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떠나야 할 때입니까?
먼저 이 글은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와 목회자들에게서 등을 돌리게 하려고 준비된 글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이 글은 자신이 걷던 길을 잠깐 멈추고 서서 신앙과 진리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된 글입니다. 세상과 교회가 너무나 가까워진 모습을 보면서 이 글을 준비하였는데, 이 글이 독자들에게 깊은 명상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애의 빛 편집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교회나 목사가 나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해 주어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와 성직자가 나에게 죄를 강요한다면 나는 교회와 성직자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내가 교회를 떠나고 성직자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고독하고 외로울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내 육체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몹시 괴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의를 보면서 교회의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느니 차라리 자유와 평안을 찾아서 교회를 떠나겠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모여서 형제자매들과 교제를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보다 영혼의 맑음이 더 귀중하기에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주일마다 교회에서 잘못된 가르침이 흘러나오고 세속적 설교와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예배와 음악에 참여해야만 한다면 나는 교회를 떠날 것입니다. 만일 교회가 나에게 하나님의 의를 가르치기 보다는 도리어 적당한 타협과 배도를 가르친다면 나는 단연코 교회의 출입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는 곳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완전하기 때문에 교회를 떠날 것을 고민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역시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언제나 죄인 중의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온 몸을 씻습니다. 죄를 치료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를 날마다 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내가 현대 기독교회를 싫어하는 이유는 교회 안에 죄인들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힘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교회가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기능과 목적을 거의 상실해 버렸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사교장이 되었고 단순한 자선 단체가 되었으며 부도덕함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더 이상 영혼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장소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심령 속에 더러운 죄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각종 은사와 방언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진리를 올바로 알지 못하는 맹목적인 교인들과, 아첨과 인간적인 수단으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자 하는 집사와 장로들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무지한 양들을 적당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힘과 권한을 더욱 크고 높게 구축해 가는 거짓 목자들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나 익숙해 있습니다. 너무나 익숙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이 은혜인지도 모르고 받아가고 있습니다. 은혜를 입고도 감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죄와 세속에 파묻혀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구원받았다 고 주장하는 대담한 그리스도인들로 교회는 가득 채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을 죄와 세속으로부터 넉넉히 구원할 수 있다는 진리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원칙과 의를 주장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원칙과 의를 주장하면 교회는 그 사람을 율법주의자나 낡은 보수주의자로 매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원칙과 의를 주장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받아들여질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그것이 주께서 주신 의의 원칙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진리와 의는 최후에 승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승리하는 방법은 세상 사람의 기대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패배함으로 승리하고 거절당함으로 승리합니다. 만일 진리와 의가 인위적으로 승리를 얻기 위하여 세속적 수단을 이용한다면 사람들은 진리와 의의 힘을 믿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시여, 주저 말고 일어나서 의와 원칙을 교회 안에 세우기 바랍니다.
신앙은 교회 가는 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목사들은 사람들을 교회에 묶어두려고 합니다. 이런 교회에서 양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목사에게로 인도함 받게 됩니다. 복음의 전파를 통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사람은 복음 그 자체를 깨뜨리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두세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는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건물도 아니고 조직도 아닙니다. 교회란 진정한 마음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이 산에서 저 계곡에서 그리고 허름한 가정집에서 예배드릴지라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며 그곳이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목사가 없고 성가대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임재하심만이 교회를 구성하는 유일한 요소입니다.
이제 세상은 교회 안까지 들어와서 교회를 점령했습니다. 큰 교회를 세우고 교세를 확장하고자 하는 무서운 정신이 교회를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러한 교회를 가야 합니까? 아니면 이러한 교회에서 떠나야 합니까? 지금 나는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교회를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돈 때문에 교회에 가기 싫습니다!
장사꾼과 정치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재물의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돈의 신에게 무릎을 꿇은 것처럼 보입니다. 돈의 신이 내놓은 다음과 같은 제안에 교회 전체가 넘어간 것처럼 보입니다. 네가 나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리라. 돈의 신이 던지는 만일 네가 나를 섬기지 않으면 너의 처자는 길거리로 내몰릴 것이고 결국에는 너의 신앙도 흔들리게 될 것이니라 는 협박에 못 이겨 하나님의 진리와 원칙을 타협하는 목사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돈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돈에 굴복하고 부자에게 아첨할 수도 있다고 믿는 듯합니다. 돈 때문에 지옥에 던져질 집사와 장로와 목사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가고 있습니다. 돈 때문에 예루살렘이 소돔과 고모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느니라 (딤전 6:10). 한때 경건했던 사람들마저도 돈을 사랑하다가 치욕의 늪에 빠져서 그 영혼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돈의 신에게 이렇게 경고해야 합니다. 돈의 신이여 나는 너와 절교하련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혹시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서 내게 접근하려 할지라도 나는 너를 물리칠 것이다. 만일 네가 장사꾼으로 위장하면 나는 그 장사꾼을 멀리 하겠고, 친구를 통하여 접근하면 그 친구를 멀리할 것이다. 만일 네가 목사나 전도사의 모습을 하고 내 사업장을 찾아와서 돈과 세속적 성공의 복을 빈다면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너를 내쫓고 대문을 닫으며 다음과 같이 소리칠 것이다. 사탄아 물러가라! 돈의 신이여, 네가 나를 유혹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기도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드릴 것이다. 주여, 제 소원을 들어주옵소서! 당신의 능력을 통하여 21세기의 악마를 이길 수 있게 하옵소서. 저로 하여금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돈 때문에 진리를 타협하지 않게 하옵시고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돈을 구하기 위하여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지켜 주옵소서. 가증하고 비천한 돈 귀신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저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아멘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히 13:5).
그런 기적이 싫어서 교회를 떠납니다!
나는 기적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나의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실과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실 또한 확실히 믿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자신의 위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 큰 교회를 세우기 위한 야심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것들도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기적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있습니까? 어떻게 마귀의 기적과 하나님의 기적을 구별할 수 있습니까? 바로 왕의 술사들도 모세 못지않은 기적을 행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정신과 마음으로 기적의 진위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랑의 기적을 행하였고, 바로의 술사들에게는 그러한 사랑의 동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적은 그 마음과 생애가 성결한 자들을 통해서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복권을 통해서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기적을 통하여 자신의 영력을 과시하려고 하거나 교세 확장을 염두에 두는 사람에게 결코 하나님의 기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에게 기적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마귀로부터 온 기적이겠죠. 참된 기적은 헌신, 희생, 자기를 잊고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선을 간구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기적의 진위를 분별하는 가장 분명한 판단 기준 중의 하나는 이사야 8장 20절의 말씀입니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기적을 행하는 자의 믿는 바와 가르침이 성경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의 기적은 지옥의 세력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신과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기적과 은사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에 매달리고 그것을 행하려고 애쓰는 마음은 이미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기적을 행하시는 일에 매우 조심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기적에 쏠리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기적 이외의 것들에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인정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예수께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나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기적은 참 신앙의 결과로서 나타날 수 있지만 기적을 목적으로 삼는 신앙은 이미 잘못된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기적 또한 있어야 합니다. 기적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사사로운 욕심으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은 모두 사랑의 발로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자연 현상은 모두 기적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뿌리에서 물을 빨아올려서 수십 척 높은 잎사귀에 양분을 주는 현상, 손가락이 절묘하게 움직이는 현상,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커가는 현상, 이 모든 자연 현상이 하나님의 창조에서 시작된 기적이란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기적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기적이 온 우주에 가득하게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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