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생애 첫 합평을 준비하며
'뭘 쓰지? 잘 쓰고 싶은데..' 이 압박으로 금, 토, 일이 지났다. 그 와중에 딸이 감기에 걸려 밤마다 열이 39도까지 올랐다. 열 보초(두 시간에 한 번씩 열을 재는 것)를 서면서 새벽마다 뭘 쓰냐는 고민을 했다. 역시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 글감이 없는 사람이었나, 스스로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면서 이 문장이 떠올랐다.
어쩌면 글감의 빈곤은 존재의 빈곤이고, 존재의 빈곤은 존재의 외면일지 모른다.
_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결국 숙제처럼 생각했던 소재인 모유 수유에 대해 써보자 결정했다. 누구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걸 말하고 싶었다. '모유 수유 그렇게 나쁜 게 아냐.' 나에겐 억울함이 글쓰기의 동기가 되는 것 같다. 게다가 단유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3개월) 아직 '경계인'이다. (은유샘이 '경계인'이 볼 수 있고, 쓸 수 있다고 했다.) 일기에 썼던 말, 모닝페이지에 썼던 말을 모았다. 그걸 모으면 얼추 글이 될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다. 파편처럼 흩어져서 한 편의 글로 뭉쳐지지 않는다. 다 치우고 다시 써보자 마음먹는다. 그래도 안 써진다. 시작도 못하겠다. 자려고 누웠다가 허준이 교수님 말이 생각났다.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모든 걸 망치는 것 같아요." 아예 파일 제목도 '잘하려고 하지 말고'로 바꿨다. 그제야 첫 문장이 떠올라 받아 적었다.
겨우 써서 에세이를 올리고 후배에게 문자를 보냈다. "토할 것 같아요.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구역감이 올라와요. 손발이 심각하게 차가워지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답장이 왔다. "선배 많이 긴장했나 봐요. 그거 긴장하면 생기는 신체화잖아요." 커피를 많이 마셔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 긴장한 거구나, 이렇게 난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잘 모른다.
합평 당일, 목요일 점심시간. 남편에게 말했다. "밀로시야(남편) 나 오늘 저녁 수업에 못 갈 것 같아. 이런 저품질의 글을 다른 사람들의 귀한 시간을 잡아먹으며 그것도 소리내 읽는 건 말이 안 돼. 너무 창피해서 안 될 것 같아." 남편이 말했다. "그거 자연스러운 증상이야. 긴장되면 피하고 싶으니까. 일단 출력해서 내 앞에서 한 번 읽어봐." 그렇게 세 번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남편이 듣더니(당연히 한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내용은 모릅니다), "너 진짜 자신이 하나도 없구나?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읽으면 안 돼."라고 했다. 읽으면서 불필요한 문단을 하나 지우고 표현 몇 가지를 바꿨다. 처음 읽었을 때보단 내 글이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역시 육성으로 읽어야 이런 디테일이 보이는구나. (들리는구나.)
수업 시간에 내 글을 읽는 동안 곁눈으로 구유님이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게 큰 힘이 되었다. 다 읽고 질문을 받으면서는 모든 질문, 모든 합평의 말이 감사했다. 누군가 내 글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 자체가 고마웠다. 복복님이 모유 수유에 관심이 간다고 말했을 때는 마음에 큰 울렁임이 있었다. 내 글을 읽고 누군가 모유 수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 좋겠다는 동기에서 시작한 글이었는데 조금이나마 가닿았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내 글이 가진 한계(마무리가 약하고, 좋은 점만 말해서 균형감이 부족하고, 이후-단유-의 서사가 다뤄지지 않는)를 잘 알게 되어 기뻤다. 나는 전혀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에서 듣는 분들이 웃은 것과, 은유샘이 아예 코믹으로 가는 게 어떠냐고 하신 건(난 심각하게 쓴 건데) 아직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카후나만의 톤과 매력이 있는 글'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 언제고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고, 멋있는 척하려고 하지 말고, 화장기 없는 생얼의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2. 잊고 싶지 않은 은유샘의 말들
2-1 <다정한 서술자>를 읽으며
- 어려운 책을 읽을 때 입구를 잘 찾아봐요. 1장이 어렵다고 계속 붙잡고 있는 건 괜히 핑계를 찾는 것일지도 몰라요.
- 후기랑, 10 문장 왜 안 올려요? 열심히 해야 내 것이 되는 거죠.
- 쓰는 나, 쓰이는 나, 독자 이 간극을 줄이려는 노력 자체가 글쓰기예요. 작가는 책으로 글로 끝이죠. 독자를 쫓아다니며 이야기할 수 없어요.
- 제가 생각하는 문학은 멈춰서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에요.
- 어른이 되면 언어를 충전할 기회가 많이 없어요. 언어를 어디서 공급받아요?
