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신
그릇을 씻다가 음식물 찌꺼기 남은 걸 버리러 마당으로 나갈 때면 으레 헌 신으로 발이 갑니다.
풀을 뽑으러 텃밭에 갈 때도 별 생각 없이 헌 신을 신습니다.
밖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고 나갈 때나 창고에 연장을 가지러 갈 때도 헌 신을 신고 갑니다.
옆에 새 신이 있는데도 헌 신을 신습니다.
습관이 되어서 그렇기도 하고 발이 편해서 그렇기도 합니다.
내게는 외출할 때 신는 구두가 두 켤레 있습니다.
하나는 산지 일 년 가까이 되고 하나는 신고 다니는지 칠팔 년도 더 됩니다.
그 구두는 굽도 여러 번 갈았습니다.
구두끈도 끊어져서 다시 바꾸었습니다.
뒤축이 닳아 해어졌을 때 이제 구두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구두수선집에 들어갔더니 뒤축에 끼우는 끼우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끼우개를 하고나니 신기도 편하고 새 구두처럼 되었습니다.
그게 일 년 반쯤 전의 일입니다.
지금도 구두약을 칠하고 닦아 신으면 새 구두처럼 반짝거립니다.
이 구두는 신으면 발이 참 편합니다.
멀리 가는 일이 있으면 으레 이 오래된 구두를 신습니다.
일 년 전 구둣가게를 하는 친구가 있어 시내에 나갔다가 새 구두를 하나 샀는데
너무 발에 꼭 끼는 게 불편해 볼을 넓혔는데도 잘 신게 되지 않습니다.
편하고 익숙한 데 너무 길들여지면 발전이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새 신을 신고 가야 하는 자리도 있고 옷에 맞추어 신어야 하는 신발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발을 꽉 조이는 신을 신고 있어야 할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도 만나서 편안한 사람이 좋습니다.
일 때문에 만나지만 어딘가 꼭 끼는 신발처럼 몸이 조여오고 자리를 빨리 옮기고 싶은 사람보다는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앉으면 불편한 이야기를 이어가야 하는 자리보다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가 좋습니다.
너무 빡빡한 일정보다는 중간중간 빈 시간이 있는 일정이 좋습니다.
애를 태우며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삶보다는 약간 헐렁해 보이지만 담담하게 끌어가는 삶이 좋습니다.
발도 편하고 마음도 편한 삶은 내가 선택하기 나름이라고 헌 신은 가르쳐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