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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2. 05
삼성전자 반도체와 LG전자 가전이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나란히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악조건을 뚫고 두 기업이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하며 세계 시장을 호령하게 된 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글로벌 무한경쟁 속에서 우리 기업들의 1위 도약은 국민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국이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도 '수출 역군'인 기업들 덕분이다. 코로나19 방역 위기와 요소수 사태 등 국가 위기 때마다 발로 뛰며 해법을 제시한 것도 기업들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반기업 정서가 팽배해 있다. 정부는 기업을 규제 대상으로 여기고 옥죄기에 바쁘다. 이달 중대재해법까지 시행되며 기업의 고충은 더 커지고 있다. 1995년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은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 기업은 2류"라며 기업 발목을 잡는 규제를 비판했는데 20년이 넘도록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정부와 정치권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선진국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더도 덜도 말고 우리 기업만큼만 하면 된다.
이제 삼성과 LG 양대 기업이 글로벌 강자로 우뚝 선 것은 혁신과 도전이 만든 쾌거다. 삼성전자는 선제적 투자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 기술 초격차 확대와 원가 경쟁력 강화에 집중해왔다. 강점이 있는 메모리뿐 아니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시스템 반도체 설계에서도 선전을 한 것이 정상 탈환의 원동력이 됐다. LG전자는 '가전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모터 경쟁력을 앞세워 스타일러·건조기 등 신가전을 개척하고, 프리미엄 제품으로 해외를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양대 축인 삼성과 LG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한다. 삼성전자가 LG디스플레이 액정표시장치(LCD)뿐만 아니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신규 구매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대형 디스플레이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패널 부족이 생겨 LG와의 협력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의 디스플레이 협력은 이번이 처음 아니다. 삼성과 LG는 지난 2009년 모니터용 LCD 교차구매를 추진했다. 삼성전자는 지금도 LG디스플레이에서 TV용 LCD를 일부 구매하고 있다. 이번 협력의 의미는 다르다. 중국의 디스플레이 추격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미국 인텔 제쳐
삼성전자는 지난해 메모리 호황에 힘입어 반도체 부문에서 매출 94조1600억원을 기록하며 '반도체 종가'인 미국 인텔을 제쳤다. 2018년 반도체 매출 1위를 차지했던 삼성전자가 2019년 인텔에 내줬던 '왕좌'를 3년 만에 탈환한 것이다. LG전자는 미국 월풀을 꺾고 사상 처음으로 가전시장 1위에 올라섰다. 지난해 생활가전(H&A) 매출은 27조1097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창립 111년을 맞는 세계적 기업 월풀을 제친 것은 가전의 역사를 새로 쓴 것이나 다름없다.
뉴삼성은 거저 오는 게 아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최강이다. 그러나 비메모리 시장은 기존 강자가 즐비하다. 삼성이 공을 들이는 파운드리는 대만 TSMC가 압도적인 1등이다. 미국 인텔도 파운드리에 도전장을 냈다. 과거 삼성전자는 일본 경쟁사를 제치고 메모리 1위로 올라섰다. 비메모리에서도 같은 성과를 거두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 부회장이 말한 '새로운 삼성'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하는 형극의 길이다. 그만큼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에도 당부한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은 더이상 기업 혼자 힘만으론 헤쳐나갈 수 없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대놓고 자국 반도체 산업을 지원한다. 일본은 대만과 공조를 모색 중이다. 넋놓고 구경만 하다간 큰코 다친다. 국회는 연구개발(R&D) 투자에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반도체특별법부터 서둘러 처리하기 바란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다. 대기업 특혜니 뭐니 하는 논란은 한가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기업은 각자도생
국제경제 환경은 앞으로도 주목된다. 주요국들은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전폭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뒷짐을 진 채 기업의 생존 노력을 지켜볼 뿐이다. 정부 차원의 지원은 지능형 반도체 R&D에 1조 원, 신개념 반도체 프로세싱인메모리(PIM) 사업 착수에 4000억 원, 반도체 설비 투자 특별 자금 1조 원 등이 있을 뿐이다.
