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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에 대한 금지
페미니즘, 인종차별 반대… 50년 전 청년들의 혁명 패션계 움직이는 구호로
미국에서의 68혁명 정신
총기규제 강화 캠페인 '#NeverAgain' 옷에 새겨 사회운동으로
디올 '자유에 대한 갈구'
1961년 누벨바그의 영화 '여자는 여자다'에서 영감, 소재·디자인 자유분방
성평등과 자유, 인권을 외쳤던 ‘68혁명’과 ‘젊은이의 반란(youthquake)’이란 기치를 한데 모은 패치워크로 감싼 서울 청담동 ‘하우스 오브 디올’ 건물./신경섭
'모든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다(Il est interdit d'interdire).'
어느 흑백 영화 속에서 본 듯한 이 문장이 오늘의 삶을, 문화를, 패션을 바꾸어 놓았다. 50년 전인 1968년 5월 프랑스 소르본 대학 계단에서 광장으로 나온 젊은이들이 '금지에 대한 금지'를 외치며 나아간 행진은 베를린과 로마, 영국, 미국을 넘어 남미와 아시아까지 파고들었다. 억압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목소리였던 '68혁명'. 저명한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설파하듯 "68혁명은 전 세계 정치적 상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시대정신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인종차별 반대, 페미니즘, 성 혁명이 주류 사회로 자리 잡는 새로운 문화적 관습이 탄생"한 것이다.
금지에 대한 금지를 향한 도발은 50년이 지난 지금 패션계를 가장 뜨겁게 움직이는 구호다. 크리스챤 디올 사상 첫 여성 총괄 디렉터가 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지난해 데뷔 무대에서 'We should all be feminists(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는 슬로건 티셔츠로 시선을 모은 뒤 상당수 디자이너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직접적인 메시지를 런웨이에 올리고 있다. 패션이 단지 소비지향적인 자본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삶의 철학을 표출하는 창구라는 것이다. 올 시즌은 런웨이를 떠나 설치미술 같은 대형 구조물로 50년 전 팽배했던 사회상을 표현했다.
지난 8일 서울 청담동 디올 플래그십 '하우스 오브 디올' 건물은 68혁명 당시 구호와 여러 매체에 등장하는 인권에 대한 이미지로 덮였다. 1995년 9월 베이징에서 열린 힐러리 클린턴의 명연설 중 일부인 "여성의 권리가 바로 인권(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이라는 문장 역시 곳곳을 뒤덮고 있다. 지난 2월 말 파리에서 열린 2018가을겨울 쇼 무대가 열린 로댕 박물관 전체를 감싼 작품 콘셉트 그대로다. 한정된 쇼 무대 공간을 벗어나 마치 공공미술처럼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배우 밀리 바비 브라운이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리의 삶을 위해 행진하자(March for our lives)’라고 적힌 캘빈 클라인 의상을 입은 모습을 공개했다./밀리 바비 브라운 인스타그램
68혁명 당시 대학생 모습을 재현한 구찌의 2018 프리폴 광고 캠페인./구찌
'68정신'은 구찌의 2018프리폴 광고 캠페인에서도 등장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당시 소르본 대학 학생들의 시대상을 재현하면서 낭만적인 감성을 더한 영상을 선보였다. 사진작가 글렌 루치퍼드가 제작한 이번 영상에서 구찌는 찰나에 휘발되는 인스턴트 메신저에 익숙한 젊은 층에게 글자와 신문, 필기도구를 무기처럼 쥐여주었다. 장 뤽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키게 하는 이번 영상에서 학생들은 자유(liberté), 평등(egalité), 성(sexualité) 이란 글자를 학교에 새기고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68혁명의 정신을 외쳤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존재론'이 대학생들의 책을 통해, 바리케이드를 넘는 행동을 통해 표현된다.
디자이너 브랜드 소니아 리키엘의 줄리 드 리브랑 총괄 디렉터는 이번 시즌 파베 콜렉션 가방을 선보였다. 68혁명을 상징하는 또 다른 문장인 '포석 밑에 해변(Sous les pavés, la plage)에서 따온 말이다. 구체제에 대한 반항과 전복을 말한다. 미국에서의 68혁명 정신은 생명 존중을 위한 행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총기 난사사건에 대한 총기 규제 강화 캠페인인 '#NeverAgain'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각종 패션 의류에 직접적으로 새겨 하나의 사회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현재 패션은 단순히 몸을 감싸고 즐기는 것 이상의 힘을 갖고 있다. 사회의 진화는 패션계 혁명과도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의상의 변화는 곧 인권의 변화를 의미했다. 68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패션계에선 개성을 발현하자는 운동이 일었다. 1953년부터 1969년까지 프랑스 엘르 매거진 편집장이었던 클로드 브루엣은 "이전 세대와 달리 '젊음'이라는 단어가 급부상하던 시기"라며 "마리 콴트가 선보인 미니스커트, 쿠레주의 미래적인 PVC 제품, 소니아 리키엘의 브라 없이 입는 스웨터 등은 사회 변화를 미리 이야기해주는 도구였다"고 했다.
68혁명의 구호를 한데 모은 것처럼 각종 패치워크로 짠 디올 2018~2019 가을 겨울 의상(왼쪽). 디올 2018~2019 가을 겨울 패션쇼 무대에 선 모델이 ‘non(아니다)’이라고 적힌 의상을 입었다./디올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가 내놓은 이번 2018-2019 가을 겨울 디올 의상에선 자유에 대한 갈구가 훨씬 강해진다. 19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여자는 여자다'(1961)에서 영감을 받아 소재, 디자인, 장식 등이 서로 어우러져 자유분방하게 존재한다. 울 자수를 새긴 오간자, 패브릭 패치 워크 백, 판초 등 여러 인종의 다양한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이 무대를 장식했다. 'C'est non, non, non (그건 아니다)'이라고 외치는 니트 티셔츠는 우리가 말해야만 할 것을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치우리는 "1960년대 미국 보그 에디터였던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만들어낸 '유스퀘이크(젊음을 의미하는 'youth'와 지진 'earthquake'의 합성어로 '젊은이의 반란'을 뜻함)'란 단어가 지금의 시대 를 정확하게 비추는 거울 같다"며 "성별 차이보다 개인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새로운 세대들이 더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