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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섬기는 성도의 거룩한 멍에(마태복음 11:29~30)
2024년 8월 18일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설교: 김성현 감독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29~30)
우리는 가끔씩 최소한 우리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확실히 점검을 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주기적으로 되어야 된다고 보는데, 우리의 입장은 이 세상은 잘 갖지 않는 우리만의 갖는 특별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협력체입니다. 하나가 돼서 일하는데,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또 인류가 직접 목격하고 만나보고 만지고 들었던 우리 주님께 대한 충성으로 오늘 우리가 우리의 모든 세월과 삶을 그분께 맞춰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있어서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충정입니다.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각각의 마음이 그분께 있어 우리는 그분 앞에 무릎 꿇고, 그분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그를 향해 달려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연합된 마음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부럽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떤 경쟁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신령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시각에 약간 빈틈이 생겨서 세상의 아이디어가 우리 안에 들어와서 그 자리를 채워 간다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뜻이 현실화된 곳에 세상의 이론이 침범하게 되는, 대신하게 되는 것에 대해 저는 굉장한 우려를 느낍니다.
우리가 이 땅의 각처에 지내다가 여기서 만났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통해서 만났습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서 만났다 이 말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그의 피 흘리신 희생을 통해서 우리는 만났습니다. 이제 우리가 드릴 것은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드릴 것도 없습니다. 죄악만 가득하여서 그분께 뭘 드리려 하면 죄악을 오히려 드릴 거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긍휼하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사랑을 받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십니다. 그의 은혜를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십니다. 우리가 그에게 드릴 수 있는 사랑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그분은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희생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조금은 그분께 보답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은혜에 평생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얼마나 길 것 같습니까? 길어봤자 120년입니다. 그 동안만 하나님께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십니다. 이 현생은 정말 금방 지나갑니다. 저도 엊그제 20대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여기 있는 누가 됐든, 인생은 주님을 향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 이스라엘은 이것을 실패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의문의 법’이 존재하여서, 질서를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약간 강제성을 가진 어떤 질서가 그들을 인도해 가려 했습니다. 그것은 주님 오시고 그 안에서 다 무너졌다는 것을 초대교회가 기존의 유대파들과 논쟁을 하면서, 사도 바울이 특별히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이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오늘 온 세상에 참으로 주님의 법이 승리하게 된 것은 사도 바울이 그 계시를 똑바로 소신있게 우리에게 전달하여 오늘 성경으로 등장되도록 기여를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옛 법을, 옛 멍에를 벗겨주셨습니다[1]. 과거의 멍에는 인간을 억누르는 그런 멍에였습니다. 마음은 슬프고, 하기는 싫은데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까 본문 말씀처럼 예수의 멍에는 가볍습니다.
그렇지만 매긴 매야 합니다. 누구도 예수의 멍에를 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습니다. 가벼워도 나름 그 이름을 단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에는 예수의 겸손이 잔뜩 들어있고, 그의 선하심과 겸손하심이, 온유하심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자유합니다. 자유하다는 것은 옛날처럼 더 이상 우리가 어떤 법에 의해 강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자유인’이라는 할 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구속된 것이거든요? 속량, 우리의 죄를 누군가 대신 치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죗값을 치러주신 그분께 속한 것입니다. 자유하게 되었다고 해서 아무 주인도 없이 내 멋대로 살 수 있는 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셨기에, 우리는 법적으로 예수께 속해 있습니다. 우리를 소유하신 분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가 자유하다는 것은 그분 안에서 자유한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돼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좋으십니까? 그런데 세상에서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할까요? 누구든 어디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으면 마귀, 원수에게 속합니다. 자유한 자란 하나님 안에 있는 자, 그 사랑 안에 있는 자입니다. 방종하는 자가 자유한 것 같지만, 사실 그도 사단이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방종하는 자가 아니라 자유한 자입니다. 자유하다고 해서 내 마음에 오는 생각으로, 세상에서 오는 세상의 이론, 감정, 정서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섬기는 데에 자유한 자입니다. 거룩한 곳으로 우리는 자유롭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얼마든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자격이 있습니다. 라이센스가, 면허증이 있습니다. 죄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자격이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이런 라이센스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우리를 특별하게 합니다. 우주의 그 어떤 존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습니다. 온갖 더러운 것을 다 주의 이름으로 추방해낼 수 있고, 미워할 수 있고, 저주하는 거룩한 몸부림을 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연결된 사람들입니다.