국회가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을 연초에 통과시켰지만 ‘반쪽·맹탕 지원법’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 등이 빠진 데다 노동시간 규제 완화, 세제 지원 등에서도 기업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경기 용인의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지역 이기주의와 규제에 막혀 3년째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분야에 70조 원 넘게 투자할 예정이다.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대국들은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우리도 기업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교육계 등이 반도체 기술 초격차 확보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반도체 지원법’을 제대로 만들고 R&D, 세제, 고급 인재 육성 등에서 전방위 지원 방안을 찾고 실천해야 한다.
▲ 삼성전자 반도체와 LG전자 가전이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나란히 세계 1위에 등극했다. / ⓒ양사 CI
삼성 - LG 협력 시너지 폭발력
우리나라는 대형 디스플레이 세계 시장을 주도해 오다가 중국에 역전됐다. BOE 같은 중국 업체가 정부의 전격 지원에 힘입어 LCD 생산 및 판매 1위에 올랐다. 우리가 과거 일본의 브라운관 기술을 밀어낸 것처럼 자칫하면 이 같은 전철을 밟을 상황에 놓인 것이다.
다행히 국내 기업은 차세대 대형 디스플레이 기술을 확보했다. 삼성은 퀀텀닷(QD)을 활용한 디스플레이, LG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각각 양산하고 있다. 다른 어떤 나라도 상용화하지 못한 기술이다. 다만 신기술이어서 확산 속도가 더뎠다. 그러나 삼성과 LG 양사가 손을 잡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삼성은 세계 1위 TV 메이커, LG는 세계적인 대형 OLED 제조사다. 두 회사의 협력 시너지는 폭발력이 상당하다.
삼성과 LG가 강한 책임감으로 협력을 확대하기를 기대한다. 거센 도전에 직면한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에 새로운 전환점과 동력이 필요한 때다. 나아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 공동 육성과 특허 공유 등 전략적 협력 관계도 확대되길 바란다. 디스플레이는 반도체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핵심이자 앞으로 성장을 이어 갈 미래 전략 산업이기 때문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전면적 인적 쇄신
삼성전자가 가전(CE)·모바일(IM)·반도체(DS) 부문장을 모두 교체하는 큰 폭의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애초 업계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면적인 인적 쇄신이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시대와 변화를 위한 과감한 세대교체와 미래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도전 및 혁신 기반 마련을 인사 배경으로 설명했다. 이번 인사에서 막중한 책임을 맡은 인사로는 한종희 부회장과 경계현 사장이 꼽힌다.
더욱이 물러난 수뇌부들이 지금의 삼성 실적흥행을 이끈 주역들이어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3·4분기 기록적인 매출을 올렸다. 연간 실적도 사상 최대가 유력하다. 그럼에도 호실적의 중추였던 3개 부문 수장이 통째로 바뀌었다. 10년간 유지됐던 3개 부문 체제가 가전·스마트폰, 반도체 2개 부문으로 확 재편된 것 또한 파격이다.
이번 인사는 이재용 부회장의 위기의식과 혁신 의지에서 나왔다. 지난달 말 미국 출장길에서 돌아온 이 부회장은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게 되니 마음이 무겁다"는 소회를 밝혔다. 사실 온 세상이 첨단기술 전쟁을 치르는 동안 삼성은 총수의 국정농단 재판으로 수년째 발목이 잡혔다. 지난 8월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 뒤에야 비로소 삼성은 이재용표 뉴삼성의 깃발을 들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인사혁신 개편안을 내놨고, 이 부회장은 6일 다시 중동 방문길에 올랐다. 과거 이 부회장의 선친인 이건희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삼성을 세계 일류기업으로 키웠다. 이제 이 부회장이 그 뒤를 이을 차례다.
지금 삼성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반도체는 불꽃 튀는 글로벌 전쟁이 진행 중이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으려 공급망 자체를 새로 짜려 한다. 삼성이 비교적 열세인 비메모리 시장은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파운드리(위탁생산) 강자인 대만 TSMC는 1위 자리를 굳히는 전략적 투자에 적극적이다. 미국 인텔도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한마디로 요즘 반도체 시장은 눈 뜨고 코 베어갈 판이다.
