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우리 쌀
신팔복
가을 들녘이 누렇다. 유명 화가가 그린 전원풍경 같다. 올해도 무더운 날씨와 대형 태풍에도 불구하고 풍년이 되었다. 알알이 익어 고개 숙인 치렁치렁한 이삭을 보는 농민의 마음은 기뻐야 할 것이다. 이삭을 만져도 보고 줄기를 세어도 보며, 봄부터 흘린 땀을 잊고 활짝 피어나는 꽃송이처럼 희망에 부풀 것 같다.
풍년이 들면 참 좋다. 넉넉한 양식으로 긴 겨울을 넘길 수 있으니 가장으로서는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온 가족이 배곯지 않고 남부럽지 않게 산다는 게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보아도 배가 부르다지 않다던가? 지난날 한 톨의 알곡을 지키려고 종일 새를 쫓던 시절, 곡간에 드나드는 쥐를 잡으려고 온 마을이 ‘쥐 잡는 날’을 지켰던 일들이 머리에 스친다. 누구에게나 밥은 희망이고 생명이다. 밥심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아닌가. 타작을 마친 가을, 갓 지어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하얀 쌀밥에 김치를 걸쳐 먹었던 입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보리밥이나 조밥에 어찌 비교되랴.
그런데 농민들은 잘된 농사가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탈곡한 벼를 전량 수매하라고 요청하면서 수확하려던 벼를 트랙터로 갈아엎고 있다. 피땀으로 지은 금쪽같은 쌀인데 수지타산에 맞지 않아 시위하는 것이다. 요즘 쌀은 변화되는 생활환경에 본연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자존심을 잃은 채 우리 식단으로부터 차츰 밀려나고 있다. 물가는 치솟는데 쌀값은 오르기는커녕 점점 떨어지고 있어 농민의 시름은 커질 수밖에…. 더욱이 공산품 수출에 따른 쌀 수입량이 매년 약 40만 톤 이상이고 농민들이 한 해 생산하는 쌀도 약 350만 톤이나 된다. 5년간 정부 수매 비축미도 약 350만 톤 정도가 되어 정부의 곡간도 가득 차 있어 수매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두고 농민들의 생계를 방치할 수는 더더욱 없다.
시대 조류에 따라 국민의 식생활 문화도 많이 변했다. 잘살게 되면서 육류와 빵, 국수, 라면 등 간편한 식품의 소비가 늘었고, 90년대에 1인당 1년에 122kg을 먹던 쌀을 이제는 61kg 정도를 소비한다고 한다. 하루에 약 500g을 못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원가로 따지면 하루 700원으로 계산되는 쌀이다. 생수 한 병값보다도 더 싸졌다. 여기에다 우리나라가 1년간 밀 알곡을 약 240만 톤과 밀가루 6만 톤을 수입하고 있다. 1인당 1년 소비량도 34.2kg으로 쌀의 절반에 해당한다.
기호가 달라졌으니 우리 밀의 재배도 늘려야 하고 가루 쌀의 육종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일인데, 문화적, 교육적, 교통의 취약지로 내몰린 우리 농촌을 그냥 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오래된 비축미는 가축 사료로 쓰도록 하고 사료용 곡물 수입은 줄이는 한편, 어렵사리 농촌에서 생활하는 농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농촌 인구는 차츰 감소하고 또한 농업인구는 농촌 인구의 24% 이상을 차지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니, 앞으로 우리 농촌을 누가 지켜나가야 할 일인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노동력이 없는 농촌, 희망을 잃어가는 농촌으로 변하고 있어 참담해진다. 만일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곡물 유통이 막히고 점점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는 점을 생각해보면 식량 전쟁도 일어나지 않을지가 우려스럽다.
식량문제만큼은 우리가 스스로 지켜야 할 일이다. 젊은이들의 귀농 귀촌을 돕고, 수출 소득작목을 개발하고, 농촌을 살리고 농민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농촌경제를 재생시킬 특단의 대책이 절대 필요한 때다. 지난날 우리를 지켜온 생명의 쌀이 생활물가의 중심이었는데 오늘날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서양 밀에 밀려나고 있어 농민들의 한숨이 높아지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쌀 대접을 소홀히 하는 정책은 바람직스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