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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시편102편12~28절
제목 : 회복된 유산을 건네려면
1-7절에서 괴로운 날에는 무엇을 하십니까?
시인은 자신의 형편을 연기같이 사라지고, 뼈가 숯불 같으며(3절),
풀같이 쇠잔하며(4절), 살과 뼈가 붙고(5절), 광야의 올빼미와 부엉이 같고(6절), 외로운 참새와 같다(7절)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기도는 내 형편을 아뢰는 것입니다.
8-11절곤고한 일은 원수들의 훼방으로 올 수도 있고(8절),
하나님의 진노일 수도 있습니다(10절).
그러나 두 경우 다 하나님께 아뢰는 일은 같습니다.
도움을 구하십시오. 아니면 회개하십시오.
4,11절:세상 나라의 날들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벧전 1:24).
시인은 페허로 변한 시온을 바라보면서도 소망을 놓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시온을 회복하시면 모든 백성과 나라가 주를 찬양하고 섬기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1.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다(12~14절)
1)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12]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에 대한 기억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주는 영원히 계시고” '영원히 보좌에 앉아 계시는'이 문자적인 뜻입니다. 이 사실은 슬픔을 초월하게 하고 큰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연약한 한 인생인 시인은 소멸하여도,
시온의 소망은 그의 영원한 왕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이 너무 자주 혹은 급하게 변하여서 잠시 동안도 안정을 누릴 수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영원한 왕으로서 변치 않는 분이라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한편, 영원 불변하시는 하니님의 축복의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점점 더욱 웃음거리가 되어가는 듯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이 그의 교회에 주신 약속들,
특히 그 위대한 언약적 약속을 회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하리라'(출 25:8).
이 약속에 의존하여 그는 비록 현재의 상황이 불행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궁극적으로 천상적(天上的) 영광을 함께 나눌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고 그의 약속과 언약 역시 변치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뻗치고 계신 하늘 보좌를 눈을 들어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심(13절)
“[13]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
이는, 당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7:6),
시온 성을 재건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16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시온 성벽 재건을 허락하시는 것은
그가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대해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내신 언약에 신실하기 위하여 범죄한 그의 백성을 회복시켜 다시 평강과 안녕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정한 기한이 다가 옴이니이다 - 여기서 '정한 기한'은 1차적으로 사 40:2이하; 렘 25:11, 12; 29:10; 30:18; 슥 1:12-17 등에서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과 같은 특정한 때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벧론 왕을 섬기리라...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벧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렘 25:11, 12).
정한 기한이 지나 새로 도래할 시대의 특징은 죄사함과 회개, 언약 갱신 및 시온 재건 등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었습니다(VanGemeren).
아울러 궁극적으로 보면 이는 영적 이스라엘의 안녕이 성취되는 때로도 볼 수 있습니다(Perowne).
4)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도 은혜를 받음( 14절)
“[14]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의 티끌도 은혜를 받나이다”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도 은혜를 받나이다 - 과거 그 찬란한 자태를 뽐내던 멸망 전 시대뿐만 아니라 멸망을 받아 폐허가 되어 버린 지금도 시온은 남은 자들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멸망 후 경건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티끌들을 자신의 몸에 뿌림으로써 그 성(城)에 대한 애착을 나타냈다고 합니다(Perowne).
결국 본문은 시온 성 재건을 열망하는 남은 자들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한편, 이것은 오늘날의 영적 시온인 교회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 것을 교훈합니다.
즉, 거룩한 성도들은 극심한 환난으로 인한 고통 가운데서,
더욱 그 교회를 사랑해야 하며 좀 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의 티끌도 은혜를 받나이다
그보다는 멸망당한 시온 성의 황폐한 상황을 나타내는 것으로 봄이 더 자연스러울 것입니다(느 4:2; Alexander).
2. 시온의 회복을 확신하다(15~17절)
1) 뭇 나라가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이땅의 모든 왕들이 주의 영광을 경외함(15절)
“[15] 이에 뭇 나라가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이 땅의 모든 왕들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
“경외하다”는 '야라'로서 '두려워하다'를 뜻할 뿐 아니라 '존경, 경외하다'를 뜻하기도 하며, 그 대상은 부모(레 19:3), 백성의 지도자들(수 4:14) 그리고 종종 하나님(15:4; 22:25; 31:19)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목적의 성취일 뿐 아니라 기도의 응답이기도 한 그 백성의 구속 및 회복을 통하여 드러날 하나님 영광의 현시(顯示)로 인하여 이제 이방 세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게 될 것입니다.