다행히 지금 재계는 광범위한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다. 삼성은 연공서열 혁파를 예고했다. 30대 임원, 40대 최고지도자(CEO)가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젊은 CEO들은 삼성은 물론 SK, 네이버, 카카오 등 핵심 기업에 포진하면서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
기업의 새바람은 재계 총수의 세대교체와도 궤를 같이한다. 지금 우리 재계는 영 제너레이션(Young Generation)이 핵심층으로 부상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40대 초반, 삼성 이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50대 초반이다. 창업주에서 2세를 거쳐 3세 총수들이 실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젊은 리더들의 맹활약은 국가경쟁력과도 직결된다.
기업에 부는 세대교체, 혁신 바람이 성공을 거두려면 동시에 정부와 정치권의 변화가 시급하다. 기업을 정치 들러리로 세우던 그릇된 관행은 구시대의 잔재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젊은 총수와 기업인들이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면 된다. 공연히 기업인을 정치에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금물이다. 가장 확실한 지원책은 입법·행정 규제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혁신 의지 반영
삼성전자가 세트와 부품으로 사업부문을 단순화하고 성과에 기반한 인사로 쇄신에 나선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아무도 가 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하자는 '전인미답 경영'을 화두로 꺼낸 이재용 부회장의 혁신 의지가 반영됐다. 앞으로 이어질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을 통해 삼성전자의 전인미답 경영이 구체화할 것이다.
지난 14일 출국해 열흘간 미국을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출장이 사상 최대 규모의 미국 투자 발표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3)이 주도하는 '뉴삼성'이 본궤도로 진입했다. 삼성전자는 24일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0조원)를 들여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내년 초 착공, 2024년 완공 예정이다. 테일러 공장은 인근 오스틴 공장에 이어 미국 내 두번째 비메모리 생산시설이 된다. 이 부회장은 2019년 4월 비메모리 2030비전을 발표했다. 메모리에 이어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2030년 세계 1위로 올라서는 게 목표다. 테일러 공장은 비메모리 세계 1등으로 가는 교두보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때 미국에 17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해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최종 입지 선정을 결정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을 통해 매듭 지었다. ‘통 큰 투자’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그룹을 책임지는 오너밖에 없음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세워지는 파운드리 공장은 내년 상반기에 착공해 2024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신규 라인이 세워지면 경기도 기흥·화성·평택과 미국 오스틴·테일러를 잇는 삼성의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생산 체계가 완성된다. 애플·퀄컴, AMD등 미국의 대형 고객을 끌어올 수 있는 전진기지를 확보하는 것으로,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 추격전에 속도를 낼 수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를 완성했다면, 아들은 세계 1위 시스템 반도체를 위한 비전을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뉴삼성은 이재용표 경영 캐치프레이즈
지난 14일 출국한 이 부회장은 열흘가량 미국 동·서부를 훑었다. 바이오 제약사 모더나에 이어 버라이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등 미국을 대표하는 통신·IT 기업 수장들을 잇따라 만났다. 워싱턴DC에선 백악관 관계자와 핵심 의원들을 만나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였다. 순방 막바지엔 현지 삼성 연구원들을 만나 "단순 추격이나 뒤따라오는 기업과 격차 벌리기만으론 거대한 전환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며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새로운 삼성, 곧 뉴삼성은 이재용표 경영 캐치프레이즈다. 선대 회장 사례를 보면 뉴삼성 전략은 시의적절하다. 이건희 전 회장은 1987년 창업주(이병철)의 뒤를 이어 회장에 취임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993년 이 전 회장은 독일에서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발표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말은 시대의 유행어가 됐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계기로 삼성전자는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났다.
이 부회장은 2014년 부친이 쓰러진 뒤부터 사실상 삼성을 이끌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동일인(총수)을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바꾸었다. 부친이 별세(2020년 10월)한 지도 1년이 넘었다. 이 부회장이 그룹 총수로서 더욱 강한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됐다.
