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떠나는 삶을 사는 젊음 / 길기장
저푸리 저수지에 앉았어요
막 태어난 바람이 불어왔어요
비늘이 매달리기 시작했어요
물비늘은 꽃을 피우며 미쳐서 죽은 이의 노래 불러요
오늘도 학자는 히키코모리라고 틀 안에 보호받는 것이 정상이라며
기이한 사람들을 쫓아 선생님 선생님 하며 말꼬리를 잡으려 했어요
누구는 기행이라고누구는 세계가 다르다고 해요
어제는 죽는 것이 무서워
문을 닫고 아니 떠돌며 미쳐보고 싶어졌어요
늦은 허무를 알지 못해
어둠이 박대할까 봐
코쿤족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이지 않는 안개가 들어요
사위는 고요했어요
저푸리 저수지 대왕 꽃은
집어삼킨 사람들의 발버둥을 삼키고
이울어가는 물속에서 비린내를 만들어내요
세월이 어떻게 달아나는지만 보여
정말 정신 나갔다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슬픈 시간이 많아졌어요
나를 속이고 있지 않은지
외면하려 할 때 두려움이 더 커졌어요.
정신 나갔다는 사람이
그래, 나 미쳤어요 하는
미쳐보는 나만의 무대만 남았어요
버킷리스트에 걸렸다
길기장
서울을 무작정 떠나는 것이다. 목적지 없이 구불구불한 완행버스를 타고 가다 길 잃어버린 기차가 멈추는 곳까지 가는 것이다. 기억이 없는 따뜻한 풍경에 질리지 않고 피곤이 초대하면 잠들어 버릴 것이다. 어쩌다 통과하는 도시 변두리 어리숙한 문이 열려있으면 그곳으로 가서 기웃거리다 돌아서서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다. 혼밥할 수 있는 식당에 들어가 백반을 시켜 먹고 밤이 깊어지면 허름한 여관에 들어가 간식으로 잠을 자는 것이다. 날이 밝으면 발걸음 내키는 대로 기운이 빠지고, 다리가 뻣뻣해 올 때까지 어디로든 다시 떠나는 것이다. 친구가 사는 동네에 들어도 연락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서 주름이 없는 노파가 미간에 애살스러운 주름 하나를 만든다면 건강한 미소 짓고, 빠른 걸음으로 허름한 빈집이 있다면 찾아 어슬렁거리다 샘이 없는 샘물을 마시고 발길을 돌려 선착장에서 섬을 찾을 것이다. 해질녘, 홀로 소주 한 잔에 멀리 육지 부둣가에 어른거리는 불빛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가 켜져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것이다. 그러다지치고 힘들 때 서울로 올라가 순환 전철이 뱅뱅 돌다 돌다 쌀쌀한 밤을 내려놓으면 대합실 티브이를 멍하게 바라보는 침입자를 노숙 왕초는 더듬을 것이다. 메이커 신발에 축 늘어진 다리는 돈벌레였다고 기침하는 눈초리, 새벽이오는 거리에서 갈 곳 찾지 못하면 곳곳을 기억하는 많은 다리는 따뜻한 집, 어떤 종지부는 곰돌이* 생각할 것이다.
*곰돌이 : 자꾸 계속하여 도는 일
목격자를 찾습니다 /길기장
내 창에,
봄아 오지 마라
네가 오면 잎 돋은 유리에 새가 든다
새야, 너도 봄에 오지 마라
실재라고 실체는 아니다
창에 비치는 하늘은
습관이 만들어낸 속임수일 뿐
봄아, 네가 오면
창에는 거짓과 진실이 한꺼번에 맺힌다
두 하늘이 바람에 함께 일렁인다
봄아 오지를 마라
순진으로 가득한 여린 새가
허상의 아침 창에 목을 꺾고 떨어진 적 있다
죽음을 몰고 온 바람도 놀라
그 자리에 숨을 놓았다
거짓과 진실이 다르게 이는 것이 하나도 없다
여린 봄
너도 공범이 될 수 있으니
내 창 앞엔 얼씬도 마라
오늘 듣는 / 길기장
오살 맞아 죽을 놈
징하게 속을 썩였던 놈
어부지리 과부 돈 노리던 놈
게살다워서 꼴도 보기 싫은 놈
임자 임자 하면서 빌붙어 있는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