 말이다.). 결혼을 했다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 학생(초등부터 대학생까지 포함.)은 열심히 공부하여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책임을 갖는다. 물론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할 수도 있지만, 이 책임이 부담이 되어버린다면 ‘재미’라는 감정이 느껴질 틈이 없다.
어른들이 21세기를 벗어나 20세기로 벗어나려는 이유 중 하나.
바로 ‘가족’이라는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그 증거로 20세기 박물관에서는 제대로 된 가족을 찾을 수 없다. 짱구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남남처럼 대하는 장면을 근거로 삼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21세기의 어린아이들을 세뇌한다는 시점에서 설사 박물관에 가족이 있다한 들 그것을 진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다시 말해, 어른들은 ‘가족’으로써 느껴야 할 ‘책임’에서 벗어남으로, ‘재미’를 취했다.
3. 가족 vs 미혼
영화의 후반부는 짱구 가족과 최종 보스의 대립 구도로 이루어진다. 우선 이 두 보스의 관계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둘은 평소에는 팔짱을 끼기는 물론이고, 심지어 같은 집에 살고 있다. 이 모습은 다분히 신혼부부처럼 보일만하다. 그러나 부부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계획이 실패하자 함께 죽음을 취하는데, 그만큼 사이가 각별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들은 결혼을 하지 않은 걸까. 필자는 앞서 말한 것을 근거로 삼아, 이들이 일부러 결혼을 하지 않았음을 주장한다. 결혼을 할 경우 ‘가족’이라는 책임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남자 보스는 일부러 짱구 가족들에게 자신들의 계획을 알려 주고, 가족들의 모습을 TV를 통해 중계한다. 그 모습에서 우리는 남자가 가족의 희망을 느끼고 싶지 않았을까 의심해 본다. 불가능해 보이는 짱구 가족들의 분투기는 이때부터 20세기 박물관 전체에 퍼진다. 이 모습은 박물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모두의 마음을 21세기로 돌려놓는다. 짱구 아빠의 지독한 발 냄새가 20세기의 냄새를 압도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뛰기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가장의 발 냄새. 가족을 상징하는 가장의 발 냄새가, 서로 자기의 즐거움만을 취급하던 박물관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가족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펴 볼 것은 대결에서 진 악의 최후다. 이들은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죽음을 맞으려 한다. 이 때 짱구의 한 마디. ‘치사해요!’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들의 앞에 새가 날아오른다. 뛰어 내리려는 바로 밑에 새 둥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둥지는 새들의 집, 다시 말해 가족을 상징한다. 가족의 위협을 느낀 새가 인간에게 저항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계획은 마지막까지도 가족에 의해 가로막혀 버린 것이다.
Ⅲ. 결론
가족은 가끔 벗어나고 싶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부모님의 의사에 따라 진로가 결정되는 상황은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어머니가 모진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모습은 어쩌면 불행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은 항상 과거를 회상하는 건 아닐까.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안 보며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해도 되었던, 몇일 뗑깡 부리면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수 있던 그 시절을 떠올리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그들이 20세기의 추억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 곳에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모순되게도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추억에서 벗어나면서 짱구를 꽉 안는 짱구 아빠의 모습이 더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20세기는 지나갔다. 아무리 그 시대의 냄새를 맡는다 하더라도, 결국 시대는 바뀐다. 사람들은 진화하고 서로 사랑한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듯이, 가족의 탄생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시대는 그렇게 흘러왔다. 20세기가 꾸던 꿈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21세기로 넘어와 버렸다.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써, 한 부모의 자식으로써, 그들의 꿈을 안고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은 반드시 이 세상을 바꾼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첫댓글 이게 그 애들이 보자고 해서 갔다가 부모들이 울고 나온다던 그건가요오..?
네. 개인적으로 짱구 시리즈 중 손에 꼽힌다고 생각합니다
짱구 극장판이 넘지못했고 넘어야할 벽이자 한계점
하긴 결국 매 시리즈마다 주제가 비스무리하긴 하죠. 그런데 그 프레임을 벗어나는 짱구 시리즈가 잘 상상이 안되네요 ㅎㅎ
지금 생각해보면 짱구는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봐야할 것 같아요!
가족끼리 손 잡고 가면 딱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