기술패권 놓고 바야흐로 국가 간 전쟁
삼성전자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때 미국에 파운드리 라인을 추가로 짓겠다고 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이번 미국 출장을 통해 이 계획이 확정됐다.
오스틴 공장은 전략적 성공이었다. 삼성전자는 1990년대 후반 오스틴 생산라인을 건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반도체를 현지 공급했다. 미국에 진출해 있던 후지쓰, 도시바 등 일본 경쟁사에 대한 대응체제도 구축했다. 대만 업체를 견제하는 효과도 거뒀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강자로 발돋움한 계기 중 하나였던 셈이다. 2024년 준공 예정인 비메모리반도체 공장은 오스틴 못잖은 전략적 선택이다. 삼성전자 비메모리 확대 전략의 중요 축이다. 삼성전자는 D램 등 메모리반도체 생산 세계 1위 기업이다. 하지만 첨단분야에 쓰이는 비메모리반도체(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선 상대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스포스에 따르면 올 2·4분기 기준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대만 TSMC가 52.9%로 1위다. 2위인 삼성전자는 17.3%에 그쳤다. 삼성전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2019년 4월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입해 파운드리 세계 1위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테일러시 파운드리 신공장에는 초미세 첨단생산기술인 5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의 생산시설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대규모 투자와 기술력을 앞세워 세계 최고의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첫걸음인 셈이다.
국가적으로도 중요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배제한 반도체 공급망을 짜는 계획을 실행 중이다.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도 반도체를 포함한 공급망 관련 별도 정상회의를 주재했다. 이번 삼성의 투자는 미국 주도 반도체 경제동맹에 동승하는 신호다. 이는 이 부회장의 미국 출장 행보에서도 나타난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19일 백악관을 방문해 반도체 공급망 문제 해결 방안과 삼성의 역할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파운드리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어서다. TSMC는 미국에 6개의 공장 건설에 나섰다. 반도체 종가인 인텔도 200억달러를 투입해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짓는다. 메모리 시장에선 마이크론과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맹추격 중이다.
기술패권을 놓고 바야흐로 국가 간 전쟁 시대다. 기업 혼자 싸우기엔 벅차다. 정부와 찰떡 공조가 필수다. 삼성의 대규모 미국 투자가 대전환의 시대에 경제와 안보를 묶는 승부수가 되기를 기대한다.
반도체 패권전쟁 파격적 지원 필요
경제안보를 지키는 데 정부와 기업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미국은 자국내 반도체 제조시설에 투자할 경우 투자액의 최대 40%에 해당하는 세액공제를 허용하는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았다. 삼성이 20조원을 투자할 경우 최대 8조원의 세액을 공제받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텍사스주가 삼성에 약속한 세금 감면 혜택도 1조2000억원이 넘는다. 우리도 반도체특별법을 통해 30% 이상 세액공제를 검토했지만 특혜 시비를 낳으며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업체들은 국내 공장 건립 시 전력과 수도설비 설치비용까지 자체적으로 부담하고 있다. 대만 정부가 최악의 가뭄 때도 농업용수까지 줄이면서 TSMC에 물을 몰아준 것과 대비된다. 반도체 패권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우리도 파격적 지원이 필요하다.
삼성의 20조 투자는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주역으로 미국 내 입지를 공고히 하는 효과도 크다. 실제 이 부회장은 최종 부지 선정 전 백악관 핵심 참모와 연방의회 의원들을 만나 공급망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 패권경쟁 격화로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삼성의 행보는 일개 기업의 차원을 넘어선 국가적 안위가 달린 문제다. 패권 국가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적 목소리를 내려면 압도적 기술력과 시장장악력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래’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언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삼성전자 인사가 우리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대한민국 대표 기업으로서 끊임없는 쇄신을 통해 지속 성장의 모범사례가 되도록 모든 임직원이 심기일전하길 기대한다.
이병도 주필
출처 : 시사오늘(시사ON)(http://www.sisa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