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친 글] 깊은 고민 / 정희연
1995년, 광주·전남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00건설은 마치 거대한 배가 한순간 물살에 휩쓸리듯 순식간에 무너졌다. 겉으로는 번창해 보였지만 과도한 사업 확장이 원인이었다. 자금 조달이 어려운 고비를 맜았고, 그 흐름을 되돌리지 못하자, 결국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부도라는 비극을 맞았다. 회사가 무너지자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익숙했던 사무실과 현장은 더 이상 우리의 터전이 아니었다.
몇 해가 흘렀다. 직장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함께 땀 흘리며 쌓아온 그 인연을 다시 잡고 싶었던 걸까, 조직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장 선후배 모임을 만들었다. 그 당시 부서장, 부장, 팀장이 모임을 주도했다. 과거의 직책과 권한은 사라졌지만, 직급과 나이에 따라 선후배가 한 줄로 늘어섰고, 같이 겪었던 땀과 노력이 우리 사이를 묵묵히 연결해 주었다. 그때의 기억을 풀어놓으며 잊고 있던 시간의 조각들을 맞추었다. 한때는 치열하게 함께 일하던 동료였고, 이제는 선배와 후배로 다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과거의 영광과 고난을 나누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렀어도 사람 사이의 정은 식지 않았고, 모임은 과거의 흔적을 되새기며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선배는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배움과 조언을 주는 책임을 느끼고, 후배는 존중과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부담 속에 관계는 유지된다. 서로 역할에 충실할 때 관계는 지속된다. 후배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고 그들의 성장을 도우려 힘쓰는 것이 선배의 몫이다. 그 자리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후배도 그렇다. 존경을 표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보면 볼수록 인사치레가 가득한 모양이 되어 갔다. 선배가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었고, 나머지는 경청했다. 이따금 후배의 의견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했다. 과거의 경험을 회상하는 이야기로 대화는 채워졌고, 후배들은 그것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자리에 내가 없었다.
친구와 함께 마시는 소주 한잔은 하루의 피로를 씻어 주고, 잔 부딪치는 소리가 늘어가도 부담없어 사소한 농담도 웃음꽃이 된다. 술기운이 올라 몸이 점점 느슨해져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로의 허물을 드러내는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은 선배의 술자리와 달랐다. 소주병에 술이 줄어들수록 정신을 차려야 했다. 분위기를 읽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써야 했다. 표정 하나, 행동 하나에도 더 많은 생각을 담아야 했다. 선배는 과음해도 관대하게 받아들이면서 후배는 자기 관리가 부족한 것으로 남았다. 그러므로 흐트러지지 않게, 실수가 없도록, 소주잔을 살피며 긴장의 끈을 더 팽팽하게 잡아당겨야 했다.
술자리는 격식과 예의가 필요했다. 술을 따르고, 분위기를 살피며 적당한 때에 맞장구를 쳐야 했다. 선배가 던지는 농담에 미소를 지어야 했고, 때로는 조심스레 내 생각을 말해야 했다. 그 안에는 언제나 긴장이 섞여 있었다. 동료애, 유대감, 우애도 있었지만 묵직한 거리감도 함께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현장 소장의 목소리다. 부서장, 부장, 팀장 술이 꼭지에 달했는지 돌아가면서 안부를 묻는다. “보고 싶다.” / “내가 너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지?” / “꼭 나올 거지?” 합창하듯 따뜻한 말만 골라서 한다. 나도 같이 맞장구를 친다. 몸둘 바를 모르겠다. 잊을 만하면 걸려오는 전화, 벌써 세 번째다. 아내에게 말했다. “하늘의 뜻인가 보네, 가야 할 것 같아.”라고 했던 것이 엊그제다. 일 처리도 똑 부러지게 잘할뿐더러 정이 많은 사람들, 이제 결정할 때가 되었다.
맏형들의 걸음을 뒤따라야 하고 막내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흐릿했던 지난 날, 서로 다른 색깔과 분위기지만 일상에서 맞는 중요한 순간이다. 때로는 긴장을 견디며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가고, 친구와 함께하며 내 모습을 드러내며 휴식을 취한다. 모두가 삶의 일부분이고 그 속에서 균형을 맞춘다.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된다. 그런데 나는 이미 울산에 있다. 꼭 나가겠다 굳게 약속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