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麻浦)
한강의 나루 이름은 대부분 나루 '津' 로 끝나는데 마포만은 포구를 뜻하는 '浦' 자가 붙은 건 그져 사람이나 물품을 배로 건네주는 단순한 나들목이 아니라는 게지요. 포구란 대개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 고기잡이 배가 드나들고 멀리 떠나는 객이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항구' 인데, 마포도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한 겁니다. 조선시대에는 해상교통이 발달하여 마포는 삼남지방에서 올라오는 곡물이나 소금, 젓갈류를 비롯한 해산물이 빈번이 들어오는 내륙항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새우젓 가게들이 많아 마포하면 ‘새우젓 동네’로 통했지요. 그리고 제물포로 가는 길목으로 19세기에 들어서는 인천을 왕래하는 증기선이 운항되기도 합니다. 마포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삼개나루'로도 불리워졌는데 아마도 옛날 이 부근에서 삼(麻)이 많이 재배되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木覓朝暾 / 정선 아침해가 떠오르는 남산과 한강 풍경
마포에서 배를 띄우며(麻浦泛舟) / 서거정(徐居正, 조선 전기)
西湖濃抹如西施*(서호농말여서시)
서호(서강)는 짙게 화장한 서시 같은데,
桃花細雨生綠漪(도화세우생록의)
복숭아 꽃 가랑비에 푸르른 물결이 이네.
蕩槳歸來水半篙(탕장귀래수반고)
상앗대를 반이나 적시며 노저어 돌아오니,
日暮無人歌竹枝**(일모무인가죽지) **죽지가 - 후술
날 저물어 사람도 없는데 죽지가**가 들리네.
*마포 부근 강물(西江)을 중국 항주(杭州)의 절승 서호(西湖)에 비견하고, 그곳의 경국지색 서시(西子)의 화장한 미색을 서호에 빗댄 대시인 소동파(蘇東坡, 宋)의 시(欲把西湖比西子 淡粧濃抹總相宜) 를 인용.
二山隱隱金鰲頭(이산은은금오두)
두 산은 금자라 목처럼 흐릿하게
보이는데,
漢江歷歷鸚鵡洲*(한강역력앵무주)
한강에도 역력하게 앵무주가
있구나.
夷猶不見一黃鶴*(이유불견일황학)
아직도 황학은 보이지 않는데,
飛來忽有雙白鷗(비래홀유쌍백구)
문득 흰 갈매기 한쌍이 날아
드는구나.
*당나라의 시인 최호(崔顥)가 지은 절창 '황학루(黃鶴樓)'에서 '황학은 한번 날라 간 후 돌아오지 않고.. 앵무주에는 향기로운 풀만 무성하다(黃鶴一去不復返..芳草萋萋鸚鵡洲)'에서 따옴.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 전기 풍류객들이 한양의 절승 10곳을 노래한 시집 한도십영(漢都十詠, 또는 京都十詠)이 있는데, 그 중 하나의 詩題가 '마포 뱃놀이(麻浦泛舟)'입니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선생은 시문에 뛰어난 학자답게 중국의 당송(唐送)대의 절창을 인용하면서 詩才를 뽑내고 있군요.
마포에서 배를 띄우며(麻浦泛舟) / 월산대군(月山大君, 조선 전기)
滿浦煙光綠發地(만포연광록발지)
포구에 자욱한 안개 대지는 초록 빛 돋고,
微風嫋嫋吹寒漪(미풍뇨뇨취한의)
미풍은 한들한들 차가운 물결 위에 불어오네.
江邊小草綠於染(강변소초록어염)
강가의 작은 풀들 물감보다 더 푸르고,
堤柳又作黃金枝(제류우작황금지)
강 뚝 버들은 또 다시 금빛 가지를 틔우네.
畵船蕭鼓橫渡頭(화선소고횡도두)
북소리 요란한 노릿배는 나룻가에 빗겨있고,
碧蘅紅杜生芳洲(벽형홍두생방주)
푸른 족두리 붉은 두견화는 향기로운 물가에 피어난다.
