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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9장 1-5절. 연보를 미리 준비하라 (연보의 의미=축복) 요약설교
고린도후서 9장 1-5절은 바울이 고린도에 가기 전에 미리 헌금을 하도록 독려하기 위해서 디도와 두 형제를 보낸다는 말씀입니다.
1절.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1. 1절은 8장 24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1절이 “왜냐하면(γὰρ: for)으로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8장 24절에서 바울은 바울이 보낸 세 사람에게 잘 순종해서 헌금을 완성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 절에서 ‘왜냐하면 성도 섬기는 일에 대해서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로,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이 파송한 세 사람을 잘 섬겨서 예루살렘 교인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잘할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세 사람에 대한 대접과 구제 헌금에 대해서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2.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여기서 ‘성도 섬기는 일’이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당국의 핍박과 경제 카르텔 때문에 장사를 못하는 것과 기근으로 인해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죽게 되었기 때문에, 바울 사도가 마게도냐 지방 교회들과 고린도 교회에 독려해서 ‘예루살렘 교인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모으는 일’을 가리킵니다.
로마서 15:25-26.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바울 사도는 각 지방 교회의 대표자들과 이 거금의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서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고(행 20:4), 그 때 유대인들에게 성전을 더럽혔다는 오해를 받고 체포되어 산헤드린 재판과 가이사랴에서 총독의 재판을 받고, 결국 배 타고 로마에 가서 황제의 재판까지 받게 됩니다.
3.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미 8장에서 충분히 설명을 했고, 또 바울이 보낸 세 사람이 잘 설명할 것이기 때문에, 더 쓸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더 잘 준비하고, 더 풍성히 헌금하게 하기 위해서 뒤에서 연이어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Gill
4.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연보하는 일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께서 부요하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세 사람을 보내면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어서 완성하라고 독려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4절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잘한 점을 격려해서 사랑과 선행을 하도록 권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 그들을 돕는 일은 섬기는 일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주님께서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목숨을 대속물로 주는 데까지 섬겼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곤경은 가난과 질병과 죄악과 사망입니다.
주님께서 이 일을 해결해주시기 위해 생명을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웃을 돕는 것이 섬기는 일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유대인의 핍박으로 가난해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구제 헌금을 하는 것이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2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1.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구제 헌금을 모금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권고하는 편지를 쓸 필요가 없는 까닭(1절)은 그 일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강요된 것이 아니라, 이미 고린도 교인들이 일 년 전에 자원했기 때문입니다(고후 8:24).
2.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1) ‘아가야’란 헬라 반도 남쪽에 위치한 아가야 지방을 가리키고, 아가야 지방은 고린도가 수도이고, 겐그레아가 고린도의 항구 도시로 있었는데(롬 16:1), 이곳을 모두 포함해서 아가야라고 지칭한 것입니다.
북쪽의 마게도냐 지방은 빌립보, 베뢰아, 데살로니가가 있는 지방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가야 지방을 ‘헬라’라고 지칭해서 도리스와 헬라와 애톨리아 등 많은 지역을 포함하는 말로 쓰이기도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6장 15절에서 스데바나를 언급하면서 그는 아가야 지방의 첫 열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고린도 도성이 있는 아가야 지방의 헬라반도에는 많은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있었고, 바울 사도는 이 때 고린도 교회가 일년 전부터 준비한 ‘준비된 마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준비된 마음이 장차 이렇게 큰 교회들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Gill
(2) 고린도 교인들은 마게도냐 교회들 보다 일 년 전부터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마게도냐인들에게 고린도 교인들의 구제 헌금에 대한 열심을 자랑함으로써, 마게도냐 성도들에게 열심을 분발시킬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일찍 시작한 일이 마게도냐 교인들로 하여금 연보하는 일에 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큰 자극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서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모금했는데, 헌금 방식은 매 주 첫날(주일)에 헌금하여, 연보하는 방식이었습니다(고전 16:2)
그리고, 합해진 구제 헌금은 교회가 인정한 성도들과 함께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지고 가는 것이었습니다(고전 16:3)
3.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1) '분발하게 하다'는 헬라어(ἐρεθίζω)는 보통 부정적으로 '노엽게 하다, 감정을 불러 일으키다’(arouse to anger, provoke)는 뜻이지만(골 3:2), 여기에서는 좋은 의미로 '건전한 경쟁의식을 조장하다(stir up)'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란 마게도냐 교회의 많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2) 고린도 교회는 처음에는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자극을 주어 함께 동참하도록 할 만큼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에 참 열심이었는데,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고린도 교인들의 모범을 보고 늦게 시작한 마게도냐인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도(8:2) 불구하고 이미 구제 헌금을 마쳤는데, 먼저 시작하여 다른 성도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고린도 교인들은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그렇게 자랑한 고린도 교회의 헌금 상황은 아직도 진척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염려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아직 구제 연보를 끝내지 못한 사실을 바울과 동행할 마게도냐인들이 알게 되었을 때, 마게도냐 교인들이 바울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에 대해 실망하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와 두 형제들을 고린도에 먼저 보내서 고린도 교인들이 1년 전에 작정한 헌금을 준비하고 완성하게 하려고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4.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 가운데 하나가 1절에 말씀하고 있는 “성도를 섬기는 일” 즉 어려운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1) 우리는 이런 일에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자극을 주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하도록 움직일 수 있는 이런 열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는 열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가련한 이웃을 구제하려는 데 관심을 가지고, 구제 헌금에 열심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귀한 열심입니다.