대신 책임도 있습니다. 멍에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누가 억누르지 않는 책임입니다. 주가 신뢰할 수 있는 자로서 주를 섬기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렇게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방종이 아니라, 절대 질서입니다.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절에 보면, ‘나는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다만, 율법이, 의문의 법, 어떤 성문법이 나를 강요하지 않아도 나는 내 주께 기쁨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했습니다[2]. 할 수 있어도, 내가 안 하는 것입니다. 주의 교회에 이득이 안 되는 일이라면, 누가 ‘말라’하지 않아도 스스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내가 할 수 있어도 주님께 기쁨이 안 되면 난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고 말고를 내가 결정해서 하는 이것이 자유입니다.
다만, 우리 중에도 스스로를 경건하게 여겨서 속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 경건하다, 나는 경건하다.’ 생각하면서 “오~ 위대하신 하나님, 하나님~” 합니다. 하나님을 대단히 높이는 사람 같이 보이는데, 속으로는 하나님을 속이고 있는 사람입니다[3]. 하나님께는 진실하지 않습니다. 그냥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부를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듭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받들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신앙생활을 수십 년 한들,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시고, 불과3개월 신앙생활 한 자라도 진실한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통회하고 있는 자를 멸시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저의 질서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소중한 충성이 우리의 법입니다. 목까지 조여오는 법이라도 이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가 벗기셨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멍에를 씌워주셨습니다. 우리의 양심으로 주께 다가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은 우리 마음을 살피시고,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 영광 돌리고, 우리의 신실함이 주님께 기쁨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여서 아무리 찬양하고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받으십니다. 그는 우리의 마음을 꿰뚫고 계시다는 사실을, 이 순간에도 우리 마음을 보신다는 사실을,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4]. 성경은 이를 계속 반복되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들여다보신다[5]’ 했고, ‘사람의 심장을 보신다’ 했고,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드릴 것은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섬기는 모든 것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멍에는 누가 강제로 억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온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씌워준 것입니다. 갓난아이가 이불로 꼭 싸주면 엄마품처럼 편안하게 느끼는 것처럼, 엄마 품처럼 포근하게 우리를 묶어주는 것이 주님의 멍에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끝까지 주님이 우리를 계속 지켜보고 계시고, 우리 마음을 판단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원수를 포기하고, 매일 주님으로 채워가야 합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에게 95%의 악이 있고 5%의 의가 있다면, 이 5%를 붙들고 주님 앞에 호소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지역 예배당이 있습니다. 사태 났을 때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많은 사람이 “이 예배당은 우리 거다.”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역법원에 성락교회를 고소했습니다. “이 예배당은 우리 거다! 봐라, 여기 담임목사 아무개라고 써 있지 않느냐?” 그는 부목사입니다. 이 같은 행위는 하나님에게서 재산을 강탈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적으로도 예배당 건물은 교회 소유입니다. 예배당은 성락교회 것입니다. 우리 성락교회에 있는 모든 예배당 건물이 다 성락교회 것입니다. ‘예배당은 예배당 사람들의 것이다! 우리 헌금으로 한 것이다!’ 그들이 돈을 내서 지었다고 해도 그것은 교회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신앙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그 예배당 사람들의 것이 아닙니다.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사악한 태도입니다. 이 물질이 자기 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예배당이 나뉘어졌습니다. 그리고 자기들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곳에 있던 부목사들도 ‘이 예배당 이제 내 거 되나? 잘하면 내 이름으로 넘겨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아이, 이렇게 하면 나를 먹여줄 수 있겠지.’ 생각했겠지만, 그것이 사단의 노예가 되는 것인 줄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어느 특정 예배당이 ‘우리 예배당은 특별히 우리만의 고유한 특색이 있다!’고 주장한다든지, 예배당에 오래 있었던 성도가 ‘내가 여기 터줏대감이니, 내 결정을 따라야지.’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자기가 소속된 예배당에 대해서 ‘내가 우리 예배당을 좀 보호해야 되겠는데?’ 하는데, 거룩한 교회의 주인은 우리 주님이신데, 그렇게 주장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 이름을 수십 년을 외치는 사람은 교회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이 단어가 얼마나 멋있습니까? In Christ. 노래로도 수백 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 안’은 특별한 영역입니다. 영원한 행복의 영역, 사랑스럽고 은혜로운 영역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 있다는 것 때문에 우리가 행복한 것인데, 그 안에서 주인 노릇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 주님의 은혜 받은 자로서, 주의 성도로서, 주의 몸을 이룬 자로서 함께 가는데 왜 그 안에서 주인행세를 합니까? 왜 우리를 슬프게 하죠?