蕩漿歸來夕陽邊(탕장귀래석양변)
노저어 돌아오는 해 저물녘,
回頭忽見來沙鷗(회두홀견래사구)
고개를 돌리니 문득 모래밭에 날라드는 갈매기가 보이네.
왕위에서 밀려난 후 용산 물가에 사가를 마련하고 강가에서 음풍농월(吟風弄月)하던 비운의 왕자 월산대군(月山大君, 성종의 친형). 많은 시를 남겼는데, 위의 7언율시에는 어려운 한자가 군데군데 끼어있어 옥편을 자주 들려다 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군요.
밤에 서강에 앉아(西江夜坐) / 남효온(南效溫, 조선 전기)
魚驚明夜火(어경명야화)
고기들은 (어선의) 밝은 불빛에 놀래고,
客淚竹枝歌*(객루죽지가)
나그네는 (선창가에서) 들려오는 사랑노래에 눈물짓네.
獨坐愴忘返(독좌창망반)
홀로 앉아 비감함에 돌아갈 줄 모르는데,
月圓江水多(월원강수다)
달은 둥굴게 떠있고 강물은 차서 넘실거리네.
*竹枝歌(죽지가) : 원래 옛 중국의 민가풍 노래이나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은 주로 이 제목으로 사랑가를 많이 지었고, 이후 송나라 소동파나 우리나라 허난설헌의 죽지가도 유명함.
생육신의 한사람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의 시를 다시 붙입니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고 김굉필(金宏弼) · 정여창(鄭汝昌) 등과도 동문수학한 학자이며 시인으로 인물됨이 영욕을 초탈하고 지향이 고상하여 세상의 사물에 얽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끝내 출사하지 못하고 지금은 난지도로 알려진 오리섬(鴨島) 갈대숲에 초막을 짓고 강을 벗삼아 살았다고 합니다.
박지원 이덕무와 함께 마포에서 노닐며(同燕巖炯菴遊麻浦) / 유득공(柳得恭, 조선 후기)
龍山山下客橫舟(용산산하객횡주)
용산 산 아래에 나그네는 배를 대고,
怊悵相望江上樓(초창상망강상루)
망연히 강 위 누각을 바라보네.
韓使*不歸島雲白(한사불귀도운백)
고려 사신은 돌아오지 않는데 밤섬 위엔 흰구름이 일고,
蒙姬**一去峴花愁(몽희일거현화수)
元나라 공주 가버린 뒤 꽃재의 꽃도 시름겨워 하는구나.
*마포 남쪽에 있는 밤섬(栗島)은 고려 명신 김주(金澍)가 살던 곳으로, 그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절의 지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함.
**용산 서쪽 기슭에 고려의 行宮이 있었는데, 원나라 공주가 이곳에서 죽었고 부근에 그녀가 거닐던 꽃재(花峴)가 있음.
夕陽杳杳孤帆下(석양묘묘고범하)
석양은 아스라한데 외로운 돛 배 내려오고,
洌水洋洋千里流(열수양양천리류)
한강물은 넘실넘실 천리를 흐르네.
無限西湖懷古地(무한서호회고지)
끝없이 펼쳐진 서강, 옛 생각 나는 이 땅에,
年年芳草滿汀洲(연년방초만정주)
해마다 물가에는 향기로운 풀만 가득하구나.
북학파 실학자 유득공(柳得恭, 1748 ~ 1807)이 스승이며 벗이기도 한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1805)과 그와 함께 4家詩人 중의 하나인 형암 이덕무(炯菴 李德懋, 1741∼1793)와 같이 마포에서 뱃놀이 하며 지은 시입니다. 역사서 '발해고(渤海考)'의 저자답게 역사 의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네요.
첫댓글 마포나루, 양화나루,난지도는 지금은 상암DMC로 천지개벽. 하늘공원에 오르면 옛 자취들이 향수를 일으켜 주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