(2) 이런 ‘성도를 섬기는 일’에는 우리가 다 같이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초대 교회 때 일곱 집사를 세웠습니다. (행 6:1-4)
이 일곱 집사를 세운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과부 성도들을 구제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도들의 책임을 덜어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 구제 사역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참해야 할 사역입니다.
(3) 둘째로,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완성할 줄 아는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중간에 그만두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책임을 지고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달려갈 수 있어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한순간 반짝 기도하고, 한순간 반짝 헌금하고, 한순간 반짝 성경 읽고, 그런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 이런 삶의 자세가 참으로 신실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항상’ 동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책임을 지고 나아갈 줄 아는 믿음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3절.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1.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형제들’이란 디도와 두 형제들을 가리킵니다(8:6-24절).
그 중에 디도는 바울의 대리인 자격으로 간 것이고, 두 형제는 헌금 사업이 아무런 의혹을 일으키지 않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파견된 일종의 증인들이었습니다.
본 절은 이 형제들을 보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완성하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2.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1) '이 일'이라 함은 바울이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자랑하였던, 고린도 교인들이 일 년 전부터 구제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디도와 두 형제들을 고린도 교회에 보낸 것은 바울의 자랑이 헛된 자랑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이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완성하지 않으면, 바울의 자랑이 헛되고, 꾸끄러움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 인간의 마음이란 약해지기 쉽고 변덕스럽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의 구제 헌금에 대한 마음도 점점 차가워지고 무관심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와 두 형제를 고린도에 보내서 고린도 교회가 지난해에 시작한 구제 헌금을 완수하도록 한 것입니다. Gill
3.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1) 바울 사도는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고린도에서는 일 년 전부터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시작했다고 말했는데, 그 때는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6장 1-4절에서 구체적으로 매주 첫날(주일)에 모일 때마다 매번 조금씩 구제 헌금을 모으도록 하라고 구체적인 지시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고린도 교회가 일 년 전에 시작한 구제 헌금을 아직도 완성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에 도착하기 이전에 디도와 두 형제들을 보내서, 일 년 전에 시작한 구제 헌금을 완성하라고 촉구한 것입니다.
(2) 이 말씀을 볼 때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모금 운동이 바울의 자랑에 비해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마게도냐 교인들과 함께 고린도 교회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약속한 구제 헌금을 완성하지 않고 있다면, 바울이 바울과 동행하는 마게도냐 교인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한 헌금은 기한 전에 완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약속한 헌금을 기한에 내지 못하고 목회자의 강요에 의해서 내면 억지로 하는 헌금이 되어서 기쁨도 되지 못하고, 오히려 시험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4절.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1.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실제로 사도행전 20장 4절을 보면 마게도냐 교회들이 보낸 사람들이 바울과 함께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교회로 가지고 가고 있었습니다.
즉 베뢰아 사람 소바더,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가 바울과 동행했습니다.
