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문제 / 박선애
입학하고 며칠이 지나도 마스크를 쓴 아이들의 얼굴은 익혀지지 않았다. 정희는 처음부터 상당히 눈에 띄었다. 목소리가 크고 무슨 일이든지 적극적으로 나섰다. 가정 통신문을 들고 가면 자신이 나눠 주겠다고 빼앗았다. 학부모의 답이 필요해 다시 걷어야 할 것은 알아서 해 줬다. 친구들이 미처 못 하는 일은 잘 도와줬다. 수업 시간에 발표도 자주 했다. 아직 아이들을 잘 모르니 속으로 반장감으로 점찍어 놓았다.
첫 주 수업은 자기 소개하기였다. 자신을 소개할 항목을 정하는 것부터 글로 쓰고 발표까지 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말하기ㆍ듣기 능력을 기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 새로 만난 아이들과는 꼭 하는 수업이다. 다들 자신을 소개하는데 정희는 좀 달랐다. 아빠가 유도 선수 출신이라는 둥, 모든 운동을 다 잘한다는 둥, 서울에 있는 일류 대학교에 합격했는데 가난해서 못 갔다는 둥, 아빠는 책을 많이 읽어서 아는 것이 많다는 둥 마치 아빠 자랑하는 시간 같았다. 입학식 날 담임 시간에 간단하게 한 기초 조사에서 한 부모 가정인 줄은 알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학기 초에 반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상담을 서둘러 정희와 마주 앉았다. 부모의 이혼으로 목포에서 엄마, 새아빠와 살았다. 그들의 학대를 견딜 수 없어서 자신이 신고해서 3학년 때부터 아빠와 살게 되었다고 했다. 묻지도 않은 이혼 이유-엄마의 불륜을 구체적으로 말해서 내가 민망했다.-까지 말했다. 저녁에는 오줌 싼다고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느니, 쇠몽둥이로 때렸다느니 하는 말도 했다. 아빠는 허리가 아파서 일하지 못하고 있는데, 부자 친구들이 많아서 돈이 항상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데까지 듣다 보니 아이가 하는 말이 모두 진실일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가정방문을 해서 만난 아버지는 정희 말대로 공부를 많이 하셨는지 여러 방면에 걸쳐 모르는 것이 없는 듯이 거침없이 말씀하셨다. 엄마의 잘못 중에 정희한테 들은 것 외에 돈 문제도 말하는데 그 액수가 너무 커서 좀 허풍이 심한 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희의 학교 생활을 나누며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상담을 받아 보면 어떻겠냐고 권했더니 단번에 거절했다. 자신이 알아서 이러이러하게 치유해 가고 있다고 전문가처럼 말씀하시는 데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정희가 처음에 보이던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것은 금방 드러났다. 욕을 자주 하고 장난도 좋아해서 아이들을 툭툭 건드리고 치기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나서니 아이들이 불편해했다. 부반장으로 출마했지만 친구들의 신임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던 차에 친구 관계에서 어려운 일을 겪었다. 어느 날 밤늦게 카톡을 보니 소희로부터 “정희가 에스엔에스(sns)에 이런 것을 올렸는데, 연락도 안 돼요. 정희 어떡해요?”라는 내용이 있었다. 팔꿈치 아랫부분 안쪽에 칼로 가늘지만 여러 줄의 상처를 내고 그 위에 죽음을 암시하는 글을 써 놓은 사진을 캡처한 것과 함께였다. 보내 놓은 지 이미 두어 시간 지나 있어서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봐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희에게 전화를 해 보니 받았다. 그 사이에 정희와는 연락이 되었다고 해서 일단 안심했다. 소희의 말로는 6학년 때도 팔에 자해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다음 날 아버지께 연락하고 학교에서도 도울 방법을 긴급하게 의논했다. 4층짜리 다세대 주택에서 사는 친구 ㅌ과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리겠다고 난간에 다리를 올리기까지 해서 ㅌ이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정희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자해, 자살 충동이 이는 것을 자제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동의를 얻어 전문 상담 선생님의 도움과 병원 진료를 받기로 했다. .
