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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청부살인업자 현 씨.
SBS-TV 화면 캡처
2005년 6월 24일 오전 8시 40분경 성남시 상대원동의 한 공영주차장 5층에서 한 여성의 변사체가 발견됐다.
피살된 여성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장혜미 씨(가명·당시 27세).
그녀는 온몸에 무려 16군데나 흉기에 찔린 처참한 모습으로 자신의 승용차 옆에 쓰러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일명 ‘성남 주차장 여인 피살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장 씨는 당시 사귀던 남성과 결혼날짜까지 받아놓은 예비신부였다.
결혼식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장 씨에게 도대체 누가 왜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던 것일까.
경찰 수사 결과 이 사건은 애인을 뺏긴 데 앙심을 품은 한 여인의 의뢰로 저질러진 청부살인사건으로 밝혀져 충격을 더했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성남중원경찰서 강력 5팀 윤호삼 팀장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단순 강도살인은 아닐 거라 예상하고 수사에 착수했지만 조사결과 드러난 사건의 진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도 있지만 여성이 여성을 상대로 이처럼 무서운 범행을 계획했을 줄 누가 알았겠나.
피살자의 주변 인물은 물론 당시 피살자가 처해 있던 상황, 사생활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하고 판단한 결과 베일에 가려져 있던 용의자를 찾아내 범행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었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기만 했던 예비부부가 복잡한 애정문제에 얽혀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또 이들의 행복을 지켜보며 복수의 칼을 갈고 있던 또 다른 여성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점들이 의외로 사건을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당시 사건 현장은 베테랑 형사들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참혹했다.
윤 팀장의 설명이다.
(범인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찔러댔던지 주차장 바닥에는 피가 낭자했다.
사체 상태로 보아 장 씨는 사망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즉 아침 출근길에 피살된 것이 분명했다.
사체 상태가 너무도 끔찍했던 탓에 치정이나 어떤 원한에 의한 보복살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장 씨의 핸드백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강도살인일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목격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또 현장에는 범인을 특정할 만한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은 우선 피살된 장 씨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녀의 주위에 이처럼 무서운 범행을 저지를 만한 위험인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은 윤 팀장의 얘기.
얼핏 생각하기에 스물일곱 살짜리 아가씨가 누군가에게 생명을 위협당할 정도로 큰 원한을 살 만한 일이 있겠냐 싶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로 인해 벌어지는 게 바로 범죄다.
나는 겉으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제3의 주변 인물이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즉 피살자의 측근이거나 가깝게 지낸 사이가 아니더라도 장 씨에게 어떤 원한을 갖고 있거나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인물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특히 당시 장 씨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주변 인물들의 반경을 넓혀 조사한 결과 수면 위로 떠오른 인물이 바로 김지연 씨(가명·30)였다.
학원강사였던 김 씨는 조만간 장 씨와 결혼할 예정이던 예비신랑 A 씨(30)와 한때 연인 사이였던 여성.
치정문제가 개입됐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 수사팀은 김 씨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기 시작했고 김 씨와 피살된 장 씨가 소위 말하는 ‘연적’ 관계였다는 사실을 파악하기에 이른다. 다음은 윤 팀장의 설명.
A 씨의 옛 애인이었던 김지연은 둘이 헤어진 후에도 A 씨 주변을 맴돌며 그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이 사실을 장 씨가 모를 리 없었다.
즉 A와 장혜미, 김지연 간에 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돼 있었던 셈이다.
특히 A 씨를 사이에 두고 두 여인은 심각한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인의 갈등은 정도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둘은 이메일을 통해 서로 A 씨를 포기할 것을 종용하는가 하면 온라인상에서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다투기도 했다.
요지는 ‘네가 물러나라’ ‘네가 포기해라’라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두 여인은 서로 A 씨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헤어진 남자를 단념하지 못했던 김 씨와 A 씨의 새로운 애인 장 씨의 갈등은 장 씨와 A 씨의 결혼날짜가 정해진 후에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두 여인의 심상치 않은 관계에 주목한 수사팀은 장 씨의 피살에 김 씨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김 씨를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만에 수사팀은 김 씨의 IP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어지는 윤 팀장의 얘기.
김지연이 ‘해결사 카페’에 접속한 사실이 확인됐다.
해당 카페는 ‘무슨 일이든 다 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었는데 심지어 ‘청부살인’ 광고까지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
원한이나 연적관계에 있는 이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는 것쯤은 일도 아니겠더라.
그동안 안개 속을 맴돌던 수사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김지연이 뜬금없이 해결사 카페에 접속한 이유를 두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그랬더니 평소 두 여인의 심상치 않은 관계가 걸리더라.
아마도 당시 김 씨로서는 ‘연적’ 관계에 있던 장 씨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을 것이다.
그러나 김 씨가 장 씨를 직접 죽인다는 것은 겁도 나고 현실적인 여건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애인의 배신에 대한 충격과 상심에 젖어 있던 김지연은 급기야 애인의 약혼녀에게 복수의 칼을 들이밀 결심을 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녀는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청부살인’이라는 위험한 범행을 계획한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김 씨의 이메일을 추적한 결과 김 씨가 카페 운영자인 현동민 씨(가명·33)에게 장 씨의 청부살인을 의뢰했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우리는 김 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하는 한편 얼마 후 현 씨를 추가로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청부업자’ 현 씨는 경찰에 붙잡힌 뒤 처음엔 완강히 범행을 부인하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자신의 바지주머니에서 피살된 장 씨의 전화번호와 연락처, 사진 등이 발견되자 범행 일체를 자백하기에 이른다.
조사 결과 드러난 이들의 범행 과정은 이러했다.