2.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1) 마게도냐 사람들이 바울과 함께 고린도 교회에 방문하는데, 그 때까지 구제 헌금이 완성되지 않고 있으면, 바울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이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고린도 교인들의 구제 헌금에 대한 열심을 자랑했는데, 막상 바울과 함께 마게도냐 교인들이 고린도 교회에 도착했을 때, 고린도 교인들이 아직도 구제 헌금을 하지 않고 있다면, 바울이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이 마게도냐인들에게 자랑한 대로 구제 헌금을 하지 않으면, 바울의 신실성과 판단이 의심받게 되고, 바울이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속임수를 써서 구제 헌금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인격과 지도력과 복음 전도에 심각한 위험을 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자랑이 헛된 자랑이 되지 않도록 바울이 가기 전에 고린도 교인들이 구제 헌금을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2) 이에 대해 바울은 두 가지로 걱정을 합니다.
첫째,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에 대한 불신앙을 걱정합니다.
만약 바울이 마게도냐인들과 함께 고린도를 방문할 때까지도 구제금 사업이 지지부진 한다면, 마게도냐인들이 보기에 고린도 교인들은 극심하게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주님께 대한 헌신이 없는 형편없는 성도들로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바울 사도에 대한 불신을 걱정한 것입니다.
마게도냐 성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불신하게 되면, 더 나아가 고린도 교인들의 헌금에 대한 열정을 자랑했던 바울의 자랑이 허풍이 되어서, 마게도냐 교인들이 바울 자신을 불신하게 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일들이 현실화 되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5절.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1.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1) ‘연보’(εὐλογίαν)는 ‘찬양, 축복, 선물’(praise, blessing, gift)이란 뜻인데, 예수님이 성찬식 때 주신 포도즙을 ‘축복의 잔’(cup of blessing)이라고 했고, 갈렙이 딸 악사에게 토지와 두 샘물을 준 것을 칠십인역에 ‘선물’(εὐλογία: gift)이라고 했고(삿 1:15), 여기서는 ‘연보’(bounty)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칠십인역에는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준 선물들도 ‘율로기아’(εὐλογία)라고 했고(삼상 25:27), 야곱이 형 에서에게 준 선물들도 ‘율로기아’(εὐλογία)라고 했습니다(창 33:11).
바울은 ‘연보’를 ‘복’(εὐλογία: 율로기아, blessing)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연보’라는 말은 원래 ‘복, 선물’(blessing, gift)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15장 29절에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고 말씀했는데, 이 ‘복’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연보’는 구제 헌금을 받는 자에게도 복이요, 연보하는 자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축복입니다.
엘리콧(Ellicott)은 세익스피어를 인용하면서 “연보는 주는 자에게도 축복이요 받는 자에게도 축복이다”고 했습니다.
브루스(F.F. Bruce. 1910-1990)도 “연보는 '축복'으로서 '참 연보'는 주는 자나 받는 자 모두에게 축복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연보하는 사람들은 헌금할 때 탐심을 가지지 말고, 아까운 마음을 갖지 말고 기쁨으로 하라는 것이고, 억지로 해서는 복이 되지 않습니다.
2.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1) 바울은 디도와 두 형제들을 먼저 보내서 ‘전에 그들이(고린도 교인들)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얼마를 약속하라는 것이 아니고, 이미 약속한 것을 완성하라고 합니다.
‘미리 준비한다’(προκαταρτίσωσιν)는 것은 ‘미리 완납한다’(they should complete beforehand)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참여라는 것입니다.
연보를 할 때는 미리 준비를 했을 때 이 연보가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2) 이 구제 헌금하는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를 했음을 드러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억지로 하게 되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억지’(πλεονεξίαν)라는 말은 ‘이익, 탐욕, 침략’(advantage, covetousness, aggression)을 뜻합니다.
반스(Barnes)는 도드릿지(Doddridge)의 말을 인용하면서, ‘억지’(πλεονεξία)란 ‘끈질기게 강요해서 억지로 쥐어 짜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엘리콧(Ellicott)은 이 단어(πλεονεξία)가 ’그럴듯하게 너그러움을 베푸는 것처럼 하면서 어떤 이익을 취하려고 억지로 드리는 선물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3) 예수님은 구제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1-4.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자 해서 구제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 동기여야 합니다.
바울 사도의 자랑은 그 은혜를 풍성히 나누도록 역사하신 하나님, 미리 준비하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을 자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구제 연보를 즐거운 마음으로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받는 사람도 은혜가 되게 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많이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