병원에 다녀오더니, 우울증에 공황 장애 초기라고 약을 처방해 줬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고 난 후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울면서 숨이 안 쉬어진다고 목을 잡고 크게 몰아 쉬면서 기침을 하며 숨이 넘어갈 듯 힘들어했다. 한바탕 놀라게 하고 나더니 이 과호흡은 공황 장애 증상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 말했다. 몇 번 겪으면서 자신이 불리하면 일부러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어느 날 정 선생님께 지도를 받던 중 그런 행동을 하자 정 선생님이 그건 과호흡 증상이 아니라고, 그만하라고 절제를 시켰다. 놀랍게도 멈추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도 교실에서 친구들과 갈등이 일어나서 왜 그랬는가 잘잘못을 따져 물었더니,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면서 크게 울려고 한다. 그러면 과호흡하니까 울지 말라고 강하게 나갔다. 그날 이후로는 과호흡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감정 기복이 심해서 아주 밝고 활달했다가 어느 때는 심하게 우울해져 세상 짐을 다 진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자신을 지칭할 때도 아기처럼 ‘나’ 대신 ‘정희는’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혀 짧은 소리를 내니 남학생들이 귀여운 척한다고 싫어한다. 뭐든지 “정희가 할게요. 정희가 예뻐요.” 등의 말로 친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가끔씩 “귀여운 척, 예쁜 척하지 않기, 욕하지 않기.”라며 당부하기도 한다. 장난처럼 욕설을 자주 하는데 지적하면 안 했다고 거짓말한다. 친구가 자기에게 뭐라고 했다고 이른다.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원인을 따지다 보면 정희가 먼저 시작했다. 친구들이 점점 없어져서 걱정이다.
놀랍게도 정희가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와서 책을 읽었다. 제목이 ‘아동 심리학’이다. 어렵지 않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자신은 심리 상담사가 될 거라고 했다. 재미없으면 바꿔 읽으라고 청소년 소설을 권해 줘도 그 책을 계속 보는데 집중은 못 하는 것 같다. 아침에 와서 책을 읽는 것을 크게 칭찬하며 격려했지만 일주일쯤 하다가 그만했다. 그럴 줄 알았다. 정희가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하는 것들을 보면 관심 받고 싶어서,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 많다. 그렇게 수를 쓰는 것이 보이니 별로 안 예쁘다. 교사가 갖추어야 할 큰 덕목인 사랑이 없다는 것을 매번 반성하지만 잘 안 된다.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지만 오히려 거리를 두고 싶게 만드는 정희를 보면서,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일 거라고 어설픈 진단을 내려 본다. 갈수록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많다. 가정에서 힘든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문제아는 없다, 다만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스마트폰에 빠져서 밤에 잠을 자지 않아 자주 결석하는 2학년 ㅁ도 애들은 어찌 됐든 혼자서만 원룸 얻어 아가씨처럼 사는 외국인 엄마가 문제다. 대답이 없이 빤히 쳐다보고만 있어서 선생님들 속 터지게 하는 우리 반 ㅇ도 폭력을 일삼은 아버지가 잘못이다. 제멋대로 살던 작년 우리 반 ㅎ도 외도에 이혼에, 학대까지 했던 부모 탓이다.
체육 대회의 활기찬 분위기에 친구들과 어울려 잘 놀던 정희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랫배에 손을 얹고 얼굴을 찌푸린다. 배 아프냐고 따뜻하게 물어 봐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른스럽지 못한 또 한 사람, 나도 문제다.
첫댓글 아이야 무슨 죄가 있겠어요. 선생님 말처럼 그놈의 덜 성숙한 어른이 문제네요.
요즘 문제행동이 있는 아이를 보면 그대로 어른이 되어버릴까봐 걱정되어요.
적극적으로 상담치료 같은 걸 해서 바르고 행복하게 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장애인 아이 한 명을 돌봐주고 있는데 정답을 몰라서 난처할 때가 많아 이 글이 공감이 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어른들의 문제가 아이에게까지 전해지는 게 문제네요.
문제 아이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박 선생님은 늘 사랑입니다.
왜그리 딱한 아이들이 많답니까.
마음이 아프네요, 아이들의 사정 이야기에.
날로 이기주의자가 된 어른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책임감도 개념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인생만 중요하고
자기로 인해 세상에 나온 자녀에게는 너무 무심해요.
진짜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늘 애쓰시는 선생님들을 존경합니다.
한 아이, 한 아이...
한 인생을 가꾸시고 돌보시는 선생님들, 파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