그해 6월 10일께 현 씨가 운영하는 해결사 카페에 접속한 김 씨는 현 씨에게 자신의 사연을 낱낱이 털어놓게 된다.
그리고 연적관계에 있던 장 씨를 죽여줄 수 있는지 문의한다.
현 씨는 ‘비용만 맞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했고 이에 김 씨는 일단 착수금 등으로 900만 원을 주고 성공할 경우 돈을 더 주겠다는 위험한 계약을 맺게 된다.
이어지는 윤 팀장의 설명.
돈 몇 백(만 원)에 살인을 한다는 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당시 특정한 직업도 없어 지내던 현 씨에게 이 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돈이 아니었다.
조사 결과 현 씨는 이성 간 배신행위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깊은 증오심을 갖고 있었다.
알고보니 현 씨는 과거에 사랑하던 여자에게 심하게 데인 경험이 있는 인물이었다.
현 씨에게는 한때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성이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자신을 배신하고 동생과 결혼해서 도망을 갔다고 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동생에게 뺏긴 충격과 상실감으로 현 씨는 적잖이 방황할 수밖에 없었고 남녀 간의 배신행위에 대해 병적으로 거부감을 갖게 된 것이다.
현 씨는 의뢰인인 김지연의 처지에 어느 누구보다 공감했고 기꺼이 살인 청부를 맡게 됐다는 것이다.
현 씨는 범행을 위해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사용했으며 김 씨 역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택배로 돈을 전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김 씨로부터 장 씨에 대한 정보를 넘겨받은 현 씨는 장 씨를 밀착 감시하며 평소의 행동반경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수일간 장 씨를 따라다니며 틈틈이 범행 기회를 엿보던 현 씨는 장 씨가 매일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 공영주차장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건 당일 장 씨의 승용차 주변에서 장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은 윤 팀장의 설명.
현 씨는 그 시각 공영주차장에 인적이 드물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 씨는 범행 후 자신이 도망갈 길까지 미리 봐두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상태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장 씨는 출근을 하기 위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차장에 나타났다.
현 씨는 장 씨가 자동차 문을 열려는 순간 준비해간 흉기로 장 씨를 찔렀다.
하지만 갑작스런 습격에도 장 씨가 오히려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자 이에 놀란 현 씨는 흉기를 무수히 휘둘러 장 씨를 무참히 살해하고 말았다.
윤 팀장에 따르면 현 씨는 범행 과정에서 김 씨에게 틈틈이 이메일을 보내 ‘장 씨 집 앞에 잠복 중이다’ ‘미행 중에 놓쳤다’ ‘장 씨가 이용하는 주차장을 파악해뒀다’는 식으로 일일보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강도살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일부러 장 씨의 핸드백을 가져가는 치밀함을 보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현 씨의 범행이 이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수사팀은 현 씨의 대포통장에 수십 명의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이는 거액의 돈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여죄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 수사팀은 추가 조사에 나섰고 그 결과 현 씨가 장 씨 사건 외에도 이전에 다른 청부살인을 의뢰받고 이미 한 건의 살인을 저지른 사실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옛 애인의 약혼녀를 상대로 청부살인을 의뢰한 김지연은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지방의 한 대학 출신인 김 씨는 옛 애인 A 씨와 캠퍼스커플로 지내며 한때 결혼 약속까지 했던 사이로 전해진다.
하지만 A 씨가 장 씨를 만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새로운 연인에게 마음을 뺏긴 A 씨는 이전 애인인 김 씨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애인의 이별 통보에 영문을 몰랐던 김 씨는 A 씨를 설득하기 위해 매달렸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돌아서버린 A 씨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결혼 얘기까지 오갔던 남자에게 버림받은 김 씨의 분노와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김 씨는 파혼 소문이 나자 직장까지 그만두는 등 상당히 큰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로부터 얼마 뒤 김 씨는 A 씨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A 씨와 장 씨의 다정한 연애 장면을 목격한 김 씨는 심한 충격에 빠지게 된다.
특히 자신의 남자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장 씨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그 뒤 A 씨와 장 씨가 곧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김 씨는 급기야 장 씨를 없애버릴 무서운 마음을 먹고 해결사 카페를 운영하던 현 씨와 접촉하게 됐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김 씨 또한 범행을 의뢰한 상대가 현 씨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조사 결과 김 씨는 이미 5월경 또 다른 해결사 카페 운영자에게 범행을 의뢰하고 1000여만 원을 입금했다가 돈만 떼인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 씨가 ‘가짜 해결사’에게 속아 거액의 돈을 날리고서도 장 씨를 상대로 한 끔찍한 복수계획을 접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 씨는 “장 씨가 미웠다. 아무 문제없던 우리 사이에 장 씨가 끼어들면서 모든 게 틀어졌기 때문이다.
그녀만 없으면 (A 씨가) 다시 내게 올 거라 생각했다”라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현 씨에게 ‘일’을 의뢰한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살인교사 혐의에 대해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혼만 내달라고 부탁했을 뿐 죽여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김 씨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김 씨가 사전에 장 씨의 사진과 주소 등 장 씨의 세부적인 신상정보를 현 씨에게 넘겼던 점, 현 씨로부터 범행 진행 상황에 대해 수시로 보고를 받았다는 점, 이런 모든 과정을 통해 결국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범행이 이뤄진 점 등으로 볼 때 단순히 혼만 내줄 것을 부탁했다는 김 씨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수사팀의 판단이었다.
김 씨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단 역시 수사팀과 다르지 않았다.
현 씨는 살인혐의로 무기징역을, 김 씨는 살인교사 혐의로 징역 2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