2)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의 영광중에 나타나셨음(16절)
“[16]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의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
열방이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고, 그 이름을 경외하는 것은
여호와가 시온과 그 성전을 재건하시며 그 영광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사40:5, 겔40-48장)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백성인 나를 말씀으로 다스리십니다.
3) 여호와께서 빙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멸시하지 아니함(17절)
“[17]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 ”
빈궁한자(아르아르)는 고난 중의 성도를 가리키며,
본문의 경우 바벨론 포로기 중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본 구절이 강조하는 바는 고통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입니다(13절 참조).
가난한 자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마 5:3).
하나님을 위한 가난은 인정받습니다.
3. 시온의 회복을 찬양하다(18~22절)
나를 살피고, 탄식을 들으시고, 내 생명을 건져 주십니다.
또한 그 이름을 백성에게 선포하십니다.
내 입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선포되기를 기다리십니다.
1)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함(18절)
“[18]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돌아오고, 나라가 회복 될 그 사실을 기록하여 다음 오고 오는 세대에 전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과거 출애굽의 사실을 기록하여 전함과 같습니다(출17:14, 신31:19).
그래서 오는 세대인들의 신앙을 굳게하라는 것입니다.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란 회복된 이스라엘을 가리키고(22:31,사43:7,21),
그것은 에스겔의 본 바 백골의 부활과 같은 것입니다.(겔37:1~10)
과연 이 사실은 기록되었고,
또 회복된 백성은 여호와를 찬송한 것입니다.(스3:10~11, 6:16~22, 느12:27~43)
한 학자는 본문이 오늘을 사는 성도에게 주는 교훈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본 구절은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는 그때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교회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이제 우리는 결단코 자포 자기하지 말고 도리어 무(無)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신 그분께서 역시 그의 교회를 죽음의 흑암으로부터 이끌어 내실 수 있다는 진리에 확실히 안주할 수 있어야 하겠다'(Cicero).
2) 하나님은 하늘에서 땅을 살펴보심(19절)
“[19] 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살펴 보셨으니”
“그 높은 성소에서”는 직역하면 '그의 거룩한 높은 곳으로부터'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성소에서 굽어보시어서,
바벨론 땅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의 탄식을 들으시고 그 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참 보좌는 하늘들의 하늘위에 게시고,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는 다만 그 그림자인 것입니다.
3) 갇힌 잘의 탄식을 들으시고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심(20~21절)
“[20]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21]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갇힌 자는 압박받는 자들을 총체적으로 뜻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죽이기로 정한 자는 문자적인 의미는 '죽음의 아들들'입니다.
이 표현 역시 포로민의 비참 상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특정한 시대가 아닌 오고 가는 모든 시대에 사는, 영적 사망의 굴레를 쓴 모든 자들을 포함시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높으신 하늘의 보좌에서 땅을 하감하시는 것은 바벨론에서 고통 받는 백성의 탄식을 들으시고(출2:24,3:7), 거의 죽게 된 그들을 살려(겔37:11),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께 경배하며, 또 그들을 따라 이방인들도 같이 단결하여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15절)
4) 그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22절)
시온이 회복될 때 모든 나라의 백성들은 그곳에 모여 여호와께 존경을 표하며 경배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많은 선지자들의 예언과 소망의 성취가 될 것입니다(47:9; 사 2:2; 60:3-7; 미 7:12; 슥 14:16).
한편, 예언적 비전을 담고 있는 본문은 포로 귀환의 지평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회복에로까지 그 시야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예언이 대개 그러하듯이, 바벧론 포로 상태로부터의 구원을 노래하면서 영감을 받은 시인은 그보다 더 먼 장래의 일,
곧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으로 말미암을 완성의 단계로까지 비전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입니다(Calvin, VanGemeren).
4. 인생의 연약함(23~24절)
“[23] 그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하게 하시며 내 날을 짧게 하셨도다[24]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
1) 그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하게 하십니다. (23절)
이 표현의 핵심은 하나님이 신인의 힘을 빼앗았다는 데 있다기보다는 시인 자신의 죄성과 연약성을 고백하는 데 있습니다.
시인은 본절에서 지금까지의 논조를 갑자기 바꾸고,
인간 수명의 짧음 및 그의 연약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암시적으로 하나님의 영원성, 무변성을 드러내려 하고 있습니다(24절 이하).
