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자정 마산으로 돌아왔다.
연말연시를 부모님과 함께 보내려고 12월 31일에 서울에 올라갔다가 1월 3일(월) 정오 귀가 길에 올랐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마산과 강릉 갈림길이 보이자 갑자기 아내가 동해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예정에 없던 동해안 여행이 시작됐다.
막국수 생각이 나서 둔내 IC에서 국도로 빠져 봉평에 들러 막국수와 메밀 전병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장평 IC로 고속도로로 들어와 오후 5시 쯤 눈 덮인 경포대에 도착했다.
집 앞의 바다를 매일 보고 사는 아이들도 동해 바다의 색다른 분위기에 매우 즐거워했다. 모래톱을 들고나는 파도를 따라갔다가 도망치는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곧 발을 다 적셨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해변을 하얗게 덮은 눈밭에서 뒹굴다가 눈싸움도 한 판 벌였다. 남매가 넷이니 우리 아이들만으로도 놀기에 충분하다.
실컷 놀고 난 후 밤늦게 마산으로 출발하였는데 운전 도중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설악산도 보고가자는 또 한 번의 즉흥적인 결정으로 바로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 속초로 올라갔다. 속초 해수욕장의 펜션에 숙소를 정하고 아바이 마을에 들어가 아바이 순대, 오징어 순대, 국밥으로 늦은 저녁 식사를 한 후 청초호를 건너는 갯배도 타 보았다.
아직도 잠자리에 들기에는 아쉬워 대포 항으로 갔다. 수조의 물고기도 구경하고, 건어물 상에서 정말 오랜만에 대학생 때 자주 먹던 작은 노가리를 발견해 두고두고 맥주 안주로 삼으려고 좀 많이 샀다.
노래방 가자고 아이들이 성화를 부렸으나 저희들만 아는 노래로 저희들끼리만 신났던 지난 번 경험에 질린 나는 짐짓 눈을 부라리며 “지금 시간이 몇 신데......” 하고 차를 숙소로 몰았다. 방에 들어와 노가리 안주로 맥주를 마시고 눈꺼풀이 무거워서야 스르르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 날(1월 4일, 화)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울산바위 뒤편의 학사평 콩꽃 마을에서 순두부로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바로 설악동으로 들어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올라갔다 내려와 설악동에서 또 한 바탕 눈싸움을 벌였다. 이번에도 선빈이에게 실컷 맞기만 한 선형이가 끝내 눈물 바람.
이제는 정말 마산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선형이의 싸늘한 표정에 모두 눈치 보기 바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낙산사 앞에서 차를 급히 유턴하여 낙산사로 올라갔다. 아이들을 다시 풀어놓으니 절집 앞에 놀고 있는 토끼를 잡으러 뛰어다니고, 해수관음상의 손가락이 몇 개인지도 세어 보고, 해우소 처마에 달린 고드름도 선빈이가 선우 어깨에 올라 무동을 타고 동생들에게 따주면서, 언제 싸웠냐는 듯 다시 까불고 장난치기에 여념이 없다.
이제는 됐다 싶어 다시 마산으로 출발하니 선린이는 벌써 집에 가느냐며 해변에서 한번만 더 눈싸움을 하고 가자고 졸라댄다. 오빠, 언니들은 그래도 조금 철이 들었는지 조르는 동생을 달래고 설득하느라 애를 쓴다. 그 사이 서울 아버지는 휴대폰으로 오늘 포항에 눈이 많이 왔으니 7번 국도로 가지 말고 다른 길을 이용하라는 정보를 주신다.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제천, 단양, 죽령 터널, 풍기, 영주, 안동, 의성, 군위, 대구, 현풍, 창녕을 지나 마산 집에 오니 정확하게 자정이다. 저녁은 안동 휴게소에서 각자 다른 메뉴를 골라 서로서로 나눠 먹고 빼앗아 먹으며 해결했다.
야간 운행 중에 조수석에 앉은 아내가 질문이 많다.
자동차 앞 계기판에 이것저것 불이 들어 온 걸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뭐냐고 묻는다. 차 앞뒤 창에 서린 성에나 김을 제거하는 열선이라고 설명을 하니 자기 차에도 그런 게 있으면 편리하겠다고 한다. 여름이나 겨울에는 유리가 뿌예 불편할 때가 많다면서. 참, 기가 막혀서. 벌써 10년 가까이 운전한 사람이 열선 작동 버튼도 모르다니. 당신 차에는 핸들 왼쪽에 버튼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잠시 후 차가 없는 길에서 상향등(high beam)을 켜니 아내가 또 묻는다.
“저 계기판에 새로 켜진 파란 오징어는 뭐예요?”
“파란 오징어? 파란 오징어가 어디 있어?”
“저기 있네요. 나도 어쩌다 보면 저게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하더라고요. 그게 뭔지 통 모르겠더라니까.”
그렇게 보려고 하니 그게 오징어처럼 생기긴 했네.
상향등 사인을 오징어인 줄 알면서도 10년 무사고로 다니니 신통하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