- 속물적 교양과 다정함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다정함이라는 단어는 한국 사회에서 오염되었죠.
- 이 글이 세상에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글로 세상에 말하고 싶은 게 있어야 해요. 다 쏟아내기만 해서는 안되죠. 그건 자기 전시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해요.
- 왜 이렇게 빨리 책을 내려고 해요? 축적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 쓰려는 사람은 정말 많이 읽어야 해요. 언어와 감각을 가꾸어야 해요.
- 진정한 독서를 하는 것에 나이보다는 부제와 상실의 경험 중요한 것 같아요.
- 성공과 실패로 나누는 게 가장 나빠요. 이분법으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카테고리화하는 말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 언어는 사이에서 태어나는 것이니까요.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다양한 언어가 필요하지 않아요.
- 현대인들은 자신을 해방시켜 주는 방편으로 여행을 선택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 우리가 글을 쓸 때 불필요한 정보를 너무 많이 주면 독자의 피로도가 올라가요.
- 인터뷰를 하고 와서 녹취를 풀면 가끔 원고지 130 매예요. 근데 전 이건 30매로 줄여야 해요. 처음에는 다 중요해 보여요. 이게 초보적인 거예요. 더 읽으면 덜어낼 게 보여요. 잘 버려야 해요. 버리는 게 힘든 건 당연하고요.
2-2 합평하며
- 글을 쓰다가 마무리가 엉성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저도 일주일 전에 마감을 하고 뒤부터 다시 퇴고하는 시간을 가져요. 묵혀야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쫓기면 엉성해질 수 밖에 없죠.
- 남을 이해하려다 내가 없어지는 노력도 있죠.
- 일단 써요. 이게 보편적인가, 세련되었나 고민하기 전에 일단 날 것이 있어야 하니까요. 내가 겪은 고통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요.
- 엄마 세대에서는 가정이 깨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었을지도 몰라요.
첫댓글 글도, 낭독도 카후나만의 고유함이 전해져서 좋았어요. 솔직하면서도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들 눈치를 살피면서도 할 말는 다 하는, 그런 사랑스러운 사람?
도리는 날 잘 모를 텐데. 분명 몇 번 못 봤는데... 이런 관통하는 관찰을 어떻게 하는 거죠? 눈치 보면서 할 말 다 하는 거;;; 맞아요 ㅠㅠㅠㅠ 사랑스러운 건;;;;그러고 싶;;습니다...
카후나의 발표를 듣고 그리고 들숨과 하루의 글을 읽고, 저는 어제 처음으로 동반자와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눴답니다-!
매 주 동반자에게 감명깊었던 글을 대신 읽어주곤 하는데, 모두의 글을 대신 읽어주면서 저희 둘 다 출산과 육아, 모유수유에 대한 여러 면을 바라볼 수 있었고,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함께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시간이 생겨 너무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요즘 일상에서 꾸며진 모습이 아닌 제 솔직한 모습들을 계속해서 꺼내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직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매 번 참 어렵더라구요. 언제고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고, 멋있는 척 하려고 하지 말고, 화장기 없는 생얼의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문장에 너무 큰 공감을 합니다..! 우리의 생얼 화이팅〰️🎶🖤
처. 음. 으.로. 아이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해 깊. 은. 대화를 나누셨군요. 그 이야기 나중에 듣고 싶네요.
동반자에게 글을 읽어 주시다니 멋져요. (저의 로망인데;;;함께 읽고 대화하는 것)
라벤더의 생얼 더 자주 보고 싶습니다.
합평 시간이 한정적이라서 말을 못했지만 정말 잘 쓴 글이라 생각했어요! 재밌고, 독창적이고 좋은 표현들이 많았고, 문체도 깔끔하고, 무엇보다 모유수유에 대해 부정적인 말들만 많이 들어왔는데 이런 좋은 면도 있구나 알 수 있어서 유익한 글이었어요 ㅎㅎ
합평 시간이 더 길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짧아요. ㅠㅠ
전 다하의 글을 읽을 때 그래요. 독창적이고, 좋은 표현들이 많고, 내가 겪지 못한 이런 경험을 읽을 수 있어 값지다고 느껴요.
카후나 목소리로 카후나 다운 글을 전해 들으니 정말 짜릿하고 좋았어요.. 어쩜 그렇게 당신은 사랑스러운 에너지로 가득찬 사람인건지. 나 카후나님 책도 가진 사람이다 막.. 자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카후나는 엄마여서 좋겠다. 카후나 아기는 엄마의 사랑을 이렇게 정제된 문체로 확인받아 좋겠다...
엄마여서 좋으면서 싫으면서 엄청 좋으면서 힘들면서 하나도 안 힘들면서... 이런 과정이 맞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