우리 예배당의 색깔, 특색, 예배당의 어떤 파가 있어서 강성을 나타내는 것들, 이런 거 하지 맙시다. 예배당의 지도자급인 사람은 가당하게 판단을 해야 합니다. 교회를 분열하고 찢고 도둑질해가려는 세력들과는 싸우고, 성도 안에는 자기를 낮춰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의 집사입니다. 집사는 서빙하는 사람입니다. ‘서번트(servant)’라는 단어 자체가 섬기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의 재산을 갉아먹거나, 교회 재산이 망가지고, 썩어지고 하는데도 모른 척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에 대해 주님이 다 물어보실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꼬치꼬치 캐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 얘기한다고 했습니다. 청문회 같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수를 많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가짐을 새로 가지시길 바랍니다. ‘난 주님의 재산에 절대 내 소유몰로 여기지 않는다. 내 예배당의 주인은 우리 주님, 그리스도시다. 나는 그의 청지기다. 우리 교회의 모든 재산은 우리 교회 것이다. 우리 예배당이 따로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 예배당 색은 없다. 우린 아무 색도 없다. 예수색밖에 없다.’
하나님은 ‘사람 앞에서 자기를 높이는 자를 미워하신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아시는 바가 된다’고 했습니다. 예배당 성도들 안에서 자기가 무슨 대장 노릇을 한다든지, 예배당의 특성을 유지한다면서, “성락교회에서 우리 예배당을 보호하자.”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특권을 틀켜쥐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교회를 아프게 하고, 성령을 근심케 합니까?
성락교회의 모든 예배당이 다 우리 주님의 것, 성락교회의 것입니다. 세상에 정치적, 사회적으로 새로운 물결이 세게 지나가니, 그 틈에 교회를 통해서 자기의 이권 취하고, 교회를 장악하고, 지배하려고 자기 몸에 원수를 집어넣고 교회 안에 들어와서 원수의 방법으로 장치를 해 놓고 뭘 해 보려고 하는 것들은 다 버리고, 십자가 밑에 다시 한번 고꾸라져서 회개하고 교회에 나오시기를 바라겠습니다. 할렐루야!
주의 멍에를 진 기쁨도 가져야 합니다. 주의 멍에를 진 영광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남기신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겠다.’ 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든 자기를 편하게, 자기를 남들보다 더 높게, 더 편하게, 더 유리하게 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지나간 것은 그것으로 족하다 했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진 자들로서, 주님이 나 대신 겪으신 그 아픔의 억만분의 1, 그 가루의 핵 같은 것만큼이라도 주님을 위해 고난의 짐을 질 수 있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룩한 짐을 짐으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또 여러분 자손에 천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큰 복이, 하나님의 시선이 머물러 들어오게 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부족한 것이 많지만, 이제 주님의 멍에를 지고 싶습니다. 사회에서 몰려오는, 세상에서 오는 민주주의, 세상의 사상에 우리가 하나도 이끌리지 않겠습니다. 우리 마음의 욕심을 핑계로 내 욕심을 채우려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주님의 은혜로 만족하고, 주님의 영원한 약속으로 만족하고, 주님의 영원한 사랑에 마음이 흐뭇합니다. 우릴 역사하셔서 주께 기쁨이 되는 우리 인생, 함께 협력하여 만들어가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다 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신 그 큰 은혜를 생각할 때 정말로 감사와 영광 돌리며, 우리 평생을 주님을 위해 어떤 수고를 한다 해도 주님의 마음을 채우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최선을 다하여 우리 하나님을 향하고, 최소한 우리 하나님을 향한 진실을 향하고, 할 수 있는 한 우리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다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협력하여서 진실로 서로에게 섬기며 또 용기를 주는 우리의 모습이 있길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말 부족하지만 우리가 열심으로 함께 힘을 모아서 의를 만들고 싶습니다. 주의 교회를 잘 보존하여서 주님께 온전히 드리길 원합니다. 세상의 마귀에 속한 모든, 또 세상에 속한 영향력, 그러한 궤술적인 이론으로 주의 교회를, 주님의 재산을 갉아먹고, 주님의 재산을 탐내는 그런 일들은 없게 하시고, 신실한 마음으로 주를 섬기는 우리 성락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녹취: 성락교회 성락선교센터
[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2]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24)
[3]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 1:26)
[4]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23)
[5]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수하심을 나로 보게 하옵소서(렘 20:12)
[출처] 20240818 교회를 섬기는 성도의 거룩한 멍에(마태복음 11:29~30)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감독|작성자 이기택 목사