시인의 건강이 그간의 고민 때문에 중년에서 쇠약해지고 그의 수명도 단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24절)
시인은 자신의 건강이 쇠약하여 중년에 요절할까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요절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증거로 취급되었던 것입니다.(출20:12).
*출20:12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연대는 무궁한 것처럼 자신에게도 장수의 축복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할 것은 이 같은 간구는 삶에 대한 본능적인 집착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사 38:10, 11의 히스기야의 경우와 같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하여 드러날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는 강한 열망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한편으로 그의 연약성을 절감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영원한 팔 되신 그분께 대한 의존감을 피력한 것입니다.
그는 어쩌면 자기 자신은 소멸한다고 할지라도 그의 후손들은 결코 좌절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목도하기를 소원하고 있었을런지 모릅니다(28절).
5. 하나님의 영원하심(25~28절)
1) 피조 세계가 창조주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유한한 것임(25절)
“[25]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이 구절은 천지 창조 사실 자체에 핵심이 있지 않고 그 피조 세계가 창조주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유한한 것이라는 사실에 핵심이 있습니다.
시작이 있는 피조 세계는 그 종말이 있으니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사 51:6).
물론 이는 역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영존(永存)하심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2)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26절)
“[26]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
하늘과 땅은 영원하고 지속적인 모든 것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흔히 간주되고 있지만(78:69; 104:5; 119:90; 148:6),
하나님과 비교될 때에는 곧 낡아 없어져 버릴 의복과 같은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사34:4; 51:6).
3)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27절)
주는 한결 같으시고( 아타 후) - 문자적인 뜻은 '당신은 그이시다'.
이는 24절 하반절로부터 26절 상반절까지에 묘사된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내가 곧 그니라'의 사 41:4 외에 신 32:39 등이 그 유사 구절입니다.
4) 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있을 것입니다(28절)
“[28] 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시인은 그 연한이 끝나는 날이 온다 해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종인 이스라엘 자손은 멸절하지 않고, 주 앞에서 영원히 존재하고,
또 영존할 처소를 얻어(37:29; 69:36),
주 앞에서 굳게 서며, 번영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주관자이십니다.
나의 생명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질병이나 나이로 인해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진 않습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나를 보호하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며, 온 땅에서 섬김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날은 풀과 같고, 연기 같고, 그림자 같지만, 여호와는 영원하십니다.
심지어 천지도 낡은 의복처럼 없어지겠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무궁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날은 짧아도 그분 안에 있으면 항상 안전하고 영원히 굳게 설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생긴 불안과 염려를 감추거나 없앨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유한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짧은 인생을 위해 영원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장차 하나님은 페허의 자리에서 영광스러운 시온을 재건하실 것입니다(15~17절).
그때가 되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손가락질하던 이방 나라들도 참 하나님을 향해 두손을 들고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길 잃은 빈궁한 자의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어, 더는 멸시당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거리가 먼 이방 민족에게도,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궁핍한 자들에게도 구석구석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무너진 자리마다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그분의 주권을 행사하실지 묵상해봅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시들어가는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며 절망하던 시인은 페허가 된 시온을 바라보며 회복을 열망합니다(12~14절).
돌무더기 잔해 앞에서 가슴 아파하는 종들의 기도를 하나님은 이면하지 않으시고 다시금 시온을 영광 가운데 세우실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절망만 하란 법은 없습니다.
돌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소망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2) 시인은 다음 세대를 위해 하나님이 하실 회복을 찬양으로 기록하려 합니다(18~22절).
시온을 떠났다고 생각했던 하나님이 다시 돌아오셔서 어떻게 좌정하시는지 모든 사람들의 기억과 입술에 남기려 합니다.
예루살렘뿐 아니라 뭇 백성과 뭇 나라에까지 찬양이 울려 퍼질 그날의 기억만큼 감격스러운 날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남길 찬양과 유산은 절망에 굴복한 과거가 아닌 절망을 극복한 미래여야 합니다.
3) 누구보다도 시온의 회복에 대한 소망이 켰던 만큼 시인은 그때까지 살아 샬롬의 현장을 지켜보고 싶었지만 이마저도 내려놓습니다(23~28절).
다만 영원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끝까지 시온과 신실한 백성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한결같고 영존하시는 하나님은 세대가 바뀌어도 회복의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내가 약속이 실현되는 현장에 있지 못해도 하나님의 성품과 계획이